내 입술 따뜻한 수프처럼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따끈하고 매끈한 수프 한 그릇을 후루룩 비우면 어제보다 나아질 거라는 믿음을 안고서 수프 순례를 떠났다. | 레스토랑,푸드,맛집,수프

겨울 감기는 지독하다. 걸리면 맥을 못 춘다. 약도 먹고 병원에 가는 것이 순리다. 그런데 나는 미련하다 싶을 정도로 그것을 거부한다.(살면서 그것보다 혹독한 것이 얼마나 더 많은데!) 그 대신에 뜨끈한 무언가를 간절히 부여잡는다. 먹으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온기를 지닌 음식 말이다.신을 믿는 나는 종종(아니 자주) 시험에 들곤 하는데, 수프에 대한 이상한 신념만큼은 흔들린 적이 없다. 따끈하고 매끈한 수프 한 그릇을 후루룩 비우면 어제보다 나아질 거라는 믿음. 올해 찾아온 첫 감기를 환영(?)하며 수프 순례를 떠났다.첫 번째 정차역, 한남동에 있는 ‘샐러드셀러’(02-794-0282)는 사계절로 치면 ‘봄’이다. 이렇게 추운 한겨울에도 모두가 널찍한 나무 테이블 위에 앉아 싱그럽게 풀을 뜯고 있다.푸르른 채소를 외면한 채 단호박 수프를 주문하고 외딴섬에 온 사람처럼 모퉁이 창가에 앉았다. 노랗고 윤기 도는 표면 위로 모락모락 연기가 올라온다. 수프를 한 수저 뜨면 마주 보고 앉은 유리창에 금세 뽀얗게 수증기가 맺혀 앞이 보이질 않을 정도다.카푸치노처럼 계피가루가 솔솔 뿌려진 향신료 그득한 수프를 먹다 보면 어느새 등줄기가 후끈해진다. 꽁꽁 싸매고 있던 코트를 저절로 풀어 헤치게 된다.향신료의 맛이 제대로 담긴 수프 한 그릇은 압구정 로데오 길에서도 만날 수 있다. 카페 형태의 작은 사이즈에서 얼마 전 레스토랑 개념의 근사한 공간으로 확장한 ‘사뜨바’(010-9904-9144)가 바로 그곳.‘#비건 #채식 #다이어트 #슈퍼푸드’ 키워드로 해시태그 할 수 있는 건강한 음식을 추구한다. ‘You Are What You Eat’이란 캐치프레이즈를 유리창 정면에 큼직하게 프린팅해놓았다.아이러니하게 음식점인데도 채움보다는 비움의 정신이 느껴진다고나 할까?이스트와 유제품을 지양하고 고기 역시 최소한으로 사용한다. 메뉴 대부분에 ‘비건’ 신호가 붙어 있다.채소로 육수를 내어 걸쭉하게 끓인 당근 수프는 되직해서일까. 커리처럼 밥을 비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커리의 주 성분인 커민 외에도 10가지 가량의 갖가지 향신료를 넣고 뭉근하게 끓여내서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나면 이국적인 향취가 입안 가득 맴돈다.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왜 서울에 제대로 된 수프 전문점은 없는 걸까? 아니, “죄다 사라졌을까?”라고 묻는 것이 맞겠다. 역삼역의 ‘크루통’, 이태원의 ‘컵앤볼’, 가로수길 ‘아이러브수프’처럼 수프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곳이 한때 서울에도 있었으니까.수프를 사이드 메뉴가 아닌 주인공으로 내세운 ‘수프 스탁 도쿄’가 일본에서 18년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 좀 부럽기도 하다.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궁극의 수프’를 찾아 헤매다 의외의 발견을 했다. 반짝했다 사라지지 않고 오래도록 자리를 지켜온 브랜드에서 묵직한 수프들이 여전히 끓고 있었다는 사실이다.‘카페마마스’(02-6282-1009)의 감자 수프와 ‘베키아에누보’(02-3479-1440)의 브로콜리 수프는 거의 짬뽕 그릇 크기만 한 사발에 수프를 여백 없이 가득 담아 푸지게 대접한다.혼잡함을 집대성해놓은 고속터미널 역에서 속이 든든하고 뜨끈해지는 성의 있는 음식을 애타게 찾는 이들에게 저 두 곳을 추천하고 싶다.수프의 매력은 심플함이다. 생각할 새 없이 음미할 틈도 없이 후루룩 넘어가는 그 단순함.자고로 수프는 두 개의 종파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건더기 옹호론자와 국물 추종자들의 팽팽한 대결구도.나는 후자에 속한다. 수프의 매력은 심플함이다. 생각할 새 없이 음미할 틈도 없이 후루룩 넘어가는 그 단순함.교파가 다른 두 사람이 찾아가도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며 수프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 경리단길 육교 아래 자리한 ‘더베이커스테이블’(070-7717-3501)에서는 네 가지 데일리 수프를 매일 먹을 수 있다.수저가 무색해질 정도로 목구멍으로 후루룩 넘어가는 버섯, 단호박, 토마토, 브로콜리 수프가 ‘국물파’를 위한 메뉴라면 겨울 시즌 한정 메뉴로 선보인 완두콩 수프는 씹고 뭉개는 맛이 있는 요리다.