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세 개념미술 거장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과의 대화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Art&Culture

82세 개념미술 거장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과의 대화

1970년대 개념미술운동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을 선보이며 미술계에 등장해 1980년대 런던의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아티스트 그룹 ‘yBa’를 가르쳤으며 1990년대 검은 윤곽선과 선명하고 대담한 색으로 시그너처 회화작품을 선보인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Michael Craig-Martin). 현재 82세인 그의 작품 세계는 현대미술사와 궤를 같이한다.

BAZAAR BY BAZAAR 2022.05.02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한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배경이 된 작품은 〈Untitled(8panel)〉, 2001, Acrylic on canvas, 254x101.6(each panel)cm. ⓒ Michael Craig-Martin. Courtesy Gagosian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한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배경이 된 작품은 〈Untitled(8panel)〉, 2001, Acrylic on canvas, 254x101.6(each panel)cm. ⓒ Michael Craig-Martin. Courtesy Gagosian

전시장을 둘러보며 벽에 걸린 작품을 아이폰으로 열심히 찍는 모습을 보았어요. 사인과 기념 촬영을 요청하는 팬들의 요구도 흔쾌히 들어주시더군요.
이번 전시에는 1970년대 만든 초기 작품들도 소개되는데, 50년 전에 제가 만든 작품이 전시장에 설치된 광경을 보는 일은 매우 특별합니다. 이전에도 회고전을 치른 적이 있긴 하지만 이렇게 풀 커리어를 볼 수 있는 기회는 소수의 예술가만 가질 수 있는 특권이기도 해요. 저는 관객이 제 작품을 보고 즉각적인 느낌을 받길 원해요.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관찰하는 게 즐겁습니다. 예전에 미술대학에 다닐 때 제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을 보며 과거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고 얘기하니 선생님께서 그러셨어요. “네가 과거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가 너에게 오는 거야, 새로운 현재로.” 제 그림을 보고 인상적이라고 느끼는 관객을 통해 50년 전에 만든 제 작품이 지금 여기로 오게 돼요. 관객이 전시의 중요한 마지막 퍼즐인 셈이죠. 
 
이번 전시를 위해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 〈Oak Tree〉(1973)가 설치된 전경.

이번 전시를 위해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 〈Oak Tree〉(1973)가 설치된 전경.

그래서 이번 전시의 제목이 ‘Here and Now’로군요!
사실 이번 전시 타이틀은 제 작품들을 통해 우리가 지금 여기서 경험하는 일상생활의 즐거움, 아름다움,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지은 것인데, 그렇게도 해석할 수 있겠네요. 전시의 제목 역시도 해석은 오롯이 관람자의 몫이죠. 아시겠지만 여기 작업들 대부분 제목이 〈무제〉입니다. 제 작품에 관람자가 어떻게 반응할지 예단하고 싶지 않아서 제목 붙이기를 꺼립니다. 제목이 관람자에게 작품에 대한 시각을 강요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Untitled(with tennis ball)〉, 2020. ⓒ 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

〈Untitled(with tennis ball)〉, 2020. ⓒ 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

전시의 시작은 아시아 최초로 선보이는 작품 〈참나무(Oak Tree)〉(1973)가 엽니다. 이 작품은 무제가 아니지요. 〈참나무〉는 남성용 소변기를 〈샘(Fountain)〉(1917)이라는 제목으로 전람회에 출품한 마르셀 뒤샹의 바통을 이어받아 개념미술운동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던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어떻게 선반 위에 놓인 유리컵에 ‘참나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나요?
우선 저에게도 매우 중요한 작품인데 이번에 선보일 수 있게 돼 기뻐요. 저는 이 작품에서 물컵을 비본질적 요소의 변화 없이 참나무로 바꾸었는데요, 예술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답하며 어떻게 하면 가장 간단하고 기본적이면서도 시적인 방법으로 탁월한 변화를 시도할까 고심했던 결과물입니다. 당시 저를 포함한 미술가들은 예술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추구했죠. 그러던 어느 날 ‘가장 큰 변화는 변화를 하지 않는 것(The biggest change is no change.)’임을 깨달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작품을 만들기로 했어요. 유리컵에 물을 부었고 그게 전부였습니다. 저는 이 작품에 〈참나무〉라는 제목을 달고 대상 그 자체보다 미술가의 의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선언했습니다. ‘시적인 변형’을 통해 관람자에게 상상력을 발휘하라고 요구했죠. 우리는 모든 예술이 시적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해요. 예술이 흥미롭고 중요한 이유는 시적인 은유와 비유를 통해서 세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Untitled(desire)〉, 2008. ⓒ 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

〈Untitled(desire)〉, 2008. ⓒ 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

