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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 개봉을 앞두고 만난 배우 송중기와 이희준

짙게 드리워진 의심과 숨겨진 본심. 그 사이에 선 두 배우, 송중기와 이희준.

프로필 by 안서경 2024.12.20
송중기가 착용한 레더 코트, 니트, 팬츠, 슈즈는 모두 Tom Ford. 이희준이 착용한 레더 재킷, 셔츠는 Ferragamo. 목걸이는 Chaumet. 팬츠, 벨트,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하퍼스 바자 두 사람이 작품에서 만난 적은 이번이 처음인데, 오늘 화기애애한 촬영장 분위기를 보니 무척 가까워졌나 봐요.
송중기 진선규 선배님, 양경원 선배님, 서로 겹치는 지인이 많아요. 형과 형네 극단 사람들과 친해져서 공연을 보러 자주 가요.
이희준 중기가 와서 항상 맛있는 걸 사줘요.
하퍼스 바자 오늘 화보는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이하 <보고타>) 속 국희와 수영이 방 안에서 대립하는 장면에서 착안했어요. 영화는 모든 걸 잃고 콜롬비아 보고타로 간 소년 국희가 의류 밀수업자 선배인 수영에게 밀수를 배우고 보고타 한인 사회를 평정하기까지의 시간을 다루죠. 누아르 같은 장르 영화를 떠올렸는데 전형적인 예상을 벗어나더군요.
이희준 보자마자 작품을 하겠다 결정했어요. 저 역시 남미, 콜롬비아 하면 마약이 등장할 거라 생각했는데 뻔한 설정이 아닌 점이 좋았어요. 의류를 수입하면서 거기서 살아가는 한인들의 이야기, 서로 경쟁하고 속이는 모습이 실제 우리네 인간관계를 보여주는 것 같아 매력적이었죠.
송중기 이 영화의 장르를 구분하자면 드라마가 아닐까 총격전이 있지만 사람들 간의 심리와 갈등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감독님의 전작 <소수의견>을 재미있게 봐서 사람들 간의 관계를 깊이 표현하실 거란 기대가 있었어요.
코트, 재킷, 팬츠는 Dolce & Gabbana. 슈즈는 Christian Louboutin. 링은 Cartier.
재킷은 Versace. 니트는 Giorgio Armani. 팬츠는 Labeless. 귀고리는 Chaumet. 벨트, 반지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하퍼스 바자 각자 맡은 인물의 힘은 어디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나요?
송중기 국희가 10대인 영화의 전반부와 30대가 된 후반부로 나뉘는데 순수했던 아이에게 점차 현실의 때를 묻히며 스산해지는 지점이 매력 있었어요. 그 변화를 한 인물로 표현한다는 점이 배우로서 끌리는 면이었죠.
이희준 수영을 연기하며 왜 이렇게 국희를 아낄까, 대본엔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은데 어떻게 이 친구를 그렇게 믿고 좋아하게 됐을지 내내 고민했어요. 알 수 없는 끌림이었겠죠. 살면서 그런 사람을 만날 때가 있잖아요. 그렇게 소중하게 여긴 사람이어야지만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감정이 고조될 수 있을 것이고요.

하퍼스 바자 전반부와 후반부에서 두 인물의 관계가 확연히 변화하게 되죠. 인물들의 동기는 선명하지만 감정 표현은 절제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송중기 국희 가족이 IMF 이후 처음 보고타에 오고 국희가 밀수업에 적응하고 한인 사회의 장이 되기까지 미묘하게 정서가 계속 변해요. 괜히 너무 대단한 영화를 언급하는 것 같아 살 떨리긴 하지만 <대부>의 마이클 콜레오네를 떠올렸어요. 패밀리 비즈니스에 들어가기 전 순박한 표정과 아버지가 쓰러지신 후 와이프를 바라보는 표정은 같은 인물인데 확연히 다르죠. 그런 콘트라스트를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이희준 구체적인 배신감. 그 변화, 배신이라는 감정 때문에 많은 일이 일어나는데 그걸 전형적이지 않게 표현하는 게 저에게 가장 중요했죠.
하퍼스 바자 송중기 씨는 <로기완>에서도 벨기에라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인물을 연기한 적 있어요. 이방인의 정서를 연기하면서 전작과의 차이점은 무엇이었나요?
송중기 제가 근래 맡은 캐릭터 중에서 가장 주체적인 인물이에요. 드러내진 않지만 속에서 거침없는 욕망이 들끓는 친구죠. <화란>의 치건이나 기완은 삶의 의욕이나 기본적인 욕구에 관심이 없는 캐릭터들이었던 반면, 국희는 욕망을 솔직하게 밀고 나가고 성공해서 번듯하게 살겠다는 의욕이 가장 뚜렷한 인물이에요.
재킷, 톱, 반지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코트는 Amiri. 톱은 Circusfals.

