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My life, my style

편안하고 세련되며 개성 넘치는 로라 베일리(Laura Bailey)의 웨스트런던 자택. 모델이자 사진작가인 그녀의 뛰어난 안목이 그대로 투영된 공간이다.

프로필 by 윤혜연 2024.12.01
노팅힐 자택에 있는 로라 베일리.

노팅힐 자택에 있는 로라 베일리.

노팅힐 거리를 따라 늘어선 스투코(stucco) 외장재의 집들 중 로라 베일리의 집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인도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위엄 있는 5층 맨션. 울창한 나무가 둘러싼 넓은 테라스와 집을 감싸는 현관이 인상적이다. 현관에는 바구니가 달린 그녀의 자전거가 세워져 있어 마치 리처드 커티스(Richard Curtis) 영화 속 장면을 연상케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이곳에서 함께 사는 에릭 펠너(Eric Fellner)는 영화 <노팅힐>을 비롯한 여러 편의 커티스 영화를 만든 제작자다.
모델이자 작가, 사진가인 베일리가 복도에서 나를 반겼다. 복도는 네이비 카펫이 깔린 계단에서 집의 중심으로 이어진다. 오늘 그녀는 샤넬의 스트라이프 패턴 점퍼와 다크 그레이 컬러 알렉스 이글 팬츠수트를 입고 있다. 과연 프랑스 패션 하우스와 영국패션협회의 앰배서더 역할에 걸맞는 룩이다. “저는 수트를 트랙수트처럼 입고 자전거를 타요. 그게 제 스타일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패션에 있어서 여성스럽고 로맨틱한 면도 있지만, 언젠가부터 점점 캐주얼하고 보이시한 스타일을 즐겨 입는 것 같아요.”
그녀는 나를 주방으로 안내했다. 이곳은 의외의 가구들이 묘하게 어우러져 예술적인 보헤미안 무드를 자아냈다. 선명한 빨간색과 수선화 같은 노란색 스툴이 로열 블루 컬러의 벤치와 대조를 이루고, 커다랗고 변화무쌍한 캔버스 그림이 가족 사진으로 장식한 메모판 옆 벽을 채웠다. 한쪽 구석에는 반려견 레이미와 밤비를 위한 침대가 놓여 있었다. 베일리는 긴 나무 식탁 위에 흩어진 서류를 정리하며 말했다. “오래 산 집답죠. 완벽하지 않은 부분들도 제겐 아름답게 다가와요.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좋거든요.” 이곳은 베일리와 펠너, 두 사람의 자녀인 17살 루크와 14살 타이거가 무려 16년간 거주한 집이다. 이 동네에서 거의 20년을 살았고, 그런 만큼 지역사회와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해왔다. 실제로 동네 카페에 가는 길에도 그녀는 마주치는 이웃 절반 이상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또 일주일에 한 번 동네에서 아이들의 숙제와 휴일 활동을 돕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드레스는 Chanel.

드레스는 Chanel.

옥스퍼드셔 시골에서 자란 베일리는 늘 대도시에서의 삶을 동경했다. “항상 산만하고 독립적이었어요. 하키와 육상이 절 구해줬죠. 운동은 제 정체성과 자아를 형성해줬어요.” 사실 패션 분야 경력은 그녀의 관심 밖에 있었다. “저는 확실한 목표를 가진 아이가 아니었어요. 그저 멀리 떠나고 싶다는 꿈과 예술 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은 있었지만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몰랐어요.” 사우샘프턴 대학교에서 예술사와 영문학을 전공한 베일리는 21살에 킹스로드에서 모델 제의를 받았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마크 제이콥스, 게스와 같은 브랜드와 일하기 위해 뉴욕으로 날아갔다. “그때 제 열정이 시작됐어요. 물론 모델 일을 할 때 다른 꿈도 포기하지 않았죠. 때문에 아마 때때로 프로페셔널하지 않게 보였을지도 모르겠어요. 전 도시를 떠나 산에 오르거나 남자친구와 곧잘 도망치는 부류의 아이였으니까요.”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등반 이야기만큼은 농담이 아니다. 2010년 베일리는 아동 자선사업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킬리만자로산을 등반했다.) 베일리의 커리어는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다양해졌다. 그녀는 이에 대해 “스스로에게 주어진 모든 기회를 흡수한 덕”이라고 표현했다. <하퍼스 바자>를 비롯해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는가 하면, 친구인 세라자드 골드스미스(Sheherazade Goldsmith)와 로켓 런던이라는 주얼리 브랜드를 창립했다. 패션 브랜드 벨라 프로이드와 쉬림프의 캠페인 필름을 제작하기도 했다. 모델 일을 하지 않을 땐 코트니 러브(Courtney Love)와 같은 셀러브리티의 포트레이트를 브랜드 캠페인에 담고, 댄서 프란체스카 헤이워드(Francesca Hayward)의 잡지 화보도 촬영했다. 물론 패션위크 때만큼은 시몬 로샤나 프린, 에르뎀의 옷을 입고 프런트 로에 앉아 카메라 세례를 받는 셀러브리티지만 말이다.
베일리의 책상.

