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덕이 되는 법: 절망 편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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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이 되는 법: 절망 편

어느 날 오빠가 범죄자가 되었고, 나는 실패한 덕후가 되었다

BAZAAR BY BAZAAR 2022.11.26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라는 황지우의 시구는 오늘날 덕후들, 특히 케이팝 팬들에게 유난히 사무치는 문장이 되었다. 성공한 덕후의 다른 말은 지속가능한 덕후일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을 멈출 수는 없다. 무한한 덕질을 꿈꾸는 우리에게 희망은 있을까?
 
팬과 스타의 관계를 넘어서 모든 인간관계 안에서의 사랑, 한때 누군가를 좋아하고 또 실망했던 경험을 떠올리는 영화로 봐주셨으면 좋겠다. 덕질의 경험이 있든 없든 공감할 수 있을 테니까. 
 
Track 1. 절망 편: 어느 날 오빠가 범죄자가 되었고, 나는 실패한 덕후가 되었다
〈성덕〉은 좋아하던 스타의 범죄 이력으로 ‘성공한 덕후’에서 ‘실패한 덕후’로 전락한 오세연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에서 출발했다.
스크린 너머 ‘널 너무나 사랑한 죄’로 고통받는 X덕후들의 웃픈 사연을 듣다 보면 문득 아득한 질문에 휩싸인다. 진정, 덕후를 위한 나라는 없는가?
 
관람객의 자발적 리뷰가 이렇게 활발한 독립영화는 처음 봤다.(웃음) 누군가의 팬이거나 팬이었던 이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기억에 남는 영화평이 있다면?
얼마 전 “음악 방송 대기실에 의무적으로 틀어놓아야 할 영화”라는 말을 듣고 빵 터졌던 기억이 난다.(웃음)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 고맙다는 말을 자주 듣고 있다. ‘덕후’에게 ‘탈덕’이란 일생일대의 사건이지 않나. 팬들의 목소리를 통해서 이런 경험을 전면에 드러내주어서, 우리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주어서 감사하다고들 하신다. 사실은 내가 만들고 싶어서 만든 영화인데 이런 말을 들어도 되는지, 마음이 이상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론 책임감도 느끼고 있다.
덕후로서 나도 당신을 만나면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쇼비즈니스와 밀접한 우리 업계조차 팬덤을 폄하하고 무시하는 시선이 여전히 존재한다. 하도 상처를 받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어차피 당신들은 이해 못해’ 하고 마음을 닫아버렸는데 이 영화의 솔직함에 위안을 얻었다.
어떤 이들은 우리 영화에 별점 테러를 하거나 “으이구, 그러게. 연예인 좋아하더니 꼴 좋다” 같은 댓글을 남기기도 한다. 여전히 팬은 ‘빠순이’로 인식되고 철들지 않은 어린 여자애들의 한때로 치부된다. 팬들은 결코 단순하고 무식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림자도 아니다. 덕질 안에 희로애락과 갖은 고민, 복합적인 딜레마가 산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입체적인 면이 보여지지 않은 것 같았고 우리 영화를 통해서 이 점을 부각시키고 싶었다. GV에서 자기 직장 상사가 너무 덕후라서, 케이팝 팬들이 진절머리 날 정도로 싫었다는 분을 만났다.(웃음)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런 반응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 팬과 스타의 관계를 넘어서 모든 인간관계 안에서의 사랑, 한때 누군가를 좋아하고 또 실망했던 경험을 떠올리는 영화로 봐주셨으면 좋겠다. 덕질의 경험이 있든 없든 공감할 수 있을 테니까.
 
