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보쌈-운명을 훔치다〉를 무사히 떠나 보냈다. 어떻게 지냈나?
두 개의 차기작을 결정했다. 10월부터 다시 촬영에 들어가서 열심히 준비 중이다. 아직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곧 기사로 공개될 것 같다. 하지만 바쁜 와중에도 골프로 시작해 골프로 끝나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웃음) 자기 전에 유튜브로 골프 예능 프로그램도 보고 골프 연습도 틈틈이 한다.
〈보쌈-운명을 훔치다〉의 출연을 결정할 때 몹시 망설였다고 들었다. 차기작은 확신이 있었나?
〈보쌈-운명을 훔치다〉는 너무나 매력적인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 사극을 연이어 하는 게 두려웠다. 그동안 해보지 않은, 거칠고 도전적인 캐릭터여서 내가 잘 소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함께 출연하는 후배 배우들도 많아서 내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고. 물론 이번 결정도 마찬가지다. 하루는 할 수 있다고 했다가, 하루는 못 하겠다고 했다가.(웃음) 그럼에도 안주하지 않고 변화하려고 한다. 보통은 작품 속 캐릭터가 내게 얼마나 매력적으로 다가오는지, 35살의 정일우에게 어떤 캐릭터가 잘 맞을지 계속해서 고민해나가고 있다.
외부 반응에 대한 두려움인가? 아니면 스스로와의 싸움인가?
남들한테 어떻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게 다 부질없더라. 예전에는 조급한 마음이 컸다면 지금은 두려움이 더 크다. 벌써 데뷔한 지 15년 정도가 됐는데, 늘 발전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무거움도 있다. 어떤 면에서는 여유가 생겼지만, 연기는 여전히 어렵고 항상 원점에서 시작하는 기분이다. 처음과 똑같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니 모두 다 나 자신과의 싸움일 뿐이다. 그걸 얼마나 현명하게 잘 이겨내는지가 중요하다.
연기는 기술적으로 접근할 수 없다. 캐릭터의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 끝없이 연습해야 한다. 친구 사이도 서로 알아가는 데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나 또한 캐릭터와 친해지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갖는다. 수없이 대본을 소리내 읽고 주변 선생님들께 조언을 구하며 캐릭터의 과거 발자취를 좇는다. 그 과정이 고되지만 이 또한 내 직업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고된 만큼 성취도 더 크기 때문에 일할 때 가장 즐겁다. 두려움과 즐거움이 공존한달까.
와이드 팬츠는 Ann Demeulemeester by Adekuver.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하지만 드라마는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MBN 채널 역대 최고 시청률을 달성했다고.
감사한 마음뿐이다. 얼마 전 〈거침없이 하이킥〉 다큐멘터리를 찍었는데, 나문희 선생님과 이순재 선생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드라마를 다 보셨다고 했다. 쉽지 않은 캐릭터인데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잘 마무리한 게 너무 대견하다고 말씀해주셔서 힘이 났다. 추운 겨울에 촬영을 해서 체력적으로 정말 힘들었던 작품이다.
권유리, 이준혁 배우 등과의 ‘케미’도 큰 힘이 됐을 것 같다.
촬영 세 달 전부터 만나 대본 리딩을 하며 아이디어 회의도 하고 드라마의 전체적인 컬러를 잡는 작업을 해나갔다. 캐릭터를 분석하는 시간도 충분히 가졌다. 촬영 전부터 배우들과 친해져서 촬영 현장이 그 어느 때보다 편하고 재미있었다. 이준혁 선배에게 정말 많은 것을 배웠는데, 촬영이 끝난 후에도 연락하며 잘 지내고 있다. 최근에 예능 프로그램에 같이 나가자고 하셔서 그것도 하기로 했다.(웃음) 많이 의지하고 좋아하는 선배다.
늘 주위에 사람이 많아 보인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에 에너지를 받는 편인가?
맞다. 특히 일을 할 때는 그 시간 동안 좋은 기억을 함께 쌓는다는 마음으로 임한다. 그 시간을 잘 보내면 결과가 어떻든 간에 또 우리만의 행복한 추억일 수 있으니까. 불화가 생기면 드라마 성적이 아무리 좋아도 행복하지 않다.
레더 재킷과 티셔츠는 51 Percent by Samplas. 스트링 팬츠는 Rick Owens.
주위 사람들과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직접 기획도 한다고.
10년 가까이 캘린더 촬영을 하고 있다. 그걸 판매해서 기부도 한다. 지방 곳곳을 다니면서 한국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려고 하는데, 지난번에는 강원도에 다녀왔고 이번에는 부산에 갈 생각이다. 내가 크리에이터가 되어 작업에 참여하니 훨씬 재미있더라. 유튜브 〈1일 1우〉는, 그동안 예능 프로그램에 거의 출연하지 않은 터라 정일우라는 사람을 편하게 보여주고 싶어 시작하게 됐다. 곧 내가 작품 하면서 들었던 노래들, 20대를 추억하는 플레이 리스트가 담긴 콘텐츠가 공개되는데, 이어서 좋아하는 영화, 책, 와인 등 다양한 내 취향을 공유해나갈 예정이다. 기획 아이디어는 여러 군데서 얻는다. 뉴스를 보다가, 책을 보다가,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얻는 경우도 있다. 그러려면 일단 열려 있어야 한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더 많은 것에 도전해보고 싶다.
