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여섯 명의 감독이 만든 여성 서사, 아나이스 텔렌느 인터뷰
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추출한 반짝거리는 이야기들. 우리에게 여전히 영화가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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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이 너의 예술이 될 때, <더 드리머> 아나이스 텔렌느
곧 환갑이 되는 외눈박이 라파엘(라파엘 티에리)은 아무도 살지 않는 저택의 관리인이다. 두더지 사냥과 백파이프 연주를 하면서 변화 없는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저택의 상속녀 가랑스(에마뉘엘 드보스)가 돌아오면서 그의 운명은 송두리째 바뀐다. 가랑스와 라파엘의 운명적인 만남. 가랑스가 라파엘을 모델로 인물상(조각)을 만들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미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영화는 한마디로 현대판 <미녀와 야수>의 성인 버전이라 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예술을 매개로 서로의 삶에 영향을 미치면서 서서히 중독되어간다. 아나이스 감독은 “일반적인 전통과 관습을 따르지 않는 영화”라고 자신의 데뷔작을 소개한다.
곧 환갑이 되는 외눈박이 라파엘(라파엘 티에리)은 아무도 살지 않는 저택의 관리인이다. 두더지 사냥과 백파이프 연주를 하면서 변화 없는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저택의 상속녀 가랑스(에마뉘엘 드보스)가 돌아오면서 그의 운명은 송두리째 바뀐다. 가랑스와 라파엘의 운명적인 만남. 가랑스가 라파엘을 모델로 인물상(조각)을 만들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미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영화는 한마디로 현대판 <미녀와 야수>의 성인 버전이라 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예술을 매개로 서로의 삶에 영향을 미치면서 서서히 중독되어간다. 아나이스 감독은 “일반적인 전통과 관습을 따르지 않는 영화”라고 자신의 데뷔작을 소개한다.

<더 드리머>가 어떤 이야기에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 보았던 특정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기보다는 이야기들이 저에게 전해주었던 감정들을 영화 속에 풀어내려고 했습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안데르센 동화를 많이 읽어주셨는데 그 동화를 들을 때마다 어른이 된 느낌이었습니다. 동화에서 엔딩이 나쁘게 끝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런 이야기가 아이에게 허락되지 않음에도 제가 특별히 들을 수 있는 혜택을 누렸다고 생각했죠. 그때 제가 겪었던 경험들, 불만감이나 멜랑콜리를 영화에 많이 담아내려고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웃음, 환상, 미스터리의 이상한 혼합이 무엇인지 보여주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깊은 인상을 남기는 배우 라파엘 티에리를 어떻게 캐스팅하게 되었나요?
영화의 원천은 배우 라파엘 티에리와의 만남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죠. 제가 그를 찾아가는 입장이었습니다. 당시 단편영화를 준비 중이었는데, 영화 속에서 쇼팽의 피아노를 이사할 때 옮겨줄 캐릭터를 찾고 있었죠. 알랭 기로디 감독의 <스테잉 버티컬>(2016)을 보다가 라파엘의 인상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배우랑 꼭 해보고 싶어서 연락을 취했고 시나리오를 읽어보곤 빠르게 결정을 하셨죠. ‘쇼팽을 똥통에 남겨둘 순 없다(어려운 상황에 놔두진 않겠다)’는 식으로 유머러스하게 답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흔쾌히 참여해주셨고, 유머러스한 만남이 이뤄진 후 세 편의 단편을 찍었습니다. 함께 찍은 영화로 클레르몽페랑 단편영화제에 출품을 했습니다. 그때 우리의 작업이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고 느꼈고, 장편으로 한 번 더 만나고 싶다고 대화를 나눴습니다. 라파엘과 영화를 계속 찍고 싶었죠. 라파엘이 같이 고민을 해주다가 이런 상상을 해보라고 제안했습니다. 어떤 남자가 홀로 살고 있는데, 어느 날 한 여자가 건너편에 이사 오는 것을 상상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설정으로 2년 동안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떠오른 것은 라파엘의 삶이었죠. 그의 일상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했죠. 가랑스를 만나 모든 것이 바뀌기 전 라파엘의 일상은 어떤 것이었을까 고민했습니다. 왜냐하면 불균형에 대해 쓰려면 먼저 균형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야 하니까요. 그런 부분들을 고려해 영화 초반부, 라파엘의 삶과 일상을 그려나갔습니다.
