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경 3.3cm 시계 다이얼 위에 펼쳐진 예술
시간을 재는 시계에 시간을 쌓는 일은 그 자체로 예술이 된다. 바쉐론 콘스탄틴 메종 1755 서울에서 열린 전시 ‘ART OF TIME: 에나멜드 마스터피스’는 그 과정을 공유하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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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ll Wonders
직경 3.3cm의 다이얼 위로 세계 명화가 다시 한번 그려졌다. 9월 서울에서 열리는 바쉐론 콘스탄틴의 «ART OF TIME: 에나멜드 마스터피스»는 거대한 작품을 손목 위의 작은 화면으로 옮기는 오래된 공예의 집요함을 보여준다.
얇은 금속 선으로 모티브의 윤곽을 잡은 뒤 각각의 칸에 에나멜을 채워 넣는 클루이조네 공정. 여러 겹을 올리고 소성을 반복하며 원하는 볼륨과 컬러를 완성한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그의 저서 <야생의 사고>에서 예술 작품이 종종 축소 모형의 성격을 띤다고 보았다. 실제 대상 앞에서는 부분을 따라가며 전체를 짐작해야 하지만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작아진 세계 앞에서는 이해의 순서가 뒤바뀐다. 먼저 전체를 보고 그 다음 세부를 들여다보게 된다. 크기를 포기한 대가로 이해 가능성을 얻는 것이다. 인간이 작은 것을 만드는 데 그토록 공을 들여온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축소는 세계를 줄이는 일이 아니라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크기로 번역하는 일이다. 어떤 부분을 남길지, 어디를 생략할지 결정해야 하기에 결국 작은 것 안에는 만든 사람의 선택이 드러난다.
9월 5일부터 22일까지 메종 1755 서울에서 열리는 바쉐론 콘스탄틴의 «ART OF TIME: 에나멜드 마스터피스»는 이런 축소의 힘을 직경 3.3cm의 시계 다이얼 위에서 보여준다.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한 루벤스의 <앙기아리 전투 속 깃발을 위한 투쟁>은 세피아 톤과 말갈기의 움직임까지 에나멜로 다시 해석됐고, 드가의 무희와 샤갈의 오페라 가르니에 천장화 역시 손가락 한 마디만 한 작은 화면으로 옮겨졌다. 이 과정은 레비스트로스가 말한 축소 모형을 닮았다.
4천 년의 역사를 지닌 에나멜링은 금속에 색을 더하는 가장 오래된 장식 기법 중 하나다. 광물에 금속 산화물을 더해 만든 유리질 물질을 얇게 올리고 가마에서 여러 차례 소성해 색을 고정하는데, 같은 에나멜이라도 어떤 방식으로 다루느냐에 따라 결과물은 전혀 다른 형태가 된다. 금속 표면을 파낸 자리에 에나멜을 채우는 샹르베, 가느다란 금속 선을 세워 칸을 나눈 뒤 그 안에 색을 채우는 클루아조네, 어두운 바탕 위에 리모주 화이트를 겹겹이 올려 명암을 만드는 그리자유, 그리고 구운 에나멜 바탕을 캔버스 삼아 붓으로 직접 그림을 그리는 미니어처 페인팅까지. 에나멜링은 금속과 유리, 불을 재료 삼아 인간의 기술과 시간을 켜켜이 쌓아가는 과정이다. 매끈한 표면 아래에는 수없이 반복된 기다림과 실패의 가능성, 손끝의 감각과 불을 다루는 섬세한 기술이 숨어 있는 것이다. 워치메이커들이 이 기술을 시계에 적용한 것은 16세기부터이며, 17세기 제네바에서는 그랑 푀 에나멜 위에 미니어처 페인팅을 올린 뒤 보호용 플럭스를 덮는 이른바 ‘제네바 에나멜’이 탄생했다. 1755년 제네바에서 설립된 바쉐론 콘스탄틴 역시 이 전통과 함께 성장해왔다. 에나멜링에서 완성도만큼 인상적인 것은 그 과정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다. 고온의 가마에서 여러 차례 구워지는 동안 표면에 금이 가거나 미세한 기포가 생기면 그때까지 쌓아온 작업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다. 바쉐론 콘스탄틴의 마스터 에나멜러는 장인의 자질로 손재주뿐 아니라 이 모든 과정을 참아낼 차분함과 고요함, 그리고 자기 자신과 거리를 둘 수 있는 역량을 꼽았다.
전시는 미니어처 페인팅과 샹르베, 클루아조네, 그리자유라는 네 갈래의 기법을 실제 제품과 함께 보여준다. 명화를 작은 다이얼로 옮긴 작업은 2019년 루브르 박물관, 2023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맺은 파트너십에서 시작됐다. ‘Masterpiece on Your Wrist’ 프로그램을 통해 주문자는 큐레이터와 함께 일대일로 박물관 소장품 가운데 한 작품을 고르고 제네바의 장인들과 다이얼의 구성을 논의한다. 한 점의 시계가 완성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2년 남짓, 때로는 그 이상이다. 시간을 재기 위한 물건이 오히려 막대한 시간을 들여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Art of Time’이라는 전시 제목은 두 겹으로 읽힌다. 이 시계들이 재는 것은 앞으로 흐를 시간이지만 다이얼에 담긴 것은 이미 지나간 시간이다. 오래된 그림과 수백 년 된 기법, 컬렉터와 함께한 시간이 작은 원 안에 겹쳐진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 컬렉터들의 특별 주문 및 소장 작품이 처음 공개된다. 사적인 시간이 잠시 공적인 시선 앞에 놓이는, 9월의 짧은 열여드레다.
김민정은 프리랜스 에디터다. 유일무이한 타임피스를 지나치며 아름다움을 좇으며 살자는 인생의 목표를 되새겼다.
Credit
- 글/ 김민정
- 사진/ 바쉐론 콘스탄틴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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