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희단의 작업은 작업실을 닮아 있다
미디어 속 여성의 이미지를 삭제, 해체, 결합해 그 이면을 들여다 보는 이희단의 작업이 시작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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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은 어디에나 있다
폐공장, 빌라 반지하, 사찰. 어디든 작업실이 될 수 있지만, 누구나 이곳에서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침내 자기에게 꼭 맞는 공간을 찾아낸 예술가들을 만났다.
신작 무음 영상 <해적>이 송출되는 모니터 옆 작가 이희단.
이희단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아이돌, 뮤직비디오, 그 안에서 보여지는 여성의 이미지에 관심이 많다. 동경, 질투, 혐오. 이미지를 가만히 들여다볼 때 피어오르는 모든 감정이 존재 자체가 아닌 어딘가 표백된 이미지에 근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디어와 조각 작업을 통해 압축된 이미지의 원본을 찾아 내재되어 있던 다른 가능성을 포착하고자 한다. 서울 방배동 서래마을의 오래된 빌라에 거주하고, 같은 건물 반지하 창고를 작업실로 쓴다. 2m 이상의 대형 조각 작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작업은 집과 작업실에서 이루어진다. 두 공간은 10초 만에 오갈 수 있는 거리다.
선반에는 최근 팩션에서 진행한 전시 «Proxy is my Lover»에 출품했던 <키스(Kiss)>와 <뼈대(les noiseuses)>의 라텍스에 아세톤 전사한 이미지 원본이 꽂혀 있다.
이희단의 작업에는 언제나 여자들이 등장한다. 미디어에서 흔하게 다뤄지는, 전형적인 여성 이미지와 그것을 만들어내는 기술 자체를 들여다보는 작업을 한다. 여성의 몸을 삭제, 해체해 다른 물질과 결합하는 형식을 취하는 식이다. 최근 연희동 팩션에서 진행된 개인전 «Proxy is my Lover»에서 볼 수 있었던 17분 분량의 영상 <Wreckers>에서는 여성과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이미지로서 자동차를 병치했다. 생성형 AI에 여성의 이미지들과 함께 영어 대사 프롬프트를 입력해 만든 영상 속 여자들은 언어를 모방하는 듯한, 신음 소리도 웃음 소리도 아닌 애매한 소리를 내뱉는다. 작가가 직접 촬영한 동굴을 배경으로 여자들이 등장하고, 그 옆으로 실시간 방송 채팅창이 겹쳐진 구성을 띠는 영상 <에우리디케>+<언더그라운드 MMCMXCIX I>는 볼 때마다 묘한 불쾌감이 느껴진다. 사실 이건 이희단의 영상 작품을 볼 때 자주 겪는 일이다.
반지하 작업실 입구에서 미공개 작품 <Psyché>이 맞이한다.
이희단의 작업실은 이 기획을 통해 만난 작가들의 작업실 중 가장 자기 작업을 닮아 있었다. 말하자면 작업에 등장하는 여성들, 즉 걸리(Girlie, 실사, 2D 애니메이션, 생성형 AI 이미지 등 다양한 도구로 만들어진 인물들)가 사는 공간 같다. “제가 이곳을 택했다기보다 공간에게 간택당했다는 느낌이 종종 들어요.” 동의한다. 이런 공간은 원한다고 구할 수 있는 유는 아니다. 설령 작업실을 구할 목적으로 부동산 매물을 뒤지다 발견했대도 외면했을 것이다. 오래된 빌라에 세대마다 딸린 반지하. 빛바랜 핑크빛 벽지, 나무 책장, 그 안에 꽂힌 책들, 안에 뭐가 들었을지 모를 산삼주, 부서진 채 바닥에 널부러진 샹들리에. 누군지도 모를 이전 세입자가 두고 간, 출처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방치되어 있다. 그는 이 공간을 파운드 푸티지처럼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화 <백룸> 아시죠? 주인공은 가구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알고 보니 지하의 광활한 백룸 스페이스와 연결이 되어 있잖아요. 제 상황도 비슷해요. 10년 동안 산 집에 언제부터 있던 건지도 모를 남의 물건이 잔뜩 놓인 반지하가 딸려 있었던 거죠. 물건들은 지금까지도 건드리지 않았어요. 괜히 조금 무섭기도 해서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가장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곳에 낯선 물건이 사방에 도사리고 있는 거잖아요. 자연스레 감각을 곤두세우게 된다는 점에서는 좋은 자극이 되는 것 같아요.”
이희단은 미디어 작업으로 예술 활동을 시작했고, 현재 물성이 있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흥미를 느끼는 물성 역시 이 작업실에서 마주한 이미지에 뿌리를 두고 있다. “특히 부서진 샹들리에가 재미있게 느껴져요. 화려한 동시에 얄팍한 느낌이 드는, 거기에 버려져 있어서 서사를 상상하게 만드는 것에 관심이 생기거든요.” 영상 작업을 할 때 촬영 장소로 선호하는 곳은 호텔처럼 생활감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완전히 사적인 주거 공간은 아닌 애매한 공간이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의 작업실은 물리적, 정서적인 차원에서 폐허성을 정의 내리는 기반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불쾌하고 찝찝할 수 있는 작업들은 사실 스스로를 겨냥한 것이기도 하다. 이 음습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 “미카엘 하네케(Michael Haneke)라는 영화감독을 좋아해요. 미디어의 폭력성을 다루는데, 그것을 날것으로 보여준다는 비판도 함께 받는 사람이에요. 이 감독의 작업 방식에 동의하는 부분이 많아요. 얼마든지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불편하다고 외면하게 되는 것들을 의식적으로 직면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누군가는 봐야 하니까요.” 지난 한 달간 전시장에 주로 상주해 있던 이희단은 다시 이곳에 돌아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다음으로 눈을 돌린 주제는 ‘능동적인 배경의 가능성’이다. 그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묻기 위해 신체를 네거티브 스페이스처럼 배경화하는 방식의 작업을 생각하고 있다.
Credit
- 글/ 고영진
- 사진/ 박현경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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