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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유일한 미슐랭 3스타, 밍글스 강민구 셰프 인터뷰

파인다이닝과 음식에 관한 철학과 최근 국내 출간한 책 '장'을 펴내기까지.

프로필 by 안서경 2025.04.30

한식의 내일


지금 대한민국 유일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밍글스를 이끄는 오너 셰프. 자신의 비기를 ‘끈기’로 꼽는 셰프 강민구가 그리는 밍글스와 한식의 미래.


3시 30분. 마지막 런치 손님이 떠나자 셰프 강민구는 빠르게 식사를 마치고 우리를 맞이했다. 디너 시작 전까지 클라이언트 미팅이 잡혀 있는 가운데 할애된 잠깐의 시간이었다. 그는 답변을 이어가면서도 직원들의 식사 자리를 챙기고 밍글스 SNS 계정에 업로드할 사진을 디지털카메라로 찍는 등 1분도 허투루 쓰는 일 없이 분주했다. 이 바쁜 시기 그를 찾은 이유는 밍글스가 올해 서울 186곳, 부산 48곳을 포함해 총 234개의 미슐랭 선정 레스토랑 중 유일한 3스타라는 소식 탓이기도 했지만 그가 지난해 해외에서 먼저 ‘장’을 소개하는 첫 책을 펴내고 딱 1년 뒤 국내 출간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숱한 레스토랑이 나고 드는 서울의 미식 지형도에서 밍글스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파인다이닝이 낯선 이라도 셰프 강민구의 이름이 익숙할 수밖에 없는 건, 2014년 오픈한 이후 밍글스를 쉼 없이 운영해왔기 때문이다. 그와 나눈 대화에서는 주로 기본적인 원칙에 관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군더더기 없이 명료한 대답을 내놓았고, 요리 얘기를 할 때에는 눈빛이 달라졌다.


연근과 순무와 도토리, 애호박 꽃 등 그날 사용한 제철 식재료를 바구니에 모아 보여주는 것이 밍글스만의 프레젠테이션 방식.

연근과 순무와 도토리, 애호박 꽃 등 그날 사용한 제철 식재료를 바구니에 모아 보여주는 것이 밍글스만의 프레젠테이션 방식.

하퍼스 바자 요리가 매우 훌륭하여 특별히 여행을 떠날 가치가 있는 레스토랑. 최근 미슐랭에 대한 대중의 인지도가 높아진 만큼 3스타의 뜻이 회자되곤 한다. 밍글스가 3스타를 획득한 지금, 이 의미가 어떻게 와닿나?

강민구 기쁘고 감사한데 아직 실감이 안 난다. 요리를 시작한 지 약 20여년, 밍글스를 연 지는 11년이다. 꾸준히 도전해왔지만 세계적인 기준에서 보았을 때 훌륭한 레스토랑이 무엇일지에 관해선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밍글스에 오기 위해 여행을 한다는 그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는 열망이 크다.

하퍼스 바자 파인다이닝은 맛뿐만 아니라 ‘환대’의 경험도 중요하다. 2014년 문을 연 이후, 오너 셰프로서 고수해온 원칙이 있다면 무엇인가?

강민구 음식을 상품으로 만들지 말자는 것. 레스토랑 비즈니스는 제조업이 아니다. 주방에서는 완벽하고 집요하되 손님에게는 따뜻한 감성, 훌륭한 경험을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 내 가족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든다는 것. 우리가 구할 수 있는 제일 좋은 재료로, 가장 맛있게 대접하는 게 변치 않는 마음가짐이다.

하퍼스 바자 주방에서 당신의 집요함이 발휘되는 순간은 언제인가?

강민구 파인다이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언제 방문해도 일관된 훌륭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신뢰’다. 주방의 많은 부분을 수치화, 계량화하고 철저히 지킨다. 미세저울, 온도계, 타이머. 세 가지 도구는 늘 내 옆에 있다.

장 트리오

오픈 이후 빠진 적 없는 시그너처 디저트. 된장을 넣은 크림브륄레에 간장으로 캐러멜라이징한 피칸을 얹고,고추장 물에 삶은 흑미 튀밥과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곁들였다. 그 위에 위스키 폼, 고추장을 말린 파우더를 더해 완성한 메뉴.


하퍼스 바자 초창기 멤버들이 함께할 만큼 밍글스는 팀워크로 잘 알려진 레스토랑이다. 평소 팀원들에게 자주 하는 말을 꼽아본다면?

강민구 밍글스라는 조직 안에서 팀원이 성장하고 있는지, 나는 대표로서 팀원들에게 영감과 발전을 주고 있는지 매일 생각한다. 우리 주방 한편에 ‘신속, 정확’ 두 단어가 적혀 있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늘 강조하는 말이다.

하퍼스 바자 답변이 꽤 원칙주의자 같다.(웃음) 계획적인 성향인가? 셰프로서 본인의 성공 비기를 ‘끈기’라 꼽으며 밍글스를 외부 투자 없이 운영해온 것만 봐도 짐작이 간다. 일반 레스토랑보다 수익률이 적은 파인다이닝의 수익 구조상 어려운 일일 텐데.

