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식전주, 꼭 마셔야 할까? #고독한와인애호가

만찬을 위한 준비운동, 와인 한 모금의 미학

BYBAZAAR2021.04.09
 #5 아페리티프 와인
 #고독한와인애호가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성수동에 있는 한 이탤리언 레스토랑을 약속보다 일찍 방문했다. 다이닝 레스토랑은 아니고 내추럴 와인을 판매하는 캐주얼 레스토랑이다. 단정하고 아늑한 인테리어에 기본기 단단한 요리로 유명한 곳이다. 자리를 안내 받고 일행이 도착하기 전에 목을 축일 요량으로 음료와 주류 리스트를 훑었다. 이탤리언 레스토랑이라면 으레 있을 거라 생각한 아페리티프(apéritif)가 보이지 않았다. 
꽁비비알 인스타그램 캡춰 @convivialseoul

꽁비비알 인스타그램 캡춰 @convivialseoul

아페리티프는 식전주를 뜻하는 프랑스어다. 식사 전에 한두 잔 정도 마시면서 식욕을 돋우는 용도다. 우리는 주로 식후에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지만 프랑스나 이탈리아는 식전주와 반주, 식후주로 술을 나누고 또 그에 맞게 즐긴다.  
와인 리스트를 보며 고민하다가 화이트 와인을 글라스로 주문했다. 매장으로 들어오는 은은한 햇살을 만끽하면서 서빙된 와인 잔을 들어 코를 잔 깊숙이 가져가 향을 맡았다. 비오니에 품종의 화이트 와인이었는데 복숭아 향이 코를 넘어 머릿속까지 상큼해지는 기분이었다. 입에 적당량을 한 모금 머금었다. 당도가 없는 상당히 드라이하면서 식전주로 적당한 높은 산도를 가지고 있었다. 연이어 이어지는 신맛이 혀와 입 전체를 자극했다. 이 정도면 만찬을 위한 준비운동은 되었을 거다. 
 
잔을 테이블 위해 올려놓고 검지와 중지로 스팀을 쥐고 천천히 스월링했다. 금빛 와인이 소용돌이치며 햇살을 받아 반짝거렸다. 정오의 빛깔이었다.  
아페리티프 스파클링 와인이나 화이트 와인처럼 대체로 산도가 높은 상큼한 스타일이 주를 이룬다. 캄파리 같은 과일과 식물의 뿌리 등 여러 재료를 배합한 리큐어가 대표적이지만 베르무트나 릴레 블랑 같이 화이트와인을 베이스로 한 리큐어도 식전주로 많이 사용한다. 대신 당도가 너무 높은 음료는 피하는 것이 좋다. 캄파리와 오렌지주스를 섞은 캄파리 오렌지나 탄산수를 섞은 캄파리 소다가 가장 흔한 유형의 식전주다. 마티니도 칵테일로 인식되지만 식전주 중 하나다. 대부분 리큐어를 사용하는데 와인을 베이스로 한 식전주도 많다.  
 
그중 프랑스에서 가장 대표적인 화이트 와인 아페리티프가 키르(Kir)다. 크렘 드 카시스라는 카시스 베리를 증류주에 담아 설탕을 첨가한 리큐어와 화이트 와인을 섞은 와인 칵테일이다. 크렘 드 카시스는 당도가 높기 때문에 화이트 와인에 조금만 넣으면 된다. 은은한 단맛과 특유의 풍성한 향이 화이트 와인에 배어들어 식욕을 돋우기 알맞다. 20세기 중반 프랑스 디종시의 시장을 지낸 캐농 패릭스 키르가 고안한 칵테일로 부르고뉴의 화이트 와인과 역시 부르고뉴의 크렘 드 카시스를 이용해 보다 맛있는 음료를 만들기 위해 고안됐다. 이 키르가 유행을 타면서 부르고뉴 화이트 와인의 매출량이 급증하기도 했다. 크렘 드 카시스는 스파클링 와인이나 레드 와인에 타서 마시기도 한다. 샴페인에 넣어 마시면 키르 로얄이 되고, 보졸레 레드 와인에 섞으면 카디날이라는 칵테일이 된다.  

키르 로얄

키르 로얄

릴레 블랑은 보르도 화이트 와인에 시트러스 리큐어, 설탕에 절인 오렌지와 꿀을 넣어 오크통에 숙성한 리큐르다. 그냥 마시면 아주 달콤한 화이트 와인으로 여겨질 정도다. 하지만 이런 달콤함은 식전주에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토닉워터나 탄산수를 섞어 마신다. 그럼 은은한 단맛과 상쾌한 기포, 적절한 산미와 쓴맛이 뒤를 잇는다.  
 
이런 와인 베이스의 칵테일은 식전주로도 좋고, 또 한 가지 장점이 있다. 먹다 남은 와인을 냉장보관해뒀다가 기분전환용으로 마실 수 있다는 점이다. 와인은 한 번 열어두면 산화가 시작되 본래의 풍미와 향이 사라진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버리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크램 드 카시스 한 병이면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그래도 일주일 이상 보관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