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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ape 부탄

쉽게 갈 수 없는 나라, 부탄 여행의 모든 것

프로필 by 김경후 2024.07.25
탁상 트레일에 세워진 호랑이 둥지 수도원.

탁상 트레일에 세워진 호랑이 둥지 수도원.

아득히 드리운 검은 산맥의 그림자 아래로 펼쳐진 트랜스 부탄 트레일. 마치 턱수염이 난 듯한 솔송나무가 빼곡히 들어선 유령 같은 숲은 고대 미신을 소환할 것만 같다. “스투파 신전을 시계 방향으로 걸어보세요.” 부탄에서 몇 안 되는 여성 가이드 중 한 명인 도르지 비다(Dorji Bidha)가 말한다. “걷는 것만으로도 명상을 하는 듯 나쁜 카르마를 정화하죠. 니알라(Nyala)를 놀라게 할 필요 없어요.” 니알라는 한때 어두운 산속을 떠돌며 사람을 잡아먹는 악마라고 믿어져왔다. 다행스럽게도 팬데믹 기간 동안 새로 복원된 탐방로를 통해 포장도로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깊은 V자 모양의 협곡과 강이 흐르는 협곡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지난해 9월 복원이 마무리된 탐방로는 부탄을 찾은 여행객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했다. 허나 더 중요한 점은 초유의 팬데믹 기간 동안 지역 주민들이 ‘트랜스 부탄 트레일 복원’을 목표로 하나가 되어 지역사회에 다시금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것이다. 캐나다 기업가 샘 블라이스(Sam Blyth)의 계획과 자금 지원 그리고 지그메 케사르 왕추크(Jigme Khesar Wangchuck) 국왕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약 9백여 명의 자원봉사팀이 중국 국경의 서쪽 하아(Haa)에서부터 동쪽 벵갈(Bengal) 국경까지의 403km 구간에 18개의 다리와 1만 개의 돌계단을 설치해 고대 횡단 탐방로를 완성했다. 복원된 트랜스 부탄 트레일은 블라이스가 말한 대로 한 국가의 역사와 유산이 부활하고 보존 프로젝트에 대한 추진력을 부여했으며, 부탄의 외진 지역도 관광 수익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다시 트레킹 여정으로 돌아오니 도르지는 전설 속의 설인인 ‘예티’가 상상이 아닌 실제로 존재할 거라 주장하며 예티의 배설물을 주의 깊게 찾고 있었다. 나는 놀리듯 “히말라야 중심부가 아닌 더 높고 조용한 곳에 있지 않을까”라고 귀띔했다. 예티의 배설물 대신 우리는 표범과 곰의 배설물을 발견했다. 지난달에는 암컷 호랑이 한 마리와 그의 새끼들이 블랙 마운틴(Black Mountains)에서 방황하다가 부탄의 유일한 고속도로로 이동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진정제를 투여해야만 했다.
파로 계곡에서 바라본 풍경. 코모 우모 파로 호텔. 팀푸 시장에서 판매하는 풋고추. 푸나카의 종.
숲의 바닥은 이끼로 가득해 부드러우며 싱그러웠고, 햇살은 대나무와 소나무가 일군 에메랄드빛 어둠 사이로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날아다니는 호랑이나 용, 악마와 예티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정체성이 확립된 이 비밀스러운 히말라야 왕국을 여행하다 보면 끝없는 경이로움에 빠져들게 된다. 지금까지 우리의 여정은 문화 중심지인 파로(Paro)와 신호등이 하나만 있는 수도 팀푸(Thimphu), 그리고 푸나카(Punakha)의 온화한 논밭을 거쳐 티베트의 이동 경로에서 머무르는 멸종 위기의 검은목두루미 떼가 서식하는 눈과 바람이 이는 폽지카(Phobjikha) 평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트레일의 중앙 구간을 따라 더욱 깊은 곳으로 향하고 있다. 숲의 바닥은 이끼로 가득해 부드러우며 싱그러웠고, 햇살은 대나무와 소나무가 일군 에메랄드빛 어둠 사이로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수목한계선 너머의 얇은 공기 속으로 몸을 밀어 올린다. 해발 3천 미터 높이의 정상에는 주의해야 한다고 안내받은 랜드마크가 있다. 그곳은 바로 마니다르(Manidhar)라는 곳으로, 1백8개의 흰 깃발이 걸려 있으며 이는 죽음을 기리는 상서로운 숫자를 뜻한다. 너덜너덜한 깃발은 바람에 기도를 전달하는 물질계와 영적 세계 사이의 매개체로 여겨진다. 자연의 요소를 숭배하고 모든 바위, 땅, 강 및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는 신앙과 이념이 얼마나 매혹적인가! 우리는 산맥 아래에 펼쳐진 탐방로 여정 전체를 볼 수 있었고 야생의 강은 깊은 협곡을 가로지르며 꽃이 가득한 초원과 습지로 스며들었다. 세계의 지붕에서 부탄의 최고봉이자 금지된 봉우리인 강카르 푼섬 산(Mount Gangkhar Puensum)의 톱니 모양 윤곽이 하늘을 지배한다. 이 봉우리는 신들의 신성한 왕좌로 알려져 있으며, 미지의 상태로 영원히 보호받고 있다.
일주일간의 하이킹 중 예상치 못한 중간 지점에서 스마트폰의 신호가 켜진다. 영국에 있는 매우 친한 친구의 아들과 남편으로부터 온 짧은 문자 메시지는 나의 친구가 집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찍, 하지만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음을 알렸다. 그리고 내가 영국으로 돌아온 후 열릴 추도식에서 추모사를 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이 가슴 아픈 소식은 티베트로 향하는 고대 소금길을 함께하며 남은 순례 기간 동안 우정, 사랑, 그리고 죽음의 가치에 대해 고뇌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죽음은 부탄 불교의 주요 신조 중 하나다. 진정으로 행복을 원한다면 죽음에 직면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성과 신체 기능처럼 죽음을 끝이 아닌 시작으로 보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서도 거리낌이 없다. 그러한 이유로 부탄에서 드룩파 쿤리(Drukpa Kunley)는 굉장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신성한 미치광이로 알려진 그의 음란한 성욕은 사원 그림에 열정적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그의 상징적인 남근은 마을 집 외벽에 벽화로 그려져 유명세를 얻었다.
부탄 사원의 기도 바퀴. 범탕 지역의 자카르 종.
울려 퍼지는 승려들의 염불은 나에게 행복한 협곡 탐방길로 기억될 알람 소리였다.

