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 장인으로 돌아온 유연석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Celebrity

멜로 장인으로 돌아온 유연석

이 남자의 얼굴에는 아직, 소년의 어느 한때가 담겨 있다. 배우 유연석의 오늘 그리고 지금.

BAZAAR BY BAZAAR 2023.01.30
 
〈바자〉와 2년 만에 재회했다. 지난 화보에서 배우 유연석의 이지적인 얼굴을 담았다면 이번엔 인간 유연석의 웃는 얼굴을 포착할 수 있었는데. 
새해 새날을 맞이하여, 저라는 사람의 오늘을 담는 콘셉트라고 하셨지 않나. 전반적으로 편안한 분위기인데다가 사람 냄새가 나는 화보라서 즐거웠다. 내가 휴머니즘을 좋아한다.(웃음) 올해 첫 스케줄인데 덕분에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었다.
JTBC에서 방영 중인 〈사랑의 이해〉도 그런 작품이지 않나. 요즘 작품들은 일단 숨가쁠 정도로 호흡이 빠르거나, ‘회빙환(회귀, 빙의, 환생)’ 같은 판타지적 요소가 들어가게 마련인데 이토록 현실적인 멜로 드라마라니,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왔달까. 돌이켜보면 유연석이라는 배우가 가장 잘 소화하는 장르도 방금 말한 ‘휴머니즘’인 것 같고. 
동의한다. 저라는 배우의 연기를 보고 무엇보다 공감대를 느끼셨으면 한다. 멋들어지게 꾸미고 나오는 작품보다는 사람 냄새 나는 작품이 좋다. 저와 동떨어진 이미지의 연기도 많이 해보았지만 이번만큼은 그저 제가 잘하는 걸 잘하고 싶었다. ‘변신’이나 ‘도전’이 아니라 섬세한 눈빛, 주고받음, 은근한 시선 같은 디테일에 집중했고 그래서 보시는 분들도 편안하게 느끼는 것 같다.
 
터틀넥은 Prada. 더비 슈즈는 Maison Margiela. 레이어드한 이너, 데님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정통 멜로여야만 했던 이유가 있나? 
올해부터 만 나이로 바뀐다고 하긴 하지만 한국 나이로 치면 내 나이가 올해 마흔이다. 30대의 마지막 작품은 멜로였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바람이 있었다. 작품을 고르던 와중에 〈사랑의 이해〉가 현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대단한 서사가 있거나 역경과 고난에 맞서는 사랑은 아니지만 너무 현실적이라서 오히려 마음이 아프더라.
이 작품에 임하면서 소위 말하는 ‘흔한 사랑’, ‘평범한 사랑’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 몸소 느꼈나? 
아무래도 직업적인 이유 때문인 것 같다. 이 드라마 속의 ‘평범’과는 조금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이를테면 사람이 많은 곳에서 데이트를 하는 등의 평범한 연애가 나에게 쉽진 않으니까. 그런 종류의 평범이 늘 아쉽긴 하다.
 
터틀넥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내 꿈은 평범이야. 두루두루 잘 산다는 뜻이지”, “부족함이 없다는 뜻이야”, “평범한 게 최고지” 등 극 중 네 명의 주인공이 저마다 ‘평범’에 대해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평범’을 의인화한다면 그 자체로 주인공들의 직업인 ‘은행원’이 아닐까. 어쩌면 이 드라마의 원작 소설 자체가 ‘평범함’에 대한 통찰에서 시작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대중에게 알려진 배우로 20년을 살아온 당신은 이 ‘평범’을 어떻게 해석하고 작품에 임했나? 
내가 연기한 상수는 강남 8학군 출신으로 남들이 보기엔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을 것 같지만 실상은 매 순간 친구들 수준을 따라잡기 버거웠던 인물이다. 말하자면 상수는 일평생 평범해지기 위해, 그러니까 친구들과 비슷한 수준이 되기 위해 노력하면서 살았다. 그런 맥락에서 내 유년시절의 기억이 하나 떠오르더라. 나 역시 지방에서 살다가 고등학교 시절 별안간 경기고로 전학을 왔다. 아버지가 대학 교단에 계셨기 때문에 남들 눈엔 풍족해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사실상 명예직과 다름없었고 서울로 올라온 뒤 40년 된 아파트에서 살았다. 반 친구들은 나이키 신발 신을 때 만오천원짜리 보세 운동화를 신으면서 마음속으로 그 친구들을 어찌나 부러워했던지. 밥을 굶고 다니진 않았지만 풍족해 보이고 싶어했다.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그렇게 나의 유년시절과 상수의 유년시절에서 접점을 찾고자 노력했던 것 같다. 고교시절 하키 선수가 되고 싶었던 상수가 직장인이 되고 난 뒤 취미 삼아 하키 동호회에서 활동하는데, 실제로 나의 모교도 하키팀이 유명했다는 점도 재미있다. 당시에 나는 선수는 꿈도 못 꿨고 몇 번 경기를 관람한 게 전부였지만. 마치 이 역할을 만날 것이 예견되어 있던 것처럼 여러 가지 접점이 있어서  나도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티셔츠는 Dolce & Gabbana. 팬츠는 Maison Margiela. 양말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흰색 의사 가운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흰색 와이셔츠를 입은 은행원 역할도 자연스럽더라. 지폐 뭉치를 세는 장면은 따로 연습했나?
실제로 은행을 찾아가서 실습을 했다. 창구 뒷자리에 앉아서 하루 종일 손님 응대하는 법, 돈 세는 법, 시제 마감하는 법을 관찰했던 게 도움이 된 것 같다.
멜로 드라마의 배경이 은행이라는 점이 재미있다. 돈과 사랑이라는 상충되는 개념이 공존하는 아이러니한 장소다. 
은행은 돈과 숫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장소다. 드라마 초반에도 그런 묘사가 나오는데, 고객의 신용 등급이나 재정 상태에 따라 대우와 관계가 칼같이 달라지는 곳이지 않나. 이런 배경이 주인공들의 갈등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블레이저, 팬츠는 Ader Error. 슬리브리스 톱은 Loewe. 더비 슈즈는 Kenzo.
 
