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예술과 학술 사이

생물 표본을 예술로 환원시킨 미술가. 이소요의 작품이 들어서자 화이트 큐브는 작은 실험실이 되었다.

프로필 by 고영진 2025.10.25

예술과 학술 사이


생물 표본을 예술로 환원시킨 미술가. 이소요의 작품이 들어서자 화이트 큐브는 작은 실험실이 되었다.


심리학을 전공하고 예술과 자연과학을 연구한 미술가 이소요는 10여 년 전, 미국의 어느 의학 박물관에서 객원 연구원으로 일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의사와 의대생들이 제작한 인체 액침표본의 복원·보존 업무를 담당했고, 매일 마주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곰팡이 핀 사람의 심장을 꺼내는 모습, 이를 표본으로 만들기 위해 물로 씻고 화학적 처리를 한 뒤 지지대를 만들어 병 속에 보관하는 과정까지도. 한때 이들은 귀중한 과학 자료였으나 2025년 현재는 구시대의 유물에 지나지 않는다. 보존사로서 신체에 담긴 지식이 훼손되거나 사라지지 않도록 붙들어두려 애썼던 작가는 쓸모를 다한 인체를 자연으로 흘려 보낸 뒤 남겨진 유리 용기와 마개, 라벨 같은 부산물을 기록했다. 이렇게 모인 사진과 표본들은 <원형보존>이라는 제목을 달고 전시장 안에 병치되어 있다.

나머지 두 개의 설치 작업 역시 같은 맥락으로 흐른다. <이종이식, P56>은 18세기 의학계에서 생물 표본이 실증적 자료가 아닌 의학사적 영광으로 가공되었던 사례를 비평한다. <『자산어보』, 그림 없는 자연사>는 조선 실학자 정약전이 온전히 활자로 쓴 해양생물학서 <자산어보>에 기반해 실제 해양생물을 가공해 표본 형식의 조형물로 만든 작품이다.

도대체 이 낯설고도 기괴한 전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당혹스러운 사람들에게 전시 제목은 길잡이가 되어준다. Annotations, 즉 주석이 해석의 가능성을 넓혀주는 텍스트라면 전시장에서는 작품이 과학적 지식이 형성되어 사회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시각적 주석인 셈이다. 학술과 예술, 과거와 현재,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탐색하는 실험실 안에서 생명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다.

※ «Annotations 주 注»는 11월 7일까지 PS CENTER에서 열린다.

Credit

  • 사진/ PS CENTER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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