우리가 옆에 캠프를 설치한 챵카(Tshangkha) 수도원 목욕탕은 출입문이 없는 개방적인 형태로 운영되는데, 이 또한 억제되지 않은 소박한 공동체 의식을 이해하게 만든다. 여기서 우리는 승려들과 함께 저녁 목욕 의식을 수줍게 나눴다. 목욕탕을 제외하면, 이곳은 악령을 진정시키고 어둠을 물리치기 위해 의식적으로 켜는 버터 램프의 빛 속에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마법 같은 장소다. 그러나 나는 지난 3일 동안 약 45킬로미터를 걸었고, 최근에 친구를 잃은 슬픔에 젖어 심신이 지친 상태였다. 오죽하면 양말을 벗을 때 엄지 발톱이 함께 빠져버릴 정도였다. “할머니께서 알려주신 만병통치약을 사용할 거예요.” 요리사 셰럽(Sherub)은 당황하지 않고 잡초처럼 자란 쑥 계열의 약초인 아르테미시아를 찾아나섰다. 나는 이 허브에 대해 꽤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이 약초는 내가 여행 초기에 머물렀던 코모 우마 푸나카(Como Uma Punakha) 호텔에서 부탄의 전통 목욕인 핫 스톤 목욕(Hot Stone Bath)을 즐겼던 당시에 사용한 것이었다. 논밭과 은빛 강이 내려다보이는 신성한 곳에서 목욕을 한 뒤 이어진 마사지는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허나 지금은 셰럽의 손바닥 사이에서 눌려 즙으로 변해 항균성 찜질제이자 진통제가 되었다. 그는 “내일 걷는 데는 지장이 없을 거예요”라고 단언하며 자신의 치유 수프인 샤무 다치(Shamu Datshi)를 먹으라고 권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버섯 중 하나인 송이버섯으로 만들어진 이 수프는 애벌레의 등에서만 자라는 기이한 버섯인 동충하초처럼 특유의 맛과 뛰어난 효능으로 중국과 일본 시장에서 각광받고 있다.
오늘 밤, 작은 주방 텐트에서 우리의 요리사는 그의 특기인 모모(Momo, 고기를 채운 통통한 만두)와 메밀 팬케이크인 쿨리(Khuli), 그리고 현지 농장에서 가져온 신선한 브로콜리를 곁들인 케와 다시(Kewa Datshi), 고추 치즈 감자 요리를 만들었다. 캠프와 붐탕(Bumthang) 협곡의 홈스테이, 그리고 작은 시골 숙소와 도시 식당에서의 식사는 부탄을 여행하며 느낀 예상치 못한 즐거움 중 하나였다.
코모 우마 푸나카에서 바라본 풍경.