무엇보다 라파엘의 얼굴이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영화 후반부에 이르면 그의 얼굴에서 변화가 느껴집니다.
영화 초반부와 후반부를 비교하면 라파엘의 얼굴은 정말 많이 변해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그런 변화의 느낌을 확연히 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라파엘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인물이 성장했다는 것을 느끼게 하고 싶었죠. 얼굴을 봤을 때 그의 감정이 어디쯤 와 있다는 것을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의안처럼 두드러진 디테일이 그것을 보여주지만 배우의 연기와 내레이션뿐만 아니라 빛이나 카메라에도 신경을 써서 영상을 만들었죠. 예산이 부족해 필름으로 찍지 못했지만 렌즈를 겹쳐서 아나모픽하게 찍었고 디지털적인 이미지를 최대한 훼손하고 싶어서 여성 스타킹을 필터처럼 렌즈에 씌워서 촬영했습니다.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화면에 최대한 담기 위해 노력했고, 디지털로 넘어오면서 잃어버렸던 것들을 살려서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라파엘 티에리가 출연한 <스칼렛>(2022)에서 그의 손이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더 드리머>에선 그의 몸이 스크린을 가득 채웁니다. 그에게서 강함과 약함이 동시에 느껴집니다.
라파엘이라는 캐릭터가 지닌 이면의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영화에서 패러독스의 다이내믹함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즐겁죠. 인물의 대조적인 면이 좋은데, 언뜻 봤을 때는 저 사람한테는 까불면 안 되겠다는 식으로 위압감이 느껴지지만 그에게서 너무나 부드럽고 자상한 면모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라파엘의 육중한 몸매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정말 전형적이지 않은 체격을 가졌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연약하고 사랑스러운 점도 있습니다.
가랑스는 조각을 만들고 라파엘은 백파이프를 연주합니다. 두 사람이 예술을 통해 소통하고 있습니다.
저는 전통음악의 팬이라서 라파엘이 백파이프를 직접 연주하는 것을 영화에 넣고 싶었습니다. 말로 전달할 수 없는 것이 음악을 통해서는 가능하기 때문에 그의 캐릭터가 음악가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기본적으로 <더 드리머>는 동화입니다. 동화는 보통 사회적으로 계층적인 격차가 큰 두 인물이 만나는 이야기이죠. 양치기 소녀가 왕자와 사랑에 빠지는 식이 대부분입니다. 영화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하고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서로 다른 두 인물이 어떻게 가까워질지, 또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 보여주고 싶었죠. 두 사람이 예술을 통해 사회적인 격차나 장벽을 넘어서는 효과를 내고 싶었습니다. 라파엘의 경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백파이프를 연주하고 가랑스는 현대예술가로서 굉장히 대조적인 작업을 합니다.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예술 행위를 하는 이들이라서 예술적인 스펙트럼에 있어서도 차이가 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차이를 상쇄시키고 두 사람을 동등한 위치에 놓는 효과를 원했습니다. 예술가들 사이에 존재하는 정말 특별한 관계를 탐구하고 싶었습니다.
라파엘은 가랑스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가 됩니다.
박물관에 가면 작품 자체보다는 특정 작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거기서 뭔가 부족함을 느꼈죠. 작품에 대해, 더불어 작가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은 누구일까 궁금했습니다. 대부분 영감의 원천에 대해 궁금해하면서 작품을 만든 작가의 욕망에 집중하지만, 그런 욕망을 불러일으킨 사람에 대해 집중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이 이야기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일반적인 남성과 여성의 역할도 좀 바꿔보고 싶었죠. 보통 바라보는 자와 바라보이는 대상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 것들도 뒤집어보고 싶었죠. 그럴 때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고민했습니다.
부산영화제에서 라파엘 배우와 함께 인사하는 모습을 보니 자연스럽게 영화 속의 가랑스와 라파엘이 연상됩니다.