강민구 즉흥적인 판단을 할 때도 있지만, 11년째 밍글스를 운영하며 계획적으로 변했다. 홍콩의 한식구, 파리 세토파 등 동시다발적으로 개입을 배분해야 하는 프로젝트도 여럿이다 보니. 밍글스는 A부터 Z까지 내 손을 거친다. 인스타그램 관리도 마찬가지다. 내가 생각하는 음식과 노하우를 공유해야 하니까. 무언가 이루고자 마음먹으면 얼마나 시간이 걸리든 긴 호흡을 두고 단계별로 실행해나가는 편이다. 필요한 것을 모두 리스트업하고 하나씩 미션 클리어하듯 해결한다. 혼자 힘으로 해낼 수 없을 때는 팀과 주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노션과 트렐로 같은 툴로 계획을 정리하고, 레시피도 그때그때 구글 드라이브로 공유하곤 한다. <장>을 출판할 때도 그런 과정을 거쳤다.

비빔밥

셰프가 가장 애착을 지닌 메뉴 중 하나인 디저트 비빔밥. 한식 코스 단골 메뉴인 비빔밥을 빼놓을 수 없어 만든 요리다. 쌀과 크림을 섞어 만든 라이스 푸딩과 쌀 튀밥, 쌀 아이스크림을 담고 주변으로 비빔밥의 나물을 곁들이듯 제철 나물과 허브를 더했다. 참기름과 직접 만든 밍글스 간장을 더해 달콤한 비빔밥 디저트를 완성했다.


하퍼스 바자 최근 국내 번역 출간된 책 <장>은 지난해 미국 아티장 북스 출판사에서 <Jang: The Soul of Korean Cooking>이란 이름으로 먼저 공개된 바 있다. 음식 콘텐츠 제작자 나디아 조, 조슈아 데이비드 스타인과 4년여 준비 끝에 공동 집필한 책이다. 첫 요리책의 주제로 장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강민구 ‘밍글스 쿡북’이 아닌 장을 주제로 한 책을 발간한 건 한국 음식이 큰 관심을 받는 시대에 필요한 책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어떤 문화가 흐름이나 현상이 되면, 자연히 깊은 부분까지도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깊은 분야에 빠져들어야만 그 문화는 유행을 넘어 일상에 스며들 수 있다. 한식 문화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었고 한국 음식의 본질인 장을 소개하는 게 필수적이라 생각했다. 장은 한식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다. 재료의 조합과 요리에 따라 무한한 개성을 보여주는 데 반해, 장을 이루는 핵심 요소는 단 세 가지 대두, 물, 소금뿐이다. 만드는 지역, 자연환경, 만드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각각 다른 장이 나온다. 발효를 촉진하는 박테리아와 균류가 사는 환경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오직 시간과 공간이 변수인 재료의 특성이 무척 매력적이었고, 복합적인 맛을 알리고 싶었다.

하퍼스 바자 책에는 제주도, 전라도 순창과 고창, 경상도 청송, 충청도 오송과 보은 등 국내 다양한 장 명인을 찾아간 과정이 함께 담겨 있다. 밍글스를 통해 한식을 알리는 활동을 해온 당신에게 이는 필연적인 과정이었나?

강민구 요리를 배울 때부터 한식에 관심을 두어왔지만 정작 제대로 공부한 것은 밍글스를 열고 조희숙 셰프님과 정관 스님을 만난 이후부터다. 끼니마다 먹어온 음식이니 새로운 한식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전문 영역에서의 한식은 신세계였다. 장을 공부하면 할수록 정확한 명칭이나 분류가 혼용되고 있고, 한국인들도 여전히 정보가 부족한 상황인 걸 알게 됐다. 책을 통해 이를 정리하려 노력했고, 전 세계 독자의 눈에 맞춰 서양식 요리에도 장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김장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2013년 등록된 데 반해, 장 담그기 문화는 주목을 거의 받지 못하다가 지난해 등재되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장 담그는 풍습이 사라진 안타까운 역사를 알게 되고 난 후 이를 되살리고 싶은 마음도 컸다. 장은 내 요리에 가장 풍부한 아이디어를 준다. 제철 재료를 기본으로 장, 김치, 장아찌 등 발효의 지혜를 터득하는 과정이 무척 즐거웠고 밍글스 요리에 맛을 내는 공식도 돌아볼 수 있었다.

하퍼스 바자 독자가 따라할 수 있을 법한 간결한 레시피가 많은 점이 의외였다. 평소 가족들에게 해주는, 혹은 즐겨 요리하는 메뉴를 꼽아본다면?

강민구 그린빈 참깨 샐러드는 집에서도 자주 해 먹고 재료를 엔다이브로 바꿔 밍글스에 비건 손님이 오시면 내는 요리다. 간단하지만 너무나 맛있다. 밍글스에 직접 방문할 수 있는 이들은 소수이니 더 많은 이들에게 다양한 음식을 소개하고 싶었다. 모든 레시피 테스트는 5번 이상 만들며 체크했고, 미국 현지 레시피 테스터에게 재차 확인하며 완성했다.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 밤 줌으로 몇 시간씩 회의하는 과정을 1년 반 이상 거쳤다.

