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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사파리 여행이 궁금하다면?

'팜투포크'를 실현한 농장 겸 호텔 바빌론스토렌부터 케이프타운 곳곳을 즐기는 법.

프로필 by 안서경 2026.07.16

WILD IMAGINATION


남아프리카공화국 웨스턴케이프를 여행하며, 오랫동안 상상 속에 그리던 풍경을 현실로 마주했다.


광활한 규모의 농장 겸 호텔, 바빌론스토렌. 시몬스버그산 기슭 아래 포도밭을 품고 있다. 바빌론스토렌의 수영장 옆 휴식 공간. 농장을 아침 산책하는 오리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웨스턴케이프는 2000년대 후반, 내가 런던에서 비서로 일하며 생계를 꾸리던 시절 처음 내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당시 비서라는 직업을 꿈꿨던 것은 아니었기에, 회색빛 주빌리 라인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면서 이야기를 쓰고 있던 때였다. 그 이야기는 훗날 나의 첫 번째 소설 <미니어처리스트>가 되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암스테르담에 살고 있었지만, 내 상상 속에는 그들이 사는 또 다른 세계도 존재했다. 그곳은 멀리 떨어진 희망봉(Cape of Good Hope), 어둡게 반짝이는 미지의 땅이자 네덜란드 식민 역사의 또 다른 이면이었다. 나는 인물들이 스스로를 유복하고 강력한 존재로 여기게 만든 장소를 직접 보고 싶었다. 그들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현실로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돈이 없었다. 예술적 충동 하나만 믿고 직장을 그만둘 형편이 안 됐고, 그 시도가 아무런 결실 없이 끝날 가능성도 컸다. 그래서 대신 책을 통해 그곳을 여행했다.

웨스턴케이프는 실제로 소설 <미니어처리스트> 속에 보이지 않는 존재처럼 스며들어 있다. 165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이곳에 도착해 원주민인 코이코이(Khoikhoi)족의 땅을 식민지화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 지역을 자신들의 것이 되어야 할 농업의 낙원으로 여겼다. 식민 개척자들은 비옥하고 경이로운 토양 위에 거대한 정원을 일구며 세계 무역을 지배하려는 환상을 키워나갔다. 과수원과 포도밭, 농장과 목장을 만들고 채소와 식물, 허브와 향신료를 재배했다. 아시아 무역 항로를 오가는 선박에 보급품을 공급하기 위해서였다. 첫 소설을 구상하던 당시 나는 이처럼 논란 많고 때로는 폭력적인 인물들이 자신의 항로를 계획해 나가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그리고 거의 20년의 세월이 흐르고 여섯 권의 소설을 더 써낸 뒤에야, 마침내 그곳에 직접 당도하게 되었다.