아마 제 영화를 보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저와 배우를 바라보면서 가랑스와 라파엘 듀오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거라고 봅니다. 그것이야말로 제가 배제시키고 싶은 것 중에 하나입니다. 라파엘이 가랑스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고 불투명한 부분이 많은 반면 우리는 굉장히 투명하게 서로를 알고 있습니다.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많은 것을 공유하면서 영화작업을 해왔죠. 제가 라파엘 모르게 하려고 했던 것은 하나도 없죠. 대화와 교류, 우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노력을 기울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작업을 계속 해올 수 있었습니다. 배우에게 100퍼센트 동의를 얻으면서 작업을 해나갔죠.
영화가 담아내고자 하는 사랑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요?
영화를 창작할 때 실제보다는 내가 그 대상에 대해 상상하거나 생각하는 것을 많이 담는 것 같습니다. 영화 속 가랑스가 라파엘의 첫 조각상을 만들면서 “이건 당신이 아니에요”라고 한 후 “내가 당신에 대해 느끼는 부분이에요”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사랑도 그와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상대의 실제가 아니라 내가 상대에 대해 상상하고 생각하는 것을 담습니다. 결국에는 그런 상상과 생각을 모두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자유분방한 가랑스를 향한 라파엘의 사랑은 이뤄질 수 없습니다. 예술작품을 통해 그의 상실을 보여줍니다.
두 사람이 함께 무언가를 창조할 때, 그들의 관계를 쉽게 정의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진정한 사랑이나 우정으로만 이야기할 순 없죠. 물론 창작은 무엇인가를 도둑질하고 상처 입힐 수 있는 행위이기 하지만, 라파엘이 상처만 입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채워지거나 강화되는 부분도 있고, 스스로 자신을 바라보는 방법이 바뀌는 식으로 성장합니다. 다 잃은 것만은 아닙니다.
<더 드리머>는 비극적이지만 아름답고 슬프면서도 우아한 이야기입니다.
영화의 좋은 점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단어를 쓰지 않아도 인간의 몸과 빛과 음악과 소리를 통해서 많은 이야기를 그려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영화의 우아함이란, 말은 많이 하지 않되 되도록 많은 여지와 공백을 주는 것이죠. 관객 스스로 자신이 갖고 있는 것으로 그 공백을 채워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일상과 삶을 소재로 예술작품을 만드는 현대예술가 가랑스를 보면서 소피 칼의 작업들이 떠올랐습니다.
조각이 관능적이기 때문에 가랑스가 현대예술가로 등장하기를 원했죠. 저는 자신의 삶과 친밀감을 예술로 바꾸기로 결심한 예술가들에게 매료됩니다. 정확히 보신 것 같아 너무 기쁩니다.(웃음) 일상을 예술작품에 반영하는 예술가 가랑스를 만들어낼 때 소피 칼로부터 아주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소피 칼은 제가 열다섯 살 무렵부터 굉장히 매료된 아티스트입니다. 파리의 퐁피두센터에서 그의 작품을 처음 접했습니다. 자신이 이탈리아에서 묵었던 호텔방을 그대로 재현한 작업을 선보였죠. 남자친구가 헤어지고 나서 남겨놓은 전화 메시지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런 것들이 저에겐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떻게 개인적인 삶을 예술로 풀어낼 수 있을까. 어떻게 보면 유치하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용기가 느껴지는 행위로 다가왔습니다. 당시 다양한 느낌을 받았는데, 자신의 삶을 작품의 소재로 삼는 것이 결국에는 예술의 최고 단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영화와는 별도로 자신의 일상이나 삶을 반영한 작품을 만들 생각이 있나요?
아직은 계획이 전혀 없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내용을 영화로 표현하고 있지만 그건 영화라는 프리즘을 통해 작업하고 있는 거죠. 조금은 자신을 감추면서 영화의 도움을 받으면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나이가 들고 많은 것을 배우다 보면 바뀔 수 있겠지만 아직은 어떤 방향으로 갈지 모르겠습니다.

대부분 영감의 원천에 대해 궁금해하면서 작품을 만든 작가의 욕망에 집중하지만, 그런 욕망을 불러일으킨 사람에 대해 집중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이 이야기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일반적인 남성과 여성의 역할도 좀 바꿔보고 싶었죠.
Credit
- 프리랜스 에디터/ 전종혁
- 사진/ 이우정(인물),ⓒ 부산국제영화제(영화 스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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