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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퀴즈'의 바로 그 서예가 이정화
변함없이 변화하는 젊은 장인들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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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스 바자 어릴 때부터 서예와 가까운 환경에서 자랐다.
이정화 거의 운명처럼 서예가인 아버지를 둬 자연스럽게 서예를 시작했다. 그런데 두 동생도 어릴 때부터 서예를 배웠지만 결국 다른 길을 가고 있다. 나는 종이 위에 먹이 ‘사악’ 번지는 느낌에 매료된 순간부터 서예를 꾸준히 했고 지금까지 ‘이 길을 잘못 왔나’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하퍼스 바자 ‘아리랑 유랑단’이라는 이름으로 대학생 때부터 해외에 나가 서예를 가르치는 경험을 시작했다.
이정화 2013년도니까 대학교 4학년 때다. 대금, 장구, 판소리를 하는 친구들과 영상을 찍는 친구와 해외를 돌며 4개월 동안 우리 문화를 알리는 프로젝트였다. 만년필로 글을 쓰고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서구권에서 보기에 붓 하나로 글과 그림을 그리는 점을 놀라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들은 먹의 농도도 굉장히 신기해했다. 캘리그래피가 문자를 아름답게 장식하는 것이라면 서예는 글이 가진 성정까지 탐색하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는 걸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서예가로의 길을 굳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만큼 여러 영감을 받았다. 작년에는 1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에서 한 달 동안 한글 교실을 순회하며 서예를 가르쳤다. 10년 전만 해도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막 붐을 일으키고 있었는데 이제는 한국 문화와 글의 위상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재외동포들이 한글과 서예를 배우려고 했다면 현지인도 관심을 가져서 놀랐다. 한국에는 ‘블링블링’한 K-팝 같은 문화만 있는 줄 알았는데 서예 같은 온화한 문화가 있다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다고 얘기하는 외국인이 많아져 기뻤다.
하퍼스 바자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보고십엇소’, <호텔 델루나>의 아이유 대필 작업 등도 서예가로서의 경력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정화 스물한 살 때 드라마 <동이>의 대필 장면을 찍게 되었다. 3시간 안에 급하게 쓸 사람이 필요해 내가 동원된 거다.(웃음) 당시에 감독님이 내 글씨를 맘에 들어 하셨고 그 이후에 다양한 작품들을 찍었다. 손목까지 나오는 타이트한 신을 주로 찍기 때문에 글씨로 연기를 해야 한다. 내가 맡은 역할이 어떤 감정으로 지금 글을 쓰고 있는지에 가장 집중한다. 글씨로 사람의 감정을 표현한다는 점이 서예 자체인데 그걸 여러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는 작업이라 즐거움이 크다.
하퍼스 바자 서예 하면 ‘추사 김정희’처럼 오래된 이름이 떠오른다. 현대에서 서예가라는 직업은 어떤 것인지?
이정화 일단 서예가는 예술가라고 생각하면 쉬울 것 같다. 먹과 종이의 번짐과 어우러짐으로 자신만의 예술을 만드는 것. 한자를 많이 알고 좋은 글을 알아야 하는 것도 물론 맞지만 붓이 스르륵 홀리듯 움직이는 자연스러움이 글자에 묻어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수련하듯 글자를 쓰고 마음을 쏟는 시간이 필요하다. 언젠가 스승인 아버지께 작품을 보여드렸는데 “이건 서예가의 획이 아닌 그냥 선이다. 점과 점을 연결한 선일 뿐이다”라고 말씀하신 게 오래 기억에 남는다. 서예에서는 가로선, 세로선 모두를 획이라고 한다. 정확한 판단 기준이 있는 건 아니지만 획 하나를 허투루 긋지 않은 작품을 만드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서예가가 하는 일이다.
하퍼스 바자 획을 그을 때 어떤 생각을 하는가?
이정화 내가 생각하는 서예의 매력 중 하나는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사실이 글씨를 쓸 때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더 깊게 생각하면 뜻하는 바나 순간의 감정을 평생 남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 좋은 말과 생각, 좋은 뜻을 남기려고 하는 마음이 있다. 지금 남아 있는 조선시대의 글 역시 몇백 년 동안 살아남아 우리에게 닿았다. 만약 내 글을 후대 사람들이 봤는데 거기에 험담이 써 있으면 안 되지 않겠나.(웃음) 현실을 사는 것은 고되고 지치는 일이지만 지나고 나면 좋은 일도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지금 이 시대에 일어난 좋은 일과 따뜻한 것을 남기는 것이 예술가의 몫이라고 생각하며 글씨를 쓰려고 한다.
