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티나 리치와 영상 통화를 했던 시간은 로스앤젤레스 현지 시각으로 오전 10시, (〈바자〉가 있는) 마드리드는 오후 9시였다. “카메라에 얼굴을 비추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에요!” 그는 화면을 흑백으로 한 이유를 설명했다. 크리스티나의 큰 눈과 긴 검은 머리는 한 세대를 열광케 했다. 그는 1990년대에 호평받았던 영화 〈아담스 패밀리〉(1991)의 ‘웬즈데이’였으며, 영화 〈꼬마 유령 캐스퍼〉(1995) 속 캐스퍼에게 사랑받았던 ‘캣’이었다. 몇 년 후 팀 버튼이 감독한 영화 〈슬리피 할로우〉(1999)엔 조니 뎁과 함께 주연으로 발탁되기까지. 그러나 크리스티나는 지난 30년간 자신이 유명 할리우드 셀러브리티가 아니었던 것처럼 묘사한다. 이 태도는 그에 대해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이번 화보는 얼마 전 펜디 쇼가 끝난 후 밀라노에서 촬영했다. 친구 마크 제이콥스가 지난해부터 디자인해 마침내 출시하는 컬렉션인 만큼, 크리스티나는 사명감을 갖고 열정적으로 자신을 드러냈다. 루스한 의상과 털모자는 그에게 도전이라기보단 일종의 놀이와도 같았다. “너무 재미있는 옷이었고 강렬했어요. 저는 마크 제이콥스가 하는 모든 것을 사랑해요.” 1990년대 런웨이 위에 그런지 룩을 올린 창의적인 디자이너 마크는 크리스티나에게 큰 영감을 줬다. “마크는 굉장히 창의적이고 사려 깊어요. 감각적인 동시에 재밌고요. 그는 멋진 패션 감각을 지녔어요. 마치 놀이하듯 디자인을 완성해내죠. 아무도 그처럼 옷을 만들지 않아요. 독특해요.”
패션은 크리스티나의 취미에서 큰 부분을 차지해왔다. 어머니는 크리스티나 주변에 패션 잡지를 쌓아뒀고, 겨우 18살이라는 나이에 베르사체 쇼에 참석하기도 했다. “저는 패션을 예술 형태로서 존중해요. 우리는 운이 좋게도 예술작품을 입는 기회를 얻은 거죠. 제 인스타그램 계정은 오로지 브랜드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만 팔로해요. 향후 패션 트렌드를 예상하는 것보다 해리스 리드가 표현해낸 니나 리치 룩을 감상하는 데 더 큰 흥미를 느끼죠.” 산타모니카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크리스티나는 크리스마스 기념 연극에 출연하던 중 실제 배우로 활동하던 학우의 매니저 눈에 띄어 연기자 길을 걷기 시작했다. 9살 때 위노나 라이더, 셰어와 함께 영화 〈귀여운 바람둥이〉(1990)에 출연하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얻게 된 것. “학교는 지루했어요. 소녀처럼 사는 삶이 따분했거든요. 무대에서 책임감을 갖고 어른들에게 신뢰 받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제 관심사에 집중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거죠. 큰 기쁨이었어요.”
제 관심사였던 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어요. 큰 기쁨이었죠.
」

크리스티나는 〈아담스 패밀리〉를 통해 어린 나이에 명성을 얻으며 미 대륙에 큰 돌풍을 일으켰다. “저는 관심의 중심이 되는 걸 전혀 즐기지 않았어요. 언론에 제 자신을 소개하고 홍보하는 일이 어려웠기 때문이죠. 저를 샅샅이 분석한 그들은 아직 준비되지도 않은 제게 질문을 던졌어요.” 크리스티나는 학교를 다니며 작품을 찍었다. 이는 그가 평범한 소녀로 지낸 시간도 많았다는 의미. “바보 같은 실수도 많이 했고 문제도 더러 일으켰어요.” 크리스티나가 웃으며 말했다. 반면 그는 자신의 수입이 가족에게 의미하는 바에 대해 책임감과 압박감도 느꼈다.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게임을 하곤 했어요. 예를 들어, 제가 도심에 살고 있고, 아버지는 의사고,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람들이 절 볼 때 미소 짓는 상상. 그런 방식이 제 초기 발달 능력을 키웠다고 생각해요. 제가 실제로 살고 있는 세상에서도 쓸모 있는 존재라고 느끼도록 도와줬어요.”
