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 같은 배우, 포레스트의 정연주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이름이 각인되는 것이 중요한 직업을 가진 이에게 “아 그게 너였어?”는 달갑지 않은 반응일까? 정연주는 자기 얼굴보다 연기한 인물로 기억되는 것을 기꺼워한다. 무엇을 그리든 어떤 색을 칠하든 백지처럼 품는 그에게 스며든 시간.


우리 만난 적 있어요? 제 얼굴이 낯익나요 혹시?
그런 말 많이 들어요. “너 어디서 본 것 같아.”(웃음)
보통 메이크업 룸에서 잘 나오지 않거든요. 스태프 틈에 쓱 들어와서 무슨 얘기 하나 기웃기웃하는 게 인상 깊어요. 격 없이 잘 어울리는 성격인가 봐요.
맞아요. 그리고 오랜만에 이런 촬영을 하는 거거든요. 기대도 됐고 기분도 좋아요.
드라마 〈포레스트〉가 한창 방영 중이잖아요. 촬영 없어요?
사전 제작 드라마라 작년에 촬영 다 끝났어요. 요즘은 다음 작품 고민하며 지내고 있어요.
‘도벌꾼을 체포하는 산림계 공무원 오보미’를 연기해요. 이런 특이한 직업을 가진 삶은 쉽게 접할 수도 없을 텐데. 어떻게 준비했어요?
사촌 언니가 공무원이에요. 안의 분위기가 어떤지, 어떻게 일하는지 물어보고 얘길 들어봤어요. 사실 다른 건 없어요. 일하는 건 다 같잖아요. 물론 현장에 나가고 법을 어기는 사람을 잡고 수갑을 채우고 이런 행위들은 특수하지만 그냥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이 친구는 공무원인데 산을 지키기 위해서 바깥일도 하는 사람이야. 그리고 감독님이 산을 좋아해서 산림기능사 자격증이 있어요. 생소한 거, 모르는 걸 물어보면 바로 정확하게 알려주시니까 도움이 많이 됐죠.

니트 드레스는 Off-White. 트위스트 반지는 John Hardy. 심플한 실버 반지는 Monica Vinader.

니트 드레스는 Off-White. 트위스트 반지는 John Hardy. 심플한 실버 반지는 Monica Vinader.

극의 인물은 작가가 탄생시키지만 배우와 함께 완성하잖아요. 캐릭터에 접근하는 방식이 궁금해요.
사실 대본에 있는 그대로를 표현해요. 성실하게 공부하고 그걸 보여줘요. 너무 단순한가요? 예를 들면, 대본을 받아서 내가 맡은 역할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죠. 직업이 뭐지? 공무원이네.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아, 몇 급 공무원이지? 이 정도 연봉을 받겠구나. 그 정도면 어떤 옷을 즐겨 입고, 어떤 커피를 먹을 수 있겠다… 이런 걸 생각하는 거예요. 제가 질문에 맞는 답을 하고 있는 건가요?
맞아요. 오기 전에 필모그래피, 방송 출연작들을 살펴봤는데 사실 조금 놀랐어요. “아, 그 사람이 정연주였어?” 어떤 배우는 뭘 하든 그 사람 얼굴이 보이는데 정연주는 정연주가 안 보이고 그 역할로만 보였거든요.
너무 좋아요. 보여지는 게 곧 전부니까요. 모든 배우가 원하는 것 아닐까요?
작품의 스펙트럼도 넓어요. 어떻게 보면 되게 평범한데 알고 보면 파격적인 사람 같아요.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요?
쉬운 질문인 것 같은데 답하긴 어렵네요. 뭐라고 해야 할까. 사실 장르만 다르지 결국 같아요. 그냥 하나의 이야기예요. 서사가 있고, 기승전결이 있고, 갈등을 겪고 극복하죠. 다른 사람이 보기엔 아주 다른 연기를 한 걸로 보일 수 있지만 저한텐 다르지 않다는 얘길 하고 싶은 거예요. 그 안에서 굳이 기준을 찾자면 저는 독특한 걸 선택해요. 내가 봤을 때 독특한 것.
주연과 조연 여부, 비중 같은 건 중요하지 않은 요소인가요?
난 꼭 이 정도는 하고 싶어! 한 적은 없어요. 읽었을 때 잘 읽히고 재미있다고 느끼면 그걸 해요.

터틀넥 톱은 Cos. 보이프렌드 진은 Beaker for Rag & Bone. 귀고리는 Engbrox. 벨트는 Off-White. 가죽 스트랩 시계는 Nordgreen for Hago. 골드 뱅글은 Mulberry. 하이톱 스니커즈는 Converse.

터틀넥 톱은 Cos. 보이프렌드 진은 Beaker for Rag & Bone. 귀고리는 Engbrox. 벨트는 Off-White. 가죽 스트랩 시계는 Nordgreen for Hago. 골드 뱅글은 Mulberry. 하이톱 스니커즈는 Converse.

