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지속가능성 디자인을 위해 디자이너가 할 일

버려지는 조각 없이 하나의 합판으로 네 개의 의자를 디자인하고 이를 코스(Cos)에 전시하면서 화제가 된 가구 디자이너 문승지. 지속가능성이 목표가 되던 시기는 지났다. 이제 지속가능성은 디자이너가 작업의 기저에 깔고 가는 필수요소가 됐다.

BYBAZAAR2020.04.06
 한 장의 나무 합판으로 버려지는 조각 없이 네 개의 의자가 나오도록 설계한  ‘ 포 브라더스 ’ 프로젝트

한 장의 나무 합판으로 버려지는 조각 없이 네 개의 의자가 나오도록 설계한 ‘ 포 브라더스 ’ 프로젝트

‘포 브라더스’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의자 디자인이 화제가 되면서 지속가능성이 이름 앞에 자주 붙게 됐어요. 부담감이 있나요?
지속가능성 디자인을 하는 이유는 의무감 때문은 아니에요. 지속가능성이 제 디자인의 마케팅적 요소가 전혀 아니니까요. 그래서 부담이라기보다는 그냥 이 작업이 좋아서 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가구를 만드는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애초에 어떻게 하면 쓰레기를 최소화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시작한 작업입니다. 되게 상업적인 작업도 하고, 아주 이상한 작업도 많이 해요. ‘포 브라더스(Four Brothers)’는 여러 컬렉션 중 하나죠. 디자이너도 어느 때엔 회사원과 비슷하게 틀에 짜인 일을 하게 되는 순간이 오는데요, 저는 ‘포 브라더스’와 같은 작업이 그럴 때 리프레시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싶은 것만 하는 디자이너는 많지 않을 거예요. 그 약간의 답답함을 환기시켜주는 재미있는 작업이 바로 이런 의미 있는 디자인을 만드는 일입니다. 디자인으로 세상에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만드는 일, 그 자체가 재미있어요.
지속가능성이 마케팅 포인트가 되던 시기는 이미 지났고, 이 개념을 기반에 깔고 가는 쪽으로 서서히 바뀌고 있는 것 같아요.
굉장히 공감합니다.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가 한때 굉장히 이슈가 됐고 여러 기업에서 마케팅 포인트로 공략했었고요. 저 역시도 그런 기업을 많이 만나왔습니다. 그런데 따지고보면 지속가능성은 당연한 거예요. “의자는 튼튼해야 한다”는 명제처럼 당연한 이야기죠. 디자인을 한다는 것은 세상에 새로워 보이는 것 혹은 새로운 것을 계속 만들어내는 직업입니다. 디자이너는 크리에이티브한 생각으로 조금이라도 더 나은 것을 만들어내는, 소비자와 생산자의 중간에 있는 사람이잖아요. 그러다보니 새로운 디자인이 계속 배출되면 이전의 것들은 뒤로 밀려나 사라지게 돼요. 그리고 종국에는 쓰레기가 될 거예요. 디자이너로 일하는 사람이라면 이 부분을 꼭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디자인의 영역이 넓어지는 셈입니다.
이제 친환경 이슈, 지속가능성 이야기는 어디를 가도 보이고 들리니, 이걸 디자이너 시각으로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고민할 차례인 것 같아요. 저는 디자인을 가르치는 학교에서도 이 부분을 깊고 넓게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지속가능성을 위해 기업이 할 수 있는 일, 셀럽이 할 수 있는 일,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일은 엄연히 다르기도 하고요.
디자이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나오지 않아도 되는 쓰레기를 미리 포착할 수 있는 능력이 디자이너에게 있죠. 생산, 양산에 관여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그게 보여요. 제품 하나를 만들 때 버려지는 쓰레기는 소량이지만 대량으로 양산된다면 엄청 늘어나요. 이 부분을 고려하는 것, 그게 디자이너만의 일인 것 같아요. “디자이너는 계속 쓰레기를 배출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됐어요.
스토리즘을 기반으로 디자인하는 것이 철학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조금 더 설명을 해준다면요?
좋은 스토리를 가지고 디자인에 반영시키고 이 스토리가 다른 제품에까지 연결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하나의 디자인을 시작할 때 철저하게 키워드 베이스로 작업을 해요. 길을 걷다가, 일상 생활을 하다가, 넷플릭스를 보다가,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들어오는 키워드가 있습니다. 이를 분산시키고 나열하고 카테고리화하다 보면 어느 순간 문장이 완성되고, 그 문장이 디자인의 핵심이 되는 식입니다. ‘포 브라더스’ 작업도 철저하게 그렇게 됐습니다. 의자를 디자인해야 한다는 미션이 있었고, 어떤 의자를 만들까 고민하는 중에 늘 찾아가는 공장에서 쓰레기 더미들을 봤고, 환경 문제에 대한 키워드를 우연히 뉴스에서 보고, 이를 통해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의자’라는 문장으로 아이디어를 시작했던 거죠.