하퍼스 바자 이희준 씨가 맡은 수영은 보고타에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의류 사업가지만 무게를 잡기보단 위트를 잃지 않는 점이 <핸섬가이즈> 상구의 얼굴도 떠올랐어요. 콧수염이나 의상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속 브래드 피트를 참고했다고 밝히기도 했죠.
이희준 한때 엘리트였던 사람이 밀수업자가 되어 낯선 사회에서 살아가면 어떤 모습일까, 살아남기 위해 어떤 태도를 취할까 고민한 결과였어요. 그 나라 사람들과 다르게 생겼으니 그들처럼 보이고 싶어 애쓰지 않을까. 롤렉스 시계도 차고, 콧수염도 기르고. 열등감이 있으니 매사 자신감 있는 척, 여유 있는 척을 하는 사람일 것 같았죠. 단 너무 거칠기보다는 섹시하고 싶었고요.(웃음)
하퍼스 바자 상대역으로 서로 호흡을 맞추며 어떤 영향을 받았나요?
이희준 중기는 넓어요. 모두를 아우르는 뜨거움이 있어요. 현장에서 주연 배우가 자기 것 맡기도 바쁜데, 단역이 긴장하는 것까지 캐치하고 모두를 챙기는 성격이죠. 조연과 악역을 받쳐주면서도 전체를 끌고가는 힘이 있는 배우라 느꼈어요.
송중기 제 신조가 “같이 먹고 살자”거든요.(웃음) 제가 숲을 보는 스타일이라면 형은 제가 보지 못하는 나무의 잎사귀까지 볼 만큼 섬세한 편이에요. 아까 유튜브 촬영하면서 보여준, 형이 그린 그림처럼 형이 관찰력이 되게 좋아요. ‘이 인물이 여기서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깊이 파고드는 지점이 많은데 닮고 싶은 점이에요.
하퍼스 바자 국희와 수영뿐만 아니라 권해효 씨가 맡은 박병장, 박지환 배우가 맡은 작은 박사장 등 모든 캐릭터를 선악으로 재단할 수 없더군요.
송중기 한번은 조현철 배우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이 영화는 모든 캐릭터가 처음과 끝이 다르다고. 되게 공감이 되더라고요.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 수상자답죠.(웃음)
하퍼스 바자 수개월간 함께 콜롬비아 현지에서 지낸 경험은 어땠나요?
이희준 몇 달 동안 같은 호텔에 묵으면서 느낀 건 각자 성향이 참 다르구나. 박지환 배우는 쉴 때 방에서 요가를 하고, 조현철 배우는 시나리오를 쓰고, 종수 형님은 요리를 해서 스태프를 챙겨주고, 해효 선배님은 기타를 치다가 시가 바를 가기도 하며 멋있게 현지를 즐기시고요.
송중기 제 입장에서는 엄청 약 올랐어요. 저는 형님들이 맥주 한잔 하거나 커피를 마시러 갈 때 촬영할 신이 많아 시간이 없었거든요. 형들이 놀리면 막 배 아파하고 그랬어요.(웃음) 희준이 형과 “이렇게 배우들끼리 수개월 동고동락하는 생활 자체가 영화에 나오는 한인 상인들의 모습 자체다”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영화도 심각한 사건이 갈등을 만드는 게 아니라 질투, 경쟁 서로 그런 마음에 관계가 달라지죠. 저희도 누구 커피숍 안 데려가면 삐치고, 맛집 같이 못 가면 서운해하고 그러다 술 마시면서 화해하고 그랬거든요. 그게 사람 사는 거잖아요.(웃음)
하퍼스 바자 중기 씨는 매 작품마다 단체 회식을 즐긴다고 알려져 있는데, 보고타에서도 회식을 주도했나요?
송중기 감히 제 인생 최고의 회식이었어요. <로기완>을 찍을 때 헝가리에 5개월 동안 머물면서 일하는 문화가 다르니 현지 스태프들과 서로 입장을 이해하기가 어려운 순간이 있더라고요. 콜롬비아 스태프들의 볼멘소리가 나오던 즈음 ‘오케이, 회식할 타이밍이 왔다’ 싶었어요. 형님들과 아이디어를 내며 소맥 맛을 보여주자 싶었는데, 장기자랑 때 희준이 형이 재미로 살사를 추니까 콜롬비아 스태프들이 지기 싫어 막 춤을 추더라고요. 그랬더니 경쟁심이 붙어서 서로 배틀이 붙은 거예요, <쇼 미 더 머니>처럼. 파티였죠.

하퍼스 바자 러닝 타임 내내 황량한 들판과 비탈진 산길 등 다양한 배경이 등장하죠. 각자 가장 기억에 각인된 장면을 꼽아본다면요?
이희준 카르타헤나에서의 촬영이 진짜 아름다웠어요. 우리나라 부산 같은 휴양지인데 보고타에는 바다가 없으니 탁 트인 장면을 찍는 게 즐거웠죠.
송중기 여러 장면이 떠오르지만 장소보다 기억에 남는 건 희준이 형, 김성재, 조현철, 이석 배우와 다 같이 오리털 파카를 입고 방에서 찍은 장면이에요. 그 장면을 찍을 땐 몰랐는데 막상 영화로 보니까 흡인력 있게 몰입되더라고요. 형이 말한 대사 중 “널 믿어, 널”이라는 대사가 있는데, 그전 컷에서 박병장이 박사장에게 “네가 날 믿는다고? 귀신을 속여라”라는 장면 바로 다음에 그 대사가 나오거든요. 그게 결국 우리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싶었죠.
하퍼스 바자 영화 속 인물들은 선택 앞에서 모두 ‘생존’을 기준점으로 삼죠. 각자 선택을 앞두고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이 있나요?
이희준 저는 어렵고 애매할 때 바로 이 질문을 떠올립니다. ‘일주일 뒤에 죽는다면?’ 그러면 많은 것이 명확해져요.
송중기 자신에게 솔직하려 해요. “너 이거 진짜 좋아? 네가 좋아서 선택하는 거야, 아니면 남들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 거야?” 계속 물어요.
재킷은 Berluti. 톱은 Versace. 슈즈는 Jimmy Choo.
셔츠는 Bottega Veneta.


