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100주년을 맞은 '리틀 블랙 드레스'의 변천사
언제나 그랬듯, 시크함의 정수에 마침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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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ORAL HISTORY OF THE LITTLE BLACK DRESS
리틀 블랙 드레스가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언제나 그랬듯, 시크함의 정수에 마침표를 찍는다.
샤넬 쿠튀르 쇼는 풍성한 화이트 웨딩드레스로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이 오랜 전통이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칼 라거펠트는 정교하고 때로는 현란할 만큼 화려한 웨딩드레스를 피날레에 선보였다. 그러나 2026년 가을, 마티유 블라지는 이 오랜 전통을 뒤집었다. 동화 같은 컬렉션의 마지막에 등장한 것은 화이트 웨딩드레스가 아닌 검은색의 짧은 드레스였다. 리틀 블랙 드레스, 이른바 LBD다.
올해로 LBD는 100주년을 맞았다. 당시 가브리엘 ‘코코’ 샤넬은 무릎 바로 아래까지 내려오는 긴 소매 시스 드레스(sheath dress, 몸의 실루엣을 따라 타이트하게 떨어지는 슬림한 디자인)를 선보였고, 이것이 ‘최초의’ LBD로 알려졌다. 언론은 이를 자동차 브랜드 포드의 대표적 모델 ‘T’에 비유했다. 실용적이고 우아하며 누구나 누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여성을 위한 일종의 턱시도였던 LBD는 애도의 의미를 가진 검은색을 절제된 럭셔리의 상징으로 바꿔놨다. 한 세기가 지난 지금, 블라지가 이를 샤넬 유산에 어울리는 피날레 드레스로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샤넬에게 옷은 여성이 맞춰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여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으니까.
LBD 하면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복수 드레스(revenge dress)’를 빼놓을 수 없다. 1994년 찰스 왕세자가 공개적으로 외도를 인정한 뒤 그녀가 입은 타이트한 블랙 드레스는 LBD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장면 가운데 하나가 됐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수많은 해석 중 하나다. 떠올려보자.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오드리 헵번을 위해 위베르 드 지방시가 만든 시스 드레스, <라 돌체 비타> 속 아니타 에크베리의 관능적 매력을 극대화한 드레스, 캐롤린 베셋 케네디의 간결한 슬립 드레스, 안전핀으로 장식한 엘리자베스 헐리의 베르사체 드레스까지. 블랙 드레스는 시대와 여성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왔다.
그렇게 LBD는 지난 100년 동안 끊임없이 변주했다. 럭셔리하면서도 실용적이고, 관능적이면서도 순수하며, 때로는 중성적인 모습으로까지. 대부분의 여성이 적어도 한 벌쯤 갖고 있는 옷이기도 하고, 낮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하루 일정의 옷차림을 해결해주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기도 하다. 힐 한 켤레만 더하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옷. 그렇다면 LBD는 패션 역사에서 정확히 어떤 자리를 차지해왔을까. 디자이너와 스타일리스트, 작가, 역사학자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보면 그 답이 조금씩 드러난다. 이들이 뽑은 역대 최고의 LBD가 무엇일지도 궁금하고.
카를라 소차니(Carla Sozzani, 아제딘 알라이아 재단 공동 설립자 겸 회장) 1920년대는 장식과 색채가 넘쳐나는 시대였기에, LBD는 오히려 파격적인 옷이었죠. 검은색을 애도복이 아닌 패션으로 처음 활용한 사람은 잔 파캥(Jeanne Paquin)이었어요. 1922년에는 프레메의 샤를로트 레빌(Charlotte Révyl)이 ‘라 가르손(La Garçonne)’이라는 이름의 LBD를 만들었죠. 이를 하나의 스타일로 정립한 사람이 샤넬이었고요. 흥미롭죠. 세 사람 모두 여성이었으니까요.
수니타 쿠마르 나이르(Sunita Kumar Nair, 책 <Carolyn Bessette Kennedy: A Life in Fashion>의 저자) 샤넬은 자신이 그 창시자라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장 파투(Jean Patou)였다고 생각해요. 두 사람 모두 여성에게 자유를 주는 스포츠웨어 분야를 장악해가고 있었으나 자신의 생각을 알리는 데는 샤넬이 탁월했죠. 당시에는 하녀와 상점 직원들이 검은색 옷을 입었어요. 그런 시대에 LBD는 여성을 아내나 집안의 안주인과는 다른, 성적 매력을 지닌 존재로 아주 영리하게 표현했죠.
