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올에 관한 모든 것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한 쿠튀리에의 마법 같은 비전과 대담한 열정. 이것이 어떻게 세대를 아우르는 여성들에게 영감을 주는 패션 하우스가 되었는지, 그 여정에 관해 이야기한다. | DIOR,디올,브랜드,패션 하우스,V&A

 ━  DIOR & US    (위부터) V&A 뮤지엄의 전시 전경. 큐레이터 오리올 컬런과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 런던의 V&A(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을 홀로 방문한 어느 금요일 밤, 샹들리에에서 쏟아지는 빛을 따라 반짝거리는 호화로운 볼가운 시리즈를 바라보고 서 있자 사무실의 스트레스가 아주 멀리 날아가버리는 것만 같았다. 웨스트민스터 길 아래에서 펼쳐지는 정치 시위(블랙 시트 반대 시위)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저녁은 현실에서 벗어나는 시간이에요.” 언젠가 크리스찬 디올은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여기, 바이올린 소리가 부드럽게 울리는 어둠이 깔린 홀에서 나 또한 일탈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이 전시에서 희망했던 거예요. 여유롭게 시간을 가지고 아름다운 것들에 둘러싸여 있는 것 말이에요.” V&A 뮤지엄에서 열린 <크리스찬 디올: 꿈의 디자이너(Christian Dior: Designer of Dreams)> 전시의 큐레이터 오리올 컬런(Oriole Cullen)이 말한다. 해당 전시 티켓은 2월 오픈 이후 19일 만에 모두 매진되었다. 그녀에 따르면 이 전시가 관람객에게 강렬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유 중 하나는 격변의 시간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희망의 감각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전쟁 이후 시대는 모두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에 초점이 맞춰 있었죠. 그래서인지 전시에 ‘부활과 재탄생’이라는 멋진 주제가 들어가 있어요.” 그녀의 말이다. “이번 전시는 디올의 마법 같은 매력이 어떻게 쿠튀르 하우스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탈바꿈시켰는지에 관한 희망 가득한 이야기입니다.”   (왼쪽부터) 1947 A/W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위한 크리스찬 디올의 스케치. 크리스찬 디올과 모델 실비 히르슈 (1948). 실제로 열정과 낙천주의라는 토대 위에 자신의 아틀리에, 아니 ‘꿈의 사무실’을 세운 한 남자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일종의 위안 같은 것을 받을 수 있다. 노르망디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디올은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1929년 ‘검은 목요일’(Wall Street Crash, 뉴욕증권시장에서 일어난 주가 대폭락 사건)에 의해 파리에 위치한 아트 갤러리가 파산했고, 같은 시기에 파산한 아버지를 책임지기 위한 방법을 강구해야만 했다. 친구들의 용기와 지원에 힘입어 패션 아티스트가 된 그는 니나리치(Nina Ricci), 뤼시엥 를롱(Lucien Lelong), 클로드 생 시어(Claude Saint-Cyr), 그리고 <르 피가로(Le Figaro)>지 등에 디자이너를 위한 스케치를 하기 시작한다.(그의 섬세한 일러스트레이션 일부 또한 전시에 소개되었다.)   (왼쪽부터) 1949년 <바자> 4월호를 위해 포토그래퍼 리처드 애버던이 촬영한 디올 룩.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의 ‘Eventail de vos Hasards’ 드레스. “그는 드로잉을 완전히 독학으로 터득했어요. 완벽하게 마무리 짓기 위해 몇 시간씩 그리기도 했지요.” 컬런의 설명이다. 이는 자신의 디자인을 시작하게끔 길을 열어주었고, 이윽고 운명의 손에 자연스레 이끌리게 된다. 1946년 어느 날, 유망한 비즈니스 파트너 마르셀 부사크(Marcel Boussac)와 논의 중에 그는 파리 포부르 생토노레 거리에서 별 모양의 메탈 토큰을 밟게 된다. 당시 미신을 숭배했던 그는 그 별 토큰(지금까지 보존되어 있으며 V&A 뮤지엄에서 확인할 수 있다)을 좋은 사인이라고 해석했다. 