하퍼스 바자 두 사람 모두 최근 몇 년 동안 쉬지 않고 작품을 이어왔죠. 희준 씨는 계속 연극 무대에도 서왔고요. <보고타>라는 작품을 통과하며 떠올린 질문이나 키워드 같은 것들이 있다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송중기 작품을 맡는 건 무조건 인연이라고 생각해요. <승리호>라는 영화를 찍을 때 이 영화 시나리오를 만났어요. 같이 찍는 진선규 형에게,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가 생겼는데 표현법을 다르게 접근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말한 기억이 나요. 저는 연극영화과를 졸업하지도 않았고, 연기를 전문적으로 배워본 사람이 아니니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을 털어놨거든요. 집에서 맨날 혼자 연습하는 게 신물이 나던 참이었고요. 그랬더니 선규 형이 “나랑 희준이 형이 하는 연기 모임이 있는데 한번 와보지 않을래?” 제안했고 그때 형을 만났어요. 그러다 이후에 형이 이 작품 제안을 받은 거죠. 인연이 아니라면 설명할 방도가 없는 작품이에요.
이희준 저 역시 그저 같이 재미있게 연기해보고 싶단 마음뿐이었어요.
하퍼스 바자 두 사람을 계속 배우로 살게 하는 지점은 무엇인가요?
이희준 결국 ‘공감’인 것 같아요. 배역을 맡을 때마다 그 역할에 공감해보면서 제 삶이 조금씩 달라지거든요. 수영이 겉은 멋있는 척하지만 속은 얼마나 불안으로 가득 찬 사람일까, 떠올린 것처럼. 지금 <대학살의 신>이라는 연극을 하고 있는데 부부끼리 막 싸우는 이야기예요. 관계 속에서 이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그럼에도 살아가는구나, 그런 걸 이해해보면서 분명 제 삶이 변화하고 있거든요. 아픔을 보면서 새로움을 찾는 게 아이러니하지만요. 이제 연기의 기술적인 측면보다 한 인간을 깊이 있게 보는 시간 자체가 참 좋아요.
송중기 사실 배우라는 직업을 엄청 고귀하거나 대단한 직업이라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수많은 직업 중 하나일 뿐이고, 결국 제가 행복하기 위해 하는 일이지 행복하지 않다면 언제라도 그만둘 수 있는 직업이라 생각하죠. 반대로 보면 지금 이 일을 계속하는 건 너무 행복하니까 하고 있는 거예요. 그 이유는 저라는 인간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성숙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들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혼자 많은 생각을 해보고, 타인의 피드백을 받으며 엄청난 마음 공부가 되죠.
하퍼스 바자 <보고타>는 2024년의 마지막 날 개봉하는 영화이자 새해 관객들을 맞이할 영화예요. 두 사람의 한 해는 어땠나요?
이희준 불교 신자로 정토회라는 모임을 나가는데 지난주 법회에서 한 해 괴로웠던 열 가지 순간을 떠올려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런데 최근 한 달 말고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아무리 심적으로 괴롭고 힘들더라도 모든 게 결국은 지나간다는 걸 새삼 깨달았죠. <바자> 독자분들도 한 해 너무 애쓰셨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송중기 저는 계속 ‘인연’이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지금 천우희 배우와 <마이 유스>라는 드라마를 찍고 있는데 너무 좋은 파트너를 만난 것 같아서 행복해요. 또 얼마 전 둘째딸이 태어나 소중한 인연이 생겼죠. 행복하다는 말로도 부족하고 충만한 날들이에요. 2024년의 마지막과 2025년도 <보고타>로 시작하며 머지않아 콜롬비아에 다시 가서 영화를 선보일 수 있다면 어떨까, 그럼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아요.
송중기가 착용한 코트, 재킷, 팬츠는 모두 Dolce & Gabbana. 슈즈는 Christian Louboutin. 이희준이 착용한 재킷은 Versace. 니트는 Giorgio Armani. 팬츠는 Labeless. 코트, 벨트, 반지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Credit

  • 사진/ 안주영
  • 스타일리스트/ 박태일(송중기), 박선용(이희준)
  • 헤어/ 오종오(송중기), 박재경(이희준)
  • 메이크업/ 최수일(송중기), 김정남(이희준)
  • 세트 스타일리스트/ 전예별
  • 어시스턴트/ 정지윤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