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men in Philosophy ①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잡지를 만들면서 결국 전하고 싶은 얘기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다양한 관점에서 나온 답이었다. 그런 무겁고 거대한 물음에 일말의 힌트를 주는 건 언제나 멋진 여자들이었다. 미적인 방면에서든,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에서든, 철학적인 차원에서든 잠시나마 빛살 같은 로망의 순간을 선사했던 여자는 누구인가. <바자>가 사랑하는 여자들이 들려준 내밀하고 뜻깊은 고백. | 레이가와쿠보,차학경,전혜린,임수정

레이 가와쿠보2004년에 제인송을 론칭해 10여 년 동안 브랜드를 이끌어오면서 콤 데 가르송과 마르지엘라는 나의 롤모델이었다. 확고한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브랜드 마니아를 양산하면서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브랜드.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 없는 디자이너와 작고 가녀린 몸에 검은 단발머리가 브랜드의 상징으로 인식되는 디자이너라는 양 극단의 이미지도 너무나 흥미롭다. 누군가는 상업적인 성공이 타협과 포기를 전제로 한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이 두 디자이너를 들어 그 말에 전적으로 반박하고 싶다. 3년 전 세컨드 라인인 제이라이트(J Lite)를 론칭하면서 그 생각은 더욱 확실해졌다. 고백하건대 제이라이트는 한국의 플레이를 만들고 싶어서 시작한 거였다. 레이 가와쿠보가 오랜 세월 콤 데 가르송으로 구축해온 아이덴티티를 좀 더 가볍게 대중화시킨 플레이 라인을 보면서 대가의 아포리즘 같다는 생각을 한다. 단순히 젊은 세대가 좋아할 만한 취향을 그러모은 것이 아닌, 콤 데 가르송이 갖고 있는 기본적이고도 근원적인 시크함을 좀 더 심플하게 풀어낼 수 있었던 그 저력에 새삼 감탄하게 되는 것이다. 스트라이프나 도트처럼 정말이지 흔한 패턴을 선점하고 자신의 브랜드화시킨다는 것은 웬만한 내공으로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처음 브랜드를 론칭했을 때를 돌이켜보면 나 역시 선배 디자이너들이 다져온 토양이 있었기에 좀 더 쉽게 홀로 설 수 있었고 앞으로 후배 디자이너들을 위해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점에 있어서도 가와쿠보는 그릇이 크고 담대한 면모를 보여준다. 1950년대 선구적으로 파리에 진출한 일본 디자이너 중 하나였던 가와쿠보는 콤 데 가르송을 통해 젊은 디자이너들을 숙련시키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준야 와타나베, 치토세 아베 등이 가와쿠보 밑에서 자주적이고 독창적일 것을 요구 받으며 어엿한 디자이너로서 독립하기까지 많은 가르침을 받은 얘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그녀처럼 멋진 디자이너 그리고 멋진 인간으로 늙어가고 싶다. 더욱 열심히 일하며. 송자인(패션 디자이너)이자람한국의 자랑스러운 예술가 명창 이자람은 나의 친구이다. 글을 시작하면서 그녀의 대단함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나 고민을 했다. 춘향가 최연소 완창 기록 기네스북 등재 이런 얘기를 해야 하나, 전 세계의 극장들이 내년 스케줄을 짜자고 먼저 연락을 해온다는 말을 해야 하나, 안부 문자를 보냈더니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을 한다는 답이 왔다는 얘기를 해야 하나, 결론을 내지 못하고 일단 전부 써보았다. 하지만 빼먹은 것이 많을 것이다. 이자람이니까.그런 대단한 그녀가 어쩌다 나의 친구가 되었냐 하면, 그녀가 록밴드를 하기 때문이다. 아마도이자람밴드. 그렇다 그녀는 록도 잘한다. 친구들이 그 팀의 멤버여서 인사를 하게 되었다. 