그사이 373년이 흘렀고, 남아프리카공화국처럼 복잡하고 독특한 나라에서 변하지 않은 것은 없으리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케이프타운 공항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자리한 첫 번째 목적지, 바빌론스토렌(Babylonstoren)에 도착했을 때 과거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1692년에 세워진 이곳은 현재 500에이커 규모의 농장이자 호텔과 스파를 갖춘 공간으로, 정원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전통적인 양식을 본떠 조성되어 있다. 레스토랑 바벨(Babel)과 그린하우스(Greenhouse)에서 제공하는 모든 음식과 음료는 주변 농장에서 직접 재배한 재료로 만들어진다. 말 그대로 농장에서 식탁까지, 철저한 팜투포크(farm-to-fork) 철학이 살아 있는 곳이다. 숙소 또한 감탄할 만큼 아름다웠다. 역사적인 분위기를 간직한 건물에 현대적인 편의성을 절제된 방식으로 더해놓았고, 무엇보다 그곳에서 마주한 풍요로움과 아름다움, 따뜻한 환대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어쩌면 바빌론스토렌은 단순한 장소라기보다 하나의 정신 상태에 가깝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즐길 거리도 많았고, 훌륭한 음식과 아름다운 풍경도 있었다. 하지만 이곳을 지배하는 가장 큰 힘은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데 있는 듯했다. 땅속 깊은 곳 뿌리들이 어둠 속에서 해내고 있는 일들, 그리고 햇살의 특별한 질감 속에. 바빌론스토렌의 마스터 가드너 리슬 판 데르 발트(Liesl van der Walt)는 이렇게 말했다. “아름다움은 흙에서 시작됩니다. 땅을 파고 씨앗을 심는 순간부터요. 그리고 그곳에 쏟는 관심과 정성이야말로 기쁨을 만들어냅니다.” 실제로 나는 도착한 지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설명하기 어려운 변화 같은 것을 경험했다. 8에이커 규모의 정형 정원을 거닐고 있는 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점점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곳의 공기는 평온했고,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마치 한 그루 식물이 햇빛을 향해 잎을 펼치듯 나 역시 서서히 마음을 열었다. 납작하게 깔린 나뭇가지와 복숭아 씨앗으로 조성된 산책로를 천천히 걸으며, 농장에 사는 거북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알맞은 속도를 알고 있는 듯했다. 투숙객들은 원한다면 직접 과일을 따고, 가지치기를 하며, 달걀을 모으거나 씨앗을 심고 농작물을 거둘 수도 있다. 그곳에서 나는 땅에 단단히 발을 딛고 있는 안정감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완전히 자유로웠다.


희귀 나비 컬렉션을 품은 바빌론스토렌의 라운지 겸 도서관, 버터플라이 룸.  바빌론스토렌 연못가에 피어난 라벤더와 워터블로메티에(수생화). 바빌론스토렌 코티지 내부. 1692년에 세워진 바빌론스토렌의 보트하우스. 바빌론스토렌 코티지 내부.

바빌론스토렌은 ‘바벨탑(Tower of Babel)’이라는 뜻으로, 농장 너머에 있는 언덕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이곳은 마치 시간의 흐름에서 비켜난 듯한 느낌을 준다. 하나의 독립된 세계처럼 스스로를 유지하며 그 안의 사람들을 품어내는 공간이다. 농장은 자체 지하수원을 통해 물을 공급받으며, 식수는 샤워 용수로 다시 사용되고 이후에는 농업용 관개수로 활용된다. 폐기물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식재료 자투리는 수프와 소스, 각종 조미료에 활용되고, 달걀 껍데기나 커피 찌꺼기처럼 먹을 수 없는 것조차 퇴비로 돌아간다. 이곳에는 자연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들에 대한 깊은 감사가 깃들어 있다. 우리가 얼마나 큰 행운을 누리고 있는지에 대한 자각, 그리고 그 소중한 자원을 반드시 보호해야 한다는 이해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바빌론스토렌에서는 세 종류의 올리브 오일과 슈냉 블랑(chenin blanc)부터 피노 누아(pinot noir)까지 13종의 포도 품종으로 만든 와인을 선보인다. 증류소에서는 에센셜 오일을 생산하며 달걀과 치즈, 버터, 빵, 키아니나 소(Chianina cattle)에서 얻은 육류까지 대부분의 식재료를 자체적으로 공급한다. 농장에서 재배하는 호박 종류만 해도 30종이 넘는다. 정원사들은 유전자 조작을 거치지 않은 전통 채소의 토종 종자만을 사용하며 곤충과 새, 바람이 자연스럽게 수분하도록 한다. 나는 이곳에서 수 세기 동안 거의 재배되지 않았던 희귀한 과일 품종들도 만날 수 있었다. 1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과 품종 중 하나인 화이트 윈터 페어메인과 17세기에 남아프리카로 전해진 더치 사프란 배가 대표적이다. 마카다미아와 피칸, 블러드 오렌지, 자두, 감, 클레멘타인까지. 이곳의 풍요로움은 마치 시가 현실이 된 것 같았다. 자연과 역사가 함께 메뉴를 써 내려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바빌론스토렌의 재배 전문가 엘제 브레슬러(Elzé Bresler)에 따르면 이곳의 원칙은 단 하나다. “모든 것은 맛있어야 한다.” 점심에는 모차렐라 치즈를 곁들인 블루베리를 먹었고, 저녁에는 육수와 양 어깨살 요리에 계피와 코코넛을 넣은 사고(sago)를 곁들였다. 하지만 ‘맛있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했다. 이곳은 그야말로 음식의 천국이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바빌론스토렌 체험 프로그램의 일부인 수트멜크스블레이(Soetmelksvlei)였다. 바빌론스토렌에서 차로 약 15분 거리에 있는 이곳은 지금도 19세기 방식을 고수하며 운영되는 살아 있는 농장이다. 나는 농가 안으로 들어가 벽난로 앞에 섰다. 장작이 타는 냄새를 맡으며 방앗간에서 직접 빻은 밀가루로 만든 빵을 맛보았다. 그리고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이 내게 미치는 미묘하면서도 깊은 영향력 때문이었다. 시간은 녹아내리듯 흘렀고, 평소 나를 괴롭히던 문제들은 점차 희미해졌다. 이곳에는 할 일이 너무나 많았다. 대장장이 시연을 구경할 수도 있었고, 가죽 공예를 배울 수도 있었다. 직접 밀을 빻아보거나, 구리 증류기에서 만들어낸 전통 증류주 맘푸어(mampoer)를 시음할 수도 있었다. 그 모든 경험 속에서 나는 어느새 시간의 흐름을 잊고 있었다.

