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사회면이 드라마가 될 때...K-콘텐츠가 담아낸 현대 사회
'눈동자' 스토킹부터 '들쥐' 신원도용까지, 안방극장을 파고든 일상의 범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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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장르물의 공포는 대체로 두 갈래였다. 초자연적인 존재이거나,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마. 그런데 올해 공개된 작품들을 살펴보면 그 출처가 바뀌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상상력에 기대야 했던 대상들 대신, 뉴스 사회면에서 마주치는 현실 사건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스토킹, 아파트 관리비 비리, 무너진 교실, 신원도용까지. 굳이 가상의 설정을 동원하지 않아도 누구나 한 번쯤 기사로 접했거나 '언젠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고 여겨본 생활 밀착형 문제들이다.
이러한 변화는 대중이 무엇에 두려움을 느끼는지, 그 정서적 균열을 기민하게 감지한 모양새다. 초자연적 공포는 결국 타자의 이야기로 안전하게 소비되지만, 사회 문제는 그렇지 않다. 내가 사는 아파트, 내 자녀가 다니는 학교, 나를 스쳐 지나가는 낯선 시선, 내 이름으로 개설된 계좌. 이 모든 것은 이미 내 삶의 반경 안에 존재한다.
<눈동자> 안전망이 사라진 자리의 공포
영화 <눈동자> 스틸
영화 <눈동자> 스틸
영화 <눈동자>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스토킹 범죄'에 시각 장애가 주는 원초적 고립감을 결합한다. 유전병으로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는 사진작가 서진(신민아)의 시야가 꺼져가는 와중에, 일상 깊숙이 침투해 오는 집요한 스토커의 시선과 집착을 섬뜩하게 담아냈다. 나를 보호할 최소한의 감각조차 무력화된 상황에서 벌어지는 스토킹 공포를 통해, 일상적 안전망이 무너질 때 느껴지는 지독한 불안을 밀도 있게 다룬다.
<아파트> 대단지라는 이름의 밀실, 그 안에 숨겨진 욕망
JTBC 토일드라마 <아파트> 스틸
JTBC 토일드라마 <아파트> 스틸
JTBC 드라마 <아파트>는 대단지 아파트라는 한국 사회 고유의 주거 공간을 배경으로 공적 자금 횡령과 입주민 사회의 욕망을 조명한다. 100억 원이 간절한 전직 조직 보스 박해강(지성)이 숨겨진 돈을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 권력과 폭력을 동원해 비리를 덮으려는 건설사 회장(박병은)의 탐욕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장기수선충당금과 관리비 비리 등 실제 아파트 사회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문제들을 숨 막히는 전개로 풀어내며 뜨거운 사회적 화두를 던진다.
<참교육> 법과 제도의 공백에서 피어난 판타지
넷플릭스 시리즈 <참교육> 스틸
넷플릭스 시리즈 <참교육> 스틸
넷플릭스 시리즈 <참교육>은 교권 추락과 학교 폭력으로 대표되는 무너진 공교육 현장의 민낯을 정면으로 다룬다. 선을 넘는 일부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로 인해 파행된 학교 현장을 바로잡고자 신설된 가상의 기구 '교권보호국' 현장 감독관 나화진(김무열)의 활약을 그린다. 법과 제도가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하는 교육 현장의 붕괴를 파격적인 자력구제 방식으로 해결해 나가며 시청자들에게 씁쓸하면서도 강력한 장르적 판타지를 안긴다.
<들쥐> 진짜 '나'를 증명해야 한다는 실존적 공포
넷플릭스 시리즈 <들쥐> 포스터
넷플릭스 시리즈 <들쥐> 스틸
오는 8월 28일 공개되는 넷플릭스 신작 시리즈 <들쥐>는 '신원도용'이라는 디지털 현대 사회의 극단적인 공포를 다룬다. '쥐가 손톱을 먹으면 사람으로 변한다'는 구전 설화를 모티브로 삼아, 의문의 존재 '들쥐'에게 이름과 얼굴,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소설가 문재(류준열)의 사투를 그린다. 파편화된 현대 사회에서 누군가 내 삶을 대체해도 아무도 모를 수 있다는 기괴한 불안을 파헤치며,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무너진 2026년형 추적 스릴러의 탄생을 예고한다.
네 작품을 나란히 놓고 보면 하나의 명확한 흐름이 읽힌다. 스토킹, 주거 비리, 공교육 붕괴, 신원도용. 소재는 제각각이지만 공통적으로 '마땅히 작동해야 할 보호 시스템이 무너졌을 때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실존적 불안'을 다루고 있다. 본래 장르물이란 시대의 불안을 가장 예민하게 감지하는 촉수와 같았다. 다만 그 불안을 초자연적 존재나 괴물에게 투사하던 방식에서, 이제는 우리 삶을 둘러싼 사회 구조 자체를 직시하는 방식으로 옮겨가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변화를 긍정적이라고 단언하긴 어렵다. 현실의 문제를 단순한 장르적 도파민이나 쾌감으로 소비하는 과정에서, 사안이 가진 본질과 복잡함이 휘발될 위험도 도사린다. 그럼에도 이 작품들이 공통적으로 증명하는 사실 하나는 분명하다. 대중은 더 이상 허구적 공포로 쉬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 뉴스 사회면이 드라마의 소재가 된 지금의 현상은, 어쩌면 우리가 그 사회면 속 수많은 경고음들을 너무 오랫동안 당연하게 스쳐 지나쳐 왔다는 뒤늦은 반증일지도 모른다.
Credit
- 사진 / 바이포엠스튜디오·JTBC·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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