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오랜 상가에 오존(O3ohn)이 등장하다
데뷔 10년 만에 첫 정규 앨범 <Qualia>를 만들기까지, 뮤지션 오존(O3ohn)의 음악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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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존(O3ohn)은 초연하다. 어떤 상황에도 격앙되거나 서두르는 법 없이 침착하다. 첫 정규 앨범 공개를 앞두고, 오존의 속도대로 서울의 오래된 상가를 누빈 오후.
재킷은 Comme des Garcons Homme. 스카프 셔츠는 Amomento. 반지는 Tom Wood.
스웨트셔츠, 벨트는 Godard Haberdashery. 팬츠는 Celine. 선글라스, 스카프는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팔찌, 반지는 Bulletto. 슈즈는 Tom Ford.
하퍼스 바자 요가 자세도 취했다가, 상가도 뛰어다니고, 무던한 표정으로 사진가의 디렉션을 듣다가, 촬영이 시작되면 금세 몰입하더라고요.
오존 가상의 사물을 인터뷰하라고 하셨어요. 상상력이 풍부하시더라고요. 창의적인 걸 요구하셔서 그게 재밌었어요.
하퍼스 바자 데뷔 10년 만에 정규 앨범을 내요. <퀄리아>, 좀 낯선 제목이에요.
오존 책을 보다가 알게 된 단어인데, 인지과학 용어예요. 쉽게 얘기하면 같은 음악을 듣거나 음식을 먹어도 고유의 감각적인 경험들이 모두에게 같을 수는 없다는 뜻인데, 이런 주제를 담고 싶어서 제목으로 정했어요. 제가 코로나 지나고 회사 없이 활동하면서 일도 많이 없었고, 개인적으로 슬럼프가 길었어요. 어두움까지는 아니고, 많이 다운됐던 시기를 겪으면서 써서 잠겨 있는 무드의 곡들이 많거든요. 감상하는 분들한테 어떻게 해석이 될까, 그들의 세계관으로 어떻게 확장될까, 하는 호기심을 담은 제목이에요. 그래서 개인적인 경험들이 다른 사람에게도 더 개인적으로 받아들여지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노래를 들었을 때 “이거 완전 나랑 비슷한 상황에 있는 가사야”라고 느낄 때 오는 기쁨 같은 것들.
하퍼스 바자 <바자> 9월호 ‘북클럽’ 기사에 추천해준 책 리스트에도 종교, 공상과학 분야 책들이 있었죠.
오존 호기심이 많아요. 산만하고. 그래서 한 책을 깊이 있게 못 읽고 항상 병렬 독서를 해요. 습관적으로 서너 권을 매일 자기 전에 돌려 읽어요. 수면제처럼, 읽다 졸리면 그냥 덮고 자요. 지금은 <리얼리티 플러스>라고, 시뮬레이션 이론에 관한 책을 읽고 있어요. 데이비드 차머스라는 철학자가 쓴 건데, 앨범명 ‘퀄리아’도 이분 책에서 알게 됐어요. 세상이 모두 시뮬레이션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해요.
하퍼스 바자 타이틀곡 ‘Songbird’는 ‘down’이나 ‘untitled’01’ 같은 잘 알려진 곡보다 템포가 빠르고 사운드도 경쾌해서 기억에 남았어요. 이 곡을 두고 “오랫동안 들르지 않던 새가 다시 집 앞에 찾아와 지저귀는 모습을 바라보며 만든 노래”라고 비유했죠. 어떻게 완성한 곡이에요?
오존 갑자기 찾아온 노래예요. 막혀 있다고 생각했을 때 갑자기 찾아온 노래라, 반가운 기분이 많이 들었죠.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고, 앨범의 핵심이 되어준 곡이기도 해요. 원래는 나일론 기타로 쓴 거거든요. 여름 노래처럼 되게 칠(chill)하고, 리듬도 더 느렸는데 편곡하면서 많이 밝아졌어요.
하퍼스 바자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어요?
오존 곡을 주로 혼자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함께하게 된 프로듀서 친구들이 편곡을 같이 해줘서 데모랑 느낌이 많이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오가닉한 느낌이 드는 곡을 주로 좋아했어요. 요소가 많이 들어가지 않은 기타와 목소리, 건반처럼 소리가 솔직하게 나오는 음악이요. 지금은 오히려 가공된 요소가 많은 소리들을 더 좋아해요. 전자음악을 좋아하게 됐고요. 뾰족한 것과 뭉툭한 것이 같이 있는 상태랄까. 앨범도 그렇고, 지난 연말부터 두 번 했던 공연도 그렇고, 저를 좀 내려놓고 정리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어요. 그래서 다음 챕터를 읽어내고 준비를 하고 싶어요.
