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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천직, 이주영

연기 스위치를 끈 카메라 밖의 이주영이 잠시 숨을 고르더니 옅은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BYBAZAAR202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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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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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중간중간 보여준 미소가 너무 예뻤어요. 지금까지 맡았던 역할과 대비되는 무해한 캐릭터도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요. 
특정 캐릭터에 대한 욕심은 없어요. 다만 많이들 저를 강한 이미지로 생각하시더라고요. 말씀하신 대로 수더분하고 평범한 역할도 해보고 싶긴 해요.
첫 상업영화와 드라마도 짧은 머리에 메이크업을 거의 하지 않은 채로 출연했죠. 보여지는 직업인 만큼 화려하게 비춰지고 싶은 마음도 있을 텐데. 
여태까지 너무 수수하게만 나왔으니까 화려한 역할도 해보고 싶다는 욕심보다는 배우니까 다양한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어요. 이전에 연기했던 캐릭터와 겹치지 않는 역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크롭트 카디건, 크롭트 팬츠는 모두 Miu Miu. 골드 이어커프는 Thomas Sa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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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땐뽀걸즈〉에서의 혜진 역이 인상적이었어요. 이주영의 우울하고 반항적인 면을 최대치로 끌어내 보인 듯한 느낌. 아무 기대감도 없는 듯한 공허한 눈빛이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 사람 이주영이 살아온 삶이 궁금해질 정도였어요. 
그렇게 느끼셨다는 게 참 신기해요. 사실은 촬영 전날 거제도에 내려갔는데 가자마자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바로 다시 서울로 올라오고. 정신없었죠. 그러다 보니 작품에서 엄마에 대한 슬픔이 비칠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주변의 소중한 사람이 그렇게 된 게 처음 있는 일이었고, 그 대상이 엄마이기도 하고. 그래서 혜진이를 연기할 때 아무래도 저 개인의 우울함이 많이 반영된 것 같아요. 아마 밝은 역이었어도 그런 눈빛이 나왔을 거예요.
〈걸스 온 탑〉의 주영은 때로는 현실 타협적으로 보였다가도 때로는 이상주의적인 인물로 보여요. 실제 이주영은 어느 쪽에 더 가깝나요?
이상주의적이라고 생각해요. 연기도 29살에 시작했는걸요. 배우가 되겠다고 다짐했을 때 누군가 “너는 연기 아니야. 너는 모델이야.” 하더라고요. 무슨 뜻인지 알아요. 저는 키도 클뿐더러 예쁘지도 않잖아요. 제가 만약 현실 타협적인 사람이었다면 배우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을까요?
 
니트 크롭트 톱은 Recto. 레더 스커트는 Ports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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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가량 하던 모델 일을 그만두고 연기자의 길을 택했을 때, 배우가 천직이라고 느꼈나요? 
천직이라고 생각해요. 연기를 하면 해방감을 느껴요. 사회적인 가면을 쓴 이주영이 하지 못하는 것들을 해볼 수 있죠.(웃음) 상업영화나 드라마를 하기 전 특히 더 그랬어요. 자유롭고 다양한 연기를 해볼 수 있으니까요.
연기를 통해 다양한 갈래의 삶을 체험했는데 이런 경험이 실제 삶에 영향을 미치진 않는지 궁금해요. 
둘 사이를 잘 구분 짓는 편이에요. 캐릭터와 저를 분리해서 생각해요. 혜진이 같은 경우도 너무 마음 아프지만 제가 아니라 제 주위에 있는 친구 느낌에 가까웠어요.
연기 스위치를 껐다 켰다 하는 거네요? 
그렇죠. 아까 촬영 중간중간 제가 웃을 때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때가 연기를 하다가 다시 이주영으로 돌아오는 그런 순간인 셈이죠.(웃음)
#saveourcinema 챌린지에서 언급하신 네 개의 작품(〈4등〉 〈땐뽀걸즈〉  〈재꽃〉 〈폴라로이드 작동법〉)은 미완의 청춘들이 주인공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요. 
저도 몰랐는데, 어린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작품을 좋아하나봐요. 책도 〈자기 앞의 생〉을 좋아해요. 그전엔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제일 좋아했고요. 두 책 모두 어린아이가 화자잖아요. 이번에도 좋아하는 독립영화를 무심결에 선택한 건데 고르고 보니 다 아이들 얘기더라고요.
 
백리스 드레이프 톱은 Gauchere by Net-A-Porter. 골드 귀고리는 H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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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입장에 공감이 많이 가는가봐요. 
제가 어릴 때 ‘어른들은 왜 이렇게 거칠게 우리를 다룰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웃음) 그러다 보니 나는 어른이 되면 어린애들한테 안 그래야지 다짐하곤 했어요.
인스타그램 소개글 ‘Find your balance’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어요. 좌우명인가요? 
얼마 전에 명상 전시를 보러 갔는데 그 문구가 있더라고요. 모두 각자만의 기준이 있잖아요. 라이프스타일이 다르고,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그러니까 남과 비교하거나 어딘가에 치우치지 않고,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내 것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써 놓게 되었어요.
지금 중점을 두고 있는 곳은 어디인가요? 
일이랑 그냥 평범한 일상요. 작품을 할 땐 정신없이 바쁘다가도 쉴 땐 아무것도 없는데 그 시간이 참 중요한 것 같더라고요. 그것을 어떤 것들로 채우느냐에 따라서 배우 이주영도, 사람 이주영도 달라진다는 생각이 들어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많이 고민해요.
주로 어떻게 보내나요? 
진짜 사소한 것들인데….(웃음) 책 읽고, 요가 하고, 커피 내려 마시고, 청소하고, 강아지랑 산책하고, 영화 보고, 음악 듣고 그래요. 요즘엔 좋아하는 책의 구절을 필사하면서 글씨 연습도 하고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해요.
 