영화를 만들면서 특별히 조심하거나 우려했던 부분은 무엇인가?
이 영화는 범죄자가 되어버린 스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범죄자가 되어버린 스타의 팬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그들의 이름이 언급될 수밖에 없고…. 현실적으로 그런 부분은 법률 자문을 통해서 해결했다. 가장 큰 고민은 따로 있었다. 그들이 저지른 잘못은 엄연히 실제 피해자가 존재하는 사건들이다. 혹시라도 이 영화가 피해자들의 상처를 들쑤시는 일이 될까 조심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들이 피해자의 편에 섰고, 죄책감과 미안함을 느끼고 있고, 과거를 반성하고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전하고 싶었다.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와 함께 이 영화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은 비슷한 이유로 실패한 덕후가 되어버린 여성 5인의 인터뷰다. 카메라 앞의 그들이 놀랍도록 솔직해서 과몰입했다. 연출자로서 이렇게까지 진솔한 대화를 끄집어낼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가?
처음엔 영화 제목이 그렇듯 성공한 덕후, 유명한 팬들과 접촉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말씀하신 대로 자기의 이야기를 최대한 솔직하게 하는 게 중요하지 않나. 그런 이유로 나와 라포가 형성된 관계를 우선 섭외하고자 했다. 맨 처음 친구들에게 이 영화의 취지를 설명하는데 서로 앞다투어 ‘내가 나가야 한다’는 거다.(웃음) 내가 섭외한 인터뷰이도 있지만 본인들이 자진납세한 경우가 대다수였다. 실제로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아, 이 친구들이 누군가와 이 이야기를 간절히 하고 싶었구나’ 느꼈다. 카메라 밖에선 각자의 덕질에 대해서 이 정도로 깊은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었다. 오빠가 범죄자가 됐다는 소식에 몇 마디 욕하고 입을 닫아버렸을 뿐이다. 그런데 오히려 카메라 앞에서 속 깊은 대화가 가능하더라. “우리는 자신만의 이상적인 세계를 꿈꾼다. 스타는 그 세계를 유지하고 이끄는 구세주였다” “무지개인 줄 알았는데 신기루더라” 같은 표현이 술술 나왔다.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내가 감추거나 모른 척하려고 했던 마음을 그들이 대신 말해준다는 느낌도 받았다. 다소 위험한 발언이라 편집했지만 “그 사람이 죗값을 다 치르고 나서 행복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듣고 한 대 맞은 느낌이 들더라. 감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던, 그러나 한때 팬이었던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모순적인 감정이란 바로 그런 게 아닐까. 
 
