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섬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일본으로 떠나는 아트 트립은 언제여도 좋지만, 섬 자체가 예술작품이 되는 세토우치 트리엔날레(Setouchi Triennale)가 열리는 해는 더욱 특별하다. 지금 세토 내해의 크고 작은 섬들은 안온한 휴식의 기능을 수행하는 예술에 물들어 있다. | 세토우치트리엔날레,비엔날레,아트

처음 이곳을 방문한 것은 나오시마 아트 프로젝트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2013년 봄, 작은 섬들을 예술의 향기로 가득 채운 세토우치 트리엔날레와 함께 호흡했고, 올해 다시 세토우치 트리엔날레 2016을 방문했다. 세토 내해 작은 섬들이 만들어낸 강력한 자기장이 나를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3년마다 개최되는 세토우치 트리엔날레는 세토 해 주변의 크고 작은 섬에서 열린다. 다카마츠 항에서 페리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는 순간, 내 안에 3년마다 작동하는 타이머가 존재함을 깨닫게 되었다. 섬에 중독된 것이 분명했다.예술의 섬 나오시마를 비롯해 세토우치 트리엔날레에 참가한 어느 섬에 도착해도 첫인상은 하나다. 삶의 터전이었던 섬을 재생시키고 예술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현장에 가면, ‘예술의 성지’라는 탄성이 나온다. 세토우치 트리엔날레는 단순히 예술의 보고를 만든 것이 아니라, 예술을 통해 섬 주민들의 삶에 스며들고 지역을 재생시켰다. 잊힌 곳 혹은 버려진 곳을 유토피아로 만드는 것은 언제나 이런 문화적 상상력을 통해서였다. 지구촌에는 수많은 비엔날레와 아트페어가 존재하지만, 세토우치 트리엔날레는 그 어떤 아트 페스티벌과도 닮지 않았다. 어떤 아트 페스티벌은 화두와 이슈를 생산하기 위해 강박적일 정도로 스타 아티스트에 집착한다. 또 작품의 미학성과 사회적 관계를 설파하고 전파하는(혹은 상업적으로 포장하는) 데 몰두하지만, 정작 난해한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개개인은 소외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토우치에서는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어떤 아트 페스티벌에도 없는 편안함과 여유가 깃들어 있다.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미술관이나 거대한 쇼케이스 공간이 아니라, 소소하고 한가로운 일상에서 예술과 만나기 때문이다. 차라리 비엔날레와 아트페어에서 상처 입은 마음을 이곳에 치료 받았다고 너스레를 떨고 싶을 정도다.여기서 발견하는 것은 아름다운 섬이나 빛나는 예술작품이 전부가 아니다. 세토우치에 가면 걷거나 버스를 타거나 페리를 타야 한다. 섬으로 가기 위해서, 섬 안에서 이동하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섬과 섬 사이, 작품과 작품 사이, 이동과 이동 사이에는 늘 기다림이 있다. 늘 작거나 긴 쉼표가 있다. 한 번에(하루에) 많은 섬을 보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스케줄이다. 이곳에 도착하면 전혀 다른 시간의 속도로 살아가게 된다. 아주 천천히, 걷는 속도로 예술작품과 소통하게 된다. 예술은 숨바꼭질을 하는 개구쟁이처럼 일상 속에 숨어 있다. 비엔날레와 아트페어의 효율성과는 전혀 다른 세계다. 각양각색의 민가를 방문해야 하고, 수많은 작은 골목길을 지나야 한다. 그것이 점점 예술작품을 만나는 일만큼이나 즐거워진다. 중요한 것은 작품을 만나지 않는 순간에도 섬의 기운이 나를 가득 채워준다는 점이다. 가능하다면 산책하듯 유유자적 걸으면서 섬의 모든 것을 바라보기를 권한다. 세토우치의 섬들이 나에게 선사한 선물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였다.나오시마(直島)세토 내해에 처음 왔다면 가장 먼저 방문할 섬은 나오시마다. 