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츠 한센을 체험할 수 있는 호텔이 있다?
가장 핫한 디자인 페어, 쓰리데이즈 오브 디자인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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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O THE DANISH MODERNISM
지난 6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3데이즈 오브 디자인(3daysofdesign)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보낸 하이엔드 가구 브랜드 프리츠한센과의 하루.
매년 6월이 되면 디자인계의 나침반은 모두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향한다. 도시 전체가 디자인 축제 ‘3daysofdesign’으로 들썩이는데, 거대한 규모의 밀라노 디자인 위크와는 결이 조금 다르다. 보다 정제되고 간결한 스칸디나비아식 미학 안에서 가구와 디자인,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삶의 방식을 탐색하는 자리라고 해야 할까. 6월 10일부터 12일까지 열린 이번 축제의 주제는 ‘지금 이 순간을 의미 있게(Make This Moment Matter)’. 많은 것을 추구하기보다 의미 있는 것을 선택하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며, 존재 이유를 지닌 디자인에 주목하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이는 기능과 아름다움, 나아가 더 나은 삶을 고민해온 덴마크 디자인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400여 개의 전시와 이야기들 사이에서 오늘날 덴마크의 디자인 유산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브랜드, 프리츠한센과 조금 특별한 하루를 보냈다.
래디슨 컬렉션 로열 호텔의 ‘606호’는 덴마크 디자인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래디슨 컬렉션 로열 호텔
첫 번째 여정은 프리츠한센의 대표적인 디자이너 아르네 야콥센이 설계한, 세계 최초의 디자인 호텔 ‘래디슨 컬렉션 로열 호텔’. 국내에는 가구 디자이너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의 본업은 호텔과 시청, 학교, 주거 단지 등을 설계한 건축가였다. 이 호텔은 건축적으로도 매우 독보적인데, 콘크리트 구조 위에 알루미늄 프레임과 청록빛 패널을 결합한 파사드는 당시로서는 매우 급진적인 시도였다. 1960년 개관 당시에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덴마크식 모더니즘의 랜드마크로 인정받게 됐다. 레스토랑이었던 공간을 개조한 ‘파노라마 스위트’에서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한 뒤,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공간인 ‘606호’를 방문했다. 야콥센의 디자인 원형이 가장 온전히 남아 있는 일종의 작은 박물관으로, 당시의 가구와 조명, 모든 소품과 집기의 디테일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연한 세이지 그린 컬러의 객실 벽은 내부에 부드럽게 반사되는 빛을 만들어내 흐린 날임에도 은은한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 또 벽 패널과 침대, 테이블 겸 화장대를 하나의 모듈 시스템으로 연결해 설계한 부분도 눈에 띄었다. 마치 가구도 건축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오늘날 가장 유명한 의자이기도 한 ‘에그(Egg)’ ‘스완(Swan)’ ‘드롭(Drop)’ 체어가 이 호텔을 위해 처음 디자인된 의자들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자연의 색을 닮은 그린 톤의 패브릭, 포근하고 편안하게 인체를 감싸주는 곡선 디테일에서는 인간 중심 디자인을 추구했던 그의 디자인 언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가구뿐만 아니라 조명, 텍스타일, 손잡이, 식기 등을 모두 디자인하는 그의 ‘토털 디자인’ 방식을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는 방이었다. 색과 재료, 비례, 질감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을 통해 머무는 감각 자체를 디자인하려고 했던 아르네 야콥센. 그런 의미에서 ‘606호’는 그의 디자인 비전을 가장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장소다. 이어서 찾아간 곳은 덴마크 모더니즘의 또 다른 거장, 폴 케홀름의 ‘폴 케홀름 시그너처 스위트’. 아르네 야콥센이 총체적 디자인을 추구했다면 폴 케홀름은 강철과 가죽, 대리석 같은 소재의 본질을 보다 깊이 있게 탐구하며 절제된 아름다움을 추구한 디자이너다. 폴 케홀름은 1950년대부터 프리츠한센과 협업하며 오늘날 덴마크 디자인 아이콘이 된 수많은 작품을 남긴 바 있다. 객실은 군더더기 없는 선과 비례, 차분한 북유럽 컬러 팔레트로 꾸며져 있어 마치 하나의 갤러리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특히 그가 지향했던 절제된 럭셔리는 창밖으로 보이는 코펜하겐 도시 풍경과 어우러져 더욱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에서는 건축과 조각, 풍경이 하나로 이어진다.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은 코펜하겐에서 건축과 예술, 자연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가장 아름답게 보여주는 공간 중 하나다. 1950년대 창립자 크누드 옌센은 웅장하고 권위적인 미술관이 아닌, 누구나 편안하게 예술과 마주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미술관을 꿈꿨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더 크게’가 아니라 ‘더 낫게’ 짓는 것이었다. 젊은 건축가 요르겐 보와 빌헬름 볼레르트는 이곳의 풍경과 나무, 바다를 존중하며 건축이 자연 속으로 스며드는 형태를 설계했다. 유리와 목재, 석재 등 지극히 단순한 재료로 이루어진 미술관 건물은 거대한 조형물처럼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주변 풍경을 비추는 프레임으로 보인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건물과 풍경의 경계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천장부터 바닥까지 이어지는 유리 파사드는 실내외를 자연스럽게 연결했고 바다와 정원, 하늘의 풍경을 미술관 안으로 끌어들였다. 이곳에서는 특별한 동선이 필요 없다. 작품과 공원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공간을 즐기면 될 뿐. 마치 누군가의 저택에 초대받은 듯한 친밀한 스케일이었다. 건축도 조각도 풍경도 서로를 압도하지 않는 관계가 지극히 스칸디나비안적인 라이프스타일이 아닐까 싶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외레순 해협과 저 멀리 보이는 스웨덴의 해안선, 그리고 시시각각 달라지는 북유럽의 빛은 이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시처럼 느껴졌다. 루이지애나는 하루 종일 있을 수 있는 미술관이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도 떠올랐다. 이곳에서 우리는 프리츠한센과 협업하는 디자이너 케스퍼 살토와 함께, 그가 만든 ‘빈(Vind)’ 가구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디자인이란 내구성과 지속가능성에 관한 것이죠. 저는 가구 자체의 존재감은 사라지고, 앉는 사람이 그저 오래 편안했으면 해요.” 무려 4년여에 걸쳐 제품을 만들었다는 그의 진솔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폴 케홀름의 다양한 가구 컬렉션이 놓여 있는 케홀름의 집.
