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벽난로와 아치 모양의 창이 있는 메인 거실.
밝은 블루 레깅스에 탱크톱을 입고 두툼한 블루 니트 카디건을 걸친 나오미 와츠가 맨발에 노 메이크업으로 촬영팀을 반겼다. 생각지도 못한 따뜻하고 편안한 환대로 우리 모두를 놀라게 한 그녀는 커리어 내내 강렬하고도 수수께끼 같은 캐릭터를 도맡으며 카멜레온 같은 매력을 발산해온 배우다.
집 안에서도 그녀를 닮은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거친 오크 바닥은 흰 벽이 주는 차가운 분위기를 상쇄시키는 동시에 자연스럽고 소박한 느낌을 준다. 개조한 부엌은 창문으로 둘러싸인 거실로 이어지며 비치 스톤으로 꾸민 거대한 2층짜리 벽난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드레스는 Georgio Armani. 스웨터는 Tilly Rose Knits.
우아한 다섯 개의 침실로 이루어진 이 집은 오랜 시간 앤티크 숍이나 중고 숍, 여러 여행지에서 모아온 자연 소재의 러그와 우드, 라탄 가구로 꾸며져 있었다. 몇몇 컬러는 전반적인 뉴트럴 톤에 포인트를 주면서도 생동감 있는 분위기를 더해주었다. 터키와 모로코에서 구입한 리넨 쿠션과 담요, 오랜 세월 모은 여러 가지 그림과 프린트로 꾸며진 월 데코, 그리고 가족 사진 컬렉션은 그녀의 좀더 사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 “집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자기 표현의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옷에 투자했던 것처럼, 이제는 집에 투자하고 있어요. 30대 땐 정원에 돈 쓰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죠. 엄마는 늘 사람은 어떤 시점이 지나야 정원을 찾게 된다고 말하곤 했어요. 아이들을 낳고 나면 나무와 꽃 심는 걸 자랑하게 된다고요. 역시 엄마 말은 틀린 게 없었어요. 사람이란 늘 무언가의 성장을 보고 싶어하거든요.” 나오미 와츠가 말했다.
거친 느낌의 오크 우드 바닥이 주방까지 이어진다.
와츠의 엄마이자 배우로도 활동했던 마이판위 에드워드(Myfanwy Edwards)는 어릴 때부터 그녀가 배우를 시작하는 데 큰 영감을 주었다. 추후 에드워드는 앤티크 딜러이자 무대 의상 및 세트 디자이너로 일하며 와츠와 긴밀한 모녀 사이를 유지했고, 와츠가 새로운 집을 디자인할 때도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엄마는 정말 창의적인 분이에요. 이곳은 다 엄마로부터 시작된 거죠. 돈이 없었던 시절에도 우리 집은 너무도 예쁘게 꾸며져 있었거든요. 엄마는 앤티크를 사고 팔았고, 엄마 손에 이끌려 벼룩 시장을 다니곤 했어요. 모험가였던 당신은 보호 시크에 빠져 있었던 데다 다방면에 관심이 많았어요. 엄마의 모든 것들은 다소 정신없고 재미있었죠. 반면 전 좀 더 깨끗한 것들이 좋았어요. 하지만 머릿속엔 이따금씩 너무 화이트로만 가지는 말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어요. 당신의 지론은 “컬러가 없으면 영혼도 없다”였거든요. 그래서 꽃이나 베개, 텍스타일은 나름 그런 영향이 반영된 것이에요.”
사실 와츠는 약간은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유년기를 보냈다. 영국 켄트에서 태어난 그녀는 네 살 때 부모님의 이혼을 겪어야만 했고, 그룹 핑크 플로이드의 사운드엔지니어 겸 로드 매니저로 일했던 아버지 피터 와츠는 3년 뒤 마약 중독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 까닭에 와츠는 열네 살의 나이에 호주에 정착하기까지 영국 곳곳을 수없이 옮겨 다녀야 했다.