드라마를 함께 한 권유리 배우는 정일우를 ‘진취적인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동의하나?
우리 집 가훈이다. 아버지, 어머니가 총학생회장을 하셨다. 누나도 마찬가지고. 나 역시 반장 경험이 있는데, 아무래도 집안에 도전적인 피가 흐르는 것 같다.(웃음)
그러려면 무척 부지런해야 한다. 그러한 동력은 어디에서 비롯되나?
무수히 많은 경험을 해보아야 좋은 연기가 나온다는 믿음이 있다. 20대 시절에는 뇌동맥류 진단을 받아 아예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을 때도 있었는데, 그 시간을 겪고 나니 뭐 하나라도 더 경험하고 배우는 게 맞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도전했던 것 중 가장 큰 성취를 꼽자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것. 그곳에서 많이 변화했고, 우리가 살아가는 데 많은 것이 필요치 않다는 것도 깨달았다. 하지만 다시 그걸 잊고 살아가지.(웃음)
그도 그럴 것이 패션에도 무척 관심이 많지 않나?(웃음)
사실 옷 두세 벌만 있으면 한 달 가까이도 거뜬히 지낼 수 있는데 말이다. 배낭에 티셔츠 3~4개, 양말 4개, 속옷 3개, 카메라 정도를 넣어서 갔는데, 걷는 동안 그것만으로도 무척 무겁게 느껴졌다.
나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근심이나 걱정이 있어도 몸이 너무 힘드니 걷는 것에만 온전히 집중하게 된다. 눈앞이 깜깜하게 느껴졌던 일들도 다른 시야로 바라보게 되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을 감사하게 여길 줄 알게 됐다. 즐거운 시간이 있으면 분명히 괴로운 시간도 온다. 그걸 얼마나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이겨내는지가 핵심이다. 걸으면서 친구도 많이 만들었다. 평생 함께할 친구를 만나 계속 연락하며 지낸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후에는 여행 스타일이 완전히 바뀌었는데, 이제는 혼자 여행하는 것도 즐긴다. 어릴 때는 대도시 여행을 좋아했다면 지금은 소도시에 가서 하루 종일 걷곤 한다.
벌써 세 번이나 다녀왔다고. 왜 꼭 산티아고 순례길이어야 했나?
20대 초반에 파울로 코엘료 작가의 〈순례자〉를 읽고서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동경을 가졌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굉장히 여러 개인데, 나중에 시간 되면 스페인 북부 길이나 그 외 다양한 길들을 여유 있게 즐기면서 걷고 싶다. 특히 북부 길은 바다도 끼고 있어 수영도 할 수 있다. 걸을 수 있는 곳이라면 혼자든 친구들과 함께든 다 좋다. 걷는 것도 약간 중독이 되어서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는 재미도 쏠쏠하다. 군대 이야기처럼 술 마실 때 할 수 있는 주제가 된달까.(웃음)
스타디움 점퍼는 Sperone. 데님 팬츠는 R13 by Beaker. 슈즈는 New Balance.
다시 연극 무대에 서고 싶다. 연극 〈엘리펀트 송〉을 하면서 많은 걸 배웠다. 무대에 올라가기 전 기본적으로 두 달 이상 연습을 하는데, 그러면 캐릭터에 대한 몰입감이 훨씬 더 깊어진다. 매일 같은 작품을 하지만 같은 연기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나 관객과 가까이서 소통할 수 있다는 것도 굉장히 매력적이다. 여기서 배운 걸 또 다른 작품에 적용하면 현장에서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 같다. 내년에 시간만 맞는다면 꼭 다시 도전해볼 생각이다.
연기는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 그럼에도 계속해서 배우로 살아가고 싶은 이유가 있을까?
하면 할수록 어렵고, 하면 할수록 재미있다. 단 한 번도 흥미를 잃고 그만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팬들의 사랑도 여전히 고맙다. 30대가 되면서 그 사랑에 더 큰 책임감을 갖게 됐다.
〈거침없이 하이킥〉의 ‘윤호’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캐릭터다. 그런 ‘인생 캐릭터’를 가졌다는 것도 일종의 동력이 될 수 있겠다.
배우에게 대표작이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게다가 15년이 지난 지금도 그 캐릭터의 이름을 정확히 떠올린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이 모여 내가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 배우로 살아가는 동력이 된다. 얼마 전 〈거침없이 하이킥〉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면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이라는 생각 때문에 울컥하기도 했다. 돌아오는 11월에 〈거침없이 하이킥〉이 15주년을 맞이한다. 15년 전 11월 6일에 딱 첫 방송을 했거든.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그 때 그 시간을 함께 추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