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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학경의 딕테 오독하기
절판 20년만에 돌아온 전설의 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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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 차학경의 퍼포먼스 사진 <눈먼 목소리>(1975)를 비롯하여 일련의 개념적 퍼포먼스 영상들을 관람할 수 있는 «접속하는 몸-아시아 여성 미술가들»전이 열리고 있다. 2025년 3월 3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관람할 수 있다.
테레사 학경 차에게
먼저 고백합니다. 신화가 되어버린 <딕테>를 읽고 제가 할 수 있는 건 “말하는 시늉”뿐이었다는 것을요. 저는 “정확성을 측정하기 위해 주저하기 때문에, 입으로 흉내 내는 짓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랫입술 전체가 위로 올라갔다가는 다시 제자리로 내려앉”습니다. 마감이 숙명인 월간지 에디터로서 저는 하얀 바탕 화면에 깜빡이는 커서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며칠 동안 끝없이 웅얼거렸습니다. 그리고는 타협하기로 했습니다. <딕테>를 곱씹는 것이 나의 여성들을 떠올리는 일임을, 이 편지가 결국 사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딕테>를 읽는 건 모두 크든 작든 자신만의 <딕테>를 갖는 행위”라는 김택수 번역가의 말도 떠올랐습니다. 저는 학자도 평론가도 작가도 아닙니다. 그저 한 명의 독자로서 이 책과 가까워지려는 시도가, 무언가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는 위기에 처한 다른 독자들에게 작은 손짓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겠지요.
차학경 씨, 학경 혹은 학경 언니. 당신은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나 11살의 나이에 미국으로 이주한 아시아계 디아스포라 여성입니다. 당신은 몇 년 전 남편과 함께 뉴욕에 정착한 전도유망한 예술가입니다. 낮에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일을 하고 밤엔 작업을 했는데 그 생활이 결코 쉽진 않았어요. 얼마 전 당신은 다니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사직서를 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작업에 전념할 참입니다. 허드슨 거리에 있는 아티스츠 스페이스에서 합동 전시도 앞두고 있죠. 무엇보다 지난 몇 년간 작업한 책 <딕테>가 곧 출간될 참입니다. 오빠 존에게 보낸 편지에서 당신은 말했습니다. “내가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느끼는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자유롭다고 느끼고, 또 벌거벗은 느낌도 들어. 원고는 작업할 시간이 없을 때조차 내 몸에서 물리적으로 떠난 적이 없어. 어디든 원고를 휴대했고 그야말로 잘 때도 끼고 잤는데, 이제 완성됐어.” 그로부터 <딕테>가 세상 밖에 나온 지 일주일 만인 1982년 11월 5일, 남편을 만나러 퍽 빌딩에 간 당신을 경비원 조지프 산자가 강간하고 살해했습니다. 뒤늦게 발견된 범행 현장엔 당신의 장갑 한 장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학경 언니. <딕테>가 세상에 나온 지, 당신이 세상을 떠난 지 40년이 지났습니다. 당신은 영원히 서른한 살일 테지만 나는 그래도 당신이 언니로 느껴집니다. 그런데 언니는 아나요? <딕테>를 읽어봤다는 사람을 만나면 맨 처음 대화는 대개 비슷하게 흘러간다는 것을요. “어떻게 <딕테>를 알게 되었나요?” 다들 순수한 호기심을 품고 질문합니다. 오늘날 <딕테>는 아시아계 미국 문학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손꼽히며 각 대학에서 여성학 교재로 널리 쓰일 뿐만 아니라 미술을 넘어 연극, 음악, 문학의 영역까지 동시대 예술가들을 통해 재탄생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글 번역본은 절판된 채 어디에서도 쉽게 구할 수 없었거든요. 대신 수십 년 동안 여성에게서 여성으로 전승되었습니다. 제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당신을 처음 알게 된 건 10년 전입니다. 세계에 여성주의와 디아스포라 담론이 들불처럼 번져갈 즈음입니다. 언젠간 내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떠들고 다니던 시절입니다. 어떤 언니가 저에게 ‘그런 여자’가 있었다고 알려줬습니다. 도서관에서 손수 제본한 책까지 빌려주겠다고 했지만 서사에 종속된 저에겐 화자도, 결말도, 장르도 모호한 <딕테>는 무척이나 난해한 텍스트였습니다. 포기가 빠른 저는 바로 책장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잊어버렸습니다. 당신을 다시 인식한 건 2021년입니다. 당시 미술계에선 당신을 소환하는 일이 부쩍 잦았지요. 칠레 출신 현대미술가 세실리아 비쿠냐는 <딕테>를 읽고 설치작품 <소리로 꿈 꾼 비>를 창작했습니다. 나는 그녀가 말하는 ‘차’가 내가 알던 그 차학경임을 기억해냈습니다. “먼 친척” 같은 당신. 그러나 읽을 수는 없었어요. 나에게 당신을 소개해준 그 언니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끝내 자살했고, 내 엄마는 불의의 교통사고 피해자로 두 다리가 완전히 망가진 상태였습니다. 나는 <딕테>에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를 피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딕테>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가장 저어하는 부분인데도요. 이게 제가 지금까지 당신에게 느끼고 있던 일종의 죄책감이었습니다.
