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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송희구가 ‘김 부장 이야기’로 말하고 싶은 것

10여 년 전 미생 시절부터 회사를 졸업하고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작가 송희구가 자기 삶으로 증명해 보인 이야기.

프로필 by 고영진 2025.12.29

회사를 떠난 송 과장 이야기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가 던지는 질문은 하나다. 회사를 떠난 직장인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작가 송희구는 자신의 삶으로 답을 대신했다. 퇴사 3년 차에 200억 자산가이자 부동산 투자자, 유튜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송희구가 말하는 회사 밖에서도 잘 사는 법.


하퍼스 바자 직장인 사이에서 공포 장르로 통했던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이하 <김 부장>)가 종영했다. 드라마가 잘됐다고 본인에게 돌아오는 건 없다고 했지만.(웃음) 더 많은 사람에게 이 이야기가 닿길 원해 드라마 각본으로 쓰기 시작했다던 지난날의 작은 꿈은 이룬 셈이다.

송희구 드라마가 끝나서 그런지 요즘 뭔가 섭섭하고 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촬영 현장에도 거의 매일 갔었다. 하는 일은 많지 않았지만, 현장에서 배우들이 연기로 장면을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순간도 보고, 사소한 디테일을 두고 감독님의 질문에 답해드리기도 했던 시간이 소중하게 남아 있다. 사실 책이 나왔을 때도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드라마는 파급력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여서 신기했다.


하퍼스 바자 주인공 김낙수는 대기업 영업 팀에서 25년간 근무해 부장 자리까지 꿰차고, 임원 승진만을 앞두고 있는 인물이다. 실제 대기업 영업팀에서 14년간 해외 영업 업무를 하고 과장까지 달았던 당신이 회사에서 보고 들었던 실제를 상당 부분 옮겨 놓은 것이라고 알고 있다. 십수 년 전, 당신은 어떤 사회 초년생이었나? 당신의 미생 시절이 궁금하다.

송희구 나는 취업 전후로 많은 것이 바뀐 사람이다. 회사에 다니기 전, 20대 때는 패션에 관심이 많아 아르바이트를 하는 족족 옷이나 신발을 사기 바빴다. 소비 습관을 고쳐먹은 건 어렵사리 취업을 하고 나서부터다. 서른이 다 되어 취업을 했는데, 처음 다녔던 회사에서 월급을 100만원 정도 받았다. 100만원이 이렇게 벌기 힘든 돈이었다니. 그때부터 마음을 고쳐먹었던 것 같다. 돈을 다르게 보기 시작한 거다. 엉망이었던 소비 행태를 서서히 청산하고 재테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무엇보다 일을 정말 열심히 했다. 14년간 몸담았던 회사의 사원 시절엔 해외 출장이 잦았다. 스마트 에너지 사업을 하는 회사의 해외 영업 팀에서 근무했는데, 출장을 가면 주로 현지 광산이나 공장에서 일했다. 10년 전쯤 <무한도전>에서 배우 차승원이 게스트로 출연했던 광산 특집 편을 아나? 정확히 그들이 하던 일을 했다. 그때 배운 것이 참 많지만 상대적으로 고된 육체 노동이 많았기 때문에 나의 미생 시절은 서울에 있는 ‘회사’라는 공간이 아주 소중하게 느껴지던 때였다. 그만큼 정말 모든 것을 쏟아가며 열심히 일했고.


하퍼스 바자 <김 부장>은 “직업과 명함이 사라져도 삶은 여전히 계속된다”는 명제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다. 회사에 모든 것을 쏟아가며 일하던 당신은 이 사실을 언제 깨달았나? 회사가 영원히 나의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 말이다.

송희구 다니던 회사에 60년대생 사장님이 새로 취임하셨을 때의 이야기다. 그분이 회사에 들어오시면서 본인보다 나이가 많은 직원을 모두 내보냈다. 당시 우리 사업부 실적이 아주 좋았는데, 오로지 나이를 기준으로 퇴직 처리를 해버린 것이다. 유능했던 어떤 선배는 후임이 한 실수를 책임지고자 그만두기도 했다. 자의가 아닌, 어찌할 수 없는 외부의 힘에 의해 회사를 떠나게 되는 동료와 선후배들을 보면서 자연스레 퇴사 이후의 삶을 상상해 보게 됐다. 이곳을 박차고 나가면 난 뭘 해야 할까? 나라고 내쫓기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을 텐데. 그럼 나는 누가 되는 거지? 이런 질문을 품기 시작한 게 10년 차쯤이었다.


하퍼스 바자 그로부터 회사에서 5년을 더 일했다. 진짜 퇴사를 하기 위한 준비 기간이었나?

