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공업도시 부퍼탈에는 1백 년 넘은 모노레일 슈베베반이 강을 가로지른다. 서커스단의 코끼리가 이 모노레일을 타고 가다 강으로 추락했지만 살아났다. 코끼리 투피는 부퍼탈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이름이 되었다. 이런 우습고 강렬한 구전보다 더한 인상을 남기는 건 안무가 피나 바우쉬와 그의 무대다. 무대예술가 페터 팝스트는 1980년 피나 바우쉬와 처음 작업을 시작한 이후 29년 동안 26개의 무대를 올렸다. 어떤 연출가는 부풀려진 세트에 몸을 기대고 싶어한다. 피나 바우쉬는 거의 발가벗은 것처럼 아무것도 없는 무대에서 작품을 짰다. 페터 팝스트는 무언과도 가까운 피나 바우쉬의 움직임을 읽고 공간을 구축했다. 무모할 정도의 대범함으로 흙과 바위, 물과 꽃을 무대 위로 불러들였다. 이제 피나 바우쉬는 없지만 무대는 남았다.
이미 인스타그램 피드에는 이번 전시에 관한 해시태그와 이미지가 넘쳐난다. 하얀 눈 속에 언 비처럼 내리꽂힌 자작나무, 용광로처럼 흘러내리는 붉은색 꽃 무더기, 반가운 손처럼 흔들리는 듯한 핑크빛 꽃송이, 잘 마른 카펫처럼 깔린 녹색 잔디. 전시를 다 본 것같이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재현된 무대는 직접 찾는 관객의 몫이다.
예전에 제 전시장에서 두 명의 아이와 엄마를 봤습니다. 아주 작은 아이들이었어요. 마치 놀이터에서처럼 마구 뛰어놀더니 갑자기 엄마한테 달려가 ‘엄마 우리 도대체 언제 미술관에 가죠?’라고 얘기하더군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 전시장은 그냥 즐길 수 있는 공간입니다.”
무대를 전시하는 방식은 드물다. 피나 바우쉬와 무용단이 춤추던 무대를 재구성하여 전시장에 펼쳐놓았다. 이런 방식의 전시를 어떻게 만들게 된 건지 궁금하다. 독일 보훔이라는 도시에서 이번 전시 방식과 같은 전시를 한 적이 있다. 독일에서도 이러한 전시는 아주 드물다. 무대예술가들의 디자인이나 모형을 전시하는 경우는 흔하지만. 보훔에서 전시를 열게 된 건 아주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보훔 미술관(Kunstmuseum Bochum)에서 나에게 전시를 하자고 가볍게 물었고, 좋다고 가볍게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잊고 지냈다.(웃음) 언젠가 보훔 미술관에 다시 갔고 천천히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무대에서 공간이라는 것은 나에게 큰 의미가 있는데, 그 공간을 봤을 때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무대들의, 무대의 어떤 부분을 미술관 안에 설치했다. 물론 무대 예술 자체를 가져온 건 아니었다. 무대 예술을 창작할 때는 아주 작은 세계로서 디자인한다. 그 작은 세계에 무용가나 배우가 들어가 삶을 살고 그들의 이야기를 펼치길 기대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무대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래서 무용수나 배우가 없는 나의 무대가 미술관이나 다른 공간에서 어떤 작용을 할지 흥미가 생겼다.
무대는 바닥을 중심으로 쌓아간다는 인상이 강하다. 어떤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무대를 구축하는가? 내 판타지는 무척 자유롭다. 허공에 무대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대에서 바닥이 중요한 것은 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다. 특히 무대 위에서 춤이 벌어진다면 바닥은 이미 엄청나게 많은 의미를 갖게 된다. 무용수의 몸과 움직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평범한 댄스 플로어가 깔리면 무용수들은 불안함 없이 확신을 갖고 움직인다. 만약 잔디밭을 무대 바닥에 깔아 놓는다면 상당히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그런 생각들이 전부 무대 만들기에 투영된다. 실마리를 잡은 다음 건축가와 비슷하게 모형부터 손본다. 건축가의 모형이 진지한 설계라면 나의 모형은 놀이로 만든 인형극장 같은 것이다.
