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자와 화가 이광호가 함께한 초상 프로젝트 'Faces', 김성령
<바자>와 이광호가 함께한 프로젝트<Faces>의 면면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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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ING PORTRAIT
김민하, 김성령, 김신록, 선우정아, 홍진경이 작가 이광호의 초상화 모델이 되었다. <바자>와 이광호가 함께한 프로젝트<Faces>의 면면을 공개한다.
드레스, 팬츠, 손에 든 머플러는 모두 Celine. 귀고리, 이어커프는 Messika. 장갑은 Arket. 구두는 Ferragamo.
레더 재킷은 Khaite. 이어커프는 Chaumet.
김성령
시간이 쌓인 얼굴, 얼굴이 쌓인 시간
특유의 우아함과 기품 덕분인가, 김성령의 초상은 유난히 문학적으로 다가온다. 나는 벽에 기대선 초상 작업에서 눈을 떼지 못했는데, 여러 인물들이 동시에 머릿속을 비집고 나오려고 했기 때문이다. 누구일까. 생각났다. 그녀는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에 등장하는 클라리사 댈러웨이와 묘하게 닮았다. 감정과 기억, 상념과 회고를 오가며 과거를 소환하다가 결국 본연의 ‘안주인’ 자리로 돌아오는 댈러웨이가 모더니즘과 페미니즘 사이 어딘가에 살아 있다. 이디스 워튼의 <순수의 시대>에서 세련된 고독미를 발산한 엘렌 올렌스카가 떠오르려는 찰나, 김성령 앞에 놓인 연극 대본, 테네시 윌리엄스의 <유리동물원>이 눈에 들어왔다. 김성령은 이 극에서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엄마 아만다 윙필드 역할을 맡았다. 그러니까, 딸 로라의 ‘신사 방문객’을 맞이하기 위해, 소싯적 옷을 꺼내 입는 중년 윙필드의 얼굴 위로 젊은 그녀의 얼굴이 겹쳐지는 순간 같은 얼굴이 내 앞에 있다.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만큼 풍요로운 서사를 띤 대상은 없고, 나는 10월 17일부터 막을 올리는 <유리동물원>의 한 장면을 미리 만난 것 같았다. 가만, 생각해보자. 댈러웨이와 윙필드의 실제 얼굴을 본 적이 있었나. 문학 속 인물에게는 얼굴이 있지만 없다. 배우는 이렇게 상상만 해온 얼굴을 실현시킨다는 점에서 가장 전통적인 동시에 가장 첨단의 직업이다. 배우가 우리가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린 얼굴을 찾아주는 사람이라면, 김성령의 얼굴은 우리가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린 감정을 환기시킨다. 슬픔이든 환희이든 하나의 명료한 색이 아니라 층층이 희미하게 겹쳐진 감정 덕에 김성령의 얼굴이 가진 힘은 한결 입체적이 된다. 김성령은 극중 캐릭터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쉽게 침범당하지 않는 얼굴을 가졌다. 댈러웨이도, 윙필드도 될 수 있지만, 모두에게서 자유로운 얼굴. 이는 “주인공이 아니어도, 수십 년 후에도 기억나는 일생일대의 캐릭터를 만나고 싶다”는 꿈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뜻이고, 그렇기에 김성령은 지금도 용기를 내고 또 도전한다.
이광호 작가의 작업실에서 김성령은 누구보다 편안하게 작가의 말에 집중했다. 여전히 칭찬을 덤덤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녀가 여러 번 특유의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특히 작가는 “힘을 빼라”고 요청했는데, 흥미롭게도 김성령이 힘을 뺄수록 다양한 면이 발현되는 것 같았다. 불현듯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진 다채로운 아름다움이 숱한 붓 터치로 봉인된 채 완성되었다. 나는 이번 초상 프로젝트가 누군가, 특히 세상에 알려진 유명인을 모르는 채 만나, 흐릿한 카메라로 옮긴 후, 여전히 모르는 채 그리는 그 무지의 상태가 핵심이라 생각한다. 타인을 속속들이 알 수 없거나 혹은 온전히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는 조건은 결코 취약함이나 상실이 아니며, 이는 보통 통용되거나 요구받는 배우의 미덕과는 상반된다.
“다른 카메라 앞에 설 때와는 달리 제 본연의 모습에 가까워지려 한 것 같아요. 사실 가끔은 제 본연의 모습이 어떤 건지, 나다운 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긴 하지만요.(웃음) 저 자신에게 속을 때도 많고요. 그래서 이렇게 흐릿한 초상이 좋아요. 이 작업이 언젠가 소개된다면, 보시는 분들이 더 집중해서 제 얼굴을 들여다보게 되지 않을까요. 그저 한 여배우의 얼굴이라고 봐주셔도 좋겠네요. 그렇죠. 우리에게 이런 여배우가 있었다고 기억해주시면 더욱 감사한 일이죠. 저는 조금 내향적인 성향이지만, 새로운 도전을 의외로 즐기고 시도도 많이 하는 편이에요. 굉장히 두렵지만, 대체 이 두려움이 언제까지 남아 있을까, 극복해보자, 이러면서 한번 해보는 거죠. 그래서 이런 초상 프로젝트 같은 새로운 작업은 언제나 반가워요.”
올해 봄, 김성령은 지난 12년 동안 1년에 한 번꼴로 찍은 10개의 화보를 모아 사진집을 내고 딱 하루의 사진전으로 이를 기념했다. 세상의 모든 여배우들은 화보를 찍지만, 10년 넘는 프로젝트의 약속을 지키는 여배우는 흔치 않다. 이 사진전은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것이 직업이자 운명인 여배우가 자신을 정성 들여 오래 지켜봐준 이들을 위한 자리이기도 했다. 강산이 바뀌고도 남은 시간 동안 필연적인 갖가지 변화에도 김성령이 의연할 수 있었던 건 매년, 매번, 매 순간 스스로에게 부여한 일종의 책임감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그저 부끄럽지 않게, 나 아직은 열심히 하고 있어, 이런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김성령이 여전히 아름답게 존재하는 동력은 대단한 야심이 아니라 충실한 시간들이 보이지 않게 자신의 모습에, 얼굴에 차곡차곡 쌓인다는 믿음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보는 이 초상 작업 역시 단순히 여배우의 얼굴이 아니라, 그 얼굴이 쌓인 시간이다. 사진집의 제목은 <Kim Sung Ryoung>이지만, 이 참에 나는 다른 부제를 제안하고 싶다. ‘The only true protest is her beauty’. 이번 초상 작업이 맨 마지막 장의 맺음말 역할을 해줄지도 모르겠다.
코트, 셔츠, 팬츠, 귀고리, 슈즈는 모두 Ferragamo.
Credit
- 글/ 윤혜정(문화예술 기획사 ‘윤원’ 대표, 작가)
- 사진/ 이준경
- 헤어/ 이에녹
- 메이크업/ 이아영
- 스타일리스트/ 김지원
- 프롭 스타일리스트/ 김태양
- 어시스턴트/ 신형진, 이하늘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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