“이사를 하도 많이 해서 저희가 집을 데리고 다니는 듯한 느낌까지 받았었죠. 학교도 여러 곳 다녔어요. 항상 길 위에 있었고 그게 제가 살아온 방식이죠. 물론 장단점이 있어요. 어디서든 잘 적응하지만 언제나 조금씩은 이방인이라 느끼니까요.” 어쩌면 이러한 배경이 그녀를 몬토크에 뿌리내리게 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오빠인 포토그래퍼 벤 와츠와 전 파트너이자 열네 살 사샤와 열세 살 카이의 아빠인 리브 슈라이버가 가까이에 살고 있어 가족 간의 유대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웃도어 라운지의 나오미 와츠. 톱, 스커트는 Dior.
그녀의 집은 롱아일랜드의 맨 끝, 몬토크에서 가장 높은 지대 중 한 곳에 위치해 있는 만큼 몬토크 호수와 포트 폰드 베이, 대서양으로 둘러싸인 뷰를 갖고 있다. 바다가 근거리에 있다는 건 아무래도 호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녀에게 위로가 되는 듯하다. “이 집에 푹 빠진 건 바다가 보이는 전망 때문이었어요. 잔잔하고 편안하고…. 또 빛이 아름답죠. 이런 가볍고 밝은 느낌이 좋아요. 제일 좋아하는 순간은 해 질 무렵 목욕할 때거든요. 석양을 볼 수 있는 예쁜 작은 창문이 있어요. 해변도 너무 좋고요.” 그녀가 말했다. “바다가 거기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냄새를 맡기도 하고, 쉴 때나 이른 아침, 혹은 저녁에 수영을 할 수도 있죠.”
부엌 선반에 있는 여러 가지 꽃병은 Bloomist, 그 외는 나오미 와츠 소장품.
자신을 ‘집순이’라 말하는 와츠는 보통 주말에 가족과 친구들을 불러 요리를 하고, 카드 게임을 하거나 벽난로에서 와인을 마신다. 팬데믹으로 인해 평범한 일상에 더욱 감사하게 된 것 같다고. “우린 다 같이 겪었잖아요. 잠시 몸을 웅크리고, 집을 가장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고, 무엇보다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고 싶어졌어요.” 팬데믹으로 인한 봉쇄에 대해 그녀가 입을 열었다. “불안하기만 하고,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죠. 사랑하는 사람들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외로움이 컸던 만큼 삶에서의 단순한 것들이 더 중요해진 것 같아요. 이 혼란이 사라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없으니까요. 가족을 위해 잠시 멈추는 시간을 가져야 해요. 이번 일로 인해 가족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전부이자 결국 우리 모두 그것을 위해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죠.
반려견 단테와 함께 포즈를 취한 나오미 와츠. 니트, 스커트는 Miu Miu.
그 즈음 SNS 등지에는 집 안 개조, 부엌 레노베이션, 새로운 창조적 취미에 대한 게시물이 넘쳐났고 와츠도 그런 무리 중 한 명이었다. “이 시기에 다른 사람들이 취미를 만들고 즐기는 걸 마냥 지켜만 보고 싶지는 않았어요. 물론 옷을 만들거나 빵을 굽지는 않았죠. 아, 강아지 한 마리를 구조했어요.” 그런가 하면 그녀는 도자기 만들기에 도전했고, 영화 〈고스트〉를 추억하는 노래 ‘Unchained Melody’에 맞춰 영상을 올리기도 했는데 게시물에 배우 데미 무어를 태그하며 그녀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제 도자기는 정말 엉망이었어요.” 그녀가 솔직하게 고백한다. 팬데믹 동안 도자기 제작과 여러 다른 취미도 즐겼지만 자신의 뷰티 사업에 매진하기도 했다. 깨끗하고 지속가능한 제품에 집중하는 온다 뷰티(ONDA Beauty, 새그 하버, 롱아일랜드, 트라이베카, 뉴욕, 호주 시드니에 매장이 있다)의 공동 창업자인 그녀는 당시 회사의 방향성을 리테일 비즈니스에서 온라인 비즈니스로 전환해야 했다.