벌써 몇 년 전 얘기지만 〈SNL 코리아〉를 뻬놓을 수가 없어요. 주변에 ‘정연주’ 했을 때, “아, 그 〈SNL〉에 나온 배우?” 하는 반응이 가장 많았거든요. 왜 했는지, 어떤 게 남았는지 물어보고 싶었어요.
〈SNL 코리아〉가 장르는 예능이지만, 저한텐 오 헨리의 단편집 같은 느낌이었어요. 연극처럼 진행되고, 한 편의 콩트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함께 출연했던 선배님들이 연기를 너무 잘하는 분들이에요. 그들에게 배우고 싶었어요. 코미디 연기가 정말 어렵거든요. 학부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배우는 게 코미디 장르예요. 무엇보다 생방송이잖아요. 정말 할수록 연기가 이렇게 어려운 거구나, 느꼈어요. 그런 경험을 해봤다는 것만으로도 저한텐 아주 값진 시간이었어요.
창작하는 사람은 유일무이한 게 있을수록 강해지잖아요. 자기 무기, 혹은 강점이 뭔지 생각해본 적 있어요?
모르겠어요. 정말로요. 어떤 땐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게 다른 때엔 단점이 되거든요. 제가 단순하지 않은가 봐요. 〈포레스트〉 촬영 시작 전에 감독님이 장단점을 적어 오라고 했는데, 쓰다 보니까 장점이랑 단점이 똑같은 거예요. 그래서 나의 어떤 면이 장점이나 단점으로 이분화되는 게 아니라 그냥 특징인 거구나, 생각했어요.
어떻게 보면 단순해 보이는데, 한편으론 복잡한 사람 같아요.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읽고 있는 책’을 물어보는 질문에 신형철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 오쇼 라즈니쉬 〈피타고라스 2〉 등을 꼽은 것이 인상 깊었는데. 생각하는 걸 좋아하나요?
글쎄요. 철학책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해요. 글 쓰고 정리하고 사색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그럼 시간도 금방 가고 재미있어요. 엄마가 어렸을 때 소설 쓰고 시 쓰는 문예원을 보내줬었는데, 그 영향인가 봐요.
SNS에 하늘, 꽃, 나무, 자연, 동물 사진이 많은 것도 독특해요. 또래들은 예쁜 옷 입고 근사한 데 가서 셀피를 많이 찍어 올리잖아요.
저도 그랬는데, 변하는 것 같아요. 하늘이나 나무, 꽃 같은 게 좋아졌어요. 보고 있으면 너무 예쁘잖아요.

재킷은 Leha. 보이프렌드 진은 Beaker for Rag & Bone. 귀고리는 Engbrox. 가죽 스트랩 시계는 Nordgreen for Hago. 골드 뱅글은 Mulberry. 하이톱 스니커즈는 Converse.

재킷은 Leha. 보이프렌드 진은 Beaker for Rag & Bone. 귀고리는 Engbrox. 가죽 스트랩 시계는 Nordgreen for Hago. 골드 뱅글은 Mulberry. 하이톱 스니커즈는 Converse.

목가적인 사람이네요. 자연을 들여다보는 것 말고 쉴 때 또 뭘 해요?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해서 자전거를 타요. 예전에 잠깐 건강이 안 좋았는데 그때부터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려고 했던 것 같아요. 저는 나이 들어서도 건강하고 재미있게 놀고 싶거든요. 그래서 리프레시할 수 있는 시간,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해요. 나한테 좋은 걸 해주고 싶은 거예요.
1월이 막 지났어요. 올해 뭘 하고 싶은지, 뭘 할지 계획한 것 있어요?
계획을 세우는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뭐가 될진 모르지만, 대본을 받아 보면서 기다리고 있죠.
올해 만 서른이 됐어요. 예전엔 그 나이를 되게 요란한 감정적 의식을 치르면서 지나가는 분위기였거든요. 어때요?
아무 생각 없어요.(웃음) 시간이 너무 빠르구나. 그 정도?
저는 삼십 대가 제일 젊고 빛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아름다운 시절에 뭘 이루고 싶은지 묻고 싶어요. 혹은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거창하게 뭔가를 세워서 멀리 내다보기보단 순간순간에 충실해요. 그러다 보면 가려는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지 않을까. 눈앞에 있는 걸 하나하나 잘해나가면 목표에 가 닿겠지.
지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네. 저 잘하고 있어요. 지금.
이름이 각인되는 것이 중요한 직업을 가진 이에게 “아 그게 너였어?”는 달갑지 않은 반응일까? 정연주는 자기 얼굴보다 연기한 인물로 기억되는 것을 기꺼워한다. 무엇을 그리든 어떤 색을 칠하든 백지처럼 품는 그에게 스며든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