케홀름의 집
다음 행선지는 코펜하겐 북쪽 해안 마을 룽스테드(Rungsted). 외레순 해협을 따라 펼쳐진 조용한 주거 지역에 케홀름의 집이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폴 케홀름의 아들인 토마스 케홀름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저는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많은 집이죠.” 이 집은 폴 케홀름 부부의 합작품이다. 1959년부터 1962년까지 아내인 한나 케홀름이 설계하고 폴 케홀름이 집 안의 모든 가구를 채운 것. ‘PK 54’ 테이블, ‘PK 61’ 커피 테이블, ‘PK 31’ 소파, ‘PK 33’ 스툴, ‘PK 11’ 체어 등이 이 공간을 위해 처음 탄생한 맞춤형 작품이다. 토마스와 커피 타임을 가지며 공간을 차근차근 둘러봤다. 거실과 다이닝이 통합된 개방형 공간이 자연스러웠다. 지금이야 특별할 것 없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구성이었다고. “기억 속의 집은 언제나 밝고 화창한 여름 풍경으로 남아 있어요.” 그도 그럴 것이 집을 나가자마자 너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커다란 창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빛과 풍경이 실내로 흘러 들어왔다. 평화로운 자연과 건축, 가족의 기억, 그리고 오늘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장면이었다. 현재는 문화재로 보호받고 있다.
아르네 야콥센의 ‘토털 디자인’ 콘셉트가 구현된 벨뷰 시어터.
아르네 야콥센의 벨뷰 시어터
클람펜보르에 위치한 벨뷰 시어터(Bellevue Theatre)는 1936년에 완공된 아르네 야콥센의 초기 대표작이자 기능주의 건축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이곳은 벨뷰 비치, 벨라비스타 주거 단지와 함께 아르네 야콥센의 ‘화이트 시티’를 완성한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극장 내부 역시 그가 추구했던 토털 디자인이 구현되어 있었는데, 가구와 조명, 벽면까지 모두 직접 디자인한 것이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하늘을 향해 열리는 개폐식 지붕이었다. 지붕이 열리면서 하늘과 바닷바람, 숲의 향이 극장 안으로 그대로 스며들었다. 밀폐된 극장 내부에 자연을 끌어들인다는 시각은 지금 봐도 매우 획기적인 아이디어. 뜨거운 여름 저녁, 공연 중간 휴식 시간에 하늘을 올려다봤을 그때의 낭만과 공기를 떠올렸다. 그는 건축을 자연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주변 풍경과 이어지는 하나의 경험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어쩌면 이 유연한 지붕을 통해 건축의 경계를 자연까지 확장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르네 야콥센이 디자인한 래디슨 컬렉션 로열 호텔의 ‘파노라마 스위트’.
아르네 야콥센의 집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연중 일부 기간에만 공개된다는 아르네 야콥센의 프라이빗 레지던스. 그는 1951년부터 1971년 사망할 때까지 이곳에 거주하며 작업했다고 한다. 벨뷰 지역에 흔한 새하얀 기능주의 건축과 달리 벽돌과 경사진 지붕을 사용한 것에서 인간 중심적이고 유기적인 덴마크 모더니즘으로 나아가는 방향을 살펴볼 수 있었다. 거실에서는 바다가 그대로 보였고 실내 곳곳에는 자연광이 편안하게 스며들고 있었다. 건축에서 ‘비례’를 가장 중시했던 그답게 집은 크진 않지만 공간마다 치밀하게 계산된 균형감이 돋보였다. 창의 크기와 천장의 높이, 매끄러운 동선이 만들어내는 모든 요소가 정교한 비례 안에서 조화를 이뤘다. 이곳에서 래디슨 컬렉션 로열 호텔과 덴마크 국립은행과 같은 대형 프로젝트가 기획되었다고 하니 작업실의 역할도 겸한 듯싶다. 의외로 눈길을 끈 공간은 집과 연결된 야외 정원이었다. 열렬한 정원가이기도 했던 그는 무려 300여 종이 넘는 식물을 심고 가꿨다고.(현재 집주인이 이어서 가꿔 나가고 있었다.) 정원은 그에게 또 하나의 디자인 실험실이었던 셈이다.
Credit
- 글/ 이민경(프리랜스 에디터)
- 사진/ 프리츠 한센 제공
- 디자인/ 한상영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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