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작가 6인이 말하는 지금 공예의 형태
공예와 예술의 경계에서, 보다 새로운 형태를 고민하는 작가들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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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여섯 가지 형태.
김찬혁
」
김찬혁 작가가 커피 클레이로 만든 오브제, <CHaegado A8>.
재료를 통해 경험하는 감각
수제비 반죽이 떠오른다. 옻이라는 매력적인 마감재를 기존의 방식과는 다르게 사용하고 싶었다. 커피 찌꺼기를 다른 재료와 섞어가며 유기적인 형태를 만들고 있다. 거기에 옻칠을 더해 거친 질감을 보완한다. 도구 대신 손으로 섞는 과정이 밀가루를 반죽하는 촉감과 거의 흡사하다.
형태를 완성하는 방식
비정형적인 모양보다, 자연에서 발견할 수 있을 법한 곡선과 조형을 추구한다. 먼저 주제에 대해 탐구하면서 곡선 위주로 스케치한 다음, 작품의 뼈대와 심지를 구성한다. 정해진 치수를 기반으로 모델링한 뒤 제작에 착수한다.
지금 공예의 위치
결과물보다는 방식에 가까운 단어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담을 때는 ‘예술(표현)’이라는 결과물이 될 수도 있고, 일상에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요소일 때는 ‘디자인’이 될 수도 있다. 지금 공예는 계속 살아남기 위해 경계를 벗어나면서 영역을 오가고 있다고 본다.
작업의 지향점
기존의 정형화되고 익숙한 형태에서 한번쯤 벗어날 수 있는 제안이 되길 바란다. 우리 대다수는 비슷한 구조의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다. 내가 제안하는 형태들이 사람들의 삶 속에서 다양한 동선을 만들어내 의미를 갖기를. 또한 쓸모가 사라진 것을 다시 한번 활용할 수 있는 ‘무용지용’의 생각과 순환의 정신이 깃들기를.
팜폼 김현서
」
팜폼은 과일의 씨앗 클러스터에서 영감을 받아 조명 <Light 04>을 만들었다.
작업을 하며 떠올리는 생각
자연은 종종 인간의 소비를 기준으로 이미지화될 때가 많지만 그 이면을 보려 한다. 왜 이런 형태를 가지게 되었는지, 어떤 향과 맛을 품고 있는지, 그리고 자연의 시간은 어떤 감각으로 흐르는지에 대해 상상한다. 예를 들어 생명이 흙 속에서 서서히 퍼지거나 빛을 향해 아주 느리게 방향을 바꾸는 움직임처럼, 거의 감지되지 않는 속도로 변화하는 장면을 자주 떠올린다.
형태를 결정하는 방식
대상을 관찰하며, 그로부터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나 개념을 먼저 설정한다. 다음으로 그 의도가 조형 언어로 어떻게 전달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형태를 구체화해 나간다. 오브제의 경우, 의미가 직관적으로 설명되기보다는 몇 단계를 거쳐 유추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동시에 조형이 지나치게 난해해지지 않도록, 직관과 해석 사이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지금 공예의 위치
현재 공예는 예술과 디자인 사이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상태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한다. 기능이나 물질에 머무르는 것을 넘어 그것을 사용하는 경험과 감각까지 다루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 나 역시 손으로 형태를 만드는 과정에서 공예적인 태도에 기반해 작업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어떤 경험으로 이어지는지를 함께 고민한다.
작업이 나아가는 방향
존재하는 것들을 다시 바라보게 만들고 싶다. 일상에서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에 질문을 던지고, 감각을 환기하는 경험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그 경험은 개인에게 다른 형태의 씨앗으로 남아, 각자의 방식으로 자라나지 않을까.
김대운
」
김대운 작가의 도자 조각 <우리 사랑하게 해주세요>. 작품에 주변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응원의 마음을 녹였다.
흙이라는 소재를 다루며
점토를 주물럭거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반복되는 움직임과 제스처가 생겨난다. 그렇게 만들어진 형상들을 모아 보면 낯선 조형 언어로 드러날 때가 있다.
형태를 결정하는 방식
진실함. 현재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친구 트로피’ 조각은 주변의 소외된 친구들이 오늘을 살아내는 꿋꿋함에 감사함을 전하고자 시작한 작업이다. 친구들을 실제 모델로 삼아 트로피 형태로 제작하고, 그것을 그들에게 건네고 있다.
공예와 예술의 경계에 대하여
재료나 형식만으로는 둘을 명확히 나누기 어려워졌지만 학교, 미술관, 시장, 비평의 언어는 여전히 어떤 작업을 공예로, 어떤 작업을 예술로 구분한다. 둘의 경계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작품 내부의 문제에서 제도와 해석의 문제로 이동한 것이 아닐까? 공예는 물질과 기술, 손의 노동, 제작의 축적을 통해 의미를 형성하는 반면, 현대미술은 개념과 맥락, 문제의식이 먼저 설정되고 그에 맞는 형식을 조직한다. 서로의 영역이 어디까지 침범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차이는 재료를 작동시키는 태도에 있다고 본다.
작업의 지향점
촉각의 경험. 정제되지 않은 세라믹의 날카롭고 부드러우며 파인 표면은 조각을 완성하는 순간 살아난다. 그 안에서 관계와 긴장, 충돌과 공존이 동시에 감각되기를 바란다. 작품이 기능적인 대상이라기보다 소외된 것과 숨겨진 것들, 그리고 포용과 사랑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경험으로 남기를 바란다.