벌써 한참 전 일이다. 이자람은 아담한 체구의, 반짝이는 눈빛의, 아우라가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그때 그녀는 트위터가 보고 싶다며 팀 멤버에게 5분에 한 번씩 아이폰을 보여달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인 휴대폰엔 없다던가. 나는 살짝 어이가 없었고 동시에 ‘이 사람은 아우라가 나오는 구멍을 마음대로 열고 닫는 것까지 가능한 대단한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다.생각해보면 살면서 닮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들 중 다수가 남성이었다. 그것도 중년 남성. 특별히 중년 남성을 좋아해서는 아니었다고 본다. 좋은 성취를 해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중년 이후의 남성이 많았다. 하지만 마루야마 겐지의 얼음장 같은 창작의 자세도, 빌 브라이슨의 재치 넘치는 필력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가벼운 듯 깊은 글도 멋지지만 내가 그대로 도입할 언어는 아니었다. 물론 훌륭한 여성 창작자도 많다. 앨리스 먼로도, 줌파 라히리도 소름 돋게 멋지지만 조금 멀게 느껴졌다. 그것은 번역된 언어로 보는 외국 여성의 이야기였다. 나는 지금 상황을 헤쳐나가고 있는 한국 예술가에 목말라 있었다. 특히나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어? 하고 떠올려볼 수 있는 여성 예술가에.그런 의미에서 자람이 나의 친구라는 것은 정말 운 좋은 일이다. 나는 가끔 ‘자람이라면 어떻게 할까’ 하고 맥락 없이 생각한다.(그리고 그녀도 왜인지 가끔 내 생각을 한다고 한다.) 자람은 항상 나를 경쾌하게 오지은, 하고 부르고 우리는 가끔 만나 아이스초코를 마신다. 대부분의 화제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것. 더 자세하게 말하면 무언가를 만드는 도중 마음이 식은땀에 절어 있는 상태에 대한 이야기, 서로 할 수 있는 말은 별로 없다. 결국 알아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 어때, 이번 달 안에 극 하나를 완성해야 해, 아이고 이번에는 내용이 뭐야, 이러저러한 거야, 어렵겠네 고생이겠네, 그렇지 어렵지. 어차피 잘할 텐데 뭐,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잘하게 되어 있는 일은 세상에 하나도 없다.자람은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가 묘한 말을 하나 던지고 빠지는 버릇이 있다. 나는 그게 마음에 남아서 길게는 몇 년간 그 말을 떠올리곤 했다. 다시 물으면 본인은 기억이 안 난다고 하지만. 작년에 긴 슬럼프가 왔다. 마음의 병도 같이 왔다. 나 반 년간 아무것도 못 썼고 지금까지 한 것 전부 쓰레기 같아, 하고 말하자 자람이 말했다. 오지은 더 잘할 건가 보네? 여느 때와 같이 하회탈처럼 눈꼬리에 주름을 가득 지으며 웃고 있었다. 두 걸음 앞선 여성이 내 앞에 있어 든든하다. 그녀의 극을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도, 같이 고민하는 창작자의 입장에서도, 아이스초코를 마시는 친구의 입장에서도 나는 운이 정말 좋다. 오지은(뮤지션, 작가)차학경차학경은 실로 약관의 나이에 범상치 않은 사건으로 죽음에 이르기까지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여성이다. 2003년 쌈지 아트스페이스가 홍대에 자리해 있던 시절 차학경 개인전을 보고 미술학도로서 그녀에 대해 탐구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에 와서야 언어를 다루는 개념적인 접근이 노스탤직하게 느껴지는 시대이지만 당시 구조적인 언어에 대한 작품을 졸업전시 작업으로 준비하며, 차학경이라는 인물이 지니는 일련의 삶과 생각은 내가 미대생으로서 수업 시간마다 해야만 했던 수사학적인 크리틱에 대한 염증과 허무를 달래주었다. 