 미니어처를 만드는 ‘포 브라더스’ 제작 과정

미니어처를 만드는 ‘포 브라더스’ 제작 과정

지속가능성 디자인을 두고 재미있는 작업이라고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무엇이 어떻게 재미있나요?
저는 퀘스트를 깰 때,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게임처럼. 지속가능성뿐만 아니라 저에게 직면한 여러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모든 디자이너들이 한정적인 상황에서 디자인을 해요. 어떤 사람은 시각적인 것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을 할 수도 있겠죠. 저는 키워드에서 영감을 얻고 퀘스트를 깨는 재미로 추진력을 얻습니다. 더 재미있는 건, 디자인은 하나의 취향이라 게임처럼 정답이 있지 않다는 점이에요. 내 결과를 최대한 좋은 방향으로 설득할 수 있는 여지, 그게 또 흥미롭습니다. 다만 이런 부분은 ‘실패’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언가 하나를 디자인하기 위해 다른 것이 절반 이상 사라진다거나 불필요한 무엇이 엄청나게 생산된다거나…. 그건 무책임한 실패 같아요.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친환경을 고려하며 만든 가구 제품은 꼭 심플해야 하는 것일까요? 맥시멀라이즈에 충실한 제품도 지속가능성 디자인이 가능할까요?
그것에도 정답은 없을 것 같아요. 다만, 꼭 심플해야 되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할게요. ‘심플’의 기준도 설계자마다 소비자마다 다르고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도 모두 다르니까요. 누구는 흰색이 심플하다고 할 수 있고, 누구는 필요한 기능만 있는 게 심플하다고 할 수 있고요. 저 같은 경우는 정말 복잡해 보이는 물건도 제작과정 자체가 미니멀하다고 하면 심플하다고 여겨요. 심플해지기 위해 중간 과정이 복잡할 수도 있고, 중간 과정을 심플하게 줄여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도 있고요. 최종적으로 보이는 것과 다를 수 있어요.
제작 과정에서 낭비를 줄이는 것은 어떤 예들이 있을까요? 
절약을 하는 모든 행위는 다 포함될 것 같아요. 그 절약 때문에 퀄리티가 떨어진다면 너무 어려운 이야기가 시작되겠지만요. 과정에서 너무 절약하다 결국 그 문제로 인해 제품의 내구성이 떨어진다면 문제잖아요. 이 간극을 잘 조율하는 사람이 대단한 디자이너입니다. 디자이너의 일은 디자인의 전체를 디렉팅하는 것,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디렉팅을 책임지는 것까지 포함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제품이 생겨난 후 달라질 세상의 이야기도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까지도요.
평소 의자를 즐겨 디자인한다고 들었습니다.
의자는 상징적이고 어려워요. 철저하게 대량생산을 베이스로 하는 것이고 형태를 너무 배제할 수도 없어요. 저는 아트 퍼니처를 만드는 것보다는 많은 사람들에게 선보일 수 있는 가구를 만드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편의점 의자를 좋아해요. 아주 적은 양의 플라스틱이 들어가고 아주 싼 가격에 만들 수 있으며 정말 편해요. 이 간편한 의자 때문에 셀 수 없이 많은 공간에서 사람들은 앉아 쉴 수 있게 되었고요.
앞으로 또 어떤 프로젝트가 기다리고 있나요?
제주도의 소재 하나를 리브랜딩해서 제품으로도 나오고 공간으로도 나오고 요식까지 연결되는 브랜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어요. 플레이가 될 곳은 방앗간이고, 소재는 제주도 보리예요. 지금은 공개할 수 없지만 대기업과 함께 지속가능성을 주제로 협업하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 월정사와 협업하는 프로젝트도 있어요. 월정사에서 서별당 건물을 보수작업 하던 중에 진짜 오래된 마룻바닥이 버려지게 생겼다며 연락이 왔어요 스님들이 밟고 공부했던 그 바닥을 버리고 싶지 않다는 요청에 벤치로 만들어 설치했죠. 지금 월정사에 가면 앉아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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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 손기은(프리랜스 에디터)
  • 에디터/ 박의령
  • 사진/ 팀 바이럴스
  • 웹디자이너/ 김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