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메일! 일간 구독 서비스의 매력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Lifestyle

매일 메일! 일간 구독 서비스의 매력

매일 밤 작가들과의 정다운 직거래.

BAZAAR BY BAZAAR 2019.09.07
매일 메일
잠들기 전 치르는 의식이 하나 생겼다. 침대 시트의 구김을 펴고 베개를 팡팡 때려 모양을 잡는다. 룸스탠드의 조도를 낮추고 몸을 벽에 비스듬하게 누인다. 그런 다음 휴대폰을 쥐고 메일함을 연다. 누군가 내 옆에 있었다면 고작 휴대폰을 보는 데 무슨 유난이냐며 혀를 찼을 거다. 지난달 마지막 날까지는 달랐다. 동물의 눈처럼 빛나는 휴대폰 불빛만이 켜진 어두운 방에서 트위터 친구들이 모두 잠들어 더 이상 새로운 농담을 날리지 않을 때까지 터치 패드를 밀었다 당겼다를 반복했으며, 맘에 드는 콘텐츠가 나올 때까지 심사하는 마음으로 넷플릭스 영상들을 조금씩 건드려보다 어느새 잠들곤 했다. 새로운 달이 되고 내 밤의 풍경은 바뀌었다. 일간 구독 서비스를 신청하면서.
참으로 게을렀다. <일간 이슬아>에 관한 공지는 이미 작년 인스타그램에서 봤는데. 신통한 인스타그램은 둘러보기를 통해 나에게 이슬아 작가의 계정을 소개해주었다. 그림판으로 만든 것 같은 연재 공지 포스터에는 이런 선언이 쓰여 있었다. “신문방송학 전공했으나 신문도 방송도 잘 몰라… 학자금 대출만 이천만 원 쌓여… 쓸 줄 아는 거라곤 수필밖에 없어…” 자신을 연재노동자라 칭하고 직접 구독자를 모았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한 달 동안 자정에 자신이 쓴 수필을 메일로 발송해주는 서비스였다. 편당 5백원. 그러니까 한 달 구독료는  
1만원이었다. ‘천잰데!’ 출판사를 찾을 필요도 없고 구독료를 나눠 가질 필요도 없다. 깨끗하고 맑은 정신력으로 약속한 시간에 글을 발송하면 된다. 나는 그의 아이디어를 높이 샀으나 신청 방법이 꽤 복잡해 보여 구독을 미뤘다.(막상 신청했을 때는 그렇게 쉬울 수가 없었다. 클릭 한 번으로 카트에 담아버리는 데 익숙해진 나에게 구글폼을 이용한 문답이 어색했던 탓이다.)
그로부터 일 년 반이 흐른 지금 이슬아는 화제의 작가가 되었고 두 권의 단행본을 냈으며, 본인의 출판사를 꾸렸다. 물론 학자금도 다 갚았다고 한다. ‘<일간 이슬아>의 포맷을 빌립니다’라는 공지를 단 서비스들이 몇 개 더 생겼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나는 침착하게 공지사항을 읽고 신청 버튼을 눌렀다. 내가 할 일이라고는 메일이 튕겨나가지 않도록 용량을 확보해두는 정도. 그리고 작가에게 직접 서신을 받는다는 이유로 무척 경건한 마음이 되었다. 내 집에 벽난로가 있고 안락의자와 고양이가 있었다면 기꺼이 같은 시간에 그곳에 앉아 메일을 읽었겠지만, 가진 게 하나도 없었기에 침대를 정리정돈했다.
화가 2da(이다)의 <매일 마감>은 PDF로 온다. 2da를 포함한 네 작가진의 이야기가 두서없이 뭉쳐 있다. 자우어크라우트를 이용해 부대찌개를 만드는 레시피와 KBO 한선태 선수 1군 첫 등판 소식, 코타키나발루 여행기가 하루치로 묶여 있다. 2000년대 초반 그리드도 안 맞게 글과 그림을 채워 나왔던 괴상하고 귀여운 진들이 떠오른다. 음악가 이랑은 친구를 위해 친구와 친구들을 모아 6개월 동안 일일 연재를 이어간다. <앨리바바와 30인의 친구친구>는 매일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배달한다. 드래그퀸 모어의 자전적 이야기, 식물 세밀화가 이소영의 식물 소식, 판화가 히로카와 다케시의 그림동화. 매일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실려와 시간이 흘러 어떤 형태로 쌓이고 종결을 맺게 될지 궁금증이 인다. 링크를 타고 들어가면 블로그 화면처럼 펼쳐지는데 어떤 날은 믹스테이프가 날아오고, 낭독을 들을 수도 있다. 그사이 벌써 이렇게 변모했구나. 선구자인 이슬아는 정말, 내게 안부라도 묻듯 글을 전한다. 짧은 글과 그날의 날짜, 말미에는 디지털 픽셀로 대체되었지만 ‘日刊 李瑟娥’가 낙관처럼 찍혀 있다. 어떨 때는 시간이 되어도 오지 않고 어떨 때는 나 역시 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그만 다음 날 몰아 보기도 한다.(언급한 <앨리바바와 30인의 친구친구>는 원래 배달 시간이 오전 8시다.) 그럴 때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그들을 재촉하지 않지만 궁금해하듯 그들도 수신 확인이 안 된 메일을 보면서 구독자의 사정을 궁금해할까?
이 모든 것이 나의 감상일 뿐이고 실제로는 타이머 설정에 의한 차갑고 기계적인 유포라 하더라도 일일 구독 서비스가 주는 밀착된 기분은 특별하다. 무엇보다 이들은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많은 이야기가 넘쳐나고 그 이야기를 개인적으로 간직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매일이 재미있는 결과물이 아니더라도 실망감보다는 내일에 대한 기대감이 더 크다. 많은 사람들이 일일 계획을 세우고 있을 것 같다. 나 역시 이번 휴가지에서 찍은 사진을 매일 한 장씩 서비스 해볼까 가볍게 떠올려봤으니까. 앞으로도 더 많은 매일의 이야기를 나는 기꺼이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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