조 맥케나(Joe McKenna, 스타일리스트)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속 오드리 헵번. 아마 그것이 LBD의 궁극적인 모습일 거예요.
소차니 안토니오니 영화에 나오는 모니카 비티. 아이코닉한 블랙 드레스는 여성의 몸을 따라가죠. 블랙 드레스에 원단이 많이 들어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선이에요. 거의 조각을 만드는 실험에 가깝죠.
나르시소 로드리게즈(Narciso Rodriguez, 디자이너) 이탈리아 영화! <보카치오 ’70> <라 돌체 비타>의 아니타 에크베리. 더 말할 필요가 있나요? 매 시즌 무드보드에 등장하잖아요.
로빈 기브한(Robin Givhan, 기자・저술가・문화비평가) LBD는 짙은 색 정장의 여성 버전이라고 생각해요. 원하는 만큼 격식을 갖출 수 있고, 원하는 만큼 편하게 입을 수도 있죠. 개성을 드러낼 수도 있고, 눈에 안 띌 수도 있고요.
소차니 블랙 드레스만으로 이미지의 역사 전체를 써볼 수도 있을 거예요. 애버던이나 호르스트의 사진에서는 실루엣과 형태가 아주 선명하게 보이죠. 어빙 펜은 발렌시아가의 LBD를 활용했고요. 린드버그는 LBD를 입은 린다 에반젤리스타, 신디 크로퍼드, 크리스티 털링턴을 멋진 사진으로 담아냈죠. 기 부르댕도요. 물론 헬무트 뉴턴도 빼놓을 수 없어요. 결국 LBD는 여성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여지를 남겨줘요. 사진가나 예술가는 드레스 자체보다 그 개성에 훨씬 관심이 있죠.
파리다 켈파(Farida Khelfa, 배우・모델・작가) 이브 생 로랑은 전쟁 중이었던 1940년대와 팔로마 피카소가 벼룩시장에서 산 드레스, 이 두 가지에서 영감받아 1971년 ‘스캔들’ 패션쇼를 위한 블랙 드레스를 만들었어요. 1940년대 패션처럼 주름을 잡고 어깨를 살짝 강조한 드레스였죠. 머리에 커다란 터번을 두르고 장신구를 잔뜩 걸친 채 거리를 걸으면 드레스가 바람에 흔들리는 거예요. 룰루 드 라 팔레즈처럼요.
나이르 생 로랑은 블랙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느낌표 같다고 늘 말했어요. 로버트 파머가 ‘Addicted to Love’ 뮤직비디오를 선보였던 1980년대도 떠오르네요. 1990년대에는 다시 변신해 아주 관능적이고 쿨하며 가공하지 않은 듯한 매력을 지니게 됐죠.
소차니 아제딘 알라이아는 장식도 색채도 없기 때문에 검은색일 때만 드레스가 어떻게 재단됐는지 볼 수 있다고 늘 말했어요. 1985년이 기억나요. 그레이스 코딩턴, 폴리 멜렌을 비롯해 모두가 똑같은 LBD를 입고 그의 쇼 맨 앞줄에 앉아 있었죠.
켈파 알라이아 드레스를 입으면 아주 강해진 기분이 들어요. 나 자신과 내 몸, 내 생각과 정신에 확신이 생겨요. 그의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그런 기분을 느꼈을 거예요.
기브한 제가 패션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땐 모두가 검은색 옷을 입었어요. 그때 LBD라 해서 다 같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죠. 요지 야마모토와 꼼데가르송 등 일본 디자이너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어요. ‘아, 이건 패션적으로 정말 흥미로운 블랙 드레스구나’ 하고요.
베로니카 레오니(Veronica Leoni, 캘빈 클라인 컬렉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저는 1990년대 감성을 지녀서인지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를 빼놓을 수 없어요. 물론 캘빈 클라인도요. 프라다, 질 샌더, 헬무트 랭, 짧은 드레스를 입던 포시 스파이스도 떠오르고요. 1990년대에는 LBD의 실용성과 실용주의적 태도에 아주 깊이 맞닿아 있는 무언가가 있었어요. 그야말로 미니멀리즘이 보여준 가장 맥시멀한 표현이었죠.
나오미 패리(Naomi Parry,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상 디자이너) LBD는 여성이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는 걸 상징해요. 이는 주체성을 나타내죠. 사회의 기대에 맞추기보다 스스로 자신을 정의할 자유.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그 ‘복수 드레스’로 자신이 무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어요!