코모 우마 푸나카에서 바라본 풍경.

다음 날 아침, 승려들의 만트라 챈팅(염불)이 협곡 주변으로 울려 퍼졌다. 이는 나에게 행복한 협곡으로 기억될 알람 소리였다. 셰럽의 치료법 덕분에 발 통증은 사라졌다. 오늘의 탐방길은 진달래가 가득한 경사면을 지나 봄의 화려한 색으로 물든 협곡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거대한 바위 위에 장엄하게 자리한 웅장한 트롱사 종(Trongsa Dzong)이 있다. 16세기에 지어진 이 성채는 부탄에서 유명한 요새 중 가장 크고 미로 같은 곳이다. 수세기 동안 왕추크(Wangchuck) 왕조의 요새였으며, 부탄의 지리적 중심지였다. 미끄러운 내리막길은 물살이 거센 맹드추강(Mangdechhu)까지 이어지는데 낡은 캔틸레버 다리를 통해 강을 건널 수 있다. 다리는 다소 불안정해 보이지만 부탄 불교에 따르면 우리를 깨달음에 더 가까이 인도하는 상징적인 과정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코모 우마 푸나카 호텔 테라스에서 즐기는 아침식사. 푸나카 지구의 전경.
나는 순례자들이 수세기 동안 걸어왔을 길을 걷고 있다. 이 길은 순례자들이나 지금처럼 데이트 앱이 없던 시절 뉴스나 결혼 프러포즈를 전달하던 발 빠른 전령 가프(Garp)들이 지나던 유명한 길로, 곧장 종(Dzong)의 안뜰로 이어진다. 최근만 해도 고향이나 협곡 밖에서는 사회적 교류가 불가능했지만, 전통주의와 현대화의 경쟁은 인도와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 사이에 끼어 있는 국가에서 피할 수 없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트레킹 표지판에 경로별 각 단계를 간략히 설명해주는 새로운 대화형 QR 코드 서비스가 공식 출시된 지 몇 주 만에 중국 의류 브랜드에 의해 해킹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다른 협곡 구간에서는 인도 건설 노동자들이 갓 조성한 하이킹 트레일을 무심한 듯 평평하게 다듬고 있었다. 부탄의 강을 따라 진행 중인 일곱 개의 수력발전 댐은 물의 힘으로 우리 앞에서 달려가는 툭툭(Tuk-tuk)만큼 큰 바위들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트롱사로 가는 순례자의 길은 아직도 험난하다. 우리는 지그재그로 힘겹게 왕의 탁자(King’s Table)를 지나 올라간다. 왕의 탁자는 이전 군주들이 쉬던 전통적인 휴식처로, 수백 년 된 원형 돌 탁자와 벤치용 석판으로 원형의 형태를 띤다. 거대한 사슴 삼바(Sambar)가 깜짝 놀라 도망치다가 숲이 커튼처럼 그를 감싸기 전에 잠시 멈춰 뒤돌아본다. 이는 중세시대의 태피스트리가 살아 움직이는 듯했으며, 그 광경은 축복처럼 느껴졌다. 마지막 왕의 탁자에서 우리는 멈춰서서 오래 머물렀다. 숲의 벌레 소리와 심장의 고동 소리에 귀 기울이는 동안 시간은 느리게 흐르며 깊어져가는 것을 느낀다. 살아 있다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본능, 그리고 내가 종교를 찾는 데 가장 가까이 다가선 순간이었다.

※ 오리지널 트래블(www.originaltravel.co.uk)을 통한 트랜스 부탄 트레일(Trans-Bhutan Trail, www.transbhutantrail.com)은 약 1천7백48만원부터(2인 1실 기준, 모든 항공편 및 환승 포함, 12박 숙박과 2박 캠핑 , 코모 우마 파로에서 2박, 코모 우마 푸나카에서 2박 및 호텔에서 6박, 홈스테이, 모든 식사와 비용 및 비자, 가이드와 운전기사 포함) 이용 가능하다.

Credit

  • 글/ Catherine Fairweather
  • 번역/ 채원식
  • 사진/ Martin Morrell, Jamyang Rinchen, Keith Levit, John Shelton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