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디자인 스튜디오 힙노시스가 만드는 장르
오브리 파월과 스톰 소거슨이 1967년에 창립한 디자인 스튜디오 힙노시스는 록 뮤지션이나 밴드의 앨범 커버에 특화된 작업을 했다. «힙노시스: 롱 플레잉 스토리»는 힙노시스의 전설적인 앨범 커버 작업을 차례로 보여준다. 오브리 파월이 유달리 애착을 갖고 있는 앨범 커버 디자인 중에서 전시의 핵심 구성요소가 된 4가지 작업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한다.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GROUNDSEESAW ©HIPNOSIS LTD
1970년대 초, 앨범 커버용 사진을 찍기 위해 영화나 광고처럼 해외 로케이션을 떠나는 일은 드물었다. 그러나 많은 음반과 경쟁하기 위해선 존재감을 피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은 힙노시스는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더 나이스의 3집 앨범 <Elegy>를 위해 기꺼이 사하라로 떠났다. 사하라 사막의 사구 가장자리를 따라 조심스럽게 빨간 공을 늘어놓았다. 빗자루를 써서 발자국을 지웠고 해가 지기 전에 재빨리 필름 한 통을 찍었다. 공에 긴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사막은 아주 고요했다. 카메라 셔터에서 찰칵 소리가 났고 주의 깊게 귀 기울이면 침묵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오브리 파월은 이렇게 고요와 아름다움을 포착한 마법 같은 순간을 ‘힙노시스 바이브(The Hipgnosis Vibe)’라고 불렀다. 이 앨범의 사진은 어떤 조작이나 후가공이 없다. 순수한 자연의 산물이다. 우여곡절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힙노시스는 공기를 뺀 빨간색 공 1백20개를 가지고 무작정 모로코 남부에 도착했다. 지역 주민들이 밤새도록 공을 부풀리다가 기진맥진한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차에 두었던 가죽 점퍼를 도둑맞는 바람에 호텔 열쇠까지 잃어버려서 돈을 물어줘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다행히 사막에서 자동차 광고 사진을 찍던 미국인 사진가 팀을 우연히 만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마라케시에 겨우 도착하자마자 빨간색 공을 모두 팔아 저녁 값과 방 값으로 썼다. 1960년대 말, 로버트 스미스슨이 대지예술로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것처럼 힙노시스는 자연경관 속에 작품을 만들어냈다. 오브리는 이 앨범 커버를 대지예술이라고 칭하는데, 거기엔 나름의 자부심이 담겨 있다. 종이 위의 아이디어를 현실로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점에서 분기점이 된 작업이다. 그 후, 1975년 핑크 플로이드를 위해 애리조나의 유마 사막으로 떠났다. 얼굴 없는 남자를 등장시켜 르네 마그리트에게 오마주를 바치기도 했다. 힙노시스는 그들의 이상을 사막에서 실현했다.

©GROUNDSEESAW ©HIPNOSIS LTD
1967년부터 힙노시스는 핑크 플로이드의 역사와 함께했다. 탐구정신에 불타는 밴드와 일탈을 즐기는 힙노시스는 기존의 앨범 커버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이미지들을 창조해냈다. 1975년 <Wish You Were Here> 앨범 커버에는 마주 서서 악수하는 정장 차림의 두 비즈니스맨이 등장한다. 우측 사람의 몸에 불이 붙는 장면은 LA의 워너브라더스 스튜디오에서 도전한 촬영이었다. 1977년 음반 <Animals>의 경우, 약 9미터 크기의 거대한 돼지 풍선을 만들어 촬영했는데 맹렬한 돌풍에 실려간 풍선이 비상사태를 일으켰다. 이런 시행착오와 소동에 비하면 1973년 음반 <The Dark Side of the Moon>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영상과 조명 등을 활용하는 핑크 플로이드의 공연 스타일을 정확히 대변한 이 앨범은 약 4천5백만 장이 판매(역사상 네 번째로 많이 팔린 음반)되었고 덕분에 앨범 이미지 역시 유명해졌다. ‘달의 어두운 면’이란 음반 제목은 광기를 암시하지만 앨범 커버 덕분에 제목만 들어도 광학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사실 <The Dark Side of the Moon> 커버는 삼각 프리즘을 통해 한 줄기의 백색광을 무지개색 스펙트럼으로 쪼개는 방법이 설명된 책을 무심코 보다가 아이디어를 얻었다. 어딘가 어울린다는 그들의 직감이 옳았다. 50년이 흘러도 대체 불가능한 독창적인 디자인이 빛나고 있다.

