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프로엔자 스쿨러에서 가브리엘라 허스트까지, 팬데믹 시대의 뉴 컬렉션

팬데믹은 전 세계 패션계의 공급망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다. 지난 일 년 동안 업사이클링 혹은 데드 스톡과 폐기물을 활용해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실험이 이뤄졌고, 몇몇 럭셔리 브랜드에서는 창조의 모체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으로 하이패션의 공식이 완전히 뒤바뀌게 될까?

BYBAZAAR2021.04.29
 

NEW SEASON,

OLD CLOTHES

티셔츠 드레스, 초커로 사용한 핀, 토트백, 리본, 벨트로 사용한 핀은 모두 Collina Strada. 이어커프는 Alexander McQueen, 웨지 힐은 Maryam Nassir Zadeh.

티셔츠 드레스, 초커로 사용한 핀, 토트백, 리본, 벨트로 사용한 핀은 모두 Collina Strada. 이어커프는 Alexander McQueen, 웨지 힐은 Maryam Nassir Zadeh.

 
제한은 언제나 우리의 취향과 관점을 드러내주죠. - 가브리엘라 허스트
 
지난봄, 록다운 기간의 처음 며칠 동안 프로엔자 스쿨러의 잭 매컬로와 라자로 에르난데스는 어려움에 봉착했다. 코로나19로 극심한 피해를 입은 이탈리아 북부 지역에 본사를 둔 고급 직물 공장들이 모두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럭셔리 패션 레이블이 새로운 원단 없이 컬렉션을 완성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그들은 납품 업체와 셀 수 없는 줌(Zoom) 회의를 통해 결국 지난 시즌에 쓰고 남은 데드 스톡 원단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방대한 양의 패브릭을 보유하고 있었어요. 이를 실제로 활용하게 된 건데 흥미롭게도 보다 창의적인 컬렉션을 완성할 수 있었죠. 2021년 봄 컬렉션의 90%는 아카이브 패브릭을 각기 다른 방법으로 재작업해 만들었습니다.” 에르난데스가 회상했다. 리브 조직의 니트와 뉴트럴 컬러의 오버사이즈 테일러링이 돋보이는 긍정적인 컬렉션을 선보인 듀오는 버려지는 쓰레기를 줄이자는 그들의 오랜 목표를 달성하기도 했다. “이번 과정은 우리의 비전에 많은 교훈을 주었습니다. 우린 계속 이렇게 말했죠. ‘여기에서 벗어나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되려 슬프지 않을까?’라고요. 이 위기가 그간의 고정관념을 깰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죠.” 매컬로의 설명이다. 전 세계 모든 디자인 스튜디오들은 이러한 도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19로 인해 공급망 중단이라는 전례 없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건 곧 하이패션을 구성해온 틀에 박힌 고정관념들을 다시금 재고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업사이클링, 그러니까 기존 소재를 재사용하는 과정은 마치 영화 〈매드 맥스〉에서 쓰레기 더미를 헤매던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데, 그런 광경들은 곧 럭셔리의 반대처럼 인식되어왔기 때문이다. 경제 순환 연구소인 앨런 맥아서 재단(Ellen MacArthur Foundation)의 2017년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까지 패션 업계에서 생산된 원단의 1%만이 새로운 의상으로 재탄생되었다고 한다. 패션이란 새로운 것, 그리고 그 이후의 것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는 산업이다. 브랜드는 매년 새롭고 다른 원단들로 4개 이상의 컬렉션을 만든다. 즉 남은 것들은 폐기물이 되어버린다는 얘기다.
 
 
스커트는 모두 Chopova Lowena. 귀고리, 목걸이, 슈즈는 Dolce & Gabbana.

스커트는 모두 Chopova Lowena. 귀고리, 목걸이, 슈즈는 Dolce & Gabbana.

 
하우스의 아카이브를 뒤진 것은 비단 프로엔자 스쿨러뿐만이 아니었다. 알렉산더 맥퀸의 팬이라면 2016년 프리 스프링 컬렉션에서 선보인 바 있는 완두콩 원단을 새로운 숄더백에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 더 나아가 수트와 다수의 레이스 드레스는 데드 스톡 원단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런가 하면 도메니코 돌체와 스테파노 가바나는 2021년 돌체앤가바나의 시칠리안 패치워크 컬렉션을 위해 지난날의 기억을 더듬어 내려갔다. 아카이브에서 가져온 반짝이는 브로케이드, 스트라이프 코튼, 레오퍼드 프린트와 폴카 도트 시폰이 브랜드의 심벌과 함께 뒤섞여 들어갔다. “이번 록다운은 우리가 가지고 있던 것들을 창조적으로 재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해주었습니다.” 가바나의 말이다.
 