10년이 지나고 나는 이제야 당신의 책을 제대로 읽습니다. 당신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홉 명의 여신으로 상징되는 아홉 개의 예술(역사, 서사시, 천문학, 비극, 연애시, 서정시, 희극, 합창 무용, 성시) 형식으로 차학경, 유관순, 차학경의 어머니, 잔 다르크, 성녀 테레즈 등 각기 다른 시대를 살다 간 여성들의 삶을 받아쓰기(딕테)했습니다. 그 여자들은 자신을 희생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왜요? 왜 희생당해야 하나요? 왜 그들이 내어주어야 합니까? 2024년 12월. 저는 이 시끄러운 세상에서 순교와 봉헌이 다 무슨 소용인지 묻고 싶었습니다. “그녀는 타인들을 허용한다. 그녀의 대치로. 타인으로 하여금 가득하도록 용납한다. 한 떼가 되어 들끓도록. 모든 불모의 공동이 부어오르도록. 타인들은 각기 그녀를 점령한다. 종양의 층층, 모든 공동이 새살이 될 때까지, 모든 잉여물을 축출한다.” 솔직히 말하면 첫 번째 챕터 ‘말하는 여자(DISEUSE)’에 나오는 이 알쏭달쏭한 문장은 이해를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다행히도 재출간기념 북토크에서 장혜령 시인의 해석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 알쏭달쏭한 문장에서 ‘타인’을 ‘언어’로 치환하면 이해가 쉬워진다고 하더군요. 정말 그랬습니다. 당신은 11살, 미국에서 이제 막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어린아이입니다. 받아쓰기에선 구두점까지 낱낱이 받아 적어야 합니다. <딕테>의 첫 페이지에 적힌 ‘실패한’ 받아쓰기는 아마도 당신의 유년 시절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겠지요. 20년 동안 <딕테>를 읽어왔다는 그녀는 이 책을 통해 언어를 배운다는 것, 그러니까 말을 삼키고 말에 점령당하는 과정이 마치 식민지 백성의 그것과 닮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전했습니다. 그 언어에 모든 걸 내어준 뒤에 마침내 자신만의 언어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는 사실도요. 여자의 언어는 모든 걸 잃고 자신을 되살리는 과정에서 탄생한다는 시인의 해석이 아이러니하게도, 참 희망적으로 들렸습니다. 상처받고 박해받고 순교당한 여자들이 지금 그걸 회복하고 있다는 방증이어서일까요? 나는 이제야 당신이 받아쓴 여성들이 희생‘당한’ 게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전복한 여성들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제 나도 나의 여성들을 받아쓰기할 용기가 생겼습니다. 지독하게 혁명적인 여자들 말이지요. 아마도 그 받아쓰기는 오탈자투성이겠지만 비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생길 거라고 믿습니다. 학경 언니, 고맙습니다. 말하는 여자들에 대해 말해주어서요. 부디 그곳에서 평안하시길. 2024년 12월 12일, 서울.
※ 이 글은 캐시 박 홍의 에세이 <마이너 필링스>, <차학경 프로젝트> 작가 이수진의 국립현대미술관 «영화로, 영화를 쓰다» 프로그램 스크리닝+토크, 시인 장혜령과 평론가 전승민의 <딕테> 재출간기념 북토크, <더 뉴요커>의 기사 ‘Theresa Hak Kyung Cha’s Radical Refusal to Explain Herself, ICA(Institute of Contemporary Arts)’의 인터뷰 ‘On Theresa Hak Kyung Cha- An interview with Bea de Souza’를 참고했다.