밍글링 팟

두부와 채소로 채운 모렐 버섯, 해산물을 넣은 굴림만두, 뿌리 채소와 도토리 국수 등 철마다 바뀌는 육해공 진미를 주재료로 삼은 보양식.


하퍼스 바자 한때 사찰 음식에 빠져 메뉴에 유제품을 쓰지 않은 적도 있다고. 현재 밍글스에서 만나볼 수 있는 메뉴 중 사찰 음식에 영감받은 부분은 무엇인가?

강민구 채소만으로 다양한 조리법을 적용해 맛있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사찰 음식의 매력이다. 과식을 해도 속이 편안한 점도. 사찰 조리법 중 제피를 많이 사용하고, 액젓 대신 장과 청등을 넣어 김치를 비건식으로 담그는 걸 특히 좋아한다. 밍글스 요리 중에도 제피 후추를 활용해 향긋하면서 화사한 향을 내는 요리가 있고, 완전한 사찰식은 아니지만 김치 역시 비건 식으로 담그려 한다.

하퍼스 바자 식사 전 그날 요리에 사용되는 식재료를 한 바구니에 담아 보여주는 것은 밍글스만의 고유한 프레젠테이션이다. 특히 애착이 가는 식재료는?

강민구 한국의 애호박과 배추, 무와 배는 최고다. 아스파라거스, 토마토, 딸기, 다양한 봄나물, 복숭아, 양파, 호박, 토란, 순무 등 사계절을 대표하는 식재료를 전부 열거할 순 없지만, 해마다 한국을 대표하는 채소와 과일들의 품질이 발전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건 내게도 큰 기쁨이다.

하퍼스 바자 하나의 코스는 흔히 교향곡이나 서사시 등에 비유된다. 고추장, 된장, 간장을 하나의 디시에 담은 디저트 ‘장 트리오’와 육해공 귀한 식재료를 담은 국물 요리 ‘밍글링 팟’은 시그너처 디시인데. 10여 개가 넘는 밍글스의 코스를 완성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

강민구 코스 메뉴는 단품 알라카르트 메뉴와는 달라야 한다. 메뉴마다 특색과 스토리가 있되 흐름이 어느 하나 튀어선 안 된다. 손님이 기억에 남는 메뉴를 꼽을 때 한두 가지에 편향되지 않고 여러 메뉴가 언급되면 그날 코스는 성공이다. 초기에는 시그너처 메뉴라 언급되는 메뉴들이 꼽혔는데, 요즘은 점점 각자 다른 메뉴를 꼽아주시는 점이 취향이 다양해지는 것 같아 흥미롭다.

다과

마로 만든 주악, 감태 강정, 고추장 크림을 채운 슈로 이루어진 프티푸르.


하퍼스 바자 2019년부터 홍콩에서 정통 한식 파인다이닝 ‘한식구’를 선보이고 있다. 새롭게 한식을 해석한 모던 한식을 추구하는 밍글스의 메뉴와 달리 정통 한식 메뉴를 내어왔다. 이 경험이 당신의 요리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강민구 외국인들이 생각보다 정통 한식의 맛을 선호한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홍콩이 아시아 국가이고 한식의 인지도나 인기가 높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현지화를 위해 레시피를 변형하지 않고 한국 식재료 대부분을 공수해 레시피 그대로를 선보인다. 간장 소스와 깻가루, 김가루를 메밀면과 더한 들기름 막국수 같은 메뉴가 인기다.

하퍼스 바자 앞서 말한 ‘한식공간’ 오너 셰프 조희숙과 정관 스님 이외에도 셰프 파스칼 바르보를 크게 영향받은 셰프로 꼽은 적 있다. 각자에게 훔쳐오고 싶은 능력을 꼽아본다면?

강민구 파스칼 바르보의 독자적인 스타일. ‘라스트랑스’의 음식을 보면 셰프가 보인다. 조희숙 선생님의 끊임없이 공부하는 마인드. 한식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고도 창의적인 한식을 선보일 수 있는 비법일 것이다. 정관 스님의 수행으로서 음식을 대하는 마인드와 재료의 본질에 깊이 집중하는 태도를 닮고 싶다.

하퍼스 바자 궁극적으로 한식의 본질에 충실히 접근하는 태도를 견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강민구 대대로 전해온 한식 문화에는 지금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다 담겨 있다. 지속가능성, 로컬과 제철 식재료, 채식, 생산자를 존중하는 문화가 우리에게 이미 자리해 있던 것들이더라. 결국 이걸 잘 이해하고 공부해 지금 이 시대에 알맞게 끌어만 놔도 한식을 새롭고 창의적으로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다.

Credit

  • 사진/ 이소정
  • 디자인/ 한상영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