그리고 그 해 말, 부사크의 지원에 힘입어 애비뉴 몽테뉴에 디올 하우스를 론칭하게 된다. 쿠튀리에의 스케치가 가득한 V&A 뮤지엄의 이번 전시는 거장의 창조성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된다. 연필 터치 몇 번만으로도 그는 가장 완벽한 비율과 실루엣, 그리고 애티튜드를 정확하게 구현해낼 수 있었다. 그 단순함은 그의 아이디어를 세상에 내놓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일일이 선택한 장인들과 공유했을 강력한 유대를 상기시킨다. 특히 디올 작업실 수장인 마르그리트 카레(Marguerite Carré)는 기술적인 독창성과 재능으로 인해 ‘패션의 여신(Dame Fashion)’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아틀리에가 그의 선들을 믿을 수 없이 아름다운 의상으로 변신시키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뭔가 마법같이 느껴져요.” 컬런의 말이다. 이는 풍성한 장식 뒤에 숨겨져 복잡한 구조를 드러내는 투알(toile, 깨끗한 화이트 리넨 천으로 만들어진 원형 샘플로 실제 드레스와 같은 모양)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다. 컬런은 디올의 오리지널 디자인이 지닌 탁월함에 매번 놀라곤 한다고 말한다. “선이나 모양뿐만이 아니에요. 제작 과정 또한 그렇죠. 모든 과정에서 세세한 디테일까지 신경 쓰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1957년 발표한 실크 소재 ‘리브레’ 드레스(V&A 아카이브에서 찾아내 지난달 ‘영국의 디올(Dior in Britain)’ 전시 섹션에 추가되었다)가 전형적인 예. 기증자는 파멜라 만(Pamela Mann)으로 드레스는 왕실 가 의사인 남편 윌리엄에게 선물받았다고. 그녀는 세인트 제임스 궁에서 열린 저녁식사에 이 드레스를 입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입을 때마다 얼마나 멋져 보이는지 몰라요.” 그녀가 열변을 토했다. “지금까지 입었던 그 어떤 옷보다 편안한 의상이었어요. 너무나 훌륭한 기술이에요!”   (왼쪽부터) 1950 A/W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위한 크리스찬 디올의 스케치. V&A 뮤지엄에 전시된 ‘리브레(Libre)’ 드레스(1957 S/S). 전시는 매우 인간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그의 의상을 실제로 입었던 여성들을 통해 디올이 우리 모두에게 끼친 영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방문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어요.” 컬런의 말이다. “무언가를 보고 엄마가 입었던 것을 떠올릴 수도 있고, 아 니면 생애 처음으로 패션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을 발견하고는 잠시 멈춰 서 있을 수도 있겠죠.” 나에게 그건 전시장 한편에 디스플레이된 무수한 <바자> 커버였다. 그것은 디올과 <바자>의 특별한 관계를 보여주는 증거물이기도 했다. 그 유대감은 수십 년 동안 많은 표지를 장식했던 쿠튀리에의 디자인을 담은 포토그래퍼 리처드 애버던의 근사한 이미지들에 집약되어 있다. 물론 이번 전시는 디올의 유산, 그리고 선견지명이 있는 다른 몇몇 디자이너가 해석한 방식에 관한 것만큼이나 디올 그 자신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전시는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의 2018년 S/S 컬렉션 ‘Eventail de vos Hasards’의 피날레 드레스로 마무리된다. 바로 메종의 창립자에게 바치는 헌사이자 1950년대의 한 디올 추종자의 룩을 참고로 한 실크 튤 플리츠 드레스다.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역사를 추적해나가는 이번 전시는 디올 하우스의 유산과 더불어 상상의 힘으로 굳건하게 지탱해온 재창조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디올은 1957년 “오트 쿠튀르는 믿기 어려운 기적의 마지막 보고(寶庫) 중 하나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그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 <크리스찬 디올: 꿈의 디자이너> 전시는 9월 1일까지 런던 V&A 뮤지엄 (www.vam.ac.uk)에서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