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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혈당에 집착하고 있다면 알아야할 이야기

혈당에 문제가 없는데도 연속혈당측정기를 부착해 음식 하나하나에 집착하고 무얼 먹든 애사비(천연 발효 사과식초)와 땅콩버터로 식사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외친다. 혈당에 집착하지 마세요!

프로필 by 박경미 2024.09.10
지금 한국에서 가장 핫한 다이어트 키워드는 ‘혈당’이다. 혈당 다이어트로 식단을 관리한다고 밝힌 연예인은 20대 아이돌부터 60대 배우까지 다양하고, 각종 건강 정보 프로그램에선 혈당을 낮추는 비법을 전파한다. 혈당을 관리해 당뇨를 예방하고 살까지 뺄 수 있다는 것이 혈당 다이어트의 핵심.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따라 하며 잘못된 정보가 양산되고 혈당에 대한 집착으로 변질되고 있다. 혈당 스파이크를 막아준다는 애사비와 땅콩버터는 품절대란이고 당뇨 환자용 연속혈당측정기는 마치 다이어트를 위한 디바이스처럼 사용된다. 왜 혈당을 낮춰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무분별하게 좇고 있는 잘못된 혈당 다이어트를 바로잡고자 한다.

지금의 혈당 관리는 과열됐다
건강을 생각한다면 혈당을 낮춰야 하는 것은 맞다. 한국의 당뇨병 인구는 최근 10년간 꾸준히 상승해 2022년 기준 30세 이상 성인 10~15%가 당뇨일 정도니까. 하지만 인터뷰를 요청한 전문가 대부분은 온 국민이 당뇨병 환자인 양 ‘혈당’에만 집착하는 지금의 현상은 과열됐다고 꼬집는다. “모두가 혈당 스파이크를 막아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부터 오류입니다. 정상적인 사람은 혈당 스파이크라고 할 만큼 혈당이 급격하게 오르지 않아요. 그만큼 혈당이 오른다면 당뇨병 전단계라고 봐야 합니다.” 일산 차병원 내과 전문의 유정선은 전제부터 잘못되었다고 지적한다. 그렇기 때문에 혈당 스파이크를 예방하기 위해 애사비나 땅콩버터를 먹는 것도 큰 의미가 없다. “식전에 땅콩버터를 먹으면 혈당을 천천히 올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땅콩버터를 먹고 혈당을 높이는 빵이나 과일을 섭취하면 무용지물이죠.” 올해 초 <내 몸 혁명>이라는 책을 통해 인슐린저항성을 개선해 살찌지 않는 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 강북삼성병원 종합검진센터 가정의학과 전문의 박용우도 혈당을 낮추기 위해 땅콩버터를 섭취하는 것에는 회의적이다. 모든 식물은 소화 과정을 통해 포도당으로 변환되며 땅콩 역시 식물이다. 식전에 섭취하면 우리 몸에 유익한 불포화 지방산 덕에 혈당이 천천히 오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포도당으로 전환돼 결국 혈당이 오른다. 애사비를 마시는 것은 식초의 아세트산이 인슐린 양을 늘리지 않으면서 혈당을 낮춘다는 원리 때문이다. “식초를 먹으면 근육에 저장되는 포도당이 증가해 인슐린 수치를 높이지 않고 혈당을 낮춘다는 일부 논문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임상 연구가 없으니 동의하긴 어렵죠.” 혈당을 낮추기 위해 애사비를 마시는 것에 대한 유정선의 의견. 대한당뇨병학회 홍보이사이자 분당 서울대학교병원 내분비대사내과 전문의 최성희 역시 전문가의 입장에서 굳이 애사비를 마시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애사비, 즉 식초는 위산과 산도가 비슷한 편. 보통 물 500ml 이상에 한 스푼 비율로 희석해 섭취하지만 위와 식도에 자극이 될 가능성을 감수하면서 마실 만큼 혈당을 내리는 효과가 크지 않다고 덧붙인다. 또한 비스테로이드성 진통 소염제를 복용하거나 당뇨병, 심뇌혈관질환 등으로 항혈전제를 투약하고 있다면 위염이 동반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그렇다면 식사 전에 채소를 먹거나 탄수화물을 가장 나중에 섭취하는 것은 어떨까? 이 역시 전문가들은 회의적이다. “병원에서 당뇨환자 식이교육을 할 때 채소나 반찬을 먼저 먹고 밥을 나중에 먹으라고 하는 이유는 혈당을 올리는 탄수화물의 섭취량을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순서만 바꾸고 양을 많이 먹는다면 당연히 효과는 없죠.” 