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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의 거짓말'이 뒤집은 밀정의 이름

'암살'·'하얼빈'·'밀정'을 지나 '100일의 거짓말'까지, 독립운동 서사가 밀정을 그려 온 방식

프로필 by 박현민 2026.10.26
tvN 토일드라마 <100일의 거짓말> 스틸

tvN 토일드라마 <100일의 거짓말> 스틸

영화 <밀정> 스틸

영화 <밀정> 스틸

독립운동을 다룬 K-콘텐츠에서 '밀정(密偵)'은 긴장감 넘치는 균열의 이름이다.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는 동지들 사이에 스며든 의심의 그림자이자, 누군가에게는 변절의 낙인이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살아남기 위한 가면이었다. 그런데 현재 tvN에서 방영 중인 <100일의 거짓말> 속 밀정은 독립운동 단체 구국단이 조선총독부에 심은 소매치기다. '배신자'의 이름이던 단어가 '잠입자'의 이름이 된 셈이다. <암살>(2015), <밀정>(2016), <하얼빈>(2024)을 거쳐 <100일의 거짓말>까지, '밀정'이 가리키는 방향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짚었다.



<암살>과 <하얼빈>, 영웅 곁에서 번지는 의심


영화 <암살> 포스터

영화 <암살> 포스터

영화 <하얼빈> 포스터

영화 <하얼빈> 포스터

영화 <하얼빈> 스틸

영화 <하얼빈> 스틸

영화 <암살> 스틸

영화 <암살> 스틸

<암살>(2015)과 <하얼빈>(2024)은 영웅들의 거사를 앞세운 영화다. 그런데 두 영화의 긴장은 총구 앞이 아니라 동지의 얼굴 뒤에서 자란다. 친일파 암살 작전을 케이퍼 무비의 리듬으로 엮어 1,270만 관객을 모은 <암살>에는 독립운동가의 얼굴을 한 일제의 밀정 염석진(이정재)이 있고, 작전은 그 그림자를 안은 채 팽팽해진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다룬 <하얼빈>은 하얼빈으로 향하는 독립군과 이들을 쫓는 이들의 첩보 액션으로, 동지들 사이에 밀정이 있다는 의심이 길 위에 번진다. 두 영화에서 밀정은 영웅 서사의 오랜 반대편에 서 있다.



<밀정>, 경계에 선 사람의 줄타기


영화 <밀정> 론칭 포스터

영화 <밀정> 론칭 포스터

영화 <밀정> 스틸

영화 <밀정> 스틸

<밀정>(2016)은 영웅과 배신자를 가르는 선 위에 사람을 세웠다. 1923년 황옥 경부 폭탄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이 영화에서 조선인 출신 일본 경찰 이정출(송강호)은 의열단의 뒤를 캐라는 특명을 받고 의열단의 김우진(공유)에게 접근한다. 한 시대의 양 극단에 선 두 사람은 서로의 정체와 의도를 알면서도 속내를 감춘 채 가까워진다. 폭탄을 경성으로 들이려는 의열단과 이들을 쫓는 일본 경찰 사이에서 정보는 쌍방으로 새어 나가고, 누가 밀정인지 알 수 없다. 영화는 이정출이 왜 그 길을 택했는지를 또렷하게 설명하지 않고, 독립군 대 친일파라는 이분법 바깥에서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사람의 흔들림을 따라간다. <암살>의 밀정이 영웅의 반대편에 선 그림자였다면, <밀정>의 밀정은 관객이 끝내 편을 정해 줄 수 없는 얼굴이다.



<100일의 거짓말>, 모두가 경계에 선 판


tvN 토일드라마 <100일의 거짓말> 스틸

tvN 토일드라마 <100일의 거짓말> 스틸

영화 <암살> 스틸

영화 <암살> 스틸

<100일의 거짓말>은 밀정의 방향을 뒤집는다. 조선을 떠날 자금을 모으는 게 꿈인 경성 최고의 소매치기 이가경(김유정)은 독립운동 단체 구국단의 제안을 받아 100일 동안 영어 통역생 '금서희'로 총독부에 위장 잠입한다. <암살>에서 돈을 받고 합류한 청부업자 '하와이 피스톨'(하정우)처럼, 대의가 아니라 돈에서 출발한 인물이 독립운동 한복판에 들어선 것이다. 이 판에서 경계에 선 사람은 이가경만이 아니다. 총독부의 영어 통역관 김태웅(박진영)은 조선에서 태어나 일본인 사토 히데오로 살아가는 정무총감의 양자이고, 그의 양아버지 사토 신이치(진선규)는 조선에서 태어난 일본인으로 출생지만큼은 바꿀 수 없다는 한계를 안고 일본인들에게 인정받으려 애쓰는 인물이다. 서로의 정체를 모른 채 마주 선 사람들 사이에서 거짓인 줄 알면서도 믿고 싶어지는 마음이 자라난다. <밀정>이 경계에 선 한 사람을 따라갔다면, <100일의 거짓말>은 경계에 선 사람들을 서로 마주 보게 하고 그 자리에 로맨스를 놓은 셈이다.

영화 <밀정> 스틸

영화 <밀정> 스틸

영화 <하얼빈> 스틸

영화 <하얼빈> 스틸

tvN 토일드라마 <100일의 거짓말> 스틸

tvN 토일드라마 <100일의 거짓말> 스틸

독립운동을 다룬 이야기에서 밀정은 영웅 곁의 그림자이기도 했고, 어느 편에도 서지 못하는 경계인이기도 했다. 이제는 스스로 거짓을 입고 적진으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이기도 하다. 균열을 일으키던 이름이 균열 사이로 들어가는 사람의 이름이 된 셈이다. 그 방향이 바뀔 때마다 우리가 시대를 바라보는 눈도 그만큼 넓어져 왔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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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사진 / CJ ENM MOVIE·워너 브라더스 코리아·쇼박스·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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