레오니 캘빈 클라인이 그 드레스를 밤 9시뿐 아니라 아침 9시에도 잘 어울리게 만들었다는 건 판을 완전히 바꾸는 초능력 같은 일이었죠.
로드리게즈 제 브랜드를 시작했을 때, 제가 입던 캘빈 클라인 남성용 티셔츠 실루엣을 가져와 길고 슬림한 울 크레이프 드레스로 재단했어요. 형태는 정교하게 잡되 사선으로 재단해 티셔츠처럼 편안하게 입을 수 있도록 했죠. 한 여성이 그 드레스 중 하나를 자신에게 ‘안도감을 주는 옷’이라고 불렀던 게 기억나요. 그 드레스라면 어떤 상황에서든 옷차림 고민을 해결해줬기 때문이죠.
기브한 샤넬에서도 LBD는 겹겹이 두른 진주를 돋보이게 하는 배경이에요. 드레스는 놀라운 무언가의 시작이지, 종착점이 아니에요.
로드리게즈 간결하게 재단한 크루넥 블랙 드레스에 레드 립스틱을 바르고 머리를 뒤로 넘긴 캐롤린 베셋 케네디의 모습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그 모습에는 그녀의 옷차림 전반에 흐르는 우아함과 간결함, 순수함이 있어요. 1990년대 LBD와 화이트 셔츠, 슬립 드레스는 1930년대 마들렌 비오네 드레스나 그 유명한 디올 바 재킷 같은 존재예요. 이 옷들은 탄생한 시대의 순간을 담아내면서도 진정한 스타일로 영원히 살아남았죠.
패리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2007년 히트곡 ‘Back to Black’ 뮤직비디오를 만들 때, 필 그리핀 감독은 처음에 에이미의 마음을 위한 장례식이란 콘셉트를 제안했어요. 그 의미가 너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강렬한 색을 선택할 수도 있었죠. 하지만 검은색이 그녀가 새롭게 만들어낸 이미지를 강조해준다는 점이 좋았어요. 또 시각적으로 불필요한 요소를 더하거나 스타일을 지나치게 복잡히 만들지 않으면서 그녀의 상징적 특징인 헤어와 아이라인, 타투를 또렷하게 부각해줬죠.
기브한 저는 미셸 오바마가 영부인으로서 처음 찍은 공식 초상 사진이 떠올라요. 그녀는 마이클 코어스의 블랙 민소매 드레스를 입고 진주를 매치했죠. 흥미로운 조합이었어요. 아주 클래식하고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주면서도, 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사람이 미셸 오바마였기에 더없이 대담한 옷차림이었죠. 영부인인 자신 역시 오랜 세월 이어져온 아이코닉한 여성들의 계보에 속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이었어요.
패리 LBD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도 “나를 진지하게 대해주세요”라고 말해요.
맥케나 요지처럼 흥미로운 재단일 수도 있고 꼼데가르송처럼 극단적인 표현일 수도 있어요. 더로우의 더없이 간결한 드레스일 수도 있고요. 미니멀부터 맥시멀까지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옷이에요. 섹시할 수도, 단정할 수도 있죠. 어떤 체형이든 입을 수 있어요. 굳이 무언가를 주장하지 않고도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죠.
나이르 LBD가 인스타그램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낼까요? 모두가 눈에 띄는 데 너무 신경을 쓰다 보니 정작 핵심을 놓쳐요. LBD는 실제로 눈에 띄거든요. 중요한 건 그 속에서 여성 자신이 드러나는 거예요.
로드리게즈 그래서 다시 1990년대에 매료되는 거죠. 그 여성이 얼마나 기상천외하게 차려입었는지가 아니라, 여성 그 자체를 보게 되니까요. LBD는 그런 진정성을 담고 있어요. 100년 전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유효하죠. 겉모습은 달라질 수 있어요. 스타일링 방식도 달라지고요. 하지만 언제나 옷차림의 기본이 되는 필수품이에요. 가장 먼저 손이 가는 옷이죠.
소차니 시대를 초월하는 사진 속 누군가를 떠올려보면 그 여성은 검은색 옷을 입고 있어요. 결국, 시크하니까요. 검은색을 입고 더 과감해져봐요, 우리.
Credit
- 글/ Camille Freestone
- 번역/ 박태원
- 사진/ Getty Images, Launchmetrics, Wireimage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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