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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고 불편한 조각이 만들어지는 곳, 작가 이현우의 작업실

이현우는 서울 신도림동의 버려진 공장에서 몸을 키워드로 조각을 만든다.

프로필 by 고영진 2026.10.29

작업실은 어디에나 있다


폐공장, 빌라 반지하, 사찰. 어디든 작업실이 될 수 있지만, 누구나 이곳에서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침내 자기에게 꼭 맞는 공간을 찾아낸 예술가들을 만났다.


「

이현우

」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의 버려진 공장에서 ‘몸’을 키워드로 한 조각 작업을 한다.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 작업실 정중앙에 붙은 나무 팻말을 제외한 모든 것은 이현우와 동료 작가들의 손을 거쳤다. 완전히 방치되어 있던 데다 인근 문래동에 비해 인프라도 부족한 이곳을 택한 건 층고가 높고 넓은데 상대적으로 저렴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어쩐지 자신을 닮은 것 같은 동네 분위기도 한몫했다. 공간 곳곳에 누수가 심하지만 그마저도 물이 부족한 이현우의 사주에 딱 맞다.


작업 중인 신작 조각 사이의 작가 이현우.

작업 중인 신작 조각 사이의 작가 이현우.

전달받은 주소 앞에서 한참을 헤맸다. 신도림동 좁은 골목의 공장들 틈에서 소위 말하는 젊은 작가의 작업실 같은 냄새를 맡지 못해서다. 간판까지는 없어도 외관에서부터 주변 철공소와는 다르게 묘하게 정돈된 느낌이 난다거나 동네와 어울리지 않는 음악 소리가 새어 나오는 것 따위를 기대한 모양이다. 작가 이현우의 작업실은 그런 기색이 요만큼도 없다. 결국 작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벽인 줄 알았던 코앞의 문이 벌컥 열렸다.

흰 벽으로 둘러싸인 작업실은 다른 차원인 듯 생경했다. 우선 꽤 넓었다. 크게 두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한쪽에선 용접 같은 투박한 작업을, 또 한쪽에선 손으로 다듬고 만지는 작업을 하고 있는 듯했다. 공구와 작업 재료가 쌓인 박스 위에는 6개 묶음 즉석밥이 반쯤 뜯긴 채로 얹혀 있다. 벌집, 갑각류, 해양생물의 턱 뼈, 말린 식물 조각, 소뿔, 나무 뿌리 등 육해공 자연 생태계 다방면의 물질이 가지런히 놓인, 왜인지 모르게 숭고해지는 테이블 옆에는 생활감이 역력한 빈백이 찌그러져 있다. 이곳은 이현우의 작업실과 자취방 사이 어디쯤일지도 모른다.

나무 뿌리, 갑각류, 소뿔 등. 테이블 위의 모든 것은 이현우의 작업 재료다.

나무 뿌리, 갑각류, 소뿔 등. 테이블 위의 모든 것은 이현우의 작업 재료다.

작업실을 소개해줄 때도 그랬지만, 작가로서의 이현우는 먼저 묻지 않는 이상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지금껏 해온 전시나 인터뷰를 찾아봐도 작품과 작업관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고들어 설명한 경우는 거의 없다. 작품이 ‘의미’에 매몰되는 것은 피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 적도 있는 걸 보면 외계 생물체 같기도, 동물의 사체 같기도 한 작품 앞에서 숱한 물음을 삼킨 관람객이 나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의미에 매몰되고 싶지 않다는 게, 의미가 없다는 뜻이 아니거든요. 작업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대하는 태도가 진실된다면 작업의 존재만으로도 설명이 된다는 거죠. 뭔가를 말도 안 되게 잘 만들면 그 자체로 작가의 태도를 대변할 수 있다는 거예요.”

몸을 키워드로 삼은 그에겐 크게 신체를 투영하는 작업과, 신체에 가하는 사건을 만드는 기념비적인 작업이 있다. 전자는 장기라 추측하게 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미끈한 것들이고, 후자는 브론즈나 금속의 기념비성을 지닌 형태다. 어느 쪽이든 시각과 촉각을 강하게 자극하는 면이 있지만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건 존재감이다. 익숙지 않은, 낯선 존재를 목도했을 때 느껴지는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 이현우의 작업에 그런 존재감을 부여한 건 야만성이다. 그는 작업으로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했다. 스스로 추구하고 좋아하는 것들이 남들이 봤을 땐 불쾌할 수 있는 이미지들임을 알고 있다. 누군가에겐 징그럽거나 기괴하거나 불편할 수 있는 물성. 그 이면에는 ‘자기 갱신(self-renewal)’이라는 의미가 숨어 있다. “사람들은 내가 나를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하잖아요. 전 그렇지 않거든요. 계속 나의 새로운 면을 발견해요. 내 안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겠어요. 제 작업은 이걸 구체적으로 ‘몸’에다 투영해 보여주는 거예요. 나는 계속 알아가야 하는 존재니 작업은 항상 완결된 결과가 아닌 상태를 보여주는 일이 되는 거죠.” 자신의 몰랐던 면을 알게 될 때, 그는 몸에 있는 뭔가를 ‘꺼냈다’고 생각한다. 새롭게 발견한 면을 고치거나 발전시켜야겠다고 다짐하는 건 꺼낸 것을 내 몸에 다시 귀속시키는 과정이다. 예를 들면, 장기를 꺼내 의족으로 만들어 쓰는 식이다. “손톱, 머리카락 등 몸을 구성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지만 저는 꼭 장기와 관련된 것이 먼저 생각나더라고요. 조각 작업은 제가 갖고 있는 이런 야만성을 인정하는 것부터가 시작이에요. 제 작업에 야만성이 드러났으면 좋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뭔가 나온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건 무책임하다고 생각해요. 상처를 줄 수 있잖아요. 그 성질을 내재하고 있을 뿐, 겉으로는 정교하게 잘 다듬어진 형태를 갖춰야 좋은 작업이라 할 수 있겠죠. 그런 작업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곳곳에 어떤 동물의 몸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를, 정체가 불분명한 형태들이 전시되어 있다.

곳곳에 어떤 동물의 몸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를, 정체가 불분명한 형태들이 전시되어 있다.

최근엔 톰 크루즈가 사무라이와 잔혹하게 싸우는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를 인상 깊게 봤으며 장기로 무엇을 어찌한다는 범상치 않은 생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내뱉는 이 작가는 사실 자신의 작업이 누군가에게 줄 상처를 걱정하며, 좋은 사람, 좋은 작가가 되는 길을 자주 생각한다. “아주 정성 들여 만든 명절 음식을 먹으면 제사라는 의식의 경건함이 느껴지듯이 작업에서도 작가가 어떤 태도로 작업을 했느냐가 그대로 전해진다고 봐요. 가장 중요한 태도는 진실한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이 사람이 무얼 용기 내어 맞닥뜨렸는지, 자기 안의 무얼 인정하고 받아들였는지, 성숙함도 작업에 드러나게 되어 있으니까요.” 자기 작업과 일치하는 사람. 거짓을 만들지 않는 사람. 그가 생각하는 좋은 작가의 모습이다. 이현우는 지금 정체 불명의 덩어리를 만들고 있다. 숭고할 수도 더러울 수도 있는 덩어리. 이것이 무엇을 뜻하고 가리키든, 그 안에 거짓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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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 고영진
  • 사진/ 박현경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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