그녀의 일련의 퍼포먼스들과 직접 저술한 소설 는 모두 언어에 대한 입체적이고 개인적인 접근들을 비교적 예민하게 필터 없이 보여준다. 차학경이 읊조리고, 기록하며 지녔던 본인의 삶 혹은 정체성에 대한 스스로의 질문을 상기시키는 것이 연대적인 감수성을 불러일으키며 총체적으로는 알 수 없는 어떠한 위안이 되었던 것 같다.차학경을 탐구하는 것에 있어 비교문학과 정치적인 망명에 대한 관점은 어느 정도 고려가 된다고 생각하지만 당시 비평적으로는 개념적인 관점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기호학, 제3세계의 여성이라는 수식어들을 치장하여 이 인물에 대한 미디어적인 판타지를 만든 부분도 많다고 본다. 대부분의 요절한 작가들에게는 일정 부분 이런 미디어의 환상화를 배제할 수 없지만 앞서 언급한 미디어의 환상으로 그려진 면모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것들을 차치하고 차학경이라는 여성이 지닌 짧은 삶의 역사가 남긴 일련의 기록은 이후 세대에게(적어도 나에게) 삶의 염세적이고 허무주의적이며 함몰적인 사고를 반추하는 일종의 백색저항과 같이 느껴졌다. 전민경(국제갤러리 커뮤니케이션 디렉터)카렌 블릭센그녀에겐 이름이 많았다. 카렌 블릭센. 또는 아이작 디네센. 또는 타니아 블릭센. 또는 오세올라. 나는 그녀가 카렌 블릭센이라는 이름으로 쓴 를 가장 좋아한다. 메릴 스트립과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근사한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야기의 원작자이자 주인공. 는 그녀가 1914년부터 1931년까지 17년 동안 살았던 아프리카 시절의 회고록이다.카렌 블릭센은 북구인 덴마크 출신으로 아프리카 케냐까지 건너가 해발 1천8백 미터 고원에 6천 에이커의 커피 농장을 일구었다. 거대한 스케일의 여행이고, 농장이고, 삶이었다. 또한 그녀는 수많은 모험과 고난을 겪으면서도 누구보다 섬세한 눈으로 온갖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빼어나게 글로 옮겨낸 사람이었다. 는 담대하고 따뜻한 마음가짐과 눈부시게 아름답고 섬세한 묘사가 아프리카의 웅대한 풍광처럼 어우러진 글이다. 나는 이보다 더 심장이 뛰게 하는 글을 만나보지 못했다. 그녀는 이렇게 썼다. “여기 내가 있다. 내가 있어야만 하는 곳에.” 덴마크의 삶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쳐 케냐의 고원에 가서야, 그녀는 비로소 이렇게 썼다.거기서 그녀는 함께 떠났던 남편과 이혼하고, 여러 요인으로 결국 농장이 몰락하고, 연인이자 친구였던 데니스 핀치해튼의 죽음까지 겪은 뒤 덴마크로 돌아간다. 그럼에도 그 시절의 마지막을 회고하는 그녀의 어조에는 여전히 읽는 이를 미소 짓게 하는 담담한 유머 감각이 있다. “나는 내 인생에 대한 일종의 몸값으로 소유물을 하나씩 버리는 것에 동의했는데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자 나 자신이 운명이 버릴 것 중에서 가장 가벼운 것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운명의 패배자가 아니었다. 아름다움이 남았으니까.를 펼치면 나는 어느새 다른 곳에 가 있다. 그곳에서 내가 본 건 경비행기를 타고 내려다보는 케냐의 들판과 버팔로 떼이기도 했고, 색색의 빛을 혜성의 꼬리처럼 남겨두고 사라지는 이구아나의 몸빛이기도 했다. 그곳의 풍경 속엔 원주민들이 한 줄로 걸어 다녔다. 그들은 아프리카의 풀과 바람처럼 그곳의 한 부분이었다. 카렌 블릭센은 원주민들을 존중하고 사랑했다. 발목이 가느다란 원주민 아이들은 시를 읊어달라고 조르며 이렇게 말했다. “또 해주세요. 비처럼 말하는 거요.” 글을 읽다 창밖을 내다보면 초원을 지나가는 기린의 행렬이 보일 것 같았다. “그 기이하고 독특한 식물적인 우아함이 마치 동물의 무리가 아니라 긴 줄기를 가진 희귀하고 거대한 얼룩무늬 꽃들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책장을 넘기는 동안 내가 가장 장대한 여행을 떠나도록 해준 사람. 