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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다 스윈튼과 하이더 아커만이 서울에서 주고받은 러브레터

서울을 방문한 톰 포드의 하이더 아커만과 배우 틸다 스윈튼

프로필 by 서동범 2026.04.24

LOVE LETTER FROM SEOUL


톰 포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하이더 아커만과 향수 ‘톰 포드 블랙 오키드(Tom Ford Black Orchid)’의 뮤즈인 배우 틸다 스윈튼이 서울을 방문했다. <바자> 코리아가 독점으로 선보이는 두 명의 예술가와 함께한 특별한 이야기. 오랜 세월 이어져온 그들의 우정 그리고 관능적인 따뜻함이 겹겹이 쌓인, 향기 가득한 삶에 대하여.



ASKING HAIDER ACKERMANN


하퍼스 바자 지난 2025 AW 데뷔 컬렉션부터 이번 시즌까지, 짧은 기간에 톰 포드에서 강력한 입지를 구축했다. 톰 포드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하이더 아커만 본능적으로 시작되었다. 항상 톰 포드의 명료함과 확신, 정밀함과 관능미를 동경했다. 그리고 서로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낯선 곳으로 발을 들여놓는다는 느낌보다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대화를 이어가는 기분이었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하우스의 유산(heritage)을 존중하면서도 진화시켜 나가는 것 사이의 묘한 긴장감이다.

하퍼스 바자 한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의 브랜드를 맡는다는 것은 큰 명예와 함께 막중한 책임감을 수반한다. 아카이브는 디자이너에게 어떤 의미인가?

하이더 아커만 아카이브는 살아 있는 유기체와도 같다. 손대지 않고 보존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때로는 존중하는 마음으로, 때로는 도발적인 방식으로 소통해야 한다. 작업에 있어 토대를 제공하지만 결코 한계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 사이의 특별한 대화라고 생각한다.

하퍼스 바자 최근 선보인 2026 AW 컬렉션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어떤 주제에 대한 이야기인가?

하이더 아커만 ‘절제’와 ‘친밀함’에 관한 이야기다. 숨겨진 것이 드러난 부분보다 더 강력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탐구하고 싶었다. 이번 컬렉션은 조용한 강렬함이 내재되어 있다. 고독하지만, 크게 드러낼 필요 없는 내면의 힘이 느껴질 것이다.

하퍼스 바자 당신의 작업은 강인함과 부드러움, 날카로움과 포근함 등 대조적인 요소를 통해 절제된 유혹을 탐구한다. 당신이 정의하는 ‘유혹’이란 무엇인가?

하이더 아커만 나에게 유혹은 결코 명시적(明示的)이지 않다. 그것은 점진적이며 무의식적으로 스며드는 것이다. 또한 서로 다른 감정과 대조 속에서 더욱 강렬하게 느껴진다. 부드러움을 드러내는 강인함 혹은 취약성을 허용하는 통제력 등. 유혹은 하나의 선언이라기보다 암시에 관한 것이다.

하퍼스 바자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톰 포드다운 디테일은 무엇인가? 가장 하이더 아커만스러운 요소는?

하이더 아커만 가장 톰 포드다운 부분은 ‘정밀함’, 즉 날카로운 테일러링과 절제, 실루엣에 대한 자신감이다. 가장 하이더 아커만스러운 요소는 아마도 그 정밀함을 깨부수는 것?(웃음) 즉 부드러움, 유동성 그리고 무언가 완벽하게 드러내지 않으며 그 감정이 스며들도록 하는 것.

하퍼스 바자 미니멀한 런웨이 공간을 거니는 우아하면서도 섬뜩한 모델들처럼, 당신의 컬렉션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언제나 미스터리하며 비현실적인 오라(aura)를 풍긴다. 디자인할 때 떠오른 인물이 있었나?

하이더 아커만 특정 인물보다는 고정화된 정의를 초월한 존재를 떠올린다.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며 완전히 남성적이지도 여성적이지도 않고, 현실적이지도 몽환적이지도 않은 캐릭터에 매료된다.

하퍼스 바자 30년 넘게 우정을 유지해온 틸다 스윈튼과의 첫 만남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하이더 아커만 그녀와는 처음부터 연결된 느낌이었다. 그리고 서로의 삶 일부를 함께할 운명이라 직감했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느꼈고, 삶에 있어서 이런 감정을 느끼는 순간은 손꼽는다. 틸다 스윈튼과 나와의 우정에는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그녀와는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하퍼스 바자 틸다 스윈튼과 사진가 이네즈 & 비누드(Inez & Vinoodh), ‘블랙 오키드 리저브’ 향수 캠페인은 오랜 친구들과 작업한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친구들과 협업한다는 것은 어떤 점에서 특별한가?