브랜드 공동창업자인 라리사 톰슨과 사라 브라이든 브라운을 소개한 와츠는 그 일에 본격적으로 관여하기에 앞서 제품을 테스트하는 역할을 맡았었다. “언젠가부터 호르몬 변화가 일어나더니 피부가 극도로 민감해지는 시기가 찾아왔어요. 어떤 때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죠. 그때 라리사가 한번 써보라고 제품을 줬는데 눈에 띄게 바로 효과를 봐서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 거예요. 제가 이 사업이 성공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긴 거죠. 물론 팬데믹 기간에는 사업 규모에 관계없이 다들 큰 타격을 입었지만, 일단 우리는 계속하고 있어요.” 돌이켜보면 배우로서 그녀의 삶도 이와 비슷했다. 몇 번이고 포기할까 생각했지만 계속 걸어왔다.
“저를 구해준 건 스스로의 결심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녀가 말한다. “실패하고 싶지 않아요. 작은 실패들은 괜찮아요. 그건 좋은 공부니까요. 저는 제 아이들에게 항상 실패는 괜찮은 거라고 얘기해줘요. 그 모든 것들의 기저에는 이 일이 제 소명이라는 믿음이 있었죠.” 무려 10년간 오디션에서 실패를 거듭한 그녀는 어느 날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에 캐스팅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와츠는 감독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무덤까지 가져갈 은혜”라고 표현했다. “감독님을 만난 순간 모든 것이 잘 맞아떨어진 건 정말 행운이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오랜 시간 무명 배우로 고군분투했고, 일 년에 기껏해야 한두 개의 작품에 출연하며 마치 고용 배우처럼 일하겠거니 체념하고 있었거든요.”
라운지의 소파에서 이지와 함께. 톱, 스커트는 Zimmermann Cashmere, 스웨터는 Suzie Kondi, 바닥에 놓인 샌들은 Gianvito Rossi.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성공에 힘입어 와츠는 할리우드의 가장 유명한 감독들에게 캐스팅되었다. 고어 버빈스키 감독의 〈링〉, 피터 잭슨의 〈킹콩〉,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이스턴 프라미스〉에 연이어 출연했고,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21그램〉과 J.A. 바요나의 〈더 임파서블〉로 두 번이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주로 거칠고 감정적인 역할에 몰두해온 와츠는 인간의 특정한 취약성 혹은 약함을 보여주는 연기를 했는데, 그것은 카타르시스적인 경험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고자 한 와츠의 노력이기도 했다.
“인간의 슬픔과 정체성에 끌리는 경향이 있어요. 그건 제 자신이 성장하며 맞서 싸워온 두 가지 큰 문제이기도 했으니까요. 정체성은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살아야 했던 성장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에요. 그래서 어떻게든 제 길을 찾아 적응하는 방법을 터득했죠. 그리고 슬픔을 이야기하자면… 너무 어릴 때 아빠가 돌아가신 거겠죠.”
나오미의 배스 셀렉션은 ONDA Beauty.
〈굿나잇 마미〉 〈레이크우드〉 〈인피니트 스톰〉 등 영화 세 편이 연이은 개봉을 앞두고 있고, 라이언 머피 제작의 넷플릭스 시리즈물 〈더 왓처〉를 촬영 중인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일에 매진하고 있다. “절대 연기를 포기하진 않을 거예요. 즐기고 있으니까요. 연기야말로 제 자신을 완벽하게 표현해줄 수 있는 방법이거든요. 현장의 역동성이 정말 좋고, 그런 것들을 같이 출연하는 배우들과 나눌 수 있잖아요. 작업은 정말 창조적인 과정이고 모든 이들이 가족 같아요. 그래서 이 일이 정말 좋아요. 물론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지점도 존재하지만 어떻게든 길을 찾아내서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나가죠. 사람들에게 의미를 주는 특별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 그건 정말 자유롭고 해방된 경험이에요.” 날이 저물고 벽난로에 불이 붙었다. 재충전할 준비는 다 되어 보였다. 그녀에게 앞으로 더 많은 일들이 다가올 거라는 걸 알고 있다는 듯 평화롭게.
파티오에서의 와츠. 드레스, 부츠는 Chan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