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자와 화가 이광호가 함께한 초상 프로젝트 'Faces', 김신록
<바자>와 이광호가 함께한 프로젝트<Faces>의 면면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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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ING PORTRAIT
김민하, 김성령, 김신록, 선우정아, 홍진경이 작가 이광호의 초상화 모델이 되었다. <바자>와 이광호가 함께한 프로젝트<Faces>의 면면을 공개한다.
톱, 트라우저, 벨트는 모두 Self-Portrait. 귀고리는 Attica. 반지는 Sentiments.
김신록
예술의 질료가 되는 예술가의 기쁨
옛날도 아닌 예전, 예술가들은 지금처럼 작업실에서 자기 작업에만 몰두하지 않았다. 이들은 무엇이든 하고, 무엇이든 되면서 세상과 소통했다. 그 시절 이들의 역할을, 배우들이 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이 같은 매력과 재능 그리고 가능성을 언젠가 도래할 예술가의 새로운 원형으로 삼아도 좋지 않을까. 인터뷰 내내 이런저런 상상으로 살짝 흥분하기도 했는데, 지금 마주한 이가 그저 예술에 관심이 많은 배우가 아니라 바로 김신록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연기는 보이지 않는 것이 나의 몸을 통해 드러났다 사라졌다 하는, 지극히 생성적이고 수행적인 작업”이라 정의할 수 있는 배우이고, 나는 특히 보이는 것 너머, 그 이면에 닿기 위해 고투해본 사람의 이야기에 어김없이 감동한다. “무방비 상태로 작업을 보는 순간 파동이, 파문이 일었어요. 내가 알았던 나의 어떤 부분이 감각적으로 흐려진 느낌. 초상화인데, 풍경화 같기도 하고요. 추상과 구상 사이를 더듬는 일을 연기로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이 초상화가 그런 작업으로 다가와요.” 그림을 함께 보자고 먼저 청한 쪽은 김신록이었다. 현장 상황만 허락했더라면 우리는 그 앞에서만 몇 시간이고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다.
이광호의 그림 속 김신록은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희미하고 흐릿하며 심지어 조용하다. 하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로 가득하면서도 한없이 열려 있는 데서 발현되는 모호함은 백 가지의 선명함보다도 풍성한 맥락을 만들어낸다. 그날 작가의 카메라 앞에서 ‘배우 김신록’을 지워낼 것을 요구받은 그녀가 행한 방식은 매우 흥미로웠다. “나도 작가님을 보고 있지만 작가님도 나를 보잖아요. 또 내가 테이블을 만진다, 그런데 테이블이 나를 만지는 것이기도 한 거죠. 주체와 대상이 뒤섞이는 감각, 주체이지만 동시에 대상인 상태, 그 중간쯤 어딘가에 머무르려고 했던 것 같아요. 두 세계의 비밀스러운 중첩이라고나 할까요?(웃음)” 그러므로 김신록의 초상은 두 세계가 오묘한 긴장과 엄연한 경계를 흐트러뜨리며 빚어낸 또 하나의 세상이다.
김신록식의 ‘관계의 미학’은 그녀가 배우로서 보여온 행보와도 겹쳐진다. 복합적이거나, 입체적이거나, 때로는 납작한 역할 모두를 매체를 바꾸며 척척 해내고 있는데, 관객으로서 나는 김신록이 주·조연 같은 일반적 질서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기꺼이 실험의 상태에 두고 있다고 믿어왔다. 한 줄로 요약되는 평평한 인물부터 논문을 써도 파악이 힘들 것 같은 복잡한 인물까지, 지금껏 그녀가 거쳐온 역할들은 “내가 모르는 얼굴을 발견해주는 작품을 기다린다”는 관용어를 넘어 탐색과 탐구, 혹은 총체적인 움직임의 결과에 가깝다. “연기라는 프레임을 통해 삶을 보고, 또 삶을 통해 연기하는” 기쁨에 안주하지 않고, ‘배우 김신록’과 ‘배우로만 규정할 수 없는 김신록’ 사이를, 김신록의 실제적 몸과 허구적 인물의 존재감 사이를 유연하게 넘나들고 서로에게 침투하기를 반복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맞닥뜨리는 수많은 김신록은 “산업과 병행하면서도 어떻게 예술가로서의 방식을 잃지 않을까” 되뇌며 수행해온 예술가의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그간 경험해온 것과는 다른 바라봄의 방식, 혹은 태도에 대한 작업이기도 해요. 연기를 거듭하면서 저 역시 카메라의 문법을 익히게 되고, 점점 효율적인 배우가 되고 있어요. (노련해지는 게 아닐까요?) 네, 그러면서 더 선명해지는 거죠. 이걸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 하는 게 숙제처럼 온 시기였어요. 저 그림이 내게 와 주었을 때처럼, 연기도 그 얇은 유리 막 같은 게 탁 깨지면서 형(形)을 흐리는 방향으로 갈 수 있을까…. 그래야만 보는 사람을 포섭할 수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죠. 순위 매기기의 방식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카메라 안에서 그걸 해내는 법을 고민해야겠다 싶어요. 내가 모르는 나를 발견하는 일이 몹시 두렵고 불편하고 효율적이지 않은 일이겠지만, 그래서 언제나 그런 만남을 기대합니다.”