하퍼스 바자 가장 좋아하는 문구는?
이정화 옛날에는 두보의 시나 이규보의 시처럼 좋은 시의 문구를 따다 쓰고 매난국죽만 쳐야 했지만 이제는 자신의 생각을 글씨로 표현하는 게 어색하지 않은 시대다. 알 수 없는 한자만 쓴 기다란 족자를 지금 누가 집에 걸어두고 싶겠나. 작은 크기로 일상적인 이야기를 쓴 작품을 만드는 추세다. 그런 의미에서 서예에 대한 내 생각을 표현한 ‘달빛의 우주를 담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달빛은 한지의 색깔을 뜻한다. 우리나라에서 백색은 달항아리의 백자 색을 말하는 것처럼 한지는 완전한 하얀색이 아닌 달빛을 닮은 은은한 노란빛을 띠고 있다. 검은색도 서양에서는 완전한 어둠으로 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검을 현(玄) 누를 황(黃)’의 현처럼 어슴푸레한 어둠을 지칭하는 말이 따로 있다. 먹은 ‘흑’이 아닌 ‘현’이다. 내 안의 생각이 손과 붓을 타고 내려와 한지로 스며든다는 의미다.
하퍼스 바자 ‘인중’이라는 호의 의미는?
이정화 호를 받는 것은 이제부터 진짜 서예가의 길을 간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추사 김정희 선생님은 호가 5백 개가 넘는데 그날의 기분이나 작품 스타일에 따라 다른 호를 붙이기도 했다. 본인이 지을 수도 받을 수도 있어서 나는 으레 아버지께 받을 거라 생각했는데 대학교에서 서예를 배울 때 교수님께서 지어주셨다. <논어>의 글귀인 ‘박학이독지 절문이근사 인재기중의(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仁在其中矣)’에서 ‘인’과 ‘중’을 떼온 것이다. 넓게 배우고 깊게 생각하여 현실과 가깝게 다가간다면 ‘인’은 그 안에 있다는 의미다. ‘인’은 사랑을 뜻해 사랑이 모든 것의 가운데에 있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호를 처음 받았을 때 신체 부위 인중이 떠올라 좀 당황했는데 부모님께서 과분할 정도로 아름다운 이름이라고 하시더라. 한동안 “인중이 밥 먹어” “인중이 학교 가”라고 부르실 정도였다.(웃음)
하퍼스 바자 작업하는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나?
이정화 여러 외부 활동 때문에 온전히 글씨만 쓰는 날이 점점 줄어들었다. 가슴 한쪽에 두려움이 들더라. 그래서 무조건 하루에 하나씩이라도 쓰려고 하고 있다.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 빼고 10시간 가까이 글씨만 쓰던 때도 있었다. 그 시절의 기운으로 지금까지 해온 것 같다. 최근에는 임서도 빼놓지 않고 하려고 한다. 내 글씨를 쓰는 게 아니라 옛 명필의 교과서적인 글씨를 따라 쓰는 것이다. 일곱 살 때부터 지금까지 ‘클 대(大)’ 자를 적어도 2만 번은 썼지만 또 다른 방법으로 얼마든지 쓸 수 있다. 새로운 것을 하고 싶을수록 옛것을 더 잊지 않으려고 한다.
하퍼스 바자 지금 이 시대에 장인이란 어떤 사람이라 생각하나?
이정화 자신의 분야에 마음을 많이 쏟으면 장인이 아닐까? 오늘 촬영 현장에도 장인들이 너무 많았다. 이 머리 모양을 만들기 위해 정성 들여 피스를 만들고 어떤 의상이 좋을지 골똘히 생각하면서 사진 한 장을 뽑아내기 위해 목표를 같이 하지 않았나. 꼭 2~3대로 가업을 물려받지 않아도 내가 맡은 일이 나아지길 고대하며 몰두하는 사람들을 장인이라 부르고 싶다.
Credit
- 프리랜서 에디터/ 박의령
- 사진/ 이우정
- 헤어&메이크업/ 장하준
- 스타일리스트/ 이명선
- 세트 스타일리스트/ 김태양
- 어시스턴트/ 정지윤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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