그간 미야노우라 항에 있는 야요이 쿠사마의 ‘빨간 호박’과 세즈마 가즈요와 니시자와 류에(SANAA)가 설계한 ‘바다 역 나오시마’가 나오시마의 얼굴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후지모토 소스케의 ‘나오시마 파빌리온’이 새로운 명물로 등장했다. 이 작품은 27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오시마의 28번째 섬이라는 컨셉트로, 신기루에 의해 섬이 해면에 떠오르는 것처럼 보이는 우키시마 현상을 표현했다. 이 작은 환상의 파빌리온 안에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다.나오시마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섬이다. 나오시마가 품고 있는 지추미술관과 이우환미술관에서 안도 다다오의 모든 것을 엿볼 수 있다. 건축물이 땅속에 숨어 있어 사실상 외관이 없는 지추미술관은 대규모 방공호 같다. 노출 콘크리트 사이의 통로를 통해 지하 속으로 내려간다. 놀라운 것은 지하로 내려가도 마치 횃불처럼 빛이 관객을 안내한다는 점이다. 지면 아래에서 자연의 빛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하는 거장의 혜안은 감동을 자아낸다. 미술관은 클로드 모네, 제임스 터렐, 월터 드 마리아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단연 돋보이는 것은 빛의 작가 제임스 터렐이다. 마크 로스코의 추상화 같지만 파란 평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오픈 필드’나 천장에 네모난 구멍을 뚫고 실제 하늘을 보여주는 ‘오픈 스카이’가 주는 심상은 경험 외에는 달리 표현할 할 방법이 없다. 또한 이우환이 스스로 명상의 공간이 되길 희망했다는 이우환미술관은 구도자의 세계에 방문한 것처럼 숭고함과 고결함으로 가득 차 있다. 최소한의 것만을 작업하는 이우환의 세계는 공간의 여백이 필수다. 이를 그대로 담아내기 위한 고심의 흔적이 엿보이는 미술관이다.나오시마에서는 베네세하우스뿐 아니라 미나미테라, 벚꽃의 미궁 등에서 안도 다다오의 손길을 찾을 수 있다. 그는 나오시마에서 출발한 집(이에) 프로젝트 중 하나인 ‘미나미테라’의 설계를 맡았고, 이 안에 제임스 터렐의 ‘달의 뒤편’이 설치되어 있다.데시마 섬(豊島)데시마 섬을 상징하는 건축물은 단연 데시마 미술관이다. 2010년 완공된 데시마 미술관은 도와다시 현대미술관이나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으로 유명한 건축가 니시자와 류에와 나이토 레이의 공동작업으로 만들어졌다. 완만한 경사면의 언덕에 있는 미술관으로 향하는 길은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상쾌하지만, 멀리서 보이는 하얗고 낮은 건물이 미술관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쉽지 않다. 데시마 미술관은 셸 구조의 건축으로, 기둥이 없는 얇은 피막 같은 구조다. 위쪽에 2개의 개구부가 있는데, 유리도 없고 자연을 향해 완전히 열려 있다. 이 미술관 자체가 파격적인 예술작품이다. 어찌 보면 자연을 수용하는 거대한 그릇처럼 보이기도 하고, 자연이 지닌 곡선을 따른 것이 거대한 물방울 모양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 미술관에 발을 들이면 적어도 두 번은 놀라게 된다. 미술관의 자유로움에 한 번 놀라고, 또 한 번은 이 미술관이 전시하고 있는 작품에 놀란다. 미술관 바닥에는 물방울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있을 뿐이다. 나이토 레이가 선보이는 작품 ‘매트릭스’는 물, 빛, 바람이 만들어내는 자연의 세계다. 이곳에선 시간마저 정지될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미술관 안을 떠도는 관객마저 자연의 일부, 예술의 일부가 된다. 신발을 벗어야 하고, 사진을 찍을 수 없고, 떠들지 말아야 한다는 주의를 받지만,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자연과의 경계가 없는,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미술관에서는 잠시 지켜야 할 예의다. 