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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동쪽으로 떠나는 여행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을 따라 걸으며 문무대왕릉의 전설을 마주하고, 고수의 승가 무예를 만나는 경주 동해안 여행.

BYBAZAAR2021.09.23
#진주의바깥생활
vol.26 경주 동해안 여행
 

화석이 된 파도, 경주 양남 주상절리

주상절리 파도소리길 / 경주시 관광자원 영상

주상절리 파도소리길 / 경주시 관광자원 영상

대표적 주상절리인 제주 중문의 지형이 수직으로 촘촘하게 박힌 육각기둥이라면, 경주 동해안 용암은 거대한 부채 형상을 닮았다. 깊고 짙푸른 바다가 원형으로 누운 기둥을 향해 박진감 넘치게 차오르고 전망대에 선 사람들은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호젓한 대릉원을 어슬렁거리는 낭만만을 떠올린다면, 동쪽에서 의외의 경주 풍경과 마주할 것이다. 검은 화산암 지형과 곶자왈을 닮은 식생은 제주 원형과 무척 흡사하고 사람들의 발걸음은 드물다. 주상절리 군이 흩어져 있는 양남면 읍천리는 불과 9년 전만 해도 군사지역으로 분류되어 접근이 불가능한 곳이었다. 부대가 철수하고 나서야 드러난 방사형의 부채꼴 갯바위는 세계에서도 보기 힘든 무척 희귀한 형태라고. 주상절리를 제대로 만끽하는 방법은 1.7km로 이어진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을 느릿느릿 걷는 것이다. 읍천항에서 시작하는 길은 원기둥, 주름치마, 부채꼴, 꽃술 등 경주의 다양한 주상절리를 아우른다. 누구라도 쉽게 산책할 수 있는 평이한 길로 데크 로드와 벤치, 구름다리 등이 잘 조성되어 있다. (*경상북도 경주시 양남면 양남항구길 14-3)
 

문무왕의 바닷속 무덤, 경주 문무대왕릉

문무대왕릉 봉길해변 / 경주시 관광자원 영상

문무대왕릉 봉길해변 / 경주시 관광자원 영상

경주는 시내 전체에 흩어진 수많은 유적과 박물관, 힙한 카페가 매일 새롭게 오픈하는 황리단길 등 구경할 곳이 너무나 많은 동네다. 빠듯한 일정에 경주 동해안을 끼워 넣기 꽤 힘들 수 있다. 그럼에도 희귀 주상절리와 역사적으로 중요한 수증릉인 문무대왕릉을 멀리서 바라보는 시간을 꼭 한 번 가져 보길 바란다. 
문무대왕릉 봉길해변 / 경주시 관광자원 영상

문무대왕릉 봉길해변 / 경주시 관광자원 영상

문무대왕릉을 지도 검색하면 바다 안쪽을 가리키는데, 실제로 동해안에서 200m가량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에 있다. 삼국통일을 이룬 신라 문무왕의 유언에 따라 시신을 화장한 후 대왕암에 안치했다. 조선 시대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견대 아래 10보 바다 가운데 네 뿔이 우뚝 솟은 돌이 네 문과 같은 곳이 있는데, 이것이 그(문무왕)를 장사한 곳이다. 지금까지 대왕암이라고 일컫는다.’고 쓰여 있다. 봉길 대왕암 해변에서 바라보면 마치 고래 한 마리가 떠 있는 것 같다. 물길을 조절하는 자연 바위 4개를 동서남북으로 배치했고, 가운데 큰 돌덩어리 아래 유골을 안치했다고. 그러나 반론도 끊이지 않는다. 2001년 KBS 역사스페셜 〈최초 발굴, 신라 대왕암〉 제작팀은 대왕암 안쪽으로 들어오는 물길을 막고 고인 물을 퍼내는 다소 놀라운 방법으로 대왕암 내부를 탐색했으나 관련된 어떤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최근 세계전통해양문화연구소 김성규 소장은 현재 문무대왕릉에서 500m 떨어진 해안의 ‘가미새바위’를 진짜 문무대왕릉으로, 그곳에서 80m 위의 ‘당수깨언덕’을 이견대라는 새로운 주장을 펴는 중이다. 문무대왕릉의 진실은 여전히 흐릿하지만, '기도빨'을 확인하려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곳으로 흘러드는 것을 보면 전국의 무속인을 끌어모으는 ‘전설’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경주시 문무대왕면 봉길리 26)
문무대왕릉 봉길해변 / 경주시 관광자원 영상

문무대왕릉 봉길해변 / 경주시 관광자원 영상

 

승가 무예의 베이스 캠프, 골굴사

절 입구에 늘어선 선무도 동상

절 입구에 늘어선 선무도 동상

골굴사 출입문 격인 일주문을 지나면서부터 심상치 않다. 여느 절에서 볼 수 없던 무예 동상이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한국의 소림사다운 풍경이다. 6세기에 인도 광유 성인 일행이 창건한 천년사찰이자불가 전통 수행법인 선무도를 수련하는 총본산이다. 
선무도 총본산인 골굴사 일주문으로 가는 길

선무도 총본산인 골굴사 일주문으로 가는 길

함월산 깊은 곳에 자리한 사찰은 선무도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지만, 석회암 절벽을 깎아 만든 석굴만 보아도 충분히 신비롭고 영험한 기운이 느껴진다. 매일 오후 3시 대적광전 앞에서 펼쳐지는 선무도 공연은 마침 비가 온 탓에 실내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골굴사에서 선무도를 수행하고 있는 일반인들이 각자의 기량을 선보이는 자리다. 유연한 몸짓으로 날카로운 무술 동작을 선보일 때마다 실내를 가득 채운 사람들의 탄식과 박수가 이어졌다. 
선무도 공연이 열리는 대적광전

선무도 공연이 열리는 대적광전

선무도 공연을 마치고

선무도 공연을 마치고

깊은 산 속에서 수련하는 불교 무술도 매혹적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기기묘묘한 석회암 절벽에 새긴 마애여래불좌상과 석굴에 마음을 빼앗겼다. 반면 가파른 절벽에 협소하게 설치되어 있는 나무 계단은 아찔하고, 산신당으로 오르는 반대편 길은 난감할 지경. 이끼로 뒤덮인 입구를 지난 후 고정 로프를 잡고 올라가 돌 사이로 난 키 작은 구멍을 통과해야 하는 난코스다. 길이 쉽지 않지만 마애여래불좌상의 섬세한 조각과 함월산의 깊은 풍경을 보면 한참을 석굴에서 머물게 될 것이다.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기림로 101-5, 선무도 공연 매일 오후 3시 대적광전 앞 / 월요일 제외)
6세기에 석회암 석굴에 조각된 마애여래좌불상 마애여래좌상으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