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THE FRAME

‘Untitled #204’, 1989.
올해로 65세를 맞이한 셔먼은 지난 6월 말부터 새로운 회고전을 열고 있다. 그는 “어떤 사진에도 나는 없어요.”라고 말하며 전시된 작품이 자화상이 아니라 연출적인 성격을 띤다는 사실을 명백히 했다. 스튜디오에 있는 책꽂이와 방 한 구석에는 가면과 가발을 비롯한 소품들이 쌓여 있었다. “이 중엔 이전에 맡았던 역을 연기할 때 썼던 물건들도 있고, 20년 동안 가지고 있는 물건들도 있어요.” 부두 조각상, 제임스 본드 피겨, 상반신 조각들(“한때 이런 걸 모으곤 했죠.”)과 최근 파리의 벼룩시장에서 사들인 왕관까지 다양했다. “이것들을 가지고 뭘 할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다음에는 여왕 시리즈를 연출할 수도 있고….”
롱아일랜드의 집에서 인형놀이를 하던 어린 시절부터 옷과 오브제들은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1950년대와 60년대 여성들이 입었던 거들, 스타킹, 괴상한 브래지어와 이상한 장신구들을 언급하며 회상한다. “메이크업 혹은 코스튬을 통해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정말 재미있었어요. 하지만 어렸을 때 그런 분장은 쿨함과는 거리가 있었어요. 페미니스트들은 자연스러운 모습이어야 했죠. 메이크업과 염색은 물론 브래지어조차 하지 않았지만 옷을 입고 꾸미는 것은 포기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즐거움이었어요.” 패션에 대한 관심은 커리어를 이어가는 동안 지속되었지만, 취향은 자아와 의식이 자람과 동시에 변하기 시작했다. “지금보다 어렸을 땐 튀고 싶지 않아 수수하게 입곤 했어요. 친구들이 힘들어할 때 혼자 성공했다는 사실에 대한 일종의 죄책감도 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 그 시절은 지났고 개성 있는 옷들이 좋아졌어요. 가끔 무언가를 샀을 때 이걸 입을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곤 하지만, 캐릭터를 연출할 때 입을 수 있는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으니까요.”

메이크업과 코스튬을 벗은 신디 셔먼의 초상.
가상 시나리오 속 배우처럼 보이기 위해 그는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한 캐릭터를 연출하기도 했다. “처음엔 사람들이 저를 자기중심적이고 자기집착적인 사람으로 볼까 두렵기도 했어요. 그래서 그런 캐릭터를 연출할 때는 내 자신보다 연기하는 캐릭터에 관심이 갈 수 있도록 노력했어요.” 1981년에 선보인 센터폴드 프로젝트는 남성지를 통해 전해져 내려오는 포르노그래픽한 전통, 즉 아무것도 모르는 취약한 상태에 놓인 여성을 관음하는 듯한 시선을 전복시키려는 모습을 보인다. 몇 년 후 ‘Disasters’와 ‘Fairy Tales’ 시리즈(1985~1989)에서는 토사물, 피와 배설물 등 체액과 분비물, 마네킹을 사용하여 신체의 유약함을 그리기도 했다.

1 ‘Untitled Film Still #15’, 1978. 2 ‘Untitled Film Still #48’, 1979. 3 ‘Untitled Film Still #54’, 1980. 4 ‘Untitled Film Still #21’, 1978. 5 ‘Untitled Film Still #17’, 1978. 6 ‘Untitled Film Still #56’, 1980.
셔먼이 연기하는 대부분의 역할들이 그의 상상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가끔 1989년 찍은 앵그르의 ‘모아테시에 부인의 초상’ 패러디처럼 특정한 여성을 모델로 삼아 ‘History Portraits’ 시리즈를 만들기도 한다. 여기서 그는 뛰어난 보철술로 초상화에 내재된 환상(대부분의 경우 모델들의 허영심이다)에 주의를 끌며 프랑스 신고전주의 시각 기법을 사용한다. 이는 최근작에 많이 활용하는 기법이기도 하다. 2016년엔 미국판 <하퍼스 바자>와 협업하여 머리부터 발끝까지 디자이너 의상을 입고는 패션쇼 주변을 활보하는 소위 ‘스트리트 스타일 스타’라 불리는 이들을 풍자하는 이미지를 발표하기도 했다. “단순히 사진 찍히려고 리무진에서 미리 내려 두 블록 정도 걸어가는 사람도 있어요.”