백색의 공간 안을 미끄러지듯 다니면 마치 순례자가 된 느낌이다.데시마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작품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의 ‘심장 소리 아카이브’로 지구촌 사람들의 심장 소리를 모아놓은 작품이다. 사람들의 심장 박동과 연동해 전구가 점멸하는 하트 룸, 심장 소리를 검색해 들을 수 있는 리스닝 룸, 그리고 자신의 심장 소리를 아카이브화할 수 있는 레코딩 룸이 있다. 두근두근. 하트 룸에 들어가면 무작위로 선택된 사람들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전구의 불이 켜지고 꺼질 때마다 누군가의 생명이 피어나거나 소멸하는 착각에 빠져든다.오기지마 섬(男木島)과 메기지마 섬(女木島)나오시마나 데시마 섬 같은 주요 섬을 이미 방문했다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코스는 오기지마 섬과 메기지마 섬이다. 둘 다 작은 섬이라서 섬 내의 이동은 걷는 것으로 충분하다. 페리를 타고 오기지마 섬에 내리자마자 반갑게 맞아주는 것은 하얀 지붕을 지닌 관광안내처다. 여러 나라의 문자를 조합해 만든 지붕이 인상적인 이곳은 단순히 섬의 사무소가 아니라 하우메 플렌사의 작품 ‘오기지마의 혼’이다. 하우메 플렌사는 공공미술 영역에서 주목을 받아온 스페인 조각가로, 2011년 뉴욕 매디슨 스퀘어 파크에 소녀의 거대한 머리 조각 ‘에코’를 선보였다. 또 제주도 본태박물관의 뜰(조각공원)에 그의 작품 ‘칠드런스 소울’이 전시되어 있다. ‘오기지마의 혼’에서 섬을 둘러볼 채비를 마친 후에는 먼저 오기 피싱 포트의 야외 작품을 보러 가는 것이 좋다. 야마구치 케이스케의 ‘걷는 방주’는 ‘노아의 방주’에서 영감을 얻은 조각으로, 마치 4개의 산봉우리가 발맞춰 행군하듯 바다를 향해 나가는 모습이다. 어딘가 우스꽝스러운 만화 캐릭터를 떠올리게 하는 면도 있지만, 지긋이 바라보고 있으면 이 방주의 결연함이 전해진다.무엇보다 오기지마의 특징은 비탈길이 많다는 데 있다. 작품들을 보기 위해 이동하면서 비탈길의 경사면에서 항구 쪽을 내려다보면, 골목길 사이로 보이는 바다가 인상적이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오기지마 항 주변에 작품이 많다. 2010년부터 제작되어 오기지마의 삶 속에 뿌리내린 오기지마 골목 벽화 프로젝트(마카베 리쿠지)와 오르간(다니구치 도모코)이 있다. 전자는 폐자재와 폐선에서 얻은 나무에 컬러풀한 색을 칠해 민가의 외벽에 설치한 것이고, 후자는 비탈길에 쭉 이어진 파이프로 묘한 소리를 낸다. 오기지마 특유의 좁은 비탈길에서 이리저리 헤매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들을 만날 수 있다. 올해 처음 오기지마에 설치된 작품 중에 눈에 띄는 것은 임민욱의 ‘등대지기’와 마츠모토 아키노리의 ‘아카노리움’이다. ‘등대지기’는 기노시타 게이스케 감독의 영화 에 등장하는 오기지마의 등대를 작품의 모티프로 활용했다. 옛 등대를 모아 놓은 민가(일본식 목조 가옥)를 판타지처럼 일종의 등대로 탈바꿈시켰다. 실제로 섬 북쪽에 있는 오기지마 등대를 방문해서 보고 오면 이 작업의 아이디어가 빛난다. ‘아카노리움’은 사운드와 이미지의 실험을 통해 보는 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1층에서 마음에 위안을 주는 아름다운 사운드와 함께 그림자 영상(실루엣)이 펼쳐지고, 2층에 올라가면 지붕 밑에서 자동 연주되는 사운드 오브제들을 직접 볼 수 있다.오기지마의 랜드마크가 ‘오기지마의 혼’이라면 메기지마 섬을 대표하는 것은 기무라 다카히토의 ‘갈매기의 주차장’이다. 페리가 메기 항에 가까워지면 방파제에 쭉 늘어선 수백 마리의 갈매기가 눈에 들어온다. 이 갈매기 오브제들은 바람이 불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방향을 바꾼다. 바람의 흐름과 갈매기 무리의 습성을 조화롭게 표현한 것이 미소를 머금게 만든다. 오기지마와 달리 메기지마는 바닷바람을 느끼며 편하게 걸을 수 있는 섬이다. 