전시 제목인 은 아주 직설적이다. 공연에서는 관객들이 무대를 바라보지만 이번 전시장에서는 본인의 이야기를 펼치는 무대가 될 것이다. 어떤 금지 사항도 없고 무엇이든 허용된다. 예를 들어 하나의 방에는 오만 개의 장미꽃이 놓여 있다. 거대한 장미 언덕이다. 올라갈 수도 있고 누울 수도 있고 잠을 잘 수도 있다. 매우 감각적이며 관객을 환영하는 공간이다. 관객들은 어떤 것도 이해할 필요가 없고 어떤 것을 생각하거나 의미를 찾을 필요가 없다. 이 공간들은 그냥 팔을 벌려 관객을 맞이하고, 그저 편안하게 느껴주기를 바라고 있다. 물론 그런 것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작가로서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 반응하는 것에 관심이 크다.
포스터에 담긴 카네이션은 우리나라에서는 존경하는 이에게 건네는 꽃이다. 무대에 서 있는 수많은 카네이션은 우리에게 생소한 장면이 될 것이다. 독일도 비슷하다. 내가 어릴 때의 관습 같은 것인데, 집에서 열리는 저녁식사 자리에 초대받으면 일곱 송이 카네이션을 가지고 갔었다. 어느새 낡아져 없어져버렸지만. 여담으로 카네이션이 등장하는 무대를 처음 올린 1982년에도 카네이션을 구하기 이미 어려워 애를 먹었다.(웃음) 이런 꽃의 언어, 꽃이 의미하는 바에 대한 전통이나 생각들은 아주 거대한 분야다.
다양한 물성, 자연의 요소를 무대 위로 가져온다. 그 재료들은 주변을 돌아보고 현지의 것을 사용한다. 내가 만든 무대는 재현하기 복잡하고 어려운 점이 많다. 그래서 초청 공연을 제안받으면 가장 먼저 무대를 방문하고 공연이 가능한지를 살펴본다. 불가능하더라도 곧장 포기하기보다는 다른 방법을 찾는다. 30년 전 뉴욕의 한 공연장에 갔을 때 극심한 가뭄으로 식수 외에는 물을 사용하지 못하는 일이 있었다. 캐나다에서 물탱크를 빌려와 문제를 해결했다. 언제나 문제는 생기지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란 없다고 생각한다.
무대가 아닌 다른 형태로 구성된 전시도 있다. 영화 를 만든 빔 벤더슨의 흔적도 눈에 띈다. 잔디 인스톨레이션 위에 휘날리는 흰 시트에는 글자가 쓰여 있다. 빔 벤더스와 내가 아주 오랜 시간 즐겁게 대담했을 때의 이야기를 발췌해 적었다. 피나 바우쉬와 일하기 전부터 그와 다양한 작업을 해왔고, 서로 잘 아는 사이여서 편안한 대화를 나눴다. 그래서 글을 읽다 보면 마치 나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세계 국가/도시 시리즈의 13번째 작품으로 한국을 소재로 한 <러프 컷>을 제작했을 때 서울의 한 쇼핑센터에서 직접 영상을 찍었다. 그 영상이 이번 전시에서 상영된다. 여섯 개의 에스컬레이터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모습이 무척 신기했다. 게다가 1백 명이 넘는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 장면을 찍다가 경비원에게 쫓겨났다.(웃음) 이번 전시에서는 계단에 영사한다. 계단과 에스컬레이터의 이미지가 상충하는 장면이 흥미로울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부퍼탈에 머물렀다. ‘탈(tal)’이라는 꽃 하나 피지 않는 협곡이 있고 그 아래 ‘부퍼(Wupper)’라는 강이 흐르는 도시다. 아스피린의 발상지이며 사이비 종교가 많은 곳인데 사람들은 잘 모른다. 알려진 건 슈베베반 정도이고 모든 사람들이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곳이다. 그렇지만 나는 부퍼탈이 완전 미친 도시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다. 이런 환경이 오히려 내 영감을 자극하고 내 작업에 집중하게 만들어주었다. 고향은 따로 있지만 피나 바우쉬와의 인연이 시작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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