하이더 아커만 시간이 흐르면 깊은 신뢰가 쌓이게 된다. 오랜 동료와 협업할 때 작업에 대한 이유나 목적을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이미 서로를 이해하고 있으니까. 이는 작업에 있어 계산적이기보다는 본능적으로 임하게 만들 뿐 아니라 창작의 자유로움을 준다.

하퍼스 바자 틸다 스윈튼과 이어온 오랜 우정을 ‘향’으로 표현한다면?

하이더 아커만 은은하면서도 복합적인 향. 미네랄 향처럼 맑으면서도 따뜻함이 겹겹이 쌓여 있는. 그것은 마치 시간에 흐름에 따라 조용히 변화하며 다양한 면모를 드러내는 향일 것이다.

하퍼스 바자 ‘블랙 오키드’는 톰 포드가 만든 가장 관능적인 향수로 알려져 있다. 당신의 뮤즈인 틸다 스윈튼이 캠페인 모델이 되면서 섹시함의 의미가 조금 달라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당신에게 ‘관능미’ 그리고 ‘섹시함’은 어떤 의미인가?

하이더 아커만 관능미는 자신의 몸과 존재감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즉 자각에 관한 것이다. 반면 섹시함은 더 내면적인 것이며, 노력 없이 드러나는 자신감과 진정성에서 발현된다.

하퍼스 바자 당신에게 향수는 패션이나 스타일과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나? 지금의 당신을 가장 잘 표현하는 향은 무엇인가?

하이더 아커만 향이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옷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향에는 기억과 감정이 연결되어 있다. 친밀함을 느끼는 향, 즉시 드러나지는 않지만 은은하게 맴도는 향에 끌린다.

하퍼스 바자 톰 포드와 캐나다 구스(Canada Goose)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겸직하고 있다. 브랜드 정체성과 방향성이 다른 두 브랜드의 컬렉션을 진행하며 느끼는 감정과 감각도 다를 듯하다.

하이더 아커만 작업 시 두 브랜드의 정체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전환하지만, 서로 대립하지는 않는다. 각 브랜드는 고유의 리듬을 가지고 있다. 톰 포드 컬렉션은 관능미와 세련미에 중점을 두며, 캐나다 구스는 기능성, 보호, 환경을 중시한다. 두 브랜드를 오가는 것은 본능에 충실하며 다양한 표현을 탐색하는 것과 같다.

하퍼스 바자 디자이너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감각은 무엇인가?

하이더 아커만 ‘감정’이다. 감정은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며, 우리가 보고 느끼고 창조하는 방식을 이끈다.

하퍼스 바자 평소 모습과 취향도 궁금하다. 요즘 최대 관심사 그리고 당신에게 자극을 주는 건?

하이더 아커만 자연 속에서 깊게 몰입하는 것.

하퍼스 바자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서울에 대한 인상은 어떤가? 한국 문화와 패션에도 관심이 있는가?

하이더 아커만 서울이란 도시는 정확하면서도 대담하다. 규율과 개성이 놀라울 정도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 가장 흥미롭게 생각하는 점은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결코 정체되지 않는다는 거다. 특히 끊임없이 정체성을 재창조하는 한국의 패션이 인상적이다. 서울이란 도시가 내뿜는 이런 에너지가 매우 매력적이라 생각한다.

하퍼스 바자 클래식 속 섬세함과 대범함이 어우러지며 시대를 초월하는 디자인, 당신의 컬렉션 피스들은 마치 영화와 소설처럼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당신이 옷을 만드는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이며, 어떤 이들이 입기를 바라는가?

하이더 아커만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다양한 감정을 표출하기 위해 작업한다. 스타일로 정의하기보다는 본능적 강인함과 연약함, 존재감과 신비로움 등 모순적 요소를 동시에 포용하는 사람들을 위한 옷을 디자인한다.


ASKING TILDA SWINTON


하퍼스 바자 하이더 아커만과 30년 넘게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이를 향으로 표현한다면?

틸다 스윈튼 가장 사랑하는 꽃인 스위트피가 떠오른다. 스코틀랜드의 여름처럼 자유롭고 평온하며 명랑한 기운을 닮았다. 하이더와의 우정은 마치 그 향기처럼, 변치 않는 조화와 행복이 머무는 안식처 같다.

하퍼스 바자 톰 포드 ‘블랙 오키드 리저브’ 향수 캠페인을 통해 하이더 아커만, 사진가 이네즈 & 비누드와 다시 함께하게 됐다. 오랜 친구들과 협업한다는 건 어떤 면에서 특별한가?