갈매기와 더불어 하게타카 훈조의 ‘20세기의 회상’도 메기 항에서 바로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범선의 형태를 한 돛이 걸린 그랜드 피아노로, 피아노 곡이 흘러나와 파도소리와 하나가 된다. 올해 처음 메기지마에 설치된 작품 중에 가장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요다 요이치로의 ‘메기지마 명화극장’이었다.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창고를 재활용해 극장을 만들었는데, 옛 극장을 연상시키는 페인팅들이 가득 차 있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붉은 커튼 방()에 들어온 것 같다. 하지만 요다 요이치로가 직접 그린 클래식 무비의 명장면(슬랩스틱 코미디, 뮤지컬, 필름누아르 등)이나 스타들의 페인팅은 솔직히 너무 투박하다. 묘한 중독성이 있으나 다분히 의도적인 키치 작업이다. 그런데 친숙하지만 이렇다 할 기대감조차 증발시키는 이 3류 극장 안에 앉아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극장 안에선 요다 요이치로의 다큐멘터리 상영되었다. 지금은 사라진 뉴욕 42번가 극장들의 모습을 차례로 담은 영화다. 미국 영화사의 일부였던 신화적인 극장들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이 영상에 빠져들다 보면, 어느새 차이밍량 감독의 에 나오는 배우 이강생이 된 느낌이다.쇼도시마 섬(小豆島)쇼도시마는 세토우치 트리엔날레 참여한 섬 중에서 가장 큰 섬이다. 쇼도시마 내에서는 버스로도 오랜 시간 이동할 정도라서, 쇼도시마의 작품을 감상하려면 하루가 꼬박 걸린다. 쇼도시마에 들어올 수 있는 항구도 여러 곳이 있다. 토노쇼 항으로 들어올 경우, 멀리서도 금빛 월계관이 환영해주는 모습이 보인다. 바로 최정화의 ‘태양의 선물’이다. ‘올리브 섬’으로 잘 알려진 쇼도시마 섬의 입구에 올리브 잎을 왕관 형태로 만든 조각품을 설치했다. 금빛으로 빛나는 월계관을 통해 세토 내해를 바라볼 수 있다. 여러 개의 올리브 잎에는 섬 아이들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혹시 사카테 항으로 들어올 경우, 야노베 겐지의 작품 ‘스타 앵거’나 겐지가 비트 다케시와 공동 작업한 ‘앵거 프롬 더 바텀’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넨 후 출발하면 된다. ‘스타 앵거’는 사카테 항의 등대가 있던 자리에 설치한 작품으로, 미러 볼 같은 빛나는 구체 위에 자리 잡은 용이 멋지게 포효한다. 실제 낡은 우물에 설치된 ‘앵거 프롬 더 바텀’은 섬의 낡은 우물 바닥에 숨어 있던 도깨비가 출현하는 컨셉트인데, 머리 위에 도끼가 있거나 갑자기 튀어나와 입에서 물을 뿜는 모습은 무섭기보다는 귀엽다.다른 섬에 비해 쇼도시마에는 새롭게 선보이는 작품들이 많다. 그럼에도 쇼도시마에서 놓치면 안 되는 작품은 대나무로 작업하는 대만 아티스트 왕원치의 ‘올리브의 꿈’이다. 2010년 ‘쇼도시마의 집’, 2013년 ‘쇼도시마의 빛’에 이어 세 번째 버전의 작품을 내놓았다. 2013년 세토우치 트리엔날레를 찾았을 때 가장 인상적인 작업이었다.(지금은 남아 있지 않으니, 전작들을 유튜브에서 찾아보기를 권한다.) 현지에서 난 약 4천여 개의 대나무로 만든 거대 돔으로, 이번에는 올리브가 테마다. 거대한 대나무 돔 안에 들어가 편하게 눕거나 앉아서 독서를 하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이 작품 속에 들어가면 밖으로 나오고 싶지 않을 정도다. 이만한 자연 힐링이 없다. 손으로 대나무를 직접 만지거나 맨발로 대나무 위에 서면 형언할 수 없는 시원함이 가슴 깊이 파고든다. 나카야마 지역의 ‘올리브의 꿈’을 체험하면서 그 부근 히토야마 지역에서 무사시노 미술대학 짚 아트 팀이 만드는 ‘짚 아트’도 같이 보면 좋다. 이 팀은 수확한 볏짚으로 거대한 오브제를 제작한다. 추수가 끝난 논에 전시하기 때문에 가을 시즌만 작품을 선보인다.세토우치 트리엔날레와 무관하지만 쇼도시마에 가면 꼭 가봐야 할 곳이 있다. ‘24개의 눈동자’ 영화촌이다. 기노시타 케이스케 감독의 를 촬영한 오픈 세트가 보존되어 있다. 영화는 1920년대 말, 쇼도시마 분교에 부임한 젊은 여선생과 12명의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다.