하퍼스 바자 원래는 온전히 혼자 하는 작업을 즐기는 편이었어요? 공연마다 편곡이 다르고, 정규 앨범까지 10년이 걸린 걸 보면 신중함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을 것 같아요.
오존 욕심으로 했던 것 같아요. ‘나 혼자 할 수 있어’ 하는 고집 같은 게 있었어요. 굳이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할 수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랑 하는 게 훨씬 지혜로운 거죠. 정규 앨범이 오래 걸린 건, 취향은 계속 변하고 맞추려다 보니 계속 변하고, 그렇게 지금까지 오게 된 거예요. 진짜 좋은 것에 대한 확신도 없었던 것 같고요. 그전까지는 좋아해야 될 것 같은 것들을 좋아했던 느낌도 들어요. 끌려가지 않으려고 계속 노력했던 것 같아요. 편곡은 실험을 계속한 거죠. 예전 버전에 물려 있기보다 저한테도 새로운 자극을 주고 싶었고요. 이제는 취향에 대한 확신을 조금씩 쌓아가고 있어요.‘내가 이런 걸 좋아했구나’ 납득이 되고, 인정이 되니까요.
하퍼스 바자 요즘 마음을 빼앗긴 아티스트는 누구예요?
오존 최근에 들었던 아티스트 중에는 실반 에소라는 듀오가 있어요. 뭉툭한 것과 날카로운 것을 되게 잘 섞어요. 저도 그런 걸 이번 앨범에서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단독 공연을 준비할 때는 제시카 프랫을 많이 들었어요. 지난 취향들을 정리하는 공연이었다고 저희끼리는 얘기하거든요. 그런 오가닉함을 잘 보여주는 아티스트라, 자주 들었었죠.
프린트 재킷, 팬츠, 슈즈는 모두 Undercover. 이너 톱은 Ancellm. 팔찌, 반지는 Bulletto.
하퍼스 바자 영어 가사 곡이 유독 많아요. 가사 쓰려고 원서를 포함해 책도 다양하게 읽는다고요.
오존 어떤 목표죠. 어릴 때부터 팝송을 많이 들어왔으니까 “나도 저렇게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도전 정신 같은 게 생기기도 해요. 한글로 쓰는 게 더 어려워요. 엄청 깎아가면서 억지로 맞춰 놓는 느낌이라. 이번 앨범에 한글 가사로 쓴 노래가 딱 하나 있는데, ‘Tree’라는 곡이에요. 나무를 관찰하고 쓴 내용인데, “망가질세라 숨어든 옹이/ 슬픔도 모두 머금은 채 어디로 가나”. 가사가 마음에 들어요.
하퍼스 바자 유튜브 예능에서는 누군가 궤변을 늘어놓거나 몰아붙여도 자기 템포대로 침착하고 진지하게 답하는 인상이 있어요. 오존의 날것 같은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건 노래 가사가 유일한가요?
오존 방송이고 상황극이니까요. 일이니까 모두가 마음에 담아두지 않아요. 그 순간에 다 같이 노는 거죠. 평소에도 친구들이랑 자주 놀리면서 노니까 익숙했는데, 사람들이 재밌게 봐줘서 신기했어요. ‘아,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싶었죠. 곡을 쓸 때는 어두운 에너지를 많이 쓰는 것 같아요. 그게 쓰기 쉬운 재료예요. 오히려 그걸로 감정이 해소가 돼요. 평소에는 잔잔한 편인데, 거기서 감정을 재료로 태우는 거죠. 음악 자체가 저한테 일종의 테라피예요.
하퍼스 바자 음악이랑 건강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 같아요. 안정형처럼 보이는데, 자기 자신을 싫어해본 적도 있어요?
오존 엄청 많죠. 콤플렉스도 많고, 싫어하는 것도 많고요. 제 노래도 싫어하고, 이미 나온 노래들도 싫어하고.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그냥 인정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명상이랑 테라피를 하고 있어요. 명상, 요가 같은 걸 찾아보면 결국 종교적이거나 철학적인 내용으로 가더라고요. 티베트에서는 명상법이나 호흡법도 다르고요. 매일 감정들이랑 계속 부딪히죠. 못난 모습들도 껴안고 사는 느낌인 거죠. 아내랑 저랑 싫어하는 지점이 비슷해서 잘 맞아요. 일단 예의 없는 거 굉장히 싫어하고, 다들 그렇겠지만 비겁한 것 굉장히 싫어하고요. 뭐랄까, 민감도가 비슷해요. 주변에 친한 사람들도 그래서, 서로 건드리지 말자고 하면서 영역 침범 안 하고요.