글/ 손안나(<바자> 피처 디렉터)

차학경의 <딕테>를 보며 나는 “광대하리만큼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고 감히 고백한다. 소문처럼 무척 대단하거나 괴상한 책은 아니었다. 그녀의 책은 오히려 “고요했고 아무런 요동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사이사이를 톺아보면 그녀가 살아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글 속에서 사람이 움직이는 경험을 하는 일은 많지 않다. 그녀는 이중언어를 쓰는 자로서 언어에 관련하여 관심이 많았다. 특히 언어를 하나로 묶고 인물을 묶어서 그것을 확장시키는 방면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는데, 가끔은 그녀가 늘어놓은 형용사대로 내가 움직이면 한 번의 퍼포먼스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게 흔한 글이 아니어서 좋았다. 세상에 차학경을 검색하면 별의별 사건과 사고가 뜬다. 나는 이 작가가 가십으로 덮이지 않고 오롯이 문학적으로 이 작품에 대해서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술가로서 여성으로서 고통을 전시하며 확장하는 이곳에 무한한 영광으로 뒤덮인 단 한 명의 관객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아마도 내가 감히 짐작하건대 ‘역시 차학경이야’라고 읽은 사람은 거의 없었을 거라고 본다. 차학경은 작품을 많이 남긴 적이 없다. 오래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딕테>라는 책이 있지만 도서관에서만 훔쳐서 읽을 수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 글은 왜 전설이 되었을까? 재판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이것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세상에서 사라지거나 혹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전설이 되었다고는 감히 말하고 싶지 않다. 시대를 감안하더라도 그녀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과히 혁신적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술적으로도 문학적으로도. 그렇기 때문에 내가 만약 그녀의 작품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더라면, 나에게 차학경을 닮았다는 꼬리표가 붙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똑같은 고투 속에서 똑같은 목적지를 찾고 있”기 때문에. “똑같은 군중, 똑같은 반란, 똑같은 항거 속에” 늘 놓여 있었기에 그리고 이 시대를 다 넘어서고도 변하지 않음을 읽었기에 이곳에서 한국의 슬픔을 읽었다. 이곳에는 그녀의 말처럼 “외침을 저지하려는 외침. 명령.” 뿐이고 “경찰과 군인들은 누구인지도 모르는 자신들을 복제하여, 당해낼 수 없는 숫자들로 배가하여 그들의 임무”를 수행할 뿐. 그들이 지나간 자국에는 “핏자국은 아직도 짙게 남아 있”다. 이상하지 지워도, 지워도 늘 제자리다. 여성이 지나간 그 자리에는 늘 이렇게나 슬픔이 가득하다. 그러나 “사랑은 오직 사랑만으로만 같아진다는 것”을 아는 것을 아는 차학경은 독실하면서도 동시에 무신론자처럼 보이기도 하다. 역시 사랑은 늘 의심받는다. 그래서 그녀에게 맹목적 사랑이란 과연 존재하는 것인지 물음표를 던지게 한다. 나 역시 그랬던 것처럼 “그녀에게 주어진 것은 없었다. 아내이니까. 그런 거다. 그래 왔으니까. 여자이니까. 질문하지 말라. 주어진 것 외에는 전혀 기대하지 말라. 주어진 것 외에는. 그녀는 그의 아내. 그의 소유물이었고, 아무것도 거절할 수 없는 그 그녀의 남편, 그 남자에게 속해 있었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때는 그랬을 것이다.”고 말해놓고서도 차학경은 다시 “그녀는 잊는다 그녀는 잊으려고 노력한다 지금 이 순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라고 여지를 둔다. 나는 “눈을 감긴다.” “그 사이 잠깐” 그녀가 되어본다. “그녀처럼 확실하게 다음 줄을 시작해보고 싶다.” 