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유랑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서울 골목길을 구석구석 걸으며 만두 유랑을 떠났다. 겨울이야말로 만두가 맛있게 익어가는 계절이다. | 맛집,만두,첨밀밀

찌르고 가르면 속이 훤히 드러나는 만두를 앞에 두고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넌 참 속을 모르겠어.’ 혹시 속을 잘 열지 않는다는 뭇사람들의 말에 대한 반작용으로 내 평생 이토록 많은 만두를 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두처럼 바로 본심을 말하자면 나는 만두가 좋다. 유명한 만둣집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왔다. 대관절 세상에 맛없는 만두도 있단 말인가! 고기, 채소, 두부, 당면, 김치 등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온갖 재료를 가장 작은 입자로 조화롭게 섞어서 꽁꽁 감춘 그 음식을 말이다. 재료를 잘게 다져 부드러운 식감을 가졌으니 만두야말로 진정한 어른의 이유식이 아닐지?만두는 평등하고 평준화된 음식이라 생각한다. 눈대중하지 않고 정확한 개수로 판매하는 투명한 방식의 음식이지 않은가. 대부분의 만두가게는 가격 옆에 꼭 개수를 써놓는다. 그 점이 참 맘에 든다.(5명의 인간과 2마리의 고양이가 기거하는 우리 집 같은 대가족에게 ‘개수의 미학’은 아주 중요한 룰이다.) 그런가 하면 만두처럼 실패 확률이 적은 음식도 없다. 요즘 같은 경우엔 그야말로 만두의 황금기란 생각이 들 정도다. 편의점, 대형마트, 백화점을 막론하고 저마다 훌륭한 퀄리티의 만두를 양산한다. 전국만두협회를 통해 최상의 레시피를 서로 간에 공유라도 하는 것인지 어디서 먹어도 비슷한 계열의 맛이 존재한다. 지나친 기대도 큰 실망도 없는 음식이야말로 만두의 정체성이 아닐까. 솔직히 여러 매스컴을 통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추천하는 그 만두가게와 우리 동네 시장 만두 사이에 호들갑 떨 만큼 큰 차이가 있을까 싶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편애하는 만두 종류가 있다. 가로수길 딤섬 전문점 쮸즈(02-6081-9888)에서 파는 소롱포가 바로 그것이다. 최근 가장 운수 좋았던 날은 10분 정도 기다리다 그곳에 안착했던 날이다.(단언컨대 30분 안에 그곳에 들어갈 수 있다면 행운이다.) 맛도 맛이지만 다닥다닥 붙어 있는 아담한 공간도 한몫하는 것 같다. 혹자는 그래서 이곳이 더욱 홍콩스럽다고 말한다. 젓가락으로 ‘푹’ 하고 찌르면 윤기 도는 육즙이 졸졸 새어 나오는 소롱포는 한 판만 시키면 후회감이 든다. 손바닥만 한 대나무 찜통에 미니 귤만 한 것이 세 개 담겨 나오기 때문이다.(추가 주문이 안 된다는 것을 유념하자.) 돼지껍질이며 닭발이며 평소에 잘 먹지 않는 재료를 ‘톡’ 터지는 국물로 감춰놓았으니 내겐 이보다 더 기막힌 분자요리(?)가 따로 없다.시공간을 건너뛰어 무교동으로 넘어가보자. 시청역에 내려 빌딩숲 사이를 지나면 포토샵으로 붙여넣은 것 같은 아날로그적인 프레임 속에 리북손만두(02-776-7361)가 있다. 골목길에서 마주친 비둘기 한 마리가 어떻게 날아왔나 싶을 정도로 미로처럼 길이 나 있다. 백발의 주인장이 “혼자 오셨어요?” 묻는다. 김치말이국수와 접시 만두를 시켜 말 없이 먹었다. 입안이 서늘하다 따뜻해졌고, 고소함과 개운함이 반복됐다. 만두편을 다시 봤더니 맛의 비결은 이렇다. “이북에선 주로 돼지고기의 기름 부위를 사용하는데 채소보다 고기를 더 많이 넣어 소를 만들어요. 만두가 크고 두껍다 보니 찌지 않고 삶아서 먹어요. 사골 육수에 만두를 삶아내는데 육수가 스며들어 맛이 더 좋아진답니다. 평안도 만두는 워낙 크고 피도 두꺼워서 예쁘게 안 빚어도 돼요. 맛만 좋으면 돼요.” 그러자 프로그램의 터줏대감 최불암이 이렇게 말한다. “이 정도면 예쁘지. 사랑스러운 만두. 쪽(입 맞추는 소리).”무교동에서 버스(혹은 지하철)를 타도 20분, 걸어도 20분이 걸리는 위치에 오구반점(02-2267-0516)이 있다. 여기서 또 한 번 타임머신을 타게 된다. 사방이 온통 복을 기원하는 한문으로 둘러싸여 있고 1백 년 전부터 살았을 것 같은 붕어인지 잉어인지 모를 물고기들이 수족관에서 입을 뻐끔거리고 있다. 나처럼 혼자 온 이들은 1층, 고량주에 본격 요리를 즐기러 온 이들은 2층으로 우르르 올라갔다. 연극 무대 세트 같은 낡은 커튼과 유물처럼 느껴지는 주판이 보였고 연탄 난로 위에서 따뜻한 물이 끓고 있었다. 