클로에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가브리엘라 허스트(2017년 자신의 첫 런웨이 컬렉션부터 데드 스톡을 사용해온 바 있다)에게 있어 이 위기는 마치 새로운 실험과도 같은 기회를 제공했다. “제한이라는 것은 언제나 우리의 취향과 관점을 드러내주죠. 솔직히 말해 재사용하는 원단들이 쓰레기처럼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이를 제대로만 활용한다면 사람들이 공장에서 바로 온 소재라는 사실도 느끼지 못할 거예요.” 아울러 그녀는 태도에 있어 변화를 강조했다. “첫 쇼에서 소재를 재사용했을 때 제 시도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어요. 되려 공장한 곳과 마찰이 생겼죠. 감사하게도 지금은 모든 게 바뀌고 있어요.”
 
한편, 공장들이 문을 닫은 상황은 예기치 못한 소재의 혁신적인 활용을 유도하기도 했다. 가령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뎀나 바잘리아는 남는 신발끈으로 만든 퍼 코트, 재사용한 농구 네트로 만든 드레스(보는 즉시 크리스토벌 발렌시아가의 아이코닉한 피셔맨 네트 드레스를 떠올리게 했다), 리벳과 패치워크 부츠로 만든 구조적인 모터사이클 재킷을 선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바잘리아는 소재의 혁신이 곧 하우스의 핵심이었던 메종 마르지엘라에서 커리어를 쌓아온 인물이 아니던가. 마틴 마르지엘라는 브랜드 초창기에 버려진 소재들을 찾아 획기적인 의상을 만들곤 했는데, 정육점 앞치마를 드레스로 변신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메종 마르지엘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존 갈리아노는 또 어떠한가? 그는 이번 시즌에 복원시킨 위커 백을 비롯해 레이스 톱, 탱고 펌프스 등에 ‘레시클라(Recicla)’라는 이름을 붙였다. 빈티지 피스를 통해 하우스의 유산을 이어나간 셈이다.
 
 
케이프, 톱, 니트, 팬츠는 모두 Prada.

케이프, 톱, 니트, 팬츠는 모두 Prada.

 
코치의 스튜어트 베버스는 1960년대 하우스의 디자이너였던 보니 캐신이 만든 아카이브 백에 스티치로 이니셜을 새겨 넣어 개인 맞춤형으로 변신시켰고, 리바이스 501 진에는 나비 자수와 라인스톤을 더했다. 또한 봄 컬렉션을 ‘코치 포에버’로 명명함으로써 과거와 현재, 미래가 혼합된 것임을 강조했다.
 
나아가 재생된 섬유로 천을 만드는 하이테크 업사이클링에 투자하는 브랜드도 있다. 프라다의 ‘리나일론(Re-Nylon)’ 프로젝트가 그 대표적인 예다. 재활용한 섬유, 바다에 버려진 플라스틱으로 만든 나일론 패브릭을 활용해 완성한 시그너처 나일론 백을 시작으로, 최근엔 레디투웨어로 확장되었다. 이번 시즌 각광받는 클러치 케이프 역시 리나일론으로 만든 것. 말 그대로 쓰레기를 보물로 탈바꿈시킨 사례다. “리나일론 프로젝트를 통해 이제 새로운 자원을 쓰지 않고도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됐어요. 책임 있는 리테일 비즈니스로 우리의 계속된 노력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2021년 말까지 나일론 생산 전체를 재생 나일론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미우치아 프라다의 아들이자 그룹의 마케팅 및 기업의 사회적 책임 부서의 책임자를 맡고 있는 로렌조 베르텔리의 말이다.
 
생산에 들어가는 피스 수가 급격하게 줄면서 폐기물이 줄었다는 점도 희망적으로 다가온다. “코로나 이후, 최고의 럭셔리를 향유할 수 있는 사람들은 세상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것을 원하게 될 거예요. 이제 전 세계적으로 3천 달러짜리 드레스는 그리 많지 않게 될 겁니다.” 친환경적인 패션을 추구하는 하이엔드 패션업체, 메종 드 몽드(Maisons du Monde)의 공동창업자 하산 피에르가 전했다.
 
