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빅토르 바자렐리가 보여주는 미지의 세계

지금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빅토르 바자렐리 : 반응하는 눈>은 작가가 시각의 한계를 끝까지 실험한 결과물이다.

프로필 by 허지수 2024.02.05
<두플라 DOUPLA>, 1970-1975, 캔버스에 아크릴, Vasarely Museum, Budapest.

<두플라 DOUPLA>, 1970-1975, 캔버스에 아크릴, Vasarely Museum, Budapest.

들여다볼 수록 하염없이 빠져드는 시선. 각양각색 도형이 생생하게 움직이는 듯한 환영을 부르는 작품들. 착시 효과를 활용해 추상 미술의 주요 장르인 ‘옵아트’의 선구자로 불리는 빅토르 바자렐리는 일찍이 자신만의 고유한 조형 언어를 만든 예술가다. 1908년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나 파리를 기반해 활동해온 그는 일평생 색채와 빛, 도형에 대한 지극한 관심을 이어왔다. 바우하우스 교육에 영향 받아 추상과 구상, 그래픽 아트 영역을 넘나들었으며 이젤 밖의 미술을 선보이고자 1955년 ‘황색성명서’를 선언하며 새로운 창작을 펼치고자 했다.

<얼룩말 Zebras>, 1939, 종이에 구아슈 및 연필, 컬러 및 흰색 초크, Vasarely Museum, Budapest.

<얼룩말 Zebras>, 1939, 종이에 구아슈 및 연필, 컬러 및 흰색 초크, Vasarely Museum, Budapest.

지금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는 빅토르 바자렐리의 작품 세계와 예술가로서 인생을 아우르는 전시가 한창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옵아트의 초기 사례로 꼽히는 ‘얼룩말’(1939)부터 그래픽 아트와 팽창과 수축을 표현한 ‘플라스틱 유닛’ 등 시대를 넘나드는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무려 50여년 전부터 디지털 기법에 착안한 그는 미묘한 시각적 착란을 통해 스크린에 도형의 움직임을 펼치는 작업을 선보이기도 했다. 수학적 계산과 빛의 광학적 이론을 토대로, 관객의 시야를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자유롭게 이동시키며 시선에 한계를 두지 않는 작품을 탄생시켰다.

나아가 이번 전시는 시대를 통찰한 작가의 시선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특별하다. 그는 순수한 조형성이 지닌 본질에 다가서기 위해 직관적이고 직접적인 시각 요소들에 거리를 두었는데, 총 180여점의 방대한 작품 속에서 작가의 철학을 느껴볼 수 있다. “우리 삶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긴 사색을 즐기지 않는다. 디테일에 대한 사랑을 잃고 그 순간의 직접적이고 강렬한 느낌을 추구한다.” 빅토르 바자렐리는 이렇게 말했다. 기호나 무작위적인 붓질, 개인적인 제스처 등의 모든 요소를 배제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것. 전시를 통해 관객은 광활한 시각적 실험 속에서, 순수성에 닿고자 한 예술가의 시선을 받아들이며 현실을 환기하는 여정을 경험할 수 있다.
<자화상 Self-portrait>, 1941, 종이에 연필과 블랙 템페라, Vasarely Museum, Budapest. <펠다-B Pelda-B>, 1977, 캔버스에 아크릴, Vasarely Museum, Budapest. <크로아-MC Kroa-MC>, 1969, 알루미늄에 실크스크린, Vasarely Museum, Budapest

*< 빅토르 바자렐리: 반응하는 눈> 은 오는 4월 21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

Credit

  • 사진/가우디움어소시에이츠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