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ft
Touch

톱, 팬츠는 Boss Men.
이석훈에겐 약간의 편견이 있었다. 한마디로 다정한 교회 오빠 같달까. 은테 안경, 흰 피부, 마른 몸에 한때 유행하던 초식남의 분위기를 지닌. “대중들의 그런 편견을 깨트리고 싶진 않아요. 오히려 맞춰드리고 싶은데요? 그런데 겪어보니 어때요? 제가 마냥 부드러운 사람은 아니거든요. 그 누가 됐든 할 말은 다 하는 성격이고 장난기도 많죠. 하하하하.” 무엇보다 말끝에 달린 저 웃음소리가 가장 의외다. 이석훈은 거침없이 말하고 호탕하게 웃는 남자다.

마른 몸은커녕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보디라인을 가지고 있다. 건장한 몸에는 잉어 한 쌍, 라틴어 성경 구절, 아내와 처음 만난 날짜, 기하학적 도형까지 오랜 시간 공들여 새겼을 타투가 빼곡히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후회한단다. “분명 후회하는데, 며칠 전에 불현듯 ‘아, 타투하고 싶다’ 생각하는 저 자신을 인지하고 미쳤구나 싶던데요. 아무튼 아들이 태어나면서부터 타투는 딱 끊었어요. 아이를 안고 있는 제 모습이 좀… 그닥 멋스러워 보이진 않더라고요. 제 외모와 별로 잘 어울리는 것 같지도 않고요. 각지고 날카로운 얼굴이었다면 어울렸을 텐데 저는 좀 순하게 생겼잖아요. 사람들이 놀라더라고요. ‘어? 얘도 타투를 해?’ 이런 느낌이죠.”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카메라 앞에서 멋 부리는’ 자신의 모습이 창피하다면서도 본 게임에 들어가니 금방 진지해진다. 익숙한 안경까지 벗으니 가수가 아닌 배우의 얼굴이 엿보인다. 이석훈은 2018년 〈킹키부츠〉를 시작으로 꾸준히 뮤지컬 무대에 서왔다. 최근엔 새로운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연습에 한창이다. 그가 맡은 인물은 여자들이 사랑해마지 않는 우아한 귀족 악셀 폰 페르젠 백작. “군인 출신이잖아요. 원래의 딱딱한 이미지보다는 좀 더 저답게 가려고요. 제가 연기하는 거니까요. 제 생김새나 말투와 너무 어긋난 설정으로 가면 관객에게 그게 더 어색할 것 같아요. 최대한 유연하게 접근하려고 해요”.

팬츠는 Acne Studios. 팔찌는 AphrosexAmondz. 반지는 Mama Casar.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 방송 이후 SG워너비로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석훈은 하던 대로 뮤지컬 무대에 오르고 평소처럼 노래할 뿐이다. “주변 사람들이 이 타이밍에 노를 젓지 않고 뭐하느냐고 혼낼 정도니까요. 돈이 중요했다면 들어오는 일은 다 했겠죠. 그런데 저는 명예가 더 중요한 사람이에요. 하던 걸 그냥 하는 게 아니라 하던 걸 더 잘하고 싶고요. 가수로서, 인간으로서 이렇게 한 챕터씩 천천히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이게 더 자연스럽잖아요.”
인터뷰 내내 이석훈은 ‘유연하게’ ‘자연스럽게’ 같은 부사를 자주 썼다. 지금껏 가수로서의 그의 행보도 그랬다. 잘나가는 그룹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면서 데뷔했고 당연하게 인기를 얻었고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스윽, 큰 고생 없이 쭉 여기까지 온 느낌이란 거죠? 다들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뜨뜻미지근하게 여기까지 왔죠. 지금처럼 확 뜨거웠던 적은, 글쎄요, 한 번도 없었어요. 잘 버틴 것 같아요. 빨리 잘된다고 좋은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수도 있어요. 저는 이게 좋아요. 노래하고, 작품 올라가고, 아주 뜨겁진 않아도 알아주는 사람이 있고. 그러면 된다고 생각해요. 지난 13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요.”

셔츠는 Kimseoryong.
하지만 꾸준하기가 어디 말처럼 쉽나. 무엇보다 그가 몸담고 있는 한국 음악 시장은 지난 10여 년간 그 어느 필드보다 급격한 생태계 변화와 트렌드의 부침을 겪은 곳이다. 그가 데뷔한 2008년엔 앨범 판매량으로 ‘라라라’의 성공을 가늠했다면 지금은 멜론 실시간 차트 역주행 추이로 ‘Timeless’가 대세임을 판가름하니까. “당연히 고민은 있죠. ‘석훈아, 댄스 한번 하자.’ 이런 농담도 들어요. 그럼 저도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말라’고 응수하죠. 진지하게 말하자면, 제가 정말 춤을 출 건 아니잖아요. ‘요즘 음악 시장이 이쪽으로 가니까 나도 이쪽 음악을 해야지.’ 그게 비겁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다만 이렇게 접근했다면 아마 저는 지금 굉장히 괴로운 가수 생활을 하고 있겠죠. 돈은 만질지 몰라도 저 자신한테 부끄러울 것 같아요. 다행히 저는 그런 선택을 한 적이 없고, 지금도 제 음악을 하고 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음악과 트렌드를 적절히 조율하면서요.”

니트는 Dior Men. 안경은 Calin.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훈아, 댄스 한번 하자.”는 농담이 왜 나오는지 알 것도 같았다. 거기에 1세대 아이돌 메인 보컬 이석훈도 꽤 잘 어울렸을 것 같다는 의견을 보탰다. 정색을 하며 고개를 저을 줄 알았건만 이석훈은 순순히 수긍했다. “흐으음. 나이가 어렸다면 또 모르죠. 한번쯤 아이돌에 도전해보지 않았을까요? 하하하.” 이석훈은 꽤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진 교회 오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