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바르셀로나로 떠난 루이 비통

가우디의 바르셀로나와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루이 비통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앙상블, 2025 루이 비통 크루즈 컬렉션.

프로필 by 윤혜영 2024.11.12
스페인의 코르도바 모자로 에지를 더한 루이 비통 2025 크루즈 룩.

스페인의 코르도바 모자로 에지를 더한 루이 비통 2025 크루즈 룩.

“아름다움은 행복의 약속이다.” 스탕달의 이 말처럼 인간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심미적 존재다. 구태여 쓸모와는 조금은 거리가 있는 아름다운 건축물을 짓고, 아름다운 옷을 만들고, 아름다운 음식을 욕망하는 건 우리에게 아름다움이 행복으로 향하는 하나의 열쇠이기 때문일 터. 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해 누구보다 진지하게 고민하는 두 사람이 만났다. 스페인의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 그리고 10년간 루이 비통의 여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살고 있는 니콜라 제스키에르. 이 두 거장의 낭만적인 만남이 루이 비통 2025 크루즈 컬렉션에서 이뤄졌다.
건축가들의 건축가로 불리는 가우디는 인물 그 자체가 세계문화유산이 된 최초의 사례다. 스페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가우디 건축물의 공식 명칭은 ‘바르셀로나의 건축물’도 ‘구엘공원’도 아닌 ‘안토니 가우디의 건축’이다. 그가 상상하고 창조한 건축물 모두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칭송될 정도로 대단한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이유를 꼽자면 수십 가지가 되겠지만, 스탕달의 말처럼 그가 아름다움이라는 원초적이면서도 중요한 주제를 좇았기 때문이 아닐까. 바르셀로나라는 도시 자체를 환상의 유토피아로 만드는 건 딱딱한 자와 각도기로는 도저히 수치화할 수 없는 ‘유려하다’라는 말을 시각화한 듯한 가우디의 건축물 덕분이다. 그 덕분에 바르셀로나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한 도시가 되었다.
곡선에 대한 인간의 탐구가 가장 아름답게 담긴 가우디의 구엘공원.

곡선에 대한 인간의 탐구가 가장 아름답게 담긴 가우디의 구엘공원.

올해로 10년째 루이 비통을 이끌고 있는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건축적 형태에 대한 깊은 애정이다. 그의 옷을 보면 옷을 ‘짓는다’라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는 인상을 받는다. 옷 위로 흐르는 깔끔한 선과 구조적인 실루엣, 혁신적인 소재는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스타일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요소다. 니콜라 제스키에르에게 크루즈 쇼는 전 세계를 누리며 자신이 세운 패션의 세계와 실제의 세계를 융합하는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이제껏 교토, 리우데자네이루, 팜 스프링스, 이솔라 벨라 등에서 열린 크루즈 쇼는 그의 비전 있는 스토리텔링을 보여줬다. 제스키에르의 루이 비통은 현대성과 미래주의를 결합하면서도 낭만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전위적이지만 그렇다고 시대에 벗어나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루이 비통의 새 컬렉션을 보는 건 ‘현재’를 확인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매 시즌 디자인을 시작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루이 비통 트렁크를 열어보는 상상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안에 어떤 스토리가 들어 있는지를 머릿속에 그려본다. 그렇기에 그들의 옷에는 언제나 ‘여행’이라는 일관된 맥이 흐르게 된다. 2025 루이 비통 크루즈 쇼를 준비하며 그는 바르셀로나로 향하는 여인의 트렁크를 상상했다.
이번 쇼의 장소는 안토니 가우디가 창조한 구엘공원이다. 이곳은 1914년에 완성된 공공 정원으로 건축적 유토피아로 불린다. “안토니 가우디는 건축가를 넘어 하나의 독립된 세계와도 같은 존재이며, 오늘날까지도 바르셀로나라는 도시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태어나고 있습니다.” 루이 비통은 이번 컬렉션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산의 개념은 루이 비통과 잘 어울립니다. 이 비할 데 없는 건축적 유기체 속에서 열린 2025 크루즈 컬렉션은 스페인의 풍성한 문화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순수함에 대한 찬사로, 메종의 엄격한 정신은 스페인의 열정적인 성격을 포용합니다. 색채의 열정, 전통에 대한 충실함이 예술적 표현으로 승화되며 빛과 어둠은 결코 모순되지 않습니다. 요약하자면 스타일과 여행의 예술, 특별한 땅에서 얻은 새로운 경험을 통해 더욱 풍부해진 발견의 여정입니다.” 건축은 오랫동안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주요 영감 중 하나였다. 이번 크루즈 쇼에는 또 한 명의 천재, 가우디의 건축이 함께했다.
승마와 구엘공원, 플라멩코 등 스페인의 DNA를 찾는 재미가 있는 루이 비통 2025 크루즈 룩들.
니콜라 제스키에르 특유의 정밀함과 실루엣에 대한 감각, 강렬한 어깨선, 날카롭게 잘린 짧은 치마, 오버사이즈 칼라는 가우디의 유연하고 조각적인 건축물의 선과 절묘한 앙상블을 이루었다. 마치 실루엣에 관한 실험을 시도하는 두 천재의 연구실 같았던 쇼장은 현재와 미래 경계선에 있는 듯 환상적이었다. 스페인이라는 장소의 특성은 옷의 사이사이로 스며들었다. 스페인의 고급스러운 테일러링을 바탕으로 한 울 수트 시리즈부터 어스 톤의 투우사 스타일 팬츠, 승마에서 영감을 얻은 판초와 크롭트 팬츠, 스페인 무어인과 스페인의 예술에서 따온 생생한 컬러톤과 풍성한 버블 볼륨의 룩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실루엣에 방점을 찍은 에지 있는 스페인의 코르도바 모자까지! 광택 스트로를 직조해 만든 아이보리빛 모자는 룩를 한층 더 드라마틱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LV 미러 선글라스를 매칭해 전통과 미래를 믹싱해 현대화시키는(제스키에르의 장점이기도 한!) 스타일을 완성했다.
이 외에도 플라멩코 드레스를 연상시키는 흑백 도트 패턴과 미니 드레스로 재해석한 판초, 스페인의 목축 문화를 반영한 웨지 힐 부츠 시리즈, 과감한 맥시 버클 등 이번 크루즈 룩들은 스페인을 여행하는 루이 비통 여인의 철학이 아름답게 담겨 있었다. 가방 역시 노에 트렁크, 스피드 트렁크, 슬림 트렁크 등 루이 비통의 아이콘을 재해석한 버전이 선보였으며 구엘공원의 건축적 요소를 반영한 기둥 디테일이 돋보이는 ‘쁘띠드말’과 ‘하드사이드’ 백도 매력적이었다.
가우디가 말하길, “직선은 인간의 것이고 곡선은 신의 것입니다. 닫힌 곡선은 한계를 나타내지만, 직선 안에서 닫힌 곡선은 무한성을 표현합니다”라고 했다. 이번 2025 루이 비통 크루즈 컬렉션은 가우디와 제스키에르가 펼치는 선에 대한 무한한 실험이었다. 이 두 천재의 조우는 우리에게 아름다움이란 원초적인 행복을 느끼게 했다. 그것으로 건축과 패션은 의무를 다한 것이 아닐까.

Credit

  • 글/ 김민정(프리랜스 에디터)
  • 사진/ ©Louis Vuitton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