내가 바빌론스토렌에서 머물렀던 가든 코티지는 군더더기 없이 단정하면서도 고급스러웠고, 결코 과시적이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특히 통유리 벽으로 둘러싸인 주방 공간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창밖으로 펼쳐진 끝없는 초록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농장 상점에서 요리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구입할 수 있었다. 허니부시 차와 루이보스 차도 그중 하나였다. 매일 저녁이면 벽난로에는 장작이 정갈하게 준비되어 있었고, 그저 성냥만 당기면 되었다. 밤에는 깊은 잠에 빠졌고, 이른 아침이면 다육식물과 허브, 약용식물을 둘러보는 정원 투어에 참여했다. 코스는 날마다 번갈아 진행되었다. 빵 굽기 수업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바빌론스토렌의 유제품을 만드는 물소들을 만나러 가는 편을 택했다. 새끼 물소들에게 먹이를 주었고, 나는 토스카라는 이름의 어린 송아지에게 금세 마음을 빼앗겼다. ‘우리 아들이 정말 좋아하겠는데.’ 언젠가 꼭 아이를 데리고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빌론스토렌은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특별한 놀이터 같은 곳이다. 나무에 오를 수도 있고, 거대한 하늘 아래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자전거 길을 달릴 수도 있다. 해 질 무렵 아몬드 과수원을 지나던 드라이브는 거의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웠다. 저녁 공기 속에 퍼지는 마지팬 같은 달콤한 향기, 구름처럼 피어난 아몬드 꽃, 그리고 노란비숍새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오래도록 잊기 어려운 순간이었다.

런던에 있는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을까?” 다행히 그는 질투심이 거의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때는 아직 블라우(Blou)에 도착하기 전이었다. 바빌론스토렌이 대지를 상징한다면, 블라우는 바다를 상징하는 곳이다. 이 리트리트는 완벽한 선(zen)의 분위기를 품고 있으며, 동시에 매우 비밀스러운 장소이기도 하다. 현재 이곳은 바빌론스토렌이나 그 자매 호텔인 뉴트(The Newt)에 숙박한 경험이 있는 사람만 이용할 수 있다. 케이프타운에서 비행기로 약 한 시간 이동한 뒤 해안 도로를 따라 더 들어가면 만날 수 있는 블라우는 취사 가능한 코티지 단 여덟 채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중 세 채는 문을 열면 곧바로 바다가 펼쳐질 정도로 바다와 맞닿아 있다.