크롭트 카디건, 크롭트 팬츠는 모두 Miu Mi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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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터뷰에서 본인을 성취욕이 높은 사람이라고 소개했죠. 지금까지 이룬 것에 0부터 10까지 점수를 매긴다면 몇 점 정도 될까요? 
한 6점 정도? 배우 일을 시작하면서 마흔 살까지는 관련 업계 사람들에게만이라도 이름을 알려야겠다는 목표를 세웠어요. 〈독전〉과 〈라이브〉를 통해 제 이름이 조금은 알려졌다고 생각해요. 그것만으로도 참 잘했다 싶어서 반은 약간 넘었다고 생각해요.
4점 남았네요. 
근데 그 4가…. 등산 할 때도 그렇잖아요. 처음엔 평지로 가다가 갑자기 가팔라지고, 계단길 올라가고. 그 4가 그렇지 않을까요?(웃음)
성취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련은 없나요? 
기독교 신자예요. 내가 너무 원했지만 성취하지 못한 것들이 있으면 그건 하나님께서 다 이유가 있어서 내게 안 주신 거다, 이렇게 생각해버리고 말아요. 모델 일을 했을 땐 그걸 움켜쥐려고 엄청 집착했어요. 커리어가 그렇게 잘 풀리지 않았는데 결국엔 실패했던 경험이 연기에 도움이 되더라고요. 그래서일까, 제가 성취하지 못한 것들은 어떤 식으로든 다 저한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인생 길잖아요. 당장은 너무 슬픈 일일 수 있어도 그게 나중에 어떻게 도움 될지 몰라요.
“배우는 자신의 밑바닥을 보는 직업”이라는 말을 꾸준히 해왔어요. 밑바닥을 마주한 순간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연기를 배울 때 처음으로 그런 감정을 느꼈어요. 갑자기 저한테 욕을 해보라는 거예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안 나오더라고요. 잘 모르는 사람 앞에서 제 약한 모습을 꺼내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걸  해나가다 보니 저를 막고 있던 유리들을 하나씩 깨고 나가는 느낌이었어요. 꼭 욕 때문이 아니더라도요.(웃음) 그 밑바닥, 자기의 가장 추하고 바보 같은 면을 마주하고 완전히 발가벗고 있어도 아무렇지 않을 정도가 되어야 자유롭고 풍성한 연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멋있어 보이고 싶어서 뭔가를 자꾸 의식하면 바운더리가 좁아질 수밖에 없는데, 이걸 넓혀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마주하는 순간 자유로워지거든요. 모델 일을 할 때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 치중을 했다면 배우 일을 시작하면서는 저의 내면을 많이 마주하게 됐어요. 그래서인지 연기를 배우면서 심리치료를 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나에 대해 잘 모르면 어떤 것을 보여줄 수 있겠어요?”라고 한 적도 있죠. 
몇 번 실패를 하며 제 자신을 객관화하게 되었어요. 옛날의 저는 제가 되게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스스로가 나약한 사람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고 신도 필요하고요.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니까요.
 
오버사이즈 셔츠는 Low Classic. 칼라리스 블레이저, 버뮤다 팬츠는 모두 Leha. 실버 귀고리는 Engbr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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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이스〉(가제) 촬영은 잘 끝났나요? 
네, 요즘엔 휴식을 취하고 있어요. 얼마 전 지인과 등산을 갔는데 그분이 5년 동안 산림청에서 정한 명산 100곳을 다 갔다는 거예요. 대박이죠? 자극이 돼서 저도 100개를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성취욕.(웃음) 그걸 목표로 3월부터 지금까지 7곳을 갔어요.
톡톡 튀는 배역과 달리 자연을 좋아하고 글과 명상을 즐기는 정적인 사람 같아요. 
혼란스럽고 복잡할 때 글을 쓰면 마음이 편해져요. 제가 표현을 못하고 담아두는 성격이다 보니 어릴 때는 글을 쓰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해소했어요.
요즘도 글을 자주 쓰나요? 
옛날만큼은 아니에요. 사실 문예창작과 복수전공 하고 나서 잘 안 쓰게 됐어요.(웃음) 일 년 간접 체험을 한 게 다지만 너무 힘든 거예요. 피가 마르는 느낌이더라고요.
글을 배운 경험이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장편 시나리오 두 개를 써봤거든요. 하나는 완전 사이코 드라마, 하나는 격정 멜로. 도움이 되긴 하죠.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요? 
이주영이 이 작품에 나온다 하면 사람들이 그 작품에 대해 궁금해하는, 설렘과 기대를 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저는 꼬부랑 할머니가 될 때까지 연기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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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문혜준
  • 사진/ 김재훈
  • 스타일리스트/ 이경은
  • 헤어/ 조미연
  • 메이크업/ 정수연
  • 어시스턴트/ 정예은,이정
  • 웹디자이너/ 김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