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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OR'S CHAIR #8 김새벽

김새벽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 “거리낌 없이 순수하게 감정을 표출하는 어떤 존재를 바라볼 때.” 홀로 집 건물의 옥상에 앉아 있거나 에서 나무를 바라보는 시간에서 지극한 평온함을 느낀다는 김새벽과의 인터뷰 또한 이러한 감각으로 이어졌다.

프로필 by 안서경 2024.07.25
톱은 H&M. 귀고리는 Arket.

하퍼스 바자 무엇에도 쉽게 동요하거나 구애되지 않을 것 같은 초연한 이미지가 있어요. 스스로 생각할 때 김새벽은 어떤 사람인가요?
김새벽 궁금해하는 사람? 전 많이 궁금해하는 것 같아요. 같이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에게 가끔 어떤 마음으로 연기하는지 물어보기도 하고요. 일상에서는 어린아이들이나 할머니들과 얘기하는 것도 좋아해요. 그리고 저와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하고요.
하퍼스 바자 그런 마음이 타자를 연기하는 배우로서의 정체성과도 맞닿아 있겠네요.
김새벽 그럴 수 있죠. 하지만 기본적으로 저는 저를 가장 궁금해하는 것 같아요. 타인의 생각을 듣고 난 다음 내 생각을 보고 싶은 거죠. 하나의 의견이 나에게로 왔는데, 그러면 그것에 대해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은 쪽에 가까워요. 사람들의 말에서 질문을 가져오는 방식이죠.
하퍼스 바자 질문을 가져온다, 는 말이 흥미롭네요. 과거에 한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했어요. “그동안 연기를 노력하지 않고 한 것 같다”고. 노력을 할 용의가 없었다는 말이라기보단 더 구체적으로 노력하지 않았다는 자기반성의 어조였어요.
김새벽 다들 연기하는 방식이 다르잖아요. 저는 연기가 기술인지 잘 모르겠어요. 분명히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테고, 어떤 면에서는 기술이 필요한 일도 맞지만, 전 아직도 모르겠어요. 연기가 기술의 일종이라면 점점 더 능숙해져야 하는 거 아닌가요? 연기가 늘고 있다는 느낌도 없고, 여전히 방법도 잘 모르겠거든요. 그래서 저에겐 기술직을 동경하는 측면이 있어요.
하퍼스 바자 그래서 예전에 “해녀가 되고 싶다”는 얘기가 나온 거군요.
김새벽 네, 저는 어쨌든 마음 편하게 살고 싶거든요.
하퍼스 바자 배우로 살면 그렇지 못한가요?
김새벽 무엇보다 잠을 잘 자고 싶은데, 작품을 하고 있을 때는 잠을 잘 못 자요.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도 걱정해요. 오늘 잘했나 싶고, 다음 촬영도 그렇고. 걱정에는 명확한 해답이 없잖아요. 그러니 늘 마음이 불편한 상태죠.
하퍼스 바자 연기를 ‘기술’이라고 확신한다면 거기에라도 기대겠는데, 매번 새롭고 기댈 데가 없는 그런 마음인가요?
김새벽 그냥 일이 끝나면 끝난 거였으면 좋겠어요. ‘정신적 퇴근’을 하고 싶다고 할까요.
하퍼스 바자 단순한 삶에 대한 어떤 갈망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 요새는 뭘 하고 싶나요?

김새벽 요즘에는 공부를 하고 싶어요. 하는 만큼 돌아오는 감각이 좋아서. 영어 공부도 하고 있고, 다음 작품을 위해 새로 시작한 공부도 있어요. 온라인 수업을 찾아 듣기 시작했고, 제대로 배우고 싶어서 학교를 들어가기 위한 준비도 하고 있어요.
하퍼스 바자 그러면 일과 병행하기 힘든 것 아닌가요?
김새벽 작품을 위해서 배우는 것이고, 학업 과정이 생각보다 그렇게 길진 않아요.

톱, 스커트는 H&M. 귀고리, 팔찌는 Arket.

하퍼스 바자 팬으로서 마음이 놓이는 소리네요.(웃음) 진학까지 고려한 걸 보니 진지한 결심인 건데, 이렇게 자기 마음의 움직임에 직관적으로 따르는 편인가요?
김새벽 돌이켜보면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이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친구가 그랬거든요. 어, 이거 내가 받아본 느낌인데? 네가 갑자기 연기하겠다고 했을 때와 똑같은 느낌이야, 라고.
하퍼스 바자 나를 움직이게 하는 그 무언가를 소중하게 여기고 놓치지 않는 사람이네요.
김새벽 꽂히는 게 있으면 무리하게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움직이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구절이 있는데, <데미안>의 첫 장에 나오거든요. 번역마다 문장이 조금씩 다를 텐데, 제가 기억하는 건 “내 속에서 스스로 솟아나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이렇게 머릿속에 뭔가 강렬하게 떠오르면 그것을 따라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 커요.
하퍼스 바자 개인적으로 배우 김새벽에게는 여기 너머 저기를 바라보는 인상을 받았어요. 현실에 두 발을 붙이고 있지 않은.

김새벽 저는 최선을 다해서 현실을 살고 있어요. 오늘을 어떻게 잘 보낼지를 생각하고, 내가 원하는 게 뭔지를 생각하고. 이제 너무 멀리는 생각하지 않아요. 어차피 앞날을 생각해보았자 내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고등학생 때는 제가 이렇게 연기를 하고 있을 줄도 몰랐고, 서울에 살고 있을 줄도 몰랐어요.
하퍼스 바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상태가 있나요?
김새벽 평온한 상태요. 그러기 위해서 정말 많은 것들을 했던 것 같아요. 어떤 때는 운동에 심취하기도 했어요. 몸을 계속 움직이고 싶어서. 최근엔 뭔가를 막 두드리고 싶어서 장구를 시작했는데 너무 재밌어요. 두드리고 나면 한결 기분 좋게 집에 돌아와요. 그리고 수영은 평온함을 주기 때문에 오랜 시간 열심히 해왔어요. 도예도 오래 배웠는데 좋더라고요. 손을 계속 움직이고, 말랑말랑한 걸 만지니 기분도 좋아져요.
하퍼스 바자 형태와 물성이 느껴지는 것을 좋아하나 봐요.