마치 세상의 끝에 도착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잔잔하면서도 힘 있는 바다의 굉음이 귓가를 채웠고, 그 드라마틱한 백색소음은 귀를 넘어 목과 가슴 깊은 곳까지 울려 퍼졌다. 높게 마련된 덱 위에 올라섰다. 나와 바다 사이에는 얕은 모래사장 한 줄기밖에 없었다. 그때 돌고래 무리가 파도 사이를 유유히 오르내리며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블라우는 꿈 같은 곳이지만 동시에 이상하리만큼 집처럼 편안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진심으로 보살핌을 받는다는 느낌이 든다. 무엇 하나 과하지 않으면서도, 언제 손님을 혼자 두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사실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은 거의 없다. 그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바닷가를 걷는 것. 아침에는 원하는 시간에 따뜻한 크루아상과 커피가 배달된다. 잘 먹고, 오래 자고, 바다가 곁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이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벽난로 앞에 앉아 있으면 된다. 이틀 동안이나 이곳을 내 집이라 부를 수 있었다는 사실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 여행자는 돌아가야 한다. 다시 케이프타운으로 돌아온 나는 마지막 숙소인 케이프 그레이스(Cape Grace)에 머물렀다. 호텔 옆 마리나에는 커다란 물개 한 마리가 눌러앉아 있었고, 객실에서 테이블마운틴(Table Mountain)의 풍경과 그 물개를 번갈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호텔에서 먹은 콜리플라워와 병아리콩 커리, 그리고 로티는 너무 맛있어서 다음 날 저녁에도 똑같은 메뉴를 다시 주문했다. 여행이 이쯤에 이르자 나는 남편에게 더 이상 여행 소식을 문자로 보내지 않게 되었다. 솔직히, 이 모든 경험을 계속 자랑하는 것이 너무 미안한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지막 날의 일정에는 쇼핑과 미술관 관람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중 가장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지자멜레 세라믹스(Zizamele Ceramics)에서 발견한 작품들이었다. 특히 우분투 볼(Ubuntu bowls)은 그 섬세함과 아름다움으로 나를 단번에 매료시켰다. 그릇 가장자리에는 인디고와 흰색으로 채색된 작은 점토 인형들이 장식되어 있었는데, 아기를 등에 업은 어머니의 모습이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나는 여행 가방에 들어가는 한 최대한 많이 구입했다. 여행의 마지막은 남아프리카 국립미술관(South African National Gallery)에서 열린 모성에 관한 특별 전시로 장식했다. 지금까지 나는 한 국가 기관이 모성이라는 주제를 이토록 솔직하고 깊이 있게 다루는 전시를 본 적이 없었다. 모성이 지닌 정치적·경제적 의미는 물론 심리적·생물학적 측면까지 폭넓게 탐구한 전시였다.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이 참여한 이 전시는 회화와 시, 조각, 직물 작품들을 통해 우리 삶에서 너무나 일상적이지만 동시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오는 경험인 모성의 기쁨과 어려움을 다층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어쩌면 이것은 운명이 보내온 하나의 메시지였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는. 내 어린 아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말이다.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온 장소를 순례하듯 찾아올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운아였다. 그리고 더 큰 행운은 비행기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물론 주빌리 라인 지하철도 다시 타면서, 이 놀라운 경험을 글로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잊을 수 없을 만큼 풍요롭고, 눈을 뜨게 했으며, 새로운 깨달음을 안겨준 웨스턴케이프. 현실이 되었던 그 풍경은 이제 다시 한번 상상의 세계로 돌아가 또 다른 이야기가 되어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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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 Jessie Burton
  • 번역/ 채원식
  • 사진/ Courtesy of Babylonstoren, Dookphoto, Renee Kemps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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