©GROUNDSEESAW ©HIPNOSIS LTD
록 밴드 레드 제플린의 7집 앨범 <Presence>의 커버 이미지는 두 장의 사진을 콜라주했다. 런던 보트 쇼에서 촬영한 사진을 배경으로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모인 가족의 모습을 넣었다. 식탁 위에는 검은 물체가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그림자나 몰딩이 없는 이 오브제는 초현실적이다. 마치 스탠릭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년)에 등장하는 모노리스(검은 돌기둥)을 연상시킨다. 오브리 파월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살아갈 힘이 필요하다. 레드 제플린의 음악이야말로 이런 힘의 원천"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상징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 검은 물체였다. 이와 관련된 재미난 일화가 있다. 오브리가 디자인 회의에서 잠이 들었다가 깨어보니 모두 흥분한 채 검은 물체에 관한 아이디어를 논하고 있었다. 조지 하디가 검은 펠트와 판지로 측면이 곧고 바닥은 정사각형인 첫 오벨리스크를 만들었고, 오브리는 이 아이디어가 담긴 작업을 갖고 뮌헨에 있는 레드 제플린을 찾아가 펼쳐 보였다. 검은 물체는 리드 보컬 로버트 플랜트와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오브리는 잠든 탓에 창작 과정을 상세히 알지 못했지만, 놀랍게도 밴드는 그 물체에 완전히 빠져서 이것이 지닌 의미와 상징에 대해 나름의 해석을 내놓기 바빴다. 심지어 지미 페이지는 물체의 목 부분을 비틀고 바닥을 고르지 않게 만들자고 제안했다. 오브리는 마지못해 동의했지만 결과적으로 더 흥미롭고 신비로운 모양이 완성되었다. 1975년 불상사가 겹치면서 월드 투어를 취소한 레드 제플린은 뮌헨의 뮤직랜드 스튜디오에서 18일 동안 강행군하면서 녹음에서 믹싱까지 모든 작업을 마무리한 앨범으로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심기일전이 필요했던 그들에게 검은 물체는 힘이 되었다.

©GROUNDSEESAW ©HIPNOSIS LTD
1974년 8월, 제네시스의 리드 싱어 피터 가브리엘은 전화로 힙노시스에게 새 앨범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를 작업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해당 앨범의 전체적인 구상에 대해 설명을 들은 후 힙노시스는 코믹북 스타일의 내러티브를 제시했다. 가브리엘이 제네시스와 함께한 마지막 앨범이었다. 가브리엘은 독자적인 노선을 택했고, 그와 힙노시스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힙노시스는 피터 가브리엘의 솔로 앨범 커버를 담당했다. 2집 앨범 <Scratch>(1978년)는 일견 사진 뒤에서 가브리엘이 앞으로 손을 내밀고 있는 모습처럼 다가온다. 이 작업은 커버 사진을 스튜디오 근처에서 빨리 찍은 다음 백지를 가늘고 길게 자르고 찢는 데 오히려 많은 시간을 보냈다. 찢긴 종이를 가브리엘의 사진 위에 붙여 맞추고 그의 손가락에 연결해 꾸민 후 모든 걸 다시 촬영해 3차원적인 공간감을 살린 작품을 완성했다. 가브리엘이 마치 무대 위처럼 독특한 자세를 취하는 것만으로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많은 아티스트들에게 2차원의 평면 위에 3차원 공간을 표현하는 것은 포기할 수 없는 난제이자 즐거움이다. 할퀴는 포즈의 손 뒤에 있던 얼굴은 3집 앨범 <Melt>(1980년)에서 급기야 녹아내린다. 밀랍인형이 된 가브리엘이 박물관에 불이 나서 얼굴이 흘러내리는 스톰 소거슨의 꿈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강렬하고 예술적인 효과를 위해서는 다소 흉한 모습조차 신경 쓰지 않는 가브리엘의 적극성이 있어서 가능한 작업이었다.
※«힙노시스: 롱 플레잉 스토리»는 그라운드시소 서촌에서 8월 31일까지 열린다.
전종혁은 재즈와 오페라만 듣는 편협한 귀를 지녔지만 10대 시절에는 핑크 플로이드에 푹 빠졌다. 핑크 플로이드에 미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힙노시스의 마력이었다.
Credit
- 글/ 전종혁
- 사진/ 그라운드시소 제공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Summer fashion trend
셀럽들이 말아주는 쏘-핫 여름 패션
이 기사도 흥미로우실 거예요!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는
하퍼스 바자의 최신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