송희구 그렇다기보다 그냥 고민만 했다. 퇴사는 마음을 먹었다고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 돌아보면 나는 언제부터인가 회사에서 작은 소란을 일으키는 사람이었다. 일단, 다니던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쓴 최초의 남자 직원이 나였다. 상사의 권유로 8개월로 합의 본 육아휴직이었는데도 한동안 회사가 시끌시끌했다. 퇴사하기 6개월 전부터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퇴사를 마음먹고 한 건 전혀 아니었는데, 유튜브를 시작하고부터 회사 안에서 평판이 급격히 나빠졌다. ‘육아휴직 쓰고 책도 내더니 이제는 유튜브까지 하는 사람’이 된 거다. 따가운 눈초리를 받는 시간이 길어지니 자연스럽게 ‘지금이 퇴사를 할 때인가’, 싶더라. 그때 마침 드라마 대본 작업이 본격화됐고, 다른 소설도 쓰기 시작하면서 퇴사를 결심했다. 어머니께서 회사 나가면 큰일 난다고 엄청 반대하셨는데, 지금은 그런 말씀 하신 걸 후회하고 계신다.(웃음)


셔츠, 팬츠는 Cos.


하퍼스 바자 퇴사 직전, 14년 차 직장인이었을 땐 <김 부장> 속 ‘송 과장’과 닮아 있었나? 같은 송 씨에다 부동산 투자 고수라는 설정에서 송 과장이 당신에게서 모티프를 얻은 인물이라 짐작했다.

송희구 안 그래도 댓글 보면 송 과장만 너무 멋있게 나온 거 아니냐는 말을 많이 하는데, 맞다.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페르소나였기 때문에 그렇게 쓴 거다.(웃음) 이왕 그렇게 만든 거, 나처럼 안경도 쓰고, 키도 좀 크고, 부동산에 관심이 많다는 설정을 더했다. 나와의 공통점은 여기까지고, 그 외의 것들은 많이 다르다. 송 과장은 눈치껏 선배들의 비위를 잘 맞추면서, 후배에게도 본보기가 되는 다정한 선배다. 나는 나 챙기기 바빠서 후배들을 들여다보지도, 좋은 말을 많이 해주지도 못했다.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더 잘해주지 못한 아쉬운 마음을 담아 송 과장 캐릭터를 만든 것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이상향이다.


하퍼스 바자 회사에는 송 과장 같은 사람이 극히 드물다는 점만 제외하면, 이 드라마는 현실을 지극히 사실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같은 직장인으로서 특히 씁쓸했던 건 서울 소재 구축 아파트를 보유한 그가 “이 집이 내 51년 인생의 트로피”라는 대사를 뱉을 때였다. 아파트 한 채가 51년 인생의 훈장이자 무기가 되는 사회. 당신이 생각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인가?

송희구 언제부터인가 오직 자산만이 성공의 기준이 된 것 같다. 작품 속 김 부장은 서울에 자가가 있는 것, 아들이 명문대에 재학 중인 것, 본인이 대기업의 부장이라는 것에 엄청난 자부심을 느낀다. 대한민국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이런 조건에서 모두 비슷한 감정을 느낄 것이다. 나는 다른 기준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명문대 다니는 아들이 스타트업에 발을 들였다가 옷 만들어 파는 사업을 해보지 않나. 대기업이 능사가 아니며,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은 정말 다양하다. 내가 부동산 재테크를 하는 이유도 떼부자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다. 잘못된 집을 사지 않고, 각종 부동산 금융범죄로부터 나와 내 가족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드라마에서 김 부장은 결국 인생의 훈장이나 다름없던 집을 팔게 된다. 진짜 중요한 건 집, 자산, 번듯한 직업. 그런 것보다도 체면 같은 나약하고 헛된 것을 위해 쥐고 있던 것을 놓을 줄 아는 용기, 결국엔 영원한 한 팀이 될 것은 가족이라는 얘기를 하는 드라마다.


하퍼스 바자 그럼에도 돈은 중요하다. 전부는 아닐지언정, 돈 때문에 가족과 등지고 사람을 잃기도 하니까. “돈에 쫓기고 시달리면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던 김 부장의 자조 섞인 말에서도 경제적 자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생각했다.

송희구 그렇다. 하지만 경제적 자립이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그것만을 강조하고 싶진 않았다. 자산은 화폐 가치가 떨어지는 만큼 오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시간이 걸린다. 반면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는 당장 오늘이라도 선택할 수 있는 문제다. 돈은 있다가도 없는 것이지만, 능력은 한 번 만들면 평생 가져갈 수 있다. 그러니 나만의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특정 기술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꼭 퇴사를 해야 한다는 말도 아니다. 회사 안에서도 얼마든지 나만의 능력을 키울 수 있다. 시키는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거든. 1을 주면 3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려는 자세 같은 것. 하다 못해 같은 일도 내 방식으로 해보려는 마음가짐도 방법이 될 수 있다.