그릇 생김새부터가 다르다. 오목한 그릇에 찰랑찰랑 넘치게 담겨 나오는 데일리 수프와는 달리 완두콩 수프는 이곳의 장기인 바삭하고 고소한 두 조각의 빵이 걸쳐질 만큼 챙이 널찍한 대접에 담아 나온다.소시지, 당근, 감자 등 눈으로 분별 가능한 큼직한 건더기들을 박박 긁어 먹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쌍꺼풀이 또렷하게 진 외국인 점원에게 완두콩 수프는 언제까지 먹을 수 있냐 물으니 “그건 사장님 마음”이라며 씩 웃는다.서울의 기온이 영하로 갑자기 곤두박질치던 그날, 수프를 먹지 않았더라면 좀 더 춥고 시렸을 것이다. 옷을 곱절로 껴입어도 으슬으슬 추운 날, 기분이 이유 없이 울적한 날, 하루 종일 이삿짐을 싸고 풀어 몸이 쑤신 날, 빌린 물건을 깨먹은 날, 후추통을 호방하게 테이블에 쏟아 엎은 날, 결정적 찰나에 카메라 셔터가 터지지 않은 날. 이런저런 핑계를 붙여 수프를 먹는다.효자동으로 향했던 그날도 심신이 저기압 상태였다. 테이블도 의자도 천장도 심지어 빵이 놓인 도마마저도 나무로 세팅된 아늑한 ‘두오모’(02-730-0902)에 안착했을 때 묘한 편안함을 느꼈다. 마침 휴대폰 배터리도 1%로 방전 직전 상태. 모든 걸 잠시 내려놓으라는 계시 같았다.기역(ᄀ) 자 바에 혼자 앉아 페도라를 거꾸로 뒤집어놓은 것 같은 목이 깊은 그릇에 담긴 수프 한 그릇을 먹었다.예전에 요리하는 친구에게 “브로콜리랑 콜리플라워랑 맛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라?”라고 물었던 요상한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았달까?수프를 꿀꺽 삼키면 입안에 침이 고였다. 적당한 산도를 지닌 그 수프는 다음 요리를 서둘러 재촉했다. 알리오올리오와 먹으려고 ‘킵’ 해두었던 페코리노 화이트 와인 한잔을 앞당겨 한 모금 흘려 넣었다.두오모는 그 계절 가장 맛있는 채소로 수프를 끓인다. 겨울 수프의 운명은 준혁이네 농장의 작황에 달려 있는 것이다.한때 나는 어니언 수프를 맹신했던 적이 있다. 고백하자면 맛이 없는데도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스무 살 초반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곁눈질해온 그 음식을 마침내 손님이 되어 알은체하며 주문했을 땐 크게 실망하고야 말았다. 짜도 너무 짰다. 한껏 힘을 주고 시킨 체면을 구기기 싫어 그 소태 같은 것을 꾸역꾸역 퍼 먹은 기억이 있다.프랑스에서 건너온 낯선 그 음식을 능숙하게 먹고, 애호함을 드러내는 것이 좀 있어 보인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이방인은 단시간에 소화하기 어려운 그들 각자의 음식이 있지 않은가. 오랜 시간 그것을 먹어오고 만들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퇴적된 어떤 맛과 기억들. 고향 음식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단서이자 무뎌진 생의 감각을 터트려주는 결정적 순간이 되었던 영화 속 틸타 스윈턴의 ‘우하 수프’처럼.리슬링의 나라답게 화이트 와인을 넣고 끓인 알딸딸한 수프는 내게 독일의 ‘생경한 맛’으로 남아 있다.제주도 게스트하우스 ‘쫄깃쎈타’의 주인장이 밤새도록 술을 부어라 마셔라 하다가도 아침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하게 일어나 손수 주걱을 휘저어가며 끓여주던 일명 ‘메뚜기 수프’는 낯설면서도 익숙했다.(크림 수프를 베이스로 제주산 감자와 양파를 듬뿍 넣고 약간의 청양고추를 첨가해 묘한 녹색빛을 띠어 그렇게 이름 불린다고 한다.)생각해보면 내게 수프란 고유명사는 ‘크림 수프’로 각인되어 있다. 러시아에 보르스치, 헝가리에 굴라시, 태국에 톰양쿵, 브라질에 페이조아다가 있다면 코리아엔 ‘오뚜기’가 있다.가루 역사의 산증인이자 분말계의 본좌 오뚜기 수프의 탄생 스토리는 이렇다. 국물을 좀 더 세련된 형식으로 먹는 방법을 연구하다 수프를 만들었다는 것.크림 수프는 과거에도 지금도 우리 집 부엌 찬장에 항시 구비되어 있는 제2의 비상식량이며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이것은 ‘수프 총량의 법칙’이다. 어쩌면 내가 태어난 이래로 가장 많이 그리고 자주 먹은 음식일지도 모른다.밋밋하고 만만하지만 없으면 허전한 것이 ‘아이보리 빛깔 수프’의 매력이니까. 돈가스도 스테이크도 언제나 너(?)로부터 시작되지 않았던가. 나의 수프 순례길 마지막 행선지는 돌고 돌아 완전무결한 그곳으로 종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