가장 예민한 현미경과 가장 강력한 망원경을 자연스레 넘나들며 내가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을 내 안으로 쏟아부어준 사람. 나는 이제 그 글을 몸에 지닌 채 살아간다. 피에 젖은 사자의 얼굴과 축음기와 경비행기, 아프리카의 평원을 채우는 바람과 원주민의 노랫소리가 내 핏줄을 타고 돌며 세계를 확장시킨다. 를 읽는 것은 몸 안에 완전히 다른 축척을 새겨 넣는 것이다.작년에 핀란드 헬싱키에 여행 갔을 때, 산책을 하다 우연히 아름다운 장미 정원에 들어선 적이 있다. 거기서 송이가 큼직하고 우아한 장미가 눈에 들어와 팻말을 보았더니 ‘카렌 블릭센’이라고 적혀 있었다. 도대체 장미의 이름은 누가 짓는 걸까. 실로 그녀와 잘 어울리는 장미였다. 담대하고 섬세했다. 나는 그 장미를 한동안 눈에 담았다. 김하나(카피라이터, BB & TT 공동대표) 의 아야나미 레이글을 쓰기 시작하고 얼마 안 돼서 뉴욕 여행을 가게 되었을 때 한 친구가 내게 말했다. 한가한 목요일 밤, 온몸이 한 뼘만큼 가려지는 원피스에 마놀로 블라닉 비슷한 걸 신고 다운타운에 있는 바에 가는 거야. 그럼 거기 혼자 온 멀쩡하게 생긴 ‘미스터 빅’ 같은 남자가 있을 거야. 그의 옆 자리에 가볍게 올라타서 어깨를 살짝 건드리고는 미안해하며 이렇게 말하는 거지.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저는 캐리 브래드쇼라고 해요. 그리고는 미소 지으며 덧붙여, 작가예요. 그럼 뉴욕의 모든 남자를 다 꾈 수가 있을 텐데.캐리 브래드쇼, 이제는 오래된 전설이 되어버린 그 이름만큼 2000년대 여자들한테 깊은 영향을 준 것이 또 있을까. 그런 멋진 여자들이 가끔 있다. 나만의 스타일을 밀고 나가 성공을 이룬 여자들. 나 또한 한 명의 여성으로서 그런 존재를 한 명쯤 가슴에 부적처럼 품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때가 있다. 그래서 마돈나를 롤모델로 삼아볼까 깊이 고민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 여자는 세상에서 제일 유명하고, 부자이고, 나이 어린 남자들이랑도 막 자고 다니니까. 멋있나? 솔직히 잘 모르겠는데, 적어도 많은 사람들이 멋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으니까.하지만 내가 가장 답이 안 나오던 시기, 가장 맹렬하게, 반이성적으로, 정신 나간 바보처럼 너무나도 되고 싶었던 것은 그런 멋진 여자들의 정반대, 심지어 인간도 아닌, 아니메의 유령 같은 저혈압형 헤로인, 에 나오는 아야나미 레이였다. 나는 아야나미 레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단지 그렇게 되고 싶었다. 잿빛 하늘색의 단발머리, 칙칙한 붉은색의 눈, 창백하다 못해 답답해 보이는 피부, 부러질 것처럼 마른 몸, 아무 감정도 실려 있지 않은 가느다란 목소리. 그것은 그야말로 세기말 중2병 식 청순함의 표준 같은 것이었다. 음침한 개저씨 이카리 겐지에 의해서 탄생한 인간병기,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복제인간 아야나미 레이는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반여성적인 캐릭터다. 마침내 신이 되었다가, 주인공 신지의 뜻에 의해 붕괴되어버리는 결말까지 그녀는 스스로의 뜻으로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아니 스스로의 의지 자체가 없다. 반여성적인 것을 넘어서 반인간적인 인물이다. 그래, 나는 그런 게 되고 싶었다. 인간이 아니고 싶었다. 뭔가 그냥 물체 같은 게 되고 싶었다. 죽고 싶었다.돌아보건대 그 시기 나의 아야나미 레이에 대한 집착은 위험수위를 넘나들던 우울증 때문이었다. 죽고 싶다고 말하는 대신 아니메의 헤로인이 되고 싶다고 말하고 다녔던 것이다. 사실 이라는 작품 자체가 그런 사춘기적 절망을 완벽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극장판의 결말에서 다행히도(혹은 싱겁게도) 신지는 “부디 모두 죽어버렸으면 좋겠어.”라는 중2병적 한을 철회하고, 아스카와 함께 살아남는다. 