푸른내과의원 전문의 이송주의 설명. 샐러드, 스테이크, 파스타 순서로 식사하는 서양식에는 이 방법이 맞을 수 있지만 한상차림으로 나오는 한식에서는 실천하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다. 매번 반찬과 국을 다 먹고 맨밥을 먹기는 쉽지 않으니까. 차라리 천천히 먹는 방법이 더 효과적이다. 비정제 탄수화물인 현미나 통곡물이 정제 탄수화물인 밀가루나 백미보다 좋은 이유는 흡수가 느리기 때문인데 같은 음식도 천천히 먹으면 혈당 상승 속도를 늦출 수 있다.
얼마 전 대한비만학회는 연속혈당측정기를 무분별하게 부착하는 것에 대해 성명서를 내며 우려를 표했다. 지속적인 혈당 모니터링과 식단 조절을 통해 혈당 상승을 억제하면 과도한 인슐린 분비를 방지해 체중 증가를 막을 수 있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들리지만 과학적, 의학적으로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 최성희는 당뇨병이 없는 사람이 체중 관리를 목적으로 연속혈당측정기를 사용해 식단을 조절했을 시 혈당 상승 억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단기간의 연구가 존재하지만 이런 방식은 섭식장애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상 혈당인데도 수치를 보며 음식 하나하나에 집착하게 될 수 있어요. 강박적으로 먹는 것을 조절하는 것은 주의해야 합니다.” 또한 혈당은 정확히 측정하기 매우 어렵고 같은 음식을 먹어도 컨디션에 따라 수치가 다를 만큼 변수가 많다. 그러므로 연속혈당측정기를 맹신하며 음식을 섭취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송주는 내 혈당이 정상인지 알고 싶다면 차라리 2~3개월의 평균 혈당 수치를 검사할 수 있는 당화혈색소 검사를 받을 것을 추천한다.
여전히 논란이 많은 인공감미료가 들어간 제로 음료는 당이 함유되지 않아 혈당을 올리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인공감미료가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어요. 안전성이 확실하게 연구되지 않았기에 설탕보다 좋다고 확답할 수 없죠. 장내 미생물 변화도 일으킬 수 있고요.” 유튜브 닥터리TV를 통해 올바른 다이어트 정보를 전파하고 있는 분당 닥터리가정의학과의원 전문의 이진복의 설명이다. 제로콜라로 탄산음료를 대체해 즐기기 보단 디저트나 탄산음료처럼 단맛이 당길 때 제로 음료를 섭취하며 당에서 점차 멀어질 수 있는 보조제로 사용하라고 조언한다.
결국 지속적이고 확실한 혈당 조절을 위해서는 움직여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포도당은 간, 근육, 지방 순으로 저장되는데 근육이 많다면 많이 먹어도 지방으로 전환되지 않는다. 한 끼에 비빔면 7봉지와 피자 한 판을 먹고도 근육질 몸매를 유지하는 펜싱선수 오상욱처럼. 사무실에 오래 앉아 있고 점심 시간이 짧아 운동할 시간이 없다고 토로하자 10~15분을 걷기만 해도 식후혈당을 효과적으로 내릴 수 있다는 꾸짖음이 돌아왔다. 회사와 먼 위치에서 식사를 하고 걸어오거나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만으로도 혈당을 낮추기 충분하다는 것. 유정선은 혈당 다이어트는 혈당을 관리하며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이어트와 비만에 대한 마케팅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우연일까? 전 세계에 혈당 다이어트 열풍을 일으킨 <글루코스 혁명>의 저자 제시 인차우스페는 현재 식전에 먹으면 혈당을 효과적으로 낮춘다는 보충제를 판매중이다. 정말 혈당을 낮추고 싶나? 그렇다면 이제 운동할 시간이다. 에디터/ 박경미

Credit

  • 사진/ 정원영
  • 도움말/ 박용우(강북삼성병원), 유정선(일산 차병원), 이송주(푸른내과의원), 이진복(분당 닥터리가정의학과의원), 최성희(분당 서울대학교병원)
  • 참고 서적/ <글루코스 혁명>, <내 몸 혁명>
  • 어시스턴트/ 안나현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