하퍼스 바자 개인의 이야기를 공론화할 수 있는 채널이 다양해지면서, 마음가짐 말고 당장 행동에 옮길 수 있는 방법들을 콘텐츠로 만들어 파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인스타그램만 봐도, ‘월 300 직장인이 1년에 1억 모은 방법’ 같은 유의 릴스가 넘치고, 수십 만 팔로어를 거느린 유능한 재테크 유튜버도 많다. 수많은 방법론 사이에서 부동산 투자를 택해 뚝심 있게 밀고 나갈 수 있었던 노하우가 있다면?

송희구 20대 초반 무렵, 평범하게 농사 짓고 사시던 아버지의 친구분이 토지 재개발로 60억원의 보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야말로 제2의 삶을 살게 되신 거다. 뭘 잘 모르는 어린 나이였음에도 꽤 큰 충격이었다. 단순히 부자가 되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 자유라는 것의 의미를 실감하게 된 최초의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 영향인지 회사에 입사 후 경제 관념이 바뀌고 돈을 모아야겠다 마음먹었을 때 자연스레 선택지는 부동산 투자뿐이었다. 2년 동안 종잣돈을 모아 땅을 산 것이 시작이었고. 사실 회사에 다니면서 별의 별 일을 다 벌여봤었다. 5년 차쯤엔 블로그를 통해 옷을 팔았고, 취미로 하던 가죽 공예를 살려 지갑이랑 가방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옷 만드는 걸 배웠고, 판매로 이어져 나름 수익도 있었다.


하퍼스 바자 결국 자기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다양한 것에 도전하고 부딪히며 방황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송희구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주어진 일만 하다가 회사를 벗어나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왕이면 회사라는 안정적인 울타리 안에 있을 때 많은 경험을 해봤으면 좋겠다. 주말에는 취미 활동도 좋으니 다른 일에 손을 대보는 식으로.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던 재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당신은 택배 배달의 신일 수도 있고, 뜻밖의 미적 재능이 있을 수도 있다. 최근 이슈가 됐던 심진석 마라토너도 원래는 공사장에서 일하던 분이었다. 마흔이 되어서야 글쓰기를 시작한 나 같은 사람도 있다. 나에게 의류 사업, 가죽 공예, 블로그, 유튜브는 돈을 벌기 위함보다 호기심과 흥미를 충족시키기 위한 일이었다. 흔한 말이지만 돈 말고, 내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하는 게 맞다.


하퍼스 바자 퇴사 3년 차 송희구에게는 이제 과장이라는 직함 대신 200억 자산가라는 수식이 붙는다. 경제적 자립이라는 인생의 큰 과업을 이뤘다고 본다면, 다음 목표는 작가로 사는 것일 테다. <김 부장> 외에도 두 권의 책을 더 썼고, 지금도 영화를 위한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다 들었다.

송희구 유튜버, 부동산 투자자 같은 수식보다는 작가가 좋다. 나는 지금 스스로 제1의 정체성을 작가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 또 전혀 다른 이야기를 쓰고 있다. 책을 읽거나 대화를 나누다 재미있는 소재나 문장이 있으면 꼭 메모하거나 음성으로 기록한다. 자다가도 꿈을 꾸거나 스치듯 무언가 떠오르면 어떤 식으로든 남겨 둔다. 따지고 보면 24시간 일 생각을 하고 있는 셈이니 회사를 다닐 때보다 업무량이 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건 분명 즐거운 통증이다. 회사에서 “죽겠다”는 그야말로 극한의 스트레스였는데, 지금은 서태지가 말한 창작의 고통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웃음) 요즘 나에게 벌어지는 상황들이 재미있다.


하퍼스 바자 젊은 자산가, 베스트셀러 작가, 부동산 고수, 유튜버. 이 모든 수식을 걷어낸 송희구는 어떤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나?

송희구 오랜 시간 자유를 갈망해 왔고, 이제는 자유를 찾아 나선 사람. 요즘은 글을 쓰며 많은 것을 해소하는 기분이 든다. 한때는 나를 괴롭혔던 열등감과 불안이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의 이야깃거리가 되어 쏟아져 나올 때 희열을 느낀다. 이제는 작가로서, 가능한 글 쓰는 일을 오래 하고 싶다.

Credit

  • 사진/ 이소정
  • 헤어&메이크업/ 정지은
  • 스타일링/ 현국선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