레이는 부서진 채로 거대한 석상처럼 남았다. 아아, 그녀는 내 바람처럼 정말로 물체가 되어버렸다. 정말이지 부러웠다.요즘 종종 어떤 식의 미련함에 대해 생각한다. 물체가 되겠다고 우기는 답 안 나오는 미련함, 끝내 물체가 되지 못하고 한이 되어버린 미련함에 대해서. 그건 사실 굉장히 유아적인 감정이다. 더 이상 ‘땡깡’이 먹히지 않게 된 나이가 된 자의 ‘멘붕’ 같은 것. 그것이 여전히 나의 마음속 어디엔가 남아 있다. 그래서인가 이따금 몹시 쓸쓸해지면 미용실로 뛰어들어가 멍하니 읊조리고 싶다. “옅은 청색의 짧은 머리카락으로 부탁합니다. 요즘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도통 모르겠어요.” 김사과(소설가)전혜린부터 제인 버킨까지하루 종일 책장 앞에 앉아 뽀얀 먼지 뒤집어쓰며 깊숙이 숨어 있던 책까지 꺼내 읽고 있다. 지난 15년 동안 내게 큰 영향을 끼친 여자들은 아이튠스 앨범 커버 이미지처럼 스무드하게 바뀌어갔다. 그녀들의 삶을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 싶어서 사 모은 자서전, 전기소설, 아트북 등이 포위하듯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자연스레 지난 시간 동안 빛깔을 달리한 내 안의 욕망들, 어쩔 수 없이 사그라들었던 것,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 그렇지만 놓치지 말아야 했던 것, 그리고 현재 나의 모습까지 반추하게 되었다.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여배우라는 존재의 빛나는 여신상이 된 마릴린 먼로처럼 천생 배우가 되고 싶었던 때도 있었고, 권력, 예술, 남자, 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움켜쥔 욕망 덩어리 카를라 브루니나 아이코닉한 퍼스트 레이디 재클린 케네디처럼 사회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인 20대 시절도 있었다. 노년에 자신의 영향력을 사회에 공헌하는 데 헌납한 오드리 헵번 같은 삶을 설계하기도 했고, 손열음처럼 동시대 예술가에게서 아티스트로서의 마음 가짐을 배우기도 했다. 언제나 침대 머리맡에 놓여 있는 전혜린의 책에서는 우울하고 차분한, 내게 가장 익숙한 감정들에 깊이 침잠하며 내 본래의 모습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고찰해보기도 했다. 헬렌 니어링이나 패티 스미스의 책을 읽으면서는 자신과 같은 세계관과 이상을 가진 파트너와 인생의 한때를 보내는 행운에 대해 간절히 소망해보기도 했다. 언젠가는 타샤 튜더와 제인 구달처럼 자연과 함께하는 삶으로 저물어가리라, 다짐한 적도 있다.그리고 제인 버킨! 일본 대지진 이후 가진 자선 공연 투어로 한국을 찾았을 때 공연을 보러 갔는데 넉넉한 화이트 셔츠를 입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노래를 부르던 모습이 뇌리 깊숙이 아로새겨졌다. 노년의 여성을 보면서 매력적이다, 를 넘어 섹시하고 귀엽다, 라고 느낄 수 있다는 것부터 같은 여자로서 또 대중예술가로서 큰 자극이 되었고 이런 방법으로 남을 도울 수 있구나, 하는 아이디어도 얻었다. 돌이켜보니 이 여자들이 있었기에 내가 나이가 들고 인생에서 추구하는 가치도, 라이프스타일도 바뀌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변하며 잠깐씩 길을 잃을 때 다시 중심을 잡고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여기까지 걸어올 수 있었구나, 싶다. 어떤 이들은 고인이 되기도 했고 또 어떤 이들은 아득히 멀리 있지만 상상 속에서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밀한 사이였던 11명의 여자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임수정(배우)https://instagram.com/p/BIR3qiIjYz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