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크게 더 좋게 더 새롭게 더 재미있게, 케니 샤프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Art&Culture

더 크게 더 좋게 더 새롭게 더 재미있게, 케니 샤프

케니 샤프(Kenny Scharf)가 1980년대 초반에 발표한 ‘젯스톤(Jetstone)’ 시리즈는 고인돌 가족 이야기 <플린스톤>을 우주시대로 옮겨놓음으로써 우리 사회가 당면한 현실의 고통을 미래적으로 치환시켜 전달하는 작품이다.

BAZAAR BY BAZAAR 2019.10.07

BIGGER, BETTER, NEWER, FUNNER! 

 스프레이를 이용한 그라피티 작업에 한창인 케니 샤프.

스프레이를 이용한 그라피티 작업에 한창인 케니 샤프.

공공미술 프로젝트 작업을 꾸준히 해왔고, 본인의 작품을 도시 환경으로 가져오는 것을 즐긴다고 알고 있다. 최근 L.A 플레이야비스타에 그린 벽화는 어떤 작업이었나? 
별로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커미션 작업이었다.
 
스튜디오에서 작업할 때와 공공장소에서 작업할 때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정말 정말 많은 차이점이 있다. 대중을 상대하는 것에서 오는 어려움 같은 것들 말이다. 사람들이 내가 작업하는 대부분의 과정을 다 지켜보고 있지 않나. 공공예술은 퍼포먼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TV, 자동차, 스케이트보드, 건물과 같은 일상의 평범한 오브제를 기발한 예술작품으로 변형시키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L.A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의 일부분이 된 기분이 어떤가? 
L.A는 거대한 경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L.A의 흔한 풍경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풍경의 일부에 내가 기여한 작업을 고르라면 카밤즈(Karbombz!)다. 아무래도 L.A 같은 도시에선 자동차가 도시의 미관에 큰 영향을 미친다.
 
캘리포니아는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이 강하고 다양한 문화성이 공존하는 지역이다. 캘리포니아에서 나고 자랐고 지금도 그곳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로서, 이 지역성이 당신의 작업 방식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보나? 
L.A에서 자랐고, 어렸을 때부터 환경운동을 했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그리고 내 작품은 내가 받은 교육의 일부이자 성장해온 방식이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사람들이 환경 문제에 대해 인식하는 것에 비해 실제로는 얼마나 적게 희생하고 사는지를 생각하면 놀라울 따름이다. 작은 규제보다 더 큰 어떤 문제들이 있지 않나.
 
 ‘FLOATUNGLE’, 2002, Oil on canvans, 36x30 Inches.

‘FLOATUNGLE’, 2002, Oil on canvans, 36x30 Inches.

당신은 꾸준히 지속가능성에 대해 말해왔다. 세계의 정부와 기업들이 기후변화 문제를 여전히 외면하고 있는 가운데, 환경보존 문제에 대해 예술가들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나? 
예술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관여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예술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다. 예술가와 다른 사람들 간에 차이는 하나다. 예술가가 종종 대중문화의 지표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그들이 가능한 한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어느 때보다 지금이 경종을 울려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예술가들은 이 상황을 그들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며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 가장 유명한 팝 아티스트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런 유명세를 가진 것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은 무엇인가? 
좋은 점은, (요즘 잘 사용하지 않는 특권이지만) 어느 나이트클럽에나 들어갈 수 있었다는 점이다.(웃음) 나이트클럽 같은 곳에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게 유명인사가 가진 장점의 전부다. 예술이 그렇게 대중적으로 노출되는 분야가 아니다 보니 내가 영화배우 같은 유명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만약 어떤 도시에 작은 아트 월드가 있다면 그곳에서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인정받고 그걸 뿌듯해할 수도 있겠지.
 
서울은 당신의 작품 세계 속 미래 도시와 가장 근접한 장소라는 생각도 든다. 2018년 서울에서 가진 개인전은 당신에게 어떤 영감을 줬나? 
서울, 특히 내가 전시를 했던 롯데 타워는 매우 미래적인 장소였다. 처음 그곳에 머물 때 마치 공상과학영화 속에 들어간 듯한 기분이었다. 서울에 한 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 화석 연료 없이 나아갈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서울에게서 얻고 싶은 대답이다.
 
오는 10월, 다시 서울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새로운 작품, 새로운 전시에 대해 할 말이 있다면? 무엇이 가장 당신을 흥분케 하는가? 
한국의 미술 애호가들과 대화를 계속할 수 있고 그들에게 나의 현재 상태를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즐겁다.
 
‘MACROMICROCITY’, 2019, Oil and spray paint on linen, 40x36 Inches.

‘MACROMICROCITY’, 2019, Oil and spray paint on linen, 40x36 Inches.

‘MACROMICROCITY’ ‘MICROMACROCITY’ ‘NOW N’ THEN’ 같은 최신작을 보고 당신의 왕성한 창작 에너지에 새삼 놀랐다. 프로젝트를 구상할 때, 당신의 위시 리스트 가장 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더 크게, 더 좋게, 더 새롭게, 더 재미있게!
 
내년이면 당신과 동갑인 키스 해링의 사후 30년이다. 친구로서, 예술적 동지로서, 아티스트로서 어떤 기분인가? 
키스의 존재는 젊은 시절 뿐만 아니라 내 삶 전체에 큰 영향을 끼쳤다. 키스가 살아 있을 때 태어나지도 않았던 수많은 젊은 예술가들이 키스와 키스의 이야기, 그의 모든 것에 대해 흥분한다. 죽어가던 그의 옆에 앉아서 그의 마지막을 지킬 때 이미 내가 예측한 일이다. 나는 그의 역사가 계속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 사실이, 그가 떠난 지 이렇게 오래된 지금까지 내게 위안을 준다. 하지만 친구로서 분명한 것은 여전히 그가 그립다는 점이다.
 
앤디 워홀이 당신과 키스 해링 그리고 장 미셸 바스키아에게 그랬듯 당신이 오늘날 젊은 예술가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워홀은 우리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그는 우리에게 뉴욕에서 예술가로 사는 법, 행동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 당시 우리가 했던 많은 일이 앤디에게서 영감받은 일이었고 나는 앤디가 젊은 예술가인 우리를 위해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일, 혹은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문을 열어젖혀주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당시 예술계에 존재하던 경계와 한계를 넓힌 것이 우리에게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통통 튀는 아이디어를 짜낼 다른 젊은 예술가들을 키워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당신의 발자취를 따라가고자 하는 젊은 아티스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 발자취를 따라오지 말고 자신만의 발자취를 만들라는 것. 하지만 자신의 발자취가 어떤 모양인지 보기 위해 꼭 뒤를 돌아볼 것.  
 
※ 케니 샤프의 두 번째 개인전은 10월 23일부터 약 한 달간 삼청동 백아트 서울(BAIK ART Seoul)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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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손안나
    사진/ ⓒ Kenny Scharf
    사진/ Photo courtesy to Baik Art
    사진/ Portrait by Eric Swe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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