서성욱
」
유리 블로잉 기법으로 탄생한 서성욱의 화병 <Vitality>.
유리를 다룰 때 느끼는 감각
뜨거움, 말랑말랑함, 신문지가 타들어 가며 자아내는 연기의 매캐함. 굵은 블로 파이프에 유리를 말고, 젖은 신문지로 성형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감각이 혼재되어 다가온다. 꿀처럼 흘러내리는 뜨거운 유리를 만지는 순간은 블로잉 작가들만 할 수 있는 특별한 작업이다. 어떠한 것도 떠오르지 않고 유리만 바라보는 순간이다.
형태를 완성하기까지
다양한 원색, 유리가 빚어낸 곡선의 굴곡이 작업에 생동감을 부여한다. 주로 위쪽에는 갈수록 넓어지는 패턴과 풍성한 양감을 담을 수 있는 화려한 색을 더한다. 색상 레이어의 순서를 하나씩 정하고, ‘주사위 던지기’처럼 의도된 무작위성을 따르며 패턴을 구현하는 것이 작업의 핵심이다.
공예와 예술의 경계
예술이라는 큰 울타리 안에 공예가 있다. ‘쓰임’과 ‘표현’을 절묘하게 섞어내는 것이 공예다. 작업의 지향점 색유리가 지닌 생명력으로 나만의 미감을 보여주고 싶다. 유리가 빚은 색과 패턴이 일종의 세포처럼 생동감 있게 느껴지기를. 궁극적으로는 ‘색을 잘 쓰는 작가’로 남고 싶다.
폴린루이즈 서희영
」
옥수수와 사탕수수 등으로 만든 친환경 소재에 3D 프린팅 기법을 적용한 폴린루이즈의 화병 <Portrait Vase. I>.
3D 프린팅 작업의 특성
강한 열로 재료를 녹인 다음 적층 과정을 거치면서 완성된다. 높은 온도에서는 재료가 촛농처럼 흘러내리며 텍스처를 만들고, 온도가 낮아지는 순간 박제된 것처럼 움직임을 멈춘다. 스스로 형태를 역동적으로 찾아간다는 점에서 줄기가 뻗어가는 식물의 움직임과 유사하다고 느낄 때도 있다.
형태를 완성하기까지
한쪽 면이 납작하게 눌리거나 흘러내리는 형상을 선호하는 편이다. 공간 안에서 사용자가 계속해서 시점을 이동하며 오브제를 관찰하도록 만들기 위함이다. 가구와 건축의 영역을 인간 신체의 연장된 오브제로 해석한 르코르뷔지에의 ‘오브제 타입(objet-type)’ 개념에 영향받아, 내 작업 역시 공간과 오브제 그리고 사용자를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구조로 설정하고자 한다. 궁극적으로 관람객과 공간, 오브제가 상호작용하며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현실과 초현실적 이미지를 오가는 경험을 하길 바란다.
지금 공예의 위치
현대 공예 개념은 대중의 인식 속에서 기능적 디자인을 넘어서 미학적인 예술의 영역에 가깝다. 장인의 수작업에 기반해 사물에 고유한 가치를 부여하는 공예 작품의 성격은 예술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고 본다. 한편 디지털 시대에서 디지털 기술과 공예의 결합, 이에 따른 다양한 시도는 필연적인 과정인 듯하다. 전통적인 공예에서 물리적인 손기술이 절대적이었다면, 디지털 공예에서는 기술이 머릿속의 관념을 데이터화하는 과정으로 이전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으로 볼 때 공예는 가상의 데이터를 물리적 실체로 치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작가의 정교한 설계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 말하자면 디지털 공예는 효율을 극대화하는 디자인의 전통적인 방법론을 따르면서도 예술의 본질과도 닮아 있다.
오재훈
」
바느질과 천으로 작업하는 오재훈 작가의 <누빔 조명>.
재료를 통해 경험하는 감각
학생 때부터 전공을 바꿀 만큼 옷과 패브릭을 좋아했다. 자연스레 재봉틀을 곁에 두며 옷감을 자주 접하기 시작했다. 패브릭은 이미지나 형태를 무한히 구현할 수 있고, 사람들의 일상과 직관적으로 연결 지을 수 있는 소재다. 요즘은 음악과 작업을 연관해 생각하고 있다. 기타 가방이나 스피커 같은 형태의 작업을 시도하는 중이다.
형태를 결정하는 방식
음악의 즉흥성, 무대에서의 무작위적인 에너지를 동경한다. 그래서인지 내 작업 방향 역시 즉각적으로 진행될 때가 많다. 크게는 정형화된 틀을 만들어 두지만, 세부적인 요소는 그때그때 변경할 때가 많다. 익숙한 형태를 낯설게 표현하는 순간은 내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지금 공예의 위치
공예와 디자인, 그리고 예술까지 각각의 분야를 나누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 모든 개념이 서로를 포괄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스스로 작업을 일기 같은 하나의 창작물이라 여긴다. 추구하는 생각이나 이미지를 내 능력으로 표현하고, 그것이 사람들의 공감을 받을 때 계속해서 작업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정송은 창작과 관련된 이야기라면 두루 흥미롭게 살펴보고 있다.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하나씩 들여다보며 섬세함에 다시 주목했다.
Credit
- 글/ 정송
- 사진/ 박재용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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