이젠 그녀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나는 아주 독실한 신자였다. 아버지가 아니다. 아버지의 대리인이 그러니까 아버지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나의 목사님이 나의 자매를 때리기 전까지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망신을 주기 전까지 나는 대리인을 잠시 신이라 착각했었던 적이 있음도 감히 고백한다. 그리고 여성 인권 운동에 대해 늘 생각하면서도 책상머리 앞에서 키보드 치는 일로 내 삶을 마무리하는 것에 작은 환멸을 느낀다. 나는 기후위기를 고민하는 글을 쓰면서 텀블러를 자주 놓고 다닌다. 더 이상 에코 백이라고 부르지 않으련다. 나는 디자이너 천 가방이 많다. 모순에 엉망이다. 그러나 거울을 마주하고 나니 나는 이제 가끔 ‘진짜로’ 차학경처럼 행동하고 싶다. 행동으로 내 삶을 규정해보고 싶다. 가족에 대해서도 말해보고 싶다. 차학경이 엄마에 대해 썼듯 나도 엄마에 대해 쓰고 싶다. 엄마는 참 불쌍한 여자다. 은퇴가 없는 집안 살림을 도맡으며 감사함을 느낄 줄 모르는 가족들 사이에 있다. 아버지는 은퇴했으니까 아무것도 시키지 않는 것이 우리 집의 법칙이다. 그러면서 숨을 죽이고 꼭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버지 덕에 아직도 우리가 굶어 죽지 않는다 다행이야 그치?’ 어떻게 보면 참 성격이 좋은 여자다. 엄마는 그건 잊었다. 아버지 때문에 우리가 주저앉아서 어떻게 생계를 민망하게 유지해왔는지. 지금 가난이 누구의 뿌리에서 왔는지는 다 까먹어버린 것 같다. 자꾸 기회를 주고 미화하고 용서를 하는 것 같아서 사실 나는 몹시 화가 난다. 차학경의 글을 보면 그러니까. 좋은 글이란 이런 것 같다. 읽으면서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지는 글. 다음이 궁금해지는 글. 그러나 그다음이 없어서 죽을 것처럼 괴로운 차학경의 <딕테>는 사실 처음 내가 했던 말처럼 잔잔하게 아주 잔잔하게 내 마음을 치고 다시 덮는다 파도로. 나는 무엇이었을까 무엇으로부터 쓰고 싶었는가. 고로 생각한다. “다음 줄로 가서 모두 부활시키라.”
“그녀는 글을 쓸 수만 있다면 계속 살 수 있다고 자신에게 말한다. 그치지 않고 계속 쓸 수만 있다면 하고 자신에게 말한다. 글을 씀으로써 실제의 시간을 폐기할 수 있다면 하고 자신에게 말한다. 그녀는 살 것이다. 그녀 앞에 그것을 전시해놓고 엿보는 자가 될 수 있다면”이라는 문장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음을 고백한다. 사실 나는 관종이라 글을 쓰는 자로서, 글은 누군가를 보여주지 않으면 쓸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나는 가끔 내 이름을 검색해본다. 누가 내 글을 읽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미지의 독자가 있기 때문에 내가 살아 있다. 미지의 독자가 없으면 나는 죽는다. 격정적으로 말해 미안하다. 작가로서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가 그 독자를 발견하고 마주할 수 있다는 일은 그 어떤 가치로도 채울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문장을 발견하고 나는 지금도 “그 욕망을 반복하여 예행한다.” “이야기가 바꿔진다. 변주를 발견한다.” 이제 이 이야기를 읽은 당신은 욕망하는 “영구 병신이 되고 거의 하나의 이름. 반쪽의 이름. 거의 한 장소 시작한다 시작하려고 한다. 그러다 멈춘다.” “종이쪽은 얼마나 광대한 것인가” “만약 그것이 찍힌다면, 말의 화석 자취를 만든다면, 말의 찌꺼기, 마치 폐허가 서 있듯이 서 있는다면” 당신은 차학경의 딕테 중 어느 방면에 서겠는가. 이것은 진짜 너무 잔잔하여 내 속을 투명하게 들여다보는 것인가. 아니면 그녀의 말들이 끊임없이 몰아치던 것처럼 내 전부를 통과하겠는가.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이것은 우리가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렸던 차학경의 유일무이한 책 <딕테> 아니던가.
글/ 이소호(시인)
Credit
- 사진/ 김래영(책),국립현대미술관 제공
- 어시스턴트/ 정지윤, 노현승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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