타임슬립한 드라마 주인공처럼 가게를 샅샅이 훑는 동안 앞은 노릇노릇하고 뒤는 새하얀 제대로 구운 군만두가 등장했다. 하나 맛을 보고 주인장에게든 주방장에게든 뭐든 묻고 싶었는데 카운터를 지키는 백발의 여사님과 이 한마디 나눌 수 있었다. “여기 이름이 왜 오구반점인가요?” “응? 5-9번지라서.” 오구반점은 을지로3가에 있다.만두만큼은 강남보다 강북이 강세다. 인사동 찻집에서 아르바이트 하던 시절 구내식당처럼 들렀던 개성만두 궁(02-733-9240), 평창동에서의 밥벌이 시절 해장의 통로로 삼았던 자하손만두(02-379-2648), 주인 부부가 입구에서 프라이팬에 만두를 정겹게 구워주던 남영동 구복만두(02-797-8656). 공교롭게 서울의 첫 번째 빕 구르망 리스트에 세 곳의 이름이 나란히 등재되어 반가웠다. 빕 구르망 가운데서 압구정동 만두집(02-544-3710)만이 유일하게 강남에 위치해 있었다. 한밤중에 사진을 찍으면 ‘만두집’이란 빨간 글씨만 보이는 이곳은 화려한 조명을 뿜어내는 갤러리아백화점 맞은편 골목길 어두운 곳에 깊숙이 숨어 있다. 메뉴는 심플하다. 만두전골, 만둣국, 고추천과 빈대떡이 전부다.(콩비지도 파는데 먹는 사람을 보진 못했다.) 두터운 맛의 사골 육수보다는 (평양냉면의 맑음에 가까운) 청명한 육수에 실한 만두가 동동 떠 있는 만둣국을 먹을 수 있다. 식탁을 비추는 (쨍한 형광등이 아닌) 은은한 노란 조명 아래서 후루룩 그릇을 비워냈다. 남다른 감도와 취향을 지녔을 청담동 일대 디자이너들의 소울 푸드와도 같은 곳이었다고 하니 만두계의 진정한 클래식이 아닐까 싶다.그러나 오래도록 질리지 않는 클래식이 진짜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언제나 특이한 디테일에 먼저 사로잡히고야 만다. 연남동 편의방(02-363-5887)에서 만난 어만두가 바로 그랬다. 고기 대신 삼치를 다져 넣었다기에 냉큼 주문했다. “혹시 만두가 잘못 나왔나요?”라고 되물을 만큼 ‘알던 맛’이라서 의아했다. 그러나 반전은 포장에서 일어났다. 차게 식은 어만두를 먹은 이의 낯빛이 어두워졌다는 후문.(그에게는 미안하지만 반드시 데워 먹어야 생선 비린내를 피할 수 있다.) 옆 테이블에서 ‘편의방 만두 예찬론’을 펼치며 굽고 찌고 물에 삶은 것을 골고루 시켜 먹는 풍경을 흘깃 바라보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아쉬운 마음에 연남동 길을 따라 만두의 성지인 하하, 향미, 이품분식을 일부러 스쳐 지나갔다. 주말이나 평일 저녁에 길게 줄이 늘어선 그곳이 평일 대낮엔 한없이 여유로웠다.주말에 만두 산책을 계획한다면 대림역으로 향해보는 건 어떨까? 한국말보다 중국어가 훨씬 큰 사운드로 귀에 꽂히는 대림중앙시장으로 가면 식당마다 차곡차곡 쌓은 대나무 찜통을 밖으로 내놓고 희뿌연 연기를 한가득 뿜어대는 탓에 만두 생각이 절로 난다. 두둑한 반죽 안에 달걀과 부추로 속을 채운 심플한 만두부터 뜻 모를 중국어를 보디랭기지든 사전이든 열심히 해독하여 주문해야 하는 독특한 만두까지, 여행지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름은 똑같은데 전혀 다른 크기와 형태로 생긴 기이한 채소, 한 움큼에 1천원씩 파는 고수, 엄지손가락만 한 번데기처럼 서울의 낯선 면면을 볼 수 있다.어젯밤 어떤 영화를 보다 잠들었는데 기어코 해가 뜨자마자 진눈깨비를 맞으며 코트 깃을 여미고 잰걸음으로 달려간 곳이 있다. 압구정 산동교자관(02-514-2608)이다. 목소리가 성우처럼 낮게 울리는 주인장이 모노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창가에서 만두를 빚고 있다. 목가적으로 느껴지는 방망이 미는 소리를 들으며 사천훈둔탕(‘훈둔’은 중국어로 만둣국이란 뜻)을 먹었다. 연녹색 젓가락으로 굴이며 부추며 팔랑거리는 만두 사이를 바삐 휘저었다. 국물은 허연데 입술이 붉게 부풀어 오를 만큼 고추로 얼큰한 맛을 살렸다. 정적이 흐르는 사이, 어젯밤에 본 영화를 다시 떠올린다. 세상에서 가장 예쁘게 만두를 먹는 여자 장만옥이 호로록 만둣국을 먹던 그 장면. ‘띠링띠링’ 울리는 자전거로 가까운 곳은 배달도 해주고 등려군의 간드러진 음악이 BGM으로 흐르는 ‘첨밀밀’이란 만두가게를 누군가 서울에 만들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게 벽면엔 영화의 이런 대사도 작게 써놓고 말이다. “어젯밤은 춥고 비가 내렸어요. 우린 외로웠고 온기가 필요했을 뿐이죠.” 겨울이야말로 만두가 맛있게 익어가는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