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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았다, 그런데 짜릿하다"…관객의 뒤통수를 치는 장르 변주

익숙한 장르로 유인한 뒤, 다른 길로 핸들을 꺾는 K-콘텐츠들

프로필 by 박현민 2026.09.25

최신 K-콘텐츠에서 유독 눈에 띄는 흐름이 있다. 익숙한 장르 문법으로 관객을 안심시켜 놓고, 중반부 이후 전혀 다른 영역으로 방향을 트는 작품들이다. 청춘물인 줄 알았다가 범죄 스릴러로 급반전하거나, 10대 호러인 줄 알았다가 정통 오컬트로 뻗어가고, 재난 블록버스터의 외피를 쓰고도 속내는 SF였던 경우까지. 뻔한 클리셰를 영리하게 부수는 이 도전적 시도들을 짚어봤다.



<포핸즈>, 청춘 음악물에서 범죄 스릴러로


tvN 토일드라마 <포핸즈> 스틸

tvN 토일드라마 <포핸즈> 스틸

예술고를 배경으로 두 피아니스트 강비오(송강)와 최정요(이준영)의 우정과 성장을 그리며 시작한 이 작품은, 최정요의 실종과 극적인 생환이 드러나면서 완전히 다른 결로 접어든다. 9년 전 그의 실종이 단순 사고가 아니라 계획된 납치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배후를 둘러싼 강비오의 추적과 복수극이 본격화되면서 청춘 음악물은 어느새 미스터리 스릴러의 얼굴을 하고 있다. 실제로 이 반전이 공개된 6회 이후 시청률이 첫 회 대비 두 배 넘게 뛰었다. 장르 전환이 곧 흥행의 기폭제가 된 셈이다.



<기리고>, YA 호러의 외피를 찢고 나온 K-오컬트


넷플릭스 시리즈 <기리고> 스틸

넷플릭스 시리즈 <기리고> 스틸

넷플릭스 시리즈 <기리고> 스틸

넷플릭스 시리즈 <기리고> 스틸

소원을 이뤄주는 저주받은 앱을 소재로 한 이 넷플릭스 시리즈는, 초반만 보면 전형적인 영 어덜트(YA) 감성의 10대 슬래셔 호러처럼 보인다. 그러나 무당 커플 햇살(전소니)과 방울(노재원)이 본격 등장하는 순간, 이야기는 완전히 뒤집힌다. 스마트폰 앱이라는 현대적 소재와 신내림·업보 같은 한국 전통 무속이 정면충돌하는 '하이브리드 오컬트'로 판이 커지는 것. 이 낙차는 오히려 신선함으로 작용해, 공개 직후 넷플릭스 비영어 시리즈 부문 세계 1위, 64개국 톱10 진입이라는 성과로 돌아왔다.



<대홍수>, 재난 블록버스터의 탈을 쓴 SF 시뮬레이션


넷플릭스 영화 <대홍수> 스틸

넷플릭스 영화 <대홍수> 스틸

거대한 소행성 충돌로 지구 전체가 수몰되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 AI 연구원 구안나(김다미)가 어린 아들을 품에 안고 사투를 벌이는 탈출기로 포문을 연 이 영화는 상영 시작 30분 만에 관객의 예상을 산산조각 낸다. 눈앞의 물바다가 실제 재난이 아니라, 신인류를 설계하고 학습시키기 위해 가동된 거대한 AI 시뮬레이션이었다는 진실이 드러나며 하드 SF로 급선회하기 때문이다. 스펙터클한 탈출 액션을 기대했던 관객들 사이에서는 "완전히 낚였다"는 배신감 섞인 혹평이 빗발쳤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논쟁적인 반전은 공개 2주 연속 넷플릭스 글로벌 영화 부문 1위, 92개국 톱10 석권이라는 수치로 돌아왔다. 완성도에 대한 평가는 극단으로 갈렸을지언정, 화제성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던 셈이다.



<파묘>, 토속 오컬트에서 솟구친 항일 크리처물


영화 <파묘> 스틸

영화 <파묘> 스틸

장재현 감독의 <파묘>는 풍수사 상덕(최민식), 장의사 영근(유해진), 그리고 젊은 무당 콤비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이 거액의 이장 의뢰를 받으며 서막을 여는 정통 토속 오컬트의 정석을 보여준다. 그러나 무덤 아래 또 다른 관이 드러나고, 그 안에서 '험한 것'이 물리적 실체를 드러내는 후반부부터 이야기는 크리처 액션물로 완전히 탈바꿈한다. 굿판과 음양오행의 주술적 서스펜스로 촘촘히 쥐어짜던 긴장감이, 역사적 트라우마를 물리적으로 분쇄하는 장르적 스펙터클로 치환되는 것. 일부 호불호 속에서도 이 거침없는 전환은 대다수 대중에게 신선한 충격과 오락적 쾌감으로 각인됐고, 결국 천만 관객 돌파라는 흥행 신화로 귀결됐다.

영화 <파묘> 스틸

영화 <파묘> 스틸

네 작품을 나란히 놓고 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드러난다. 장르 변주 자체는 결코 흠이 아니라는 것. <파묘>는 그 전환을 또 하나의 재미로 승화시키며 천만 영화에 등극했지만, <대홍수>는 같은 시도로 거센 혹평을 감수해야 했다. 결국 관건은 변주를 어떻게 배치하느냐, 그리고 그 낙차를 관객이 납득할 만한 개연성과 핍진성으로 뒷받침하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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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사진 / tvN·넷플릭스·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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