현재 영국에서 활동하지만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가톨릭 신자로 자라며 체화된 교리가 〈참나무〉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요?
성찬 시 신부님께서 주시는 빵과 와인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라고 말하잖아요. 어떤 것은 그 모습이 변하지 않은 채 다른 무엇이 될 수 있어요. 이 작품을 보는 이들이 저를 믿지 않으면 제가 ‘시적인 변형’을 통해 이 물컵을 참나무로 변화시켰다는 것도 믿지 못할 거예요. 예술에서도 믿음(faith)이 중요하게 작용해요.
1990년대부터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식 회화가 탄생했는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고, 어떤 걸 의도하셨나요?
처음에는 종이에 손과 테이프를 이용해 그림을 그렸고 이제는 마우스를 이용하지만 의도는 같아요. 저는 굉장히 제한적인 방식으로 매우 익숙한 일상의 사물들을 그립니다. 이때 늘 같은 사이즈의 선으로 그림을 그리고 빨강, 노랑, 파랑, 초록… 아트숍에 가서 가장 강렬한 물감을 사서 특별한 조색을 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합니다. 모두 평범하고 표준적인 색들이에요. 저는 드로잉에서 새로운 걸 발견하지 않아요. 그저 그리려는 물건을 앞에 두고 아무것도 바꾸지 않고 사물을 본 그대로 그릴 뿐이에요. 기계로 만든 공산품처럼, 내러티브도 배제하고 모든 개인적인 지문은 없애길 원했어요. 그래서 흔적이 보이지 않도록 검은색 테이프를 이용해 라인 드로잉을 하게 됐죠. 제가 하려고 하는 것은 물체 자체가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특성이 묻어나 있는 작품을 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스타일 없는 것이 저만의 스타일로 인정받게 되었고, 사물을 전통적인 시각이 아닌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려는 저의 의도도 잘 전달이 되었죠.
 
〈Cassette〉, 2002, Acrylic on canvas, 289.6x208.3cm. ⓒ Michael Craig-Martin. Courtesy Gagosian

〈Cassette〉, 2002, Acrylic on canvas, 289.6x208.3cm. ⓒ Michael Craig-Martin. Courtesy Gagosian

그러니까 일상의 익숙한 오브제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려는 거네요? 투명한 컵에 물을 채운 〈참나무〉와 형형색색의 이 회화작품들이 어쩌면 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네, 맞아요! 그 점이 중요합니다. 같은 아이디어를 다르게 표현한 것 뿐이에요. 저는 1973년 이래 매우 다양한 시도를 통해서 쭉 같은 얘기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카세트테이프 같은 오브제가 기종별 아이폰으로 변화된 걸 보면 참 흥미로워요. 일상의 오브제의 역사를 되짚으려는 의도는 없었을 것 같은데요.
처음 오브제를 그리기 시작했을 때는 시대가 변화하는 것에 구애 받지 않는 사물을 생각했어요. 어느 시대나 문화권에서도 즉각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물건, 단숨에 그 물건의 이름을 말할 수 있을 만큼 익숙한 것 말예요. 그런데 우리의 일상생활이 훨씬 빨리 변하고 그에 맞춰 어떤 물건들은 역사 속에서 사라지기도 하고 쓰임새나 형태가 변하기도 했어요. 마치 폼페이의 유적처럼 오브제들은 우리의 삶을 반영하죠. 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제 작업은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에 대한 일종의 기록이 되었어요. 특히, 아이폰을 그리면서 깨달았죠. 현대사회에서 물건은 브랜드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요. 
 
〈Untitled(take away cup)〉, 2012. ⓒ 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

〈Untitled(take away cup)〉, 2012. ⓒ 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

그림에서 어떤 지문도 남기지 않으려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이 그림들은 사진으로 찍어서 감상해도 되는 것 아닌가요?
제 작업은 사진으로 찍어 엽서로 만드는 순간 그래픽이 되어버려요. 그러면 실제 사이즈도 알 수 없고 그저 이미지로서 소비하게 되죠. 제가 2미터 넘는 큰 스케일, 강렬한 색채를 고집하는 이유는 많은 시간을 디지털 세계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그것과 대척점에 있는 실제 경험을 주고 싶어서입니다. 피지컬한 진짜 경험이요! 
 
〈Untitled(Kelly)〉, 2021, Acrylic on aluminum, 90x90 cm. ⓒ Michael Craig-Martin. Courtesy Gagosian

〈Untitled(Kelly)〉, 2021, Acrylic on aluminum, 90x90 cm. ⓒ Michael Craig-Martin. Courtesy Gagosian

처음 인사 나눌 때 아이보러 컬러의 명함을 주셔서 참 인상적이었어요. 작가님 이름아래 양쪽으로 베니스와 런던의 주소가 적혀 있더군요.
몇 년 전에 베니스에 공간을 마련했어요. 런던에서 지내는 때가 더 많긴 하지만 베니스에 가 있을 때는 정말 베니스 사람처럼 살아요. 여전히 복원해야 할 게 많아 조금씩 손보고 있는 아파트에서 작업도 하고 어딜 가든 걸어 다니죠. 집에서 리알토 다리까지는 정확히 14분이 걸려요. 13분도 아니고 15분도 아니죠. 정밀하고 정확해요. 그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 시공간 운영의 페이스와 리듬이란 게 얼마나 특별한지 몰라요. 여행객들에게 베니스는 마법 같은 도시일 테지만 살아보면 매일 매일 더 놀라워요! 베니스 얘기만 나오면 이렇게 흥분하게 되네요.(웃음)
 
※ «영국 현대미술의 거장 :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전»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8월 28일까지 열린다. 
 
안동선은 컨트리뷰팅 에디터다. 예술은 ‘믿음’의 문제이며 ‘시적인 변형’이라는 크레이그 마틴 옹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눈앞에 있는 작품을 온전히 감상하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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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안동선
    사진/ 맹민화(인물)
    신채영(전경)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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