김새벽 뭔가를 했을 때 결과물이 나오는 일이 좋은 것 같고, 눈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되는 게 좋아요. 커튼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저기 바람이 있구나, 하고 느끼는 것처럼요. 너무 막연한 건 제 성향과 좀 안 맞는 것 같아요.
하퍼스 바자 그렇다면 연기는 어떤 것 같아요?
김새벽 연기는 양쪽 다인 것 같아요. 눈에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끔 하는 일인 동시에 정답도 규격도 없기 때문에 여전히 막연한 지점이 있고.
하퍼스 바자 그러면 어떤 연기를 볼 때 좋다고 느끼나요?
김새벽 온전히 보게 되는 그런 때요. 보고 있을 때 딴 생각이 안 들고, 그저 그 역할로서 따라가게 될 때. 연기, 의상, 촬영 뭐 하나 동떨어지지 않고 어우려져서 굴러가는 느낌이랄까. 걸리적거리는 게 하나도 없는 그런 느낌요. 사실 연기라는 건 조합이잖아요. 그런 작품을 보면 현장이 궁금해져요. 어떤 현장이었을까.

재킷은 Instantfunk. 니트 톱은 Ermanno Scervino. 팬츠는 Zara. 안경은 Gentle Monster. 반지는 Arket.

하퍼스 바자 자신이 나온 영화를 보면서 그런 느낌을 받을 때도 있나요?
김새벽 못 받죠.(웃음) 긴장돼서 숨도 잘 못 쉬어요. 왜 저렇게 했을까 싶고.
하퍼스 바자 지나온 필모그래피가 배우의 역사이자 개인의 역사이기도 하잖아요. 과거 출연작을 보면 그때 자신의 상태도 기억나요?
김새벽 다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요.
하퍼스 바자 그러면 한 번씩 들추어볼 때가 있나요?
김새벽 이사할 때마다 하는 것 같아요. 작품을 일일이 보는 건 아니고, 저는 시나리오 보다 일촬표(일일촬영계획표)를 남기길 좋아하거든요. 거기 보면 날짜, 날씨, 어떤 신인지, 그 신에 누가 출연했는지, 그날 함께한 스태프들 이름까지 다 적혀 있잖아요.
하퍼스 바자 일촬표를 남기는 배우라, 사뭇 감동적인데요. 현장에 갈 때 배우로서 어떤 책임감을 느끼나요?
김새벽 각자의 파트가 움직여서 하나가 되는 일이잖아요. 내가 해야 할 걸 잘하고 오자. 일기에도 맨날 쓰는 말은 ‘내 몫을 잘하자’예요.
하퍼스 바자 그 몫의 범주가 어디까지라고 생각해요?
김새벽 연기도 연기지만, 에너지인 것 같아요. 각 사람의 에너지가 모여서 큰 에너지를 만드는 자리니까 에너지를 깎지는 말자. 상대를 불쾌하게 하고 싶지도 않고, 짜증 나게 하고 싶지도 않고. 누군가 현장에 오는 것이 괴롭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들어요.
하퍼스 바자 김새벽은 솔직한 사람인가요?

김새벽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어떨 때는 아주 많이 감추는데, 어떨 때는 왜 여기까지 얘기하나 싶을 만큼 다 얘기할 때도 있어요.(웃음)
하퍼스 바자 그렇다면 용감한 사람인가요?
김새벽 대체적으로 귀찮은 게 많아서, 원하는 게 확실할 때만 용감해지는 것 같아요. 물론 용감하지 못한 지점도 있어요. 유튜브에서 심리 관련 영상 보는 걸 좋아하는데, 가까운 사람들이 나를 떠날 것만 같은 느낌을 내가 조금 힘들어하는구나, 거기에 어떤 두려움이 있구나, 하고 알게 됐어요.
하퍼스 바자 그 두려움 안에 무엇이 있던가요?
김새벽 내가 그 사람들을 정말 좋아한다는 마음을 느꼈어요. 그걸 통해 저만의 답을 내린 것이, 타인의 마음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마음에 대해서는 잘 표현하자.
하퍼스 바자 배우가 되고 난 뒤 좀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나요?

김새벽 사실 배우를 안 했으면 어떤 사람이 됐을지 모르기 때문에 알 수는 없지만, 그냥 지금의 나는 이렇구나, 하고 느낄 뿐이에요.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 정도.
하퍼스 바자 그렇게 최선을 다하는 스스로가 기특하거나 하진 않고요?
김새벽 사실 스스로에게 칭찬을 잘 안 해요. 그래서 요즘 연습하고 있어요.
하퍼스 바자 그러면 여기서 한번 해보실래요?
김새벽 음…. 너 영어 공부 열심히 하고 있다. 또 새로운 공부를 하다 보니 생소한 용어도 많이 나오는데, 누가 강제로 시킨 것도 아닌데 열심히 잘하고 있다.
하퍼스 바자 혹시 T세요?(웃음)
김새벽 아니에요, 아니니까 이렇게라도 노력하는 거예요.(웃음)

Credit

  • 프리랜스 에디터/ 김현민
  • 사진/ 김영준
  • 헤어/ 한지선
  • 메이크업/ 홍현정
  • 스타일리스트/ 김경선
  • 어시스턴트/ 허지수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