1 ‘Untitled #92’, 1981. 2 ‘Untitled #413’, 2003. 3 ‘Untitled #122’, 1983. 4 셔먼이 패러디한 앵그르의 ‘모아테시에 부인의 초상’. 5 ‘Untitled #577’, 2016-2018.
디지털 원주민으로서 사진을 포착하는 본능은 없을지 몰라도 셔먼은 이미 소셜미디어를 마스터했다. 항상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그는 배경을 바꾸거나 손쉽게 사진에 미묘한 변화를 주기 위해 1990년대 후반 필름카메라에서 디지털카메라로 변화를 꾀했다. 인스타그램의 세계에 발을 내딛어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2017년부터 페이스튠과 같은 앱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형시킨 기괴하고 창의적인 인스타 초상화로 팔로어들(현재 27만 명에서 계속 늘고 있는)에게 기쁨을 선사한 것이다. 한 사진에서는 코에 인공호흡기를 댄 채 병원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가 다른 사진에서는 입술, 눈, 눈썹을 귀신처럼 새까맣게 칠해놓는 식이다. 비록 셔먼은 그런 이미지를 ‘작은 재미’ 정도로 표현하지만, 그의 작품 활동 속 맥락을 살펴본다면 해당 이미지들이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자신을 포장하여 표현하고자 하는 강박관념과 이에 수반되는 거짓말을 말이다. 셔먼은 오늘날 셀프카메라가 유행하는 현상이 마냥 반갑지는 않다. “휴대폰 카메라가 얼굴을 잘 담아낸다고 생각하지 않아요.”라며 청소년기 아이들에게 보정 필터가 미칠 영향에 대해 걱정한다. “포스팅하는 셀카에 가깝게 보이기 위해 성형수술을 하는 아이들에 대해 읽은 적이 있어요. 약간 무섭기도 하죠.”

1 ‘Untitled #74’, 1980. 2 ‘Untitled #602’, 2019. 3 ‘Untitled #466’, 2008.
대부분의 여성 아티스트처럼 셔먼은 남성 동료보다 적은 임금을 받아본 경험이 있지만(“매우 존경받는 아티스트가 되었음에도 남성 작가 작품이 더 높은 값을 받더라고요.”) 이 싸움에서 지지 않을 것을 선언한다.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와 최근 한 협업에서는 의도적으로 남성복과 여성복 컬렉션을 섞어 성별 사이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었다. 매카트니는 “신디 셔먼과의 작업은 놀라워요. 신선하고 현대적이며 본인에게도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죠.”라고 전했다.
셔먼이 나아갈 방향은 무궁무진하다. 최근에는 인스타그램 사진을 태피스트리로 변환하는 작업(“실을 짜는 것은 픽셀 단위로 사물을 나누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을 하고 있으며 영화 제작도 검토 중이다. 1997년 자신이 감독한 코미디 호러영화 <오피스 킬러> 이후로는 아무 영화도 만들지 않은 상태다. “어느 순간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질리게 돼요. 하지만 계속해서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찾을 거예요.” 그가 밝히지 않은 것 이상이 있겠지만, 그것도 아마 갑작스럽게 나타나지 않지 않을까. 결국 우리를 계속해서 추측하게 만드는 것이 신디 셔먼이 가장 잘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본다.
※ 신디 셔먼의 회고전은 영국국립초상화미술관에서 6월 27일부터 9월 15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