그린 패션의 선구자 격인 스텔라 매카트니 역시 이 의견에 동의한다. “리미티드 에디션이나 한 피스밖에 없는 매우 희소한 제품들이 탄생하는 거죠. 아무래도 가지고 있는 남은 원단과 부재료로는 적은 양을 만들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건 마치 착용가능한 아트 작품과도 같아요. 소중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희귀한 피스를 만들게 됐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히는 스텔라 매카트니의 가브리엘라 드레스는 무려 아홉 시즌 동안 각 컬렉션에서 사용한 원단 조각들을 결합해 완성한 것이다. “과거엔 리사이클링을 염두에 둔 컬렉션을 완성한 건 우리뿐이었죠.” 매카트니는 지난 20년간 럭셔리 패션계가 더 큰 책임의식을 가지길 권고하며 벌여왔던 자신의 캠페인들을 떠올렸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목적을 재평가하게 된 거죠. 지금의 변화가 정말 기뻐요.”
 
 
드레스, 백, 슈즈는 모두 Maison Margiela. 후프 귀고리는 Alexander McQueen.

드레스, 백, 슈즈는 모두 Maison Margiela. 후프 귀고리는 Alexander McQueen.

 
코로나19로 비롯된 환경적 책임의 물결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는 의식 있는 디자인을 지지하는 대중의 몫일 것이다. 반면 2014년 ‘순환적 패션’이라는 용어를 만든 지속가능성 컨설턴트인 안나 브리스마는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공장이 중단되는 여러 문제들로 인해 일부는 보다 지속가능하고 순환적인 변화를 필요로 하겠지만, 결국 많은 기업들이 평상시 하던 대로 비즈니스에 복귀하게 될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메종 드 몽드 공동창업자, 하산 피에르의 이야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후에 관한 비상 사태는 잠시 왔다 지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미래의 환경을 보호하는 것은 브랜드의 성공을 위한 필수 원칙입니다. 단순한 마케팅 전략이 아닌 거죠.”
 
희망적인 사실은 많은 브랜드들, 특히 젊은 층과 친환경을 의식하는 디자이너들은 팬데믹을 그다지 위협적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불가리아의 작은 아틀리에에서 모든 것을 만듭니다. 특히 스커트는 수량을 적게 만들기 때문에 특별히 이번 일로 인해 늦춰진 건 없어요.” 오래된 베갯잇과 앞치마를 소재로 한 아코디언 주름의 킬트 스커트로 잘 알려진 쇼포바 로웨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엠마 쇼포바가 말했다.
 
파리는 어떨까? 줄리 벳의 라미네 쿠야테는 멀티 컬러 태슬 미니스커트를 만들기 위해 자투리 천을 엮었고, 케빈 제르마니에는 제로 웨이스트 패턴 테크닉을 적용해 직사각형 패턴의 드레스를 만들었다. 뉴욕 브랜드 콜리나 스트라다의 힐러리 타이모어는 가나의 칸타만토 시장에서 구한 티셔츠들로 다수의 프린트 셔츠, 탱크 톱과 드레스를 만들기도. 그런가 하면 에크하우스 라타는 데드 스톡 크로셰와 장식용 덮개를 활용, 손으로 짠 스커트와 드레스를 완성했다. 아울러 로마의 스텔라 진은 이번 도전을 저항의 문제로 바라봤다. “휴업 첫날, 모든 장인들에게 연락했어요. 대부분은 여자였는데 나와 함께 계속 일해줄 수 있는지 물었죠. 저는 케이크나 피자를 만드는(집안일) 솜씨가 없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거든요.” 그 결과 남성용 패브릭을 업사이클링한 뒤 핸드 페인팅과 자수를 넣은 스핀 오프 컬렉션이 탄생했다. 이는 그 지역의 공예기술을 보존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규모가 크든 작든, 모든 패션 브랜드가 느낀 건 새로운 한계가 불러일으킨 에너지와 긍정주의일 것이다. 여기, 스텔라 매카트니가 마지막으로 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라. “이번 일로 저는 중요한 것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됐어요. 그동안 과잉생산, 과소비, 새로운 것에 대한 끊임없는 움직임이 너무 많았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죠. 우리의 순환적인 사고방식이 지구에 더 우호적이면서도 창의적인 방법이라는 걸 증명하고 싶습니다.” 자, 새로운 2.0시대에 온 것을 환영한다. 신선하고, 익스클루시브하며, 환경친화적인 세계. 지난날의 데자뷔를 살짝 느낄 수 있다는 건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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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이진선
  • 사진/ Charlie Engman
  • 글/Katherine Ormerod
  • 번역/ 이민경
  • 모델/ Oyinda
  • 스타일리스트/ Becky Akinyode
  • 헤어/ Tashana Miles
  • 메이크업/ Tracy Aljafora
  • 세트 스타일링/ Javier Irigoyen
  • 프로덕션/ Bennett & Clive
  • 웹디자이너/ 한다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