베일리의 책상.

오스카 드 라 렌타의 빈티지 슬립 드레스.

오스카 드 라 렌타의 빈티지 슬립 드레스.

샤넬 슈즈.

샤넬 슈즈.

베일리와 반려견 레이미.

베일리와 반려견 레이미.

베일리의 옷장은 클레멘츠 리베이로의 캐시미어 점퍼부터 메종 미셸의 모자(그녀가 “아만다 모자 안에 산다”고 표현할 정도로 자주 착용하는 아이템), 라코스테의 화이트 테니스 룩, 에레스의 수영복,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 드레스가 고루 사이좋게 자리하고 있다. “옷장을 정리하려 물건을 나눠주곤 하지만, 빈티지 옷은 영원히 간직할 거예요. 단순히 옷이 아니라 그 안에 제 많은 감정과 기억이 스며들어 있거든요.” 베일리는 자신의 옷들은 신중히 큐레이팅된 게 아닌,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충동적으로 모아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결과 쉽게 모방하기 어려운, 무심한 듯 즉흥적인 그녀만의 스타일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녀는 인테리어에 있어서도 비슷한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 켐프턴 마켓과 골본 로드에서 산 앤티크 아이템과 고가의 작품들이 조화를 이루는 것. “우리 집은 제게 기쁨을 주는 물건으로 가득 차 있어요. 항상 새것을 사진 않죠. 저는 물건을 오래오래 사용해요.” 벽에는 그녀의 친구들 작품이 빼곡하다. 샘 테일러 존슨(Sam Taylor-Johnson)의 사진, 쿠엔틴 존스(Quentin Jones)의 콜라주, 에이미 개드니(Amy Gadney)의 그림. 이외에도 폴라 레고(Paula Rego)의 진귀한 동판화와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의 잉크 드로잉, 아들 침대 위에 걸려 있는 로즈 와일리(Rose Wylie)의 거미 그림까지. “켄트에 있는 로즈의 스튜디오에서 이 그림을 샀어요. 루크와 함께 누워 있는 듯해서 정말 좋아요. 행복한 공간이에요.” 이렇듯 그녀는 집 안 곳곳에 평화로운 코너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제겐 아이들과 카드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을 수 있는 차분한 공간이 중요해요.” 그녀의 침실 옆 테이블을 살펴보면 다양한 독서 취향이 드러난다. 예를 들면 데버라 리비(Deborah Levy)의 <Real Estate>, 바바라 헵워스(Barbara Hepworth)의 자서전, 올리비아 랭(Olivia Laing)의 <에브리바디>, 그리고 미시마 유키오(Mishima Yukio)의 <목숨을 팝니다> 같은 것들.

베일리의 자택 거실.

베일리의 자택 거실.

테니스 코트에 있는 베일리.

테니스 코트에 있는 베일리.

베일리에게 집은 무조건 편안한 공간이어야 한다. 손님들이 원하면 신발을 신어도 되고, 반려견은 어떤 방에든 따라 들어올 수 있으며, 어떤 물건을 깨뜨린다고 해서 세상이 끝난 것은 아니라는 것. “뭔가를 너무 소중해하는 걸 꺼려요. 뭐든 편하게 즐겨야 하고, 특별한 날을 위해 너무 아끼지 말아야 해요. 지금이 가장 좋은 때니까요.”


LAURA’S WORLD


포스터는 약 6만원대 Carla Llanos by Glassette. 볼캡은 약 59만원대 Maison Michel. 반지는 가격 미정 Selected by Solange. ‘레 젝스클루시프 드 샤넬 보이 오 드 빠르펭’ 향수는 가격 미정 Chanel. 폴로 셔츠는 약 16만원대 Lacoste. 러그는 가격 미정 Selected by Peter Mikic. 향초는 약 21만원대 Martha Freud. 접시는 약 18만원대 Astier de Villatte by Cutter Brooks. 화병은 약 4만원대 Summerill & Bishop. 꽃 씨앗은 약 2만원대 Petersham Nurseries. ‘크렘 드 라 메르 모이스처라이징 크림’은 가격 미정 La Mer.

Credit

  • 글/ Brooke Theis
  • 번역/ 이민경
  • 사진&스타일리스트/ Cathy Kasterine
  • 헤어/ Diana Moar
  • 메이크업/ Zoe Taylor(Chanel), Eoin Whelan(Jones Road)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