(선생님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은 12명의 아이들이 나와서 24개의 눈동자다.) 젊은 여선생은 일본의 국민배우 다카미네 히데코가 연기했다. 쇼와시대 섬마을 학교의 풍경을 고스란히 재현해놓은 곳이라서 과거 속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느낌이다. 이 영화촌에서는 를 매일 상영하고 있다. 세토 내해의 주요 미술관들 이토 도요의 건축 에세이 을 읽으며 오미시마 섬을 찾아갔다. 오미시마에서 보고 싶은 것은 이마바리시의 이토 도요 건축 뮤지엄(TIMA)이었다. 2013년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한 이토 도요의 작품이다. 네 종류의 다면체를 연결해 구성한 스틸 헛과 이토 도요의 옛 저택을 재생한 실버 헛, 두 동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도코로 뮤지엄 오미시마 옆에 건축뮤지엄이 세워졌다. 도코로 뮤지엄에는 노에 카츠, 마리솔, 지코모 만주 등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팝아티스트 톰 웨슬만의 튤립이 바다를 향해 홀로 피어 수호신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이곳에 가면 이토 도요가 오미시마 섬을 재생시키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지만, 세토우치 트리엔날레의 주요 무대와는 거리가 꽤 된다. 시간이 부족하다면 오미시마나 다른 섬보다는 다카마츠에서 미술관을 가보는 것이 좋다. 다카마츠 항 주변의 공원에서 줄리언 오피의 ‘은행가, 간호사, 탐정, 변호사’와 대만작가 린롱의 ‘비욘드 더 보더-오션’을 본 이후에는, 세 곳의 미술관에 가볼 것을 추천한다. 먼저 마루가메 역 앞에 있는 마루가메 이노쿠마 겐이치로 현대미술관(MIMOCA)이다. 미술관 애호가들 사이에서 가가와 현에서의 발견이라고 회자되는 미술관인데, 서양화가 이노쿠마 겐이치로의 작품 세계만큼 중요한 것은 이 미술관을 설계한 건축가가 요시오 다니구치라는 점이다. 그는 2004년 재개관한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레노베이션을 담당했던 인물이다. 이 미술관의 첫 인상은 거대한 콘서트 무대를 연상하게 한다.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미술관의 독특한 입구도 재밌지만, 미술관 정면 벽에 이노쿠마 겐이치로의 작품이 벽화나 낙서처럼 그려져 있어 친근함을 더하고 있다. 혹시 나오시마에서 안도 다다오의 미술관에 반한 이들이라면 야시마의 산기슭에 위치한 민예촌, 시코쿠무라(四國村)의 방문이 좋을 법하다. 이곳에는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시코쿠무라 갤러리가 있다. 작은 미술관이지만 빛과 물을 활용한 안도 다다오의 미술관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물이 흘러내리는 계단을 따라 놓여 있는 벤치에 앉아 정원을 내려다보면 다카마츠가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경치가 좋다. 마지막으로 미술관의 외관은 별 매력이 없지만, 알짜 기획전을 하는 다카마츠시 미술관도 근접성이 좋다는 점에서 들를 만한 곳이다. 이번 여름에는 쇼도시마에 작품을 선보인 야노베 겐지의 ‘시네마타이즈’가 전시되었다. 야노베 겐지가 미술감독을 맡고 하야시 가이조가 연출을 맡은 의 영화화 계획과 파일럿 영상을 볼 수 있었다.아무리 시간표를 짜도, 누구도 이 많은 섬을 모두 방문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곳을 떠나는 순간, 다시 돌아올 것을 직감하기 때문이다. 예술의 섬이란 그런 곳이다. 일찍이 닉 혼비는 ‘모든 사람은 섬’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곳에선 ‘섬이 사람’처럼 온기가 느껴졌다. 그렇게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