틸다 스윈튼 오랜 유대 관계에서 오는 ‘실제적인 마법’, 함께 형상을 빚어내는 특권은 내 작업 방식의 주요한 모티프다. 깊은 신뢰와 공유된 비전, 새로운 영역으로 함께 나아가려는 용기, 반복을 피하고 끊임없이 진화하려는 태도,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자 하는 노력까지. 이 모든 것이 하이더, 이네즈, 비누드, 제리 스태퍼드, 그리고 내가 함께하는 촬영 현장을 설명한다. 우리는 그저 놀기 위해 모였고, 진심 어린 감사와 넘치는 열정으로 마음껏 놀았다. 어린아이들처럼.

하퍼스 바자 그래서일까. 마치 꽃과 하나가 된 듯한 캠페인 속 모습은 단순하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나?

틸다 스윈튼 우리 모두에게 이번 촬영은 순수한 기쁨과 행복 그 자체였다. 오랜 친구들이 다시 모여, 환상적인 꽃에서 영감 받아 자유롭게 움직이고 형태를 만들어가는 시간. 아마도 그런 에너지와 조화, 부드러움이 이번 캠페인 전체를 관통하는 맥박이었을 거다. 그리고 그것은 이 향수와도 아름답게 공명한다. 풍요로움과 편안함, 힘들이지 않는 자연스러움까지.

하퍼스 바자 ‘블랙 오키드’는 톰 포드를 대표하는 가장 관능적인 향수로 여겨져왔다. 당신을 통해 관능미라는 개념이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된 느낌인데. 관능적이고 섹시하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틸다 스윈튼 연결 그 자체라고 말하고 싶다. 서로를 향해 열려 있고, 감각을 나누는 상태. 인간이 지닌 가장 에로틱하고도 풍요로운 능력이다.

하퍼스 바자 아티스트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감각은?

틸다 스윈튼 표현의 자유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자유의 감각.

하퍼스 바자 그 감각으로 상업영화와 독립영화, 패션, 퍼포먼스 등 다양한 분야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창작 세계를 확장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틸다 스윈튼 유연함, 끝없는 호기심, 동료에 대한 헌신. 그리고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를 걷는 듯한 열린 모험 정신.

하퍼스 바자 변호사부터 마녀, 노년의 어머니까지. 당신은 스크린에서 모험을 거듭한다. 배역을 준비할 때 향과 같은 감각적 요소도 중요한 역할을 하나?

틸다 스윈튼 한 인물의 초상을 그릴 때 그가 무엇을 입고 헤어스타일은 어떠하며 어떤 향기를 풍기는지와 같은 선택들을 분자 단위로 쌓아 올리는 과정을 매우 즐긴다. 영화에서는 단 몇 분 안에 이 인물이 세상에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지 전달해야 하니까. 각각의 요소는 대사나 행동만큼, 때로는 그 이상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물론 향은 스크린 너머로 전달될 수 없기에 나와 동료들 사이에서만 공유되는 감각이지만, 인물의 내면 세계를 풍부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다른 요소만큼이나 중요하다.

하퍼스 바자 당신은 향이 장소와 기억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자주 언급해왔다. 특히 선명하게 남아 있는 후각적 기억은?

틸다 스윈튼 어린 시절의 온실은 내게 ‘천국의 향’과도 같다. 18세기에 지어진 유리 온실에는 복숭아, 무화과, 토마토, 체리, 타마릴로, 포도 덩굴이 계절마다 어우러지며 공간을 가득 채운다. 그 향기에는 풍성한 기대감과 행복의 기운이 넘치며 완전한 안식과 평안을 준다. 지금도 그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에 매우 감사하고 있다. 언제든 확실히 닿을 수 있는 행복의 맛이다.

하퍼스 바자 어린 시절을 보낸 스코틀랜드의 집에서 영감 받은 향수를 만든 적이 있다. 만약 톰 포드 조향사가 된다면 어떤 향을 만들고 싶나?

틸다 스윈튼 나는 향이 시공간을 여행하게 하는 도구이자 우리를 다른 차원으로 데려다주는 마법의 묘약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향수병(home-sickness)을 달래기 위해 만들었던 향을 좀 더 정교하게 다듬고 싶다. 언제든 지닐 수 있는, 안전함과 안락함의 정수 같은 것으로. 그 안에는 각자가 사랑하는 공간의 요소, 이를테면 부엌에서 풍기는 냄새, 정원에 핀 꽃들이 담길 것이다. 착용하는 이에게 맞춤형으로 제공되는 유일한 향기다. 기쁨의 공기를 그대로 옮겨 놓은, 궁극의 휴대용 안식처랄까.

하퍼스 바자 마지막으로 아티스트로서의 삶을 하나의 향기로 표현한다면?

틸다 스윈튼 아마도 강아지의 벨벳 같은 발바닥 안쪽에서 나는 향일 것 같다. 갓 구운 빵의 따뜻한 냄새와 집이 주는 포근한 공기 같은 것들.

Credit

  • 에디터/ 정혜미
  • 사진/ Fanny Latour-Lambert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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