하퍼스 바자 어릴 때부터 기타를 치다가, 전역 후 친구인 뮤지션 신세하 씨와 밴드를 하며 음악을 시작했죠. 지난 10년 동안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순간은 없었어요?
오존 음악은 그런 생각이 든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이걸로 먹고살 수 있을까, 그 정도 고민은 지금 돌아봤을 때 크리티컬한 고민은 아니었어요. 관두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일단 너무 재밌고요. 인생을 살면서 이 정도로 관심이 끊기지 않고 계속 좋아했던 게 없었어요. 일이 잘못돼서 음악으로 밥을 못 먹고 사는 정도가 돼도, 그냥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이 자체로 좋은 취미의 영역이기도 하니까요. 건강한 취미.
하퍼스 바자 시간이 쌓일수록 새롭게 보이는 것도 있나요?
오존 저는 이제 10년 됐고, 주변에 20년 넘게 하는 형들도 많아요. 결국 살아남는 분들을 보면 다 성실해요. 동생 입장에서 보면 본받게 되는 분들만 남아 계세요. 술탄 오브 더 디스코 형들이나 장기하 형, 같이 술 먹고 다닐 때는 몰랐는데 책임감도 엄청 강하고, 집착이 있을 정도로 일에 대한 열정이 엄청난 사람들이에요. 이 사람들이 이래서 살아남았구나, 생각하면서 저도 배우려고 하죠.
하퍼스 바자 이번 앨범에서는 그런 집착이 어디서 발휘됐어요?
오존 밸런스 잡는 게 좀 힘들었어요. 프로듀서 분들과 디테일을 몽땅 넣고 싶은데, 몽땅 넣기에는 너무 과해지고. 그 조절점을 찾는 게 좀 어려웠죠. 그래서 곡을 최대한 좋은 환경에서 자세히 들어보시면 재밌을 것 같아요. “얘가 여기에 디테일을 줬구나” 하면서, 한 땀 한 땀 들여다보는 경험이요.
하퍼스 바자 요즘은 영상이든 사진이든, 의도적으로 비워주는 부분이 중요해진 것 같아요.
오존 그게 제일 어려워요. 결국 서로의 감을 신뢰하는 거죠. “이게 지금 구린 것 같다” 하면서 합의점을 잘 찾아가는.
하퍼스 바자 이번 앨범을 오존의 주관적인 감각으로 설명해본다면요?
오존 중요하게 생각한 게, 미지근했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익숙하면서도 낯선 애매한 지점에 있는. 그래서 이번에 활동할 때 회색 옷을 제작해서 입는데요. 그것도 어딘가 중간에 있는 질감을 갖고 있는 색깔이잖아요. 그런 사이에 있는 것들에 조금씩 집중했어요. 안 좋게 얘기하면 애매하고 모호한 걸 수도 있는데, “이거는 어떤 거예요”라고 확실하게 말해주지 않는 게 오히려 감상에 도움이 될까, 요즘은 그 균형을 잡는 데 집중해보고 있어요.
하퍼스 바자 <퀄리아>는 오존에게 어떤 앨범으로 남을까요?
오존 ‘NOBODY’라는 곡이 있어요. 옛날의 저와 대화하면서, 초심이 이렇구나, 예전에는 이랬는데, 하면서요. 저는 가끔 제가 두 명이 있다고 생각하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 앨범은 저를 더 이해하게 되는 시간이었어요. 저와 제 주변의 관계를요. 시작점이 돼준 느낌. 아직도 진행형이지만요.
재킷, 팬츠는 Comme des Garcons Homme. 스카프 셔츠는 Amomento. 반지는 Tom Wood. 슈즈는 Belgian Shoes. 양말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재킷, 팬츠는 Husbands Paris. 셔츠는 Winnie New York. 모자는 Polo Ralph Lauren. 레더 타이는 Sunflower. 시계는 Cartier. 팔찌, 반지는 Bulletto. 슈즈는 Dries Van Noten.
Credit
- 사진/ 박현경
- 헤어/ 최은영
- 메이크업/ 김채은
- 스타일리스트/ 변홍식
- 어시스턴트/ 신형진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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