어린 시절 얻은 유명세는 크리스티나를 계속해서 괴롭혔다. 그는 수년에 걸쳐 이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터득했다. “옛날엔 어린아이가 일하도록 하는 게 옳지 않다고 믿었지만 엄마가 된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요. 아이가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이른 나이에 일을 시작해도 문제가 되지 않겠다고요. 물론 어린 나이에 유명해지는 것과 이로 인해 야기되는 결과는 매우 혼란스러워요. 하루 종일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고, 자아를 이해하지 못했어도 레드 카펫 위에선 ‘자기 자신’이 돼야 한다고 훈계를 들어야 했거든요.” 크리스티나가 말했다.
크리스티나의 인기는 몇 년이 지난 후 ‘The Next Big Thing’이라 불린 하이틴 스타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뺏기며 하락기에 접어들었다. 작품 활동을 멈춘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년 동안 그의 존재는 잊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넷플릭스가 팀 버튼 감독의 연출하에 제작한 〈아담스 패밀리〉 후속작 시리즈 〈웬즈데이〉(2022)에 카메오로 깜짝 출연했다. 또 숲속으로 비행기가 추락하며 벌어지는 1990년대 여성 축구팀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옐로우재킷〉(2021)에서 ‘미스티’ 역할로 출연하며 크게 도약했다. 특히 〈옐로우재킷〉은 최근 두 번째 시리즈를 방영하기 시작했다. “미스티는 제게 큰 영향을 미쳤어요. 지금까지 해왔던 역할과 매우 달라요. 이제서야 성숙한 성인 여성이 된 기분이랄까요. 미스티는 ‘현재’라는 제 실제 삶의 시기에 흥미롭게 다가왔어요. 게다가 미스티는 연기하기 재밌는 캐릭터예요. 미스티를 통해 자유를 만끽할 수 있어요!”


크리스티나는 이제 자신의 직업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스스로 다룰 수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편안해요. 어린 시절엔 어떤 방법으로도 떨쳐낼 수 없었던 오만함을 마침내 떠나보낼 수 있게 돼서인 것 같아요. 뿐만 아니라 감정도 스스로 잘 통제할 수 있게 됐어요. 상처받지 않아야 할 건 상처받지 않고요. 그러다 보니 삶이 훨씬 더 즐거워졌어요.” 크리스티나가 말했다. 게다가 그에겐 삶의 큰 전환점이 된 두 아이, 이제 생후 1년 반이 된 클레오파트라와 8살배기 프레디 히어디건이 있다. “우리는 아주 멋진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프레디는 독특한 아이디어와 훌륭한 열정을 지니고 있어요. 퀸을 좋아하고 프레디 머큐리처럼 옷 입길 즐기죠. 어느 날 아이와 함께 쇼핑하던 중 제가 드는 가방과 똑같은 제품을 보고 사달라고 졸랐어요. 절대 안 된다고 했죠. 그는 자신이 남자이기 때문이냐고 물었고, 저는 그게 아니라 적어도 18살이 되기 전까진 명품 브랜드 제품을 사주지 않겠다고 답했어요.” 크리스티나가 웃으며 말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유명인의 삶이 아닌, 평범한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길 좋아한다.(물론 아들이 말을 안 들을 땐 자신은 그 나이에 이미 일을 시작했다며 혼냈던 적이 있다고도 고백했지만.) 크리스티나는 끝내 이뤄낸 현재 삶에 만족스러워 보였다. 어느 시점이 되자 그에게 고통을 줬던 연예계에서 평화를 느꼈고, 자신의 직업과 화해했으며,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과 화해했다고. 인터뷰를 마치기 전 크리스티나는 앞으로 아무것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실수를 저지른 적도 있고 잘못된 결정을 내렸던 적도 있어요. 트렌드에 맞춰 끊임없이 스스로를 바꾸려 애쓰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의 절 사랑해줬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예요. 그래야 ‘사람 냄새’나는 면을 찾을 수 있었겠죠. 다시 같은 과정을 겪을 수도 있을 테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