효율성과 선명함이라는 관성에 저항하는 김신록의 방법론은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몸을 통해 탐색하는” 연기 예술의 본질을 더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이다. 지금처럼 세상의 시선을 받기 전부터, 김신록은 이 오래되고 난해한 문제를 풀기 위해 골몰해왔다. 크고 작은 무대에서의 시간만큼이나, 무대를 직접 만들어가며 이어온 개인 작업은 그래서 더 의미 있다. <김신록에 뫼르소, 870×626cm>에서는 연기가 끝나도 끝나지 않는 배우의 몸을, <위치와 운동>에서는 조각난 주체와 시간의 큐비즘 같은 주제를 연구했다. 그중 현대미술가 김홍석과 협업한 렉처 퍼포먼스 <인간 질서 – 질문들>은 서울시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퍼포먼스 아트에서 퍼포머를 저작자로 인정하는 문제에 대한 화두를 김홍석이 제시했고, 김신록은 이를 받아 ‘퍼포머는 타인의 아이디어를 수행하는 존재인가, 작품을 만드는 주체인가’라는 질문을 몸소 증명해냈다. 바늘 하나 들어갈 틈 없이 견고한 김신록의 논거는 결국 “모든 저작권은 김홍석과 김신록에게 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끝나는데, 이것이야말로 이 작품의 백미이자 화룡점정이다.
화가가 화구를 다루듯, 몸을 매개로 연기하는 김신록은 이번에 초상화의 충실한 질료가 되었다. “질료가 되었을 때 오히려 나라는 사람의 개인성이나 대표성이 사라지고 잠재적인 역량이 발휘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초상을 보면서 그런 표현을 떠올릴 수 있다면 저에게는 굉장히 예술적 의미가 있는 작업이죠.” 동시에 이번 프로젝트가 <인간질서 – 질문들>과는 정반대에 있는 시도이기에 더 흥미롭다는 이야기부터 온전한 저자로서 쓴 두 번째 책 <절룩거리며 찾아나선 정화의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우리는 새로 시작할 기세로 대화를 한참 더 이어갔다. 그리곤 며칠 후. 김신록에게서 DM이 왔다. 책을 보내고 싶다는 메시지와 함께. “인터뷰 후 초상화와 질료로서의 모델에 대한 질문이 싹터서 관련 작업을 구상해보고 싶어졌어요.” 한국미술 축제의 한가운데에서 동분서주하며 고단함과 씁쓸함에 어찌할 바 모르던 9월 초의 어느 밤, 어쩐지 위로를 받은 것 같았다. 페어장에서 본 작품들만큼이나, 혹은 그보다도 “좋은 질문을 품게 하는 사람이 작가이고, 그래서 좋은 작가가 되고 싶다”던 김신록의 어떤 작업이 기다려졌다.
미니 드레스, 플레어 팬츠는 Oude Waag. 펌프스 뮬은 Masion Margiela. 귀고리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Credit
- 글/ 윤혜정(문화예술 기획사 ‘윤원’ 대표, 작가)
- 사진/ 이준경
- 헤어/ 김도영
- 메이크업/ 이수지
- 스타일리스트/ 이진혁
- 프롭 스타일리스트/ 김태양
- 어시스턴트/ 신형진, 이하늘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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