방금 말한 네 주인공의 ‘계급’이 조영민 감독의 섬세한 연출로도 잘 드러난다. 가난한 공시생 종현은 믹스 커피를, 고졸 계약직 텔러 수영은 드립 커피를, 평범한 직장인 상수는 캡슐 커피를, 부잣집 고명딸 미경은 머신으로 갓 뽑은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신다. 
저도 좋아하는 장면이다. 조영민 감독이 그런 디테일에 강하다. 멜로 연기를 하다 보면 감정선을 조절하기가 힘들 때가 있다. 더하거나 덜할 수 있는 장면에서 감독님이 줄타기를 잘해주셨다. 상대를 보고 있을지 보지 않을지, 좋아하는 티가 더 나도 될지 안 될지 같은 미세한 디테일에 도움을 받았다.
극 중 상수처럼 술에 취해서 일명 ‘자니?’ 문자를 보낸 적 있나? 
당연히 있다.(웃음) 취기를 핑계로 연락하고 싶었던 것 같다.
상수는 캔디도 주고 자양강장제도 주면서 상대를 진득이 기다리는 사람이다. 본인의 연애는 어땠나? 
상대를 기다리게 했던 것 같다. 일 때문에 상대가 원하는 시간에 무조건 달려가주지 못했다. 항상 바빴고 고정적인 출퇴근이 있는 일이 아니다 보니 필요로 할 때 옆에 있어주지 못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늘 미안한 마음이 앞섰고.
 
스타디움 재킷은 Valentino. 팬츠는 Loewe.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원작 소설의 결말이 다소 충격적이었다. 후반부로 가면서 자칫하면 두 주인공 상수와 수영이 비호감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을 거라는 우려는 없었나?
이 드라마에서 말하는 ‘엇갈린 사랑’이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사랑의 모습은 아닐 수 있다. 시청자가 무조건 상수를 응원하진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상수, 수영, 미경, 종현 중 누구 하나는 분명 공감 가는 인물이 있을 것이다. 제가 이 작품을 시작할 때 원했던 건 하나였다. 그저 이 사랑 이야기를 통해서 네 명의 인물로 대변되는 각자의 시청자들이 사랑이라는 주제로 깊고 풍부한 대화를 나누었으면 좋겠다는 것.
당신의 바람대로 이미 온라인으로 성토의 장이 벌어졌다. 이를테면 수영처럼 가진 게 없다 보니 상수의 100%를 바라는 쪽과 미경처럼 가진 게 많으니 100%가 아니어도 된다는 쪽으로 갈리더라. 
앞으로의 회차를 보시면 아마 의견이 더 갈릴 것 같은데(웃음) 부디 많은 토론 부탁한다.
상수를 짝사랑하는 미경이 “상수가 상수 같아서 좋다”라고 말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사랑의 상수와 변수는 무엇인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사랑이란 표현처럼, 그런 굳건함이 내 사랑의 상수였으면 좋겠지만 돌이켜보면 언제나 변수가 존재했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면서 언제나 상황이 변하게 마련이니까.
 
올해로 데뷔 20년을 맞이했다. 연기에 있어서 상수와 변수는 무엇인가? 
상수는 나이 들어서까지 오래 연기하고 싶다는 나의 바람이고, 변수는 매 작품인 것 같다. 매번 맞이하는 새로운 캐릭터, 새로운 플랫폼, 새로운 장르…. 코로나 바이러스도 큰 변수였고 덕분에 영화관보다 OTT가 익숙해진 시장의 상황 또한 새로운 변수였다. 데뷔 초반엔 10년만 버텨보자는 마음으로 연기했고 그러다가 10년 차에 〈응답하라 1994〉로 큰 사랑을 받았으니 얼마나 행운인가. 그 후로 또 10년이 흘러서 20주년이라니. 무수한 변수가 있었음에도 사람들이 저라는 배우를 떠올려주고 계속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이다.
오래도록 연기하고 싶은 바람이 ‘상수’인 당신에게 마흔이라는 나이는 어떤 종류의 전환점인가? 
마흔이라고 대단할 건 없지만 이제 어른이니까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이 커진달까. 불혹이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지 않나. 헛된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지금처럼 꾸준히 연기하고 싶다. 그래도, 저 아직 젊다. (웃음)
20년 뒤에도 연기하고 있을까? 
그래야지. 그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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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손안나
    사진/ 김시내
    헤어&메이크업/ 장해인
    스타일리스트/ 김지원
    어시스턴트/ 백세리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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