스타의 성범죄 소식을 접한 팬이 “충격은 받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놀라지는 않았던 것 같다”고 말한 것이 인상 깊었다. 스타의 범죄가 팬들이 아닌 오롯이 그 사람의 몫임을 머리론 인지하면서도 여전히 팬들이 가슴으로 죄책감을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나.
나 역시 실은 모른 척하고 싶었던 지점이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사람과 나를 동일시하게 된다. 그 사람이 음악 방송 1위를 하면 내가 1위를 한 것처럼 기분이 좋고, 그 사람이 비난을 받으면 나도 기분이 가라앉는다. 마찬가지로 그 사람이 죄를 지으면 팬들은 마치 자신이 범죄에 동조한 것 같은 죄책감을 느낀다. 너는 너 나는 나, 분리가 말처럼 쉽진 않다. 팬으로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부분이 어쩌면 범죄로 가는 힌트였을지 모른다며 괴로워하게 되더라.
당신은 그 시기를 어떻게 견뎠나?
나는 결국 영화를 만들면서 치유받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모든 팬들이 영화를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니(웃음) 내가 친구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듯, 팬들끼리 대화하고 서로를 알아주고 위로해주고 토닥이는 게 가장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라가 스타를 기다리는 팬들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팬들은 스타의 뒷모습이라도 눈에 담기 위해 밤을 새지만 정작 아무도 팬들의 뒷모습을 봐주지 않는다. 뒷모습에 어떤 의미를 담고 싶었나?
신경 쓴 연출인데 알아차려줘서 감사하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매우 현실적으로 답하자면 일단 그 많은 팬들의 초상권 동의를 구할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매우 좋아하는 에드워드 양 감독의 영화 〈하나 그리고 둘〉에서 영감을 얻었다. 극중에서 양양이라는 꼬마가 아빠에게 카메라를 물려받고 사람들의 뒷모습을 찍는다. 양양이 아빠한테 묻는다. “아빠, 우리는 왜 자기 뒷모습을 볼 수 없는 거야?” 팬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문득 그 대사가 떠올랐다. 그러게, 나 역시 덕질하는 동안 나의 뒷모습을 본 적이 없구나, 하물며 앞사람의 뒤통수조차 신경 쓴 적 없구나 싶었다. 추위에 덜덜 떨면서도 그 기다림이 행복한 사람들. 그 애틋한 뒷모습을 나라도 봐주고 싶었달까.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는 명언이 있지 않나. 나 역시 덕후의 기질은 DNA 부터 각인되어 있다고 믿는다. 당신이 보기에 일반인과 비교되는 덕후들만의 공통점이 있나?
일단 덕후들은 디테일에 미친다. 아직 본격적으로 좋아하기 전임에도 “소매를 접은 모습이 너무 귀엽다” 이런 식으로 어떻게든 포인트를 발견하는 사람들이다.(웃음) 또한 기본적으로 지적 호기심이 충만한 것 같다. 머글이라면 “이 영화 재미있네”로 끝내지만 덕후들은 그때부터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되지 않나. 나에겐 오히려 머글의 삶이 더 신기하게 느껴진다. 일상만을 충실하게 보내는 건가? 그러면 사는 재미가 없지 않나? 덕질이란 일종의 멀티버스다. 일상 세계가 있고, 스타와 공유하는 세계가 있고, 팬들끼리의 세계가 있고…. 그렇게 생겨난 무수한 멀티버스 덕분에 사는 게 즐거운 사람들. 그게 덕후 아닐까.
“누군가를 그렇게 좋아할 수 있다는 게 부럽다” “나도 그런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자주 듣지 않나?
“세연이는 참 사랑이 많네”라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덕질이 아니더라도 살면서 누군가를 나보다 더 좋아하고, 일방적인 사랑에 나를 다 바쳐보는 일. 아무나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미 그 경험을 해봤고, 어쩌면 앞으로 또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의 용량이 크달까. 자랑스러운 부분이다.
방금 말한 덕질 경험, 그러니까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오롯이 좋아해본 일은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나? 나는 덕질이야말로 타인의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빠른 통로라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어렸을 때부터 학교 바깥의 또 다른 사회 생활이 있었다는 게 나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전국 각지에 사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교류하고 친구가 되고. 나의 경우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그 사람을 쭉 좋아했었다. 내 거울보다도 모니터를 더 많이 들여다봤던 것 같다. 청소년기가 어느 때보다 고집 센 독불장군 시기이지 않나. 닮고 싶은 사람이 있었기에 부단히 노력했다. 덕분에 버텼고, 잘 컸고, 나만의 취향이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에 무 자르듯 답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들이 이미 체화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하다 못해 그 사람이 아메리카노 마시는 게 멋있어서 따라하기 시작했는데 탈덕했다고 커피를 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지속가능한 덕질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얼마 전 부산 GV에서 나와 비슷한 과거를 가진 실패한 덕후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그때 맨 뒷자리에 앉아 계신 중년 여성 관객이 “너무 이야기가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것 같다”며 손을 드셨다. 처음엔 말로만 듣던 GV 빌런인 줄 알고 당황했는데(웃음) 아니었다. “저는 89년부터 지금까지 쭉 한 가수를 응원하고 있고, 그 분은 지금도 여전히 무대에서 멋지게 노래하는 아티스트다.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여러분들도 다시 그런 사람을 찾길 바란다. 힘을 잃지 말라”며 격려해주시는 거다. 상처받은 덕후들이 안타까우셨던 거다. 나도 언젠가 나만의 스타를 찾았으면 좋겠다. 어차피 덕질은 평생 하는 거니까. (웃음)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지속가능한 덕질은 나, 우리, 팬들의 힘으로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 우리가 해야 하나? 왜 노력을 해야 하나? 우리는 구매력 있는 소비자일 뿐이다. 그들이 알아서 잘 살아야 한다. 부디 그들이 책임감 있고 정직한 삶을 살길 바란다. 지속가능한 덕질도 결국 오빠들의 건승에 달려 있다. 우리는 그냥 잊지 않으면 된다. 덕질도 결국은 내가 행복하려고 하는 것임을. 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 나를 희생하는 건 덕질이 아니라는 것을. 물론 말처럼 쉽진 않으리라. 이 사랑엔 브레이크가 없으니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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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